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작작 좀 하면 안 될까?
술이 쏟아지지 않음은
인(引)으로 술병 안의 술을 당기고
막(膜)으로 기운을 투영시켜 술병 내부를 감싸야 가능하다·
이는 결코 단순치 않다·
조금이라도 인이 과하면 술병은 금이 가고 막이 못 미치면 몇 방울의 술이라도 흘러내리게 된다· 한데 교운은 완벽히 조율해내고 있는 것이다· 불만이라면 연기력이 형편없다는 점뿐·
그렇기에 후공은 내심 미소 지었다·
예전 안휘 북부의 후기지수들인 장예 반교인 묘가령 왕소한등이 서문세가의 연회에서 재주를 부리던 때가 떠오르기도 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언교운이 이내 술병을 똑바로 세우더니 흔들었다·
찰랑이는 소리가 났다·
“어허 괴이한 일도 다 있군요· 분명히 술은 충분하거늘 어찌 흘러나오지 않는 건지· 어디 다시 한번 해보죠·”
이번엔 거의 직각이 되게 기울인다·
하지만 역시 술은 텅 비어있는 양 흘러나오지 않았다·
“이런 이런···· 이거 안 되겠군요· 술이 사람을 가리나 봅니다· 대공자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언교운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술병을 거둬들였다·
“참 신기한 일도 다 있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저는 괜찮습니다·”
후공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래 애썼다·
덕분에 제법 눈요기도 했고·
언교운이 나선 것이야 의도된 도발·
여기에 악의는 없다·
그저 무공 실력을 보고 싶다는 의미다·
다른 후기지수들이 이 상황에 고요한 것이 그 반증이었다·
이미 서로 입을 맞추었을 터·
이쪽이 한 수를 보이면 다른 쪽이 발끈!
그에 상응하는 수를 선보이면서 서로 실력을 가늠해보려는 의도인 것이다·
이쯤 되자 후공은 다음 한 수가 기대되었다·
누가 나서고 무엇을 보여줄지·
하지만
‘이런 미친· 지금 누구 앞에서····’
그런 후공의 마음을 알 길 없는 칠비단혼은 이 상황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입술은 바짝 말라갔다·
그는 죽어본 것이다·
묻혀본 것이다·
장난을 칠 사람이 따로 있지 대공자 앞에서 술이 사람을 가리네 마네 감히 헛소리를 지껄이다니· 여기 있는 후기지수 중 누구도 천화서고 대공자와 견줄 수 없거늘·
그렇다고 설마 대공자가 파묻기야 하겠냐만
그래도 적당히 했으면 싶은 칠비단혼이었다·
– 저는 포기입니다· 안 통하는군요·
도발은 실패·
언교운이 깔끔하게 인정하는 말로 팽무결에게 전음을 발했다· 팽무결이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좀 더 세게 나가 보는 수밖에요·
– 팽형 이쯤에서 멈추는 게 어떻습니까· 제가 꽤 무례했던 터라····
– 아니 잘하셨습니다· 여기서 제가 다시 건드리면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 테니까요·
그러면서 팽무결이 젓가락을 들었다·
앞에 놓인 접시 위 생선에 가져갔다· 살을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 이어 더 제대로 먹으려는 듯 생선 가시를 바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후공이 흥미롭게 바라봤다·
팽무결이 생선을 건드리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혹시 가시를 튕겨내는 건가? 그럼 좋겠는데·’
만약 팽무결이 젓가락으로 생선 가시를 튕겨낸다면?
