66화· 듕듕이
멀찍이서 다가오던 태미가 우뚝 멈춰 섰다·
나름 호전적으로 등장한다고 했는데 소천개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반갑게 듕듕거리니 태미의 동공은 갈피를 못 잡고 마구 흔들렸다·
“듕듕!”
“듕듕듕?”
“듕듕?”
“듕듕듕듕!”
태미와 소천개가 서로 간에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기에 금적자등은 미간을 심각하게 좁혔다·
“둘이 뭐하냐?”
“사제야 너 저거 무슨 말인지 알고 그러는 거냐?”
“아닌 것 같은데····”
뭐 어떻든 활달한 데다 거침이 없는 천공단이 찾아온 손님을 마다할 리 만무했다·
“야 밥 먹었냐? 이리 와라· 같이 먹자·”
“그래 듕듕인지 뭔지 그만하고 이쪽으로 와!”
“근데 혼자 왔냐?”
소천개는 아예 달려가 엉거주춤 서 있는 태미를 잡아끌었다·
분위기에 휩쓸려 태미가 얼떨떨하니 무리에 합류해 앉았다· 젓가락까지 손에 쥐여주니 멍청하게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원래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눈동자에 그대로 떠올랐다·
“듕듕이 형 몇 살이야?”
“듕듕!”
태미가 손가락을 한 개 펴고 다음에 또 펴려다 이게 아니다 싶은지 인상을 팍 구겼다·
금적자를 비롯한 천공단이 껄껄 웃었다·
“이 녀석 성깔 있네·”
“듕듕이 너 말은 아예 못 하냐?”
“그러지 말고 고기 좀 먹어 봐· 극상품이야·”
“근데 어쩐 일로 온 거야?”
태미가 손짓을 하며 듕듕거렸다·
수화였다·
“뭐래는 거야?”
“수화할 줄 아는 사람?”
“내가 수화는 몰라도 독순술은 좀 하는데 아쉽네·”
답답한지 태미가 연신 듕듕대다가 땅바닥에 글자를 적어갔다·
[니들 두목 어딨냐?]
뭐라고 적나 쳐다보던 천공단이 다시 터져나가며 깔깔거렸다·
“와아 겁나 무섭네· 왜 죽이게?”
“야 밥이나 처먹어·”
“우리 두목 바쁘다·”
“듕듕듕듕!”
태미가 분통이 터지는지 연신 씩씩대면서 듕듕거리다가 얼른 바닥에 다시 글을 적었다·
[어딨냐고!]
“형아 적당히 하고 고기나 먹자·”
“그래 다 같은 강호동도들끼리 이럴 거 있냐·”
[닥쳐· 다 내 손에 죽고 싶냐?]
순간 분위기가 달라졌다·
항마삼협이 고개를 좌로 삐딱하게 기울였다·
한두 번 웃어 넘겨줬으면 천공단도 할 만큼 한 것이다·
“계속 씩씩댈래?”
“숨 똑바로 안 쉬냐?”
무산쌍웅은 아예 흉악스럽게 살기를 흩뿌렸다·
“웃어 이 새끼야! 죽여버리기 전에·”
“듕듕듕!”
살기에 반응하며 태미가 무산쌍웅을 마주 노려봤다·
“눈 안 깔아?”
“듕!”
니가 어쩔 건데 정도로 태미의 태도가 도전적이 되었다· 동시에 날카로운 기세가 전신에서 피어올랐다·
분위기가 삽시간에 험악해졌다·
급기야
무산쌍웅이 기세를 끌어올리며 손을 들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태미의 손은 반월도를 쥐어갔다·
강호에서 죽음과 삶의 경계는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절체절명의 순간
“멈춰라!”
순간 태미가 반월도를 반쯤 뽑다 멈칫하며 돌아봤고 무산쌍웅도 놀란 눈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만큼 문 앞에 단주가 서 있었다·
‘형님?’
‘뭐지?’
무산쌍웅의 눈은 어느샌가 가늘어졌다·
의문이 눈동자를 맴돌았다· 단주가 갑자기 나타나 멈추라고 해서 언짢은 건 아니었다·
그건 그럴 수 있다· 그래도 된다·
이미 자신들의 형님이다·
정작 놀란 건 자신들이 멈출 생각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게 형님의 목소리에 자신들의 기운이 교란되고 일시적으로 흐트러진 것이다·
무시하려면 바로 극복해낼 수 있는 정도이긴 했어도 분명 영향을 받았음은 부인할 수 없었다· 찰나의 간극이라도 그 흔들림이 고수들간의 대결에선 얼마나 긴 시간인지 설명하는 건 입만 아플 뿐이다·
간단히 볼 수 없는 조예·
– 음공인가?
– 설마····
– 하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다른 이들을 보니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다·
태미 쪽도 마찬가지·
이는 음의 기파가 방사되지 않고 한 점 즉 자신들 쪽으로 초점이 맞춰졌다는 의미였다·
‘뭐야···· 이 사람····’
후공은 쌍웅 쪽을 뚱하니 바라봤다·
얼떨떨해하는 걸 보면 왜 자신들의 기운이 흔들렸는지에 대한 의문일 테지만 음공의 한 방편이라고 친절히 설명해줄 생각은 없었다·
악기를 다루는 취미는 없었지만 음공의 발현에 악기가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다·
만류귀종(萬流歸宗)이며 일이관지(一以貫之)다·
모든 것은 하나로 통하며 또 하나를 통해 모든 이치를 관통한다·
나무 막대기를 서로 두드려도 휘파람을 불어도 손뼉을 쳐도 소리는 난다·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그저 기의 흐름을 읽고 그 흐름을 타고 북돋느냐 깨뜨리냐일 뿐·
후공이 다가갔다·
“진정하십시오· 쌍웅 같은 분들이 어찌 까마득한 강호 후배와 격에 맞지 않게 드잡이질을 하십니까·”
‘이놈의 새끼들아’라는 말은 속으로 삼킨 채 후공이 자리에 합류했다·
은근히 체면을 세워주며 띄워주는 말에 무산쌍웅이 의문은 접어두고 머쓱한 표정이 되었다·
“형님 그런 게 아니라 듕듕이가 눈치 없이 형님을 어떻게 해보겠다고 설치는 탓에 잠시 이성을 잃었습니다· 그래도 죽일 생각까진 없었습니다·”
“그래 단주도 너무 탓하지 말게· 이건 듕듕이가 명백히 잘못한 거네·”
“맞아! 듕듕이 형아가 혼자 찾아온 용기는 대단하지만 너무 나갔어·”
금적자와 소천개 등이 옹호했다·
후공이 어찌 모르겠는가·
강호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설치더라도 사람을 봐가면서 설쳐야 한다· 만약 다른 장소 다른 상황에서 항마나 무산과 맞닥뜨렸다면 이미 태미는 죽은 목숨이다·
“흠 다 좋습니다만 왜 다들 자꾸 멀쩡한 이름을 두고 듕듕이라고 부르는 겁니까? 앞으로는 태미라는 이름으로 부르도록 하십시오·”
“오오! 태미였구만· 근데 단주는 어찌 듕듕이··· 아니 태미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인가?”
문득 의아하게 여긴 금적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이들도 생각해보니 이상했기에 의문을 띠고 바라봤다· 심지어 당사자인 태미까지 ‘듕듕?’ 하면서 쳐다봤다·
‘이런····’
후공은 내심 혀를 찼다· 자꾸만 듕듕이라고 부르는 것이 거슬려 지적한다는 것이 난감함을 자초한 꼴이었다·
“크흠 각주에게 물어 알아두었습니다·”
천공단의 미간이 더욱 좁혀졌다·
각주와 나눈 대화는 간밤에 문에 달라붙다시피 하며 하나도 빠짐없이 엿들었던 천공단이었다·
“물어본 적 없잖나?”
“전음으로·”
“아하!”
그제야 천공단이 ‘그랬구만’ 하면서 표정을 풀었다· 태미조차 그랬냐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끄덕·
“····”
수긍이 너무 빠른 탓에 도리어 후공이 뚱해졌다·
이놈들 단순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였던가·
또 태미는 뭔데 천공단인 양 보조를 맞춰 같이 수긍하고 있는 건지·
그때 송화는 주인이 나온 것이 기쁜지 고기를 다시금 빠르게 굽기 시작했다·
후공은 태미를 지그시 바라봤다·
시선을 느낀 태미가 눈을 드니 서로가 마주 보게 되었다·
후공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태가의 아이들이 어릴 때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당시 태미가 세 살이었나 네 살이었나· 둘째 태야의 등에 업혀서 뺨이 눌린 채로 눈물을 글썽이며 듕듕거렸었다·
태야도 기특했다·
고작 여덟 살 정도의 나이로 막내를 등에 업고도 힘든 내색이 없었다·
그로부터 십오 년 가량이다·
눈앞의 태미는 어느덧 스무 살 남짓·
그 꼬맹이가 지금의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청년이 되어 바로 앞에 있다 싶으니 기묘하였고 또 감회가 남달랐다·
“듕듕?”
그런 시선에 태미가 미간을 찡그렸다·
후공은 수화 동작을 취했다·
[어제는 미안했다· 내가 말이 과했다·]
수화는 틈나는 대로 익혀 두었다·
태대를 비롯한 아이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약속은 세 가지·
첫째는 맹에 찾아오면 비무를 해주겠다는 것이요
둘째는 다시 만나는 날 선물을 주겠다는 것·
셋째는 태미를 위해 수화를 배워두겠다는 것이었다·
선행 조건은 다쳐서도 안 되고 너희 중 하나라도 잃어서는 안 되며 천잠의 무공을 최선을 다해 습득하라는 것이었다· 정진하여 실력에 자신할 수 있을 때 여섯이 함께 맹으로 찾아오라고 했다·
떠나기 전
태대가 눈물을 참으려 입술을 깨물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리고 태일 태이 태삼 세쌍둥이 그리고 태야의 등에 업혀 눈을 깜박이던 태미의 모습까지도·
“···?”
태미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태미는 미안하다는 말을 듣게 된 것도 놀라웠지만 그보단 천화서고의 서생이 수화를 할 줄 안다는 것이 더 큰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그건 천공단도 마찬가지였다·
“형님 수화도 하시는 겁니까?”
“두목 뭐야 너무하는 것 아녀? 천재라도 적당히 해야지·”
“형아야 어릴 때부터 뭘 하고 지낸 거야· 신나게 놀았어야지 대체 어떤 삶을 산 거야!”
“형님도 참 하오문 차릴 것도 아니면서 언제 잡기까지 익혀두셨대·”
[수화는 어떻게 배웠어?]
태미가 듕듕거리면서 손짓했다·
안색은 이미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당연했다· 수화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태미는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든 해버리겠다고 왔는데 그 생각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렸다·
후공이 답했다·
[내가 좋아하는 꼬마가 말을 못했거든· 언젠가 다시 만나면 수화를 배워두겠다고 약속했지·]
[하하 그래? 그거 좀 멋지네·]
[멋진가?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 그보단 그 꼬마 녀석도 나중에는 너처럼 멋지게 클 듯싶다·]
[와아 되게 신기하다·]
[뭐가?]
[비슷해서· 후공이 나 어릴 때 그런 약속을 했었거든·]
[크흠 훌륭한 분이로군·]
[맞아·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하는 거야·]
후공이 미소 지었다·
[사실 너희 일은 놀랍지· 대단한 일이기도 하고· 결코 마음먹기 쉬운 일이 아니니까·]
[우리에겐 쉬운 일이야·]
[어쩌면 후공은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르겠다·]
[뭔 소리야?]
태미의 눈이 커졌다·
[너희들이 잊지 않고 있으니까·]
[아 그 말이구나·]
우리 마음속에 라는 것이겠지? 태미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옛 생각을 하는지 눈이 깊어졌다·
이내 고개를 내려 다시 손동작을 취했다·
[사실 그런 말도 들었어·]
[그런 말?]
[후공이·]
[뭐라고?]
[우리 중에 하나라도 다쳐서도 잃어서도 안 된다고· 그래서 큰형이 물러난 거야·]
[다치거나 잃으면 어떻게 되는 건데?]
[큰일 나지· 약속도 약속이지만· 후공이 사부님께 말했어· 사부님을 죽여버린댔어·]
[그···그랬구나·]
후공의 손짓이 살짝 어지러워졌다·
그랬었나 싶은데 그랬던 것 같기도 해서 괜히 천잠노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녀석은 그래도 시키면 시키는 대로 군소리 없이 잘 따랐었다·
[솔직히··· 아직도 후공이 떠난 게 믿어지질 않아·]
[믿지 않으면 되지·]
[하하 그게 뭐야·]
후공도 빙긋 마주 웃어주었다·
[천화서고라고 했어?]
[그래·]
태미가 후공을 향해 손짓으로 가리키며 자신의 심장 부위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너 마음에 든다·]
[나 죽이러 온 것 아니었던가?]
[방금 생각이 바뀌었어·]
[그것 참 마음에 드는군·]
[하하하하!]
어느샌가 곁에서 지켜보는 천공단은 멍하니 표정이 사라져있었다·
누구 할 것 없었다·
대체 이 화기애애함은 뭐란 말인가· 심지어 태미가 간간히 웃음을 터뜨리기까지 하니 모양새만 보면 거의 오랜 친구를 만난 분위기였다·
단주가 괜찮은 사람이란 건 지내다 보니 알게 되긴 했지만 천잠육도에겐 나가 뒈지란 식으로 막말을 쏟아냈는데 태미는 그런 건 이미 기억도 안 하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