후공은 기꺼이 박수를 쳐줄 의향이 있었다·
이는 그만큼 까다로운 수법이다·
탄지의 응용·
먼저 젓가락에 절제된 상태로 경력을 실을 수 있어야 한다· 손가락과도 다르고 검(劍)과 도(刀)와도 다르다· 탄지의 수법에 익숙하다 해도 손이 아닌 데다 평소 병장기로 활용된 적이 없는 젓가락이다·
난이도는 몇 배로 올라간다·
그야말로 임기웅변·
거기에 생선 가시를 세 개 이상 튕겨 보낸다면 또 튕겨낸 방향이 정확히 혈도를 점혈해 온다면 최상이다·
틱틱·
팽무결의 젓가락이 휘젓듯 움직였다·
미세하면서도 정교한 기운이 생선의 한 부위에 회오리처럼 일면서 생선의 살이 가시 부근에서 흩어진다·
지금인가·
휘감는 기운에 생선 가시가 조금 휘었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크기·
순간 팽무결이 젓가락을 튕겼다·
그건 마치 젓가락을 실수하여 우연히 비튼 듯한 모습
이후 가시가 쏘아져왔다·
두 개다·
자령안이 운용되면서 후공의 시야 속 생선 가시는 쏘아져오고 있음에도 느려보였고 심지어 커다란 창이 날아오는 것처럼 확대되어 보였다·
‘오! 천돌혈과 중부혈·’
위치는 자신의 가슴 위 천돌혈과 어깨 아래 중부혈·
그걸 인지한 순간 호신기가 저절로 일었다·
‘전혈’이 운용되면서 전신혈도의 위치가 찰나간에 바뀌었다·
이번엔 아무래도 점혈에 당한 사람의 표정을 지어야 할 테지만 후공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후공도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옆자리!
파팟!
신경이 예민해져 있던 칠비단혼이다· 그가 날아든 두 개의 가시가 후공의 몸에 닿기 전에 휙 낚아챘다·
뜻밖의 상황에 모두가 놀라 칠비단혼을 바라봤다·
후공도 예외가 아니었다·
‘뭐여?’ 하는 얼굴이 되어 멍해지고 말았다·
칠비단혼이 팽무결을 노려봤다·
벌떡 몸을 일으켜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가 곧장 소매를 떨치니
두 개의 연약한 생선 가시가 나무 탁자에 박혀 들어갔다·
“팽 공자 이건 무엇이오? 지금 뭐하자는 거요?”
“어····”
“그대는 남궁세가가 우스운 겁니까? 그대들만 남궁세가의 손님이오?”
“그 그런 게 아니라····”
당황한 팽무결이 더듬거렸다·
“그런 게 아니라면 무엇이오?”
“저는 그저 천화서고 대공자의 무위를····”
“시험해 보려 했다?”
“····”
팽무결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방식이 옳았냐고 묻는 것이면 할 말이 없어진다·
칠비단혼의 분노가 이어졌다·
대상은 비단 팽무결에게만이 아니었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명문가의 자제라는 분들이 어찌 이리 무례할 수 있단 말입니까? 처음 언 공자의 무례에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팽 공자까지 나서서 시험하려 들다니요·”
“····”
“····”
“····”
칠비단혼의 목소리가 높았다·
눈빛도 활활 타오를 지경인지라 다들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이 자리가 어떤 자리입니까· 첫 만남이고 무엇보다 식사 자리입니다· 정겨워도 모자랄 터에 굳이 여기에서 이렇게 했어야 했습니까· 누구 한 명 만류하는 이도 없고·”
그의 시선이 소예에게 잠깐 옮겨졌다·
“심지어 소예 아가씨조차 한마디 말도 없이 방관하고 있던 모습은 심히 실망스럽습니다· 어찌 모두가 공모하여 이와 같은 실례를 범할 수 있습니까· 나이가 젊다는 이유로 무례가 무례가 아니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녕 여러분들은 여태 무서운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는 것입니까!”
“푸우우우!”
마침 물을 들이켜 가던 은앙개가 뿜어버렸다·
그 곁에서 소천개가 킥킥거렸다·
“그럼 오늘 만난 거여요~~·”
칠비단혼이 잠시 거지들을 노려봤다가 다시금 극대노를 이어갔다· 그렇게 말이 끝없이 줄줄 흘러가며 멈출 것 같지 않을 때
– 어이·
전음이 들려왔고
그 전음이 대공자였기에 칠비단혼이 멈춰 돌아봤다·
대공자가 미간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전음이 이어졌다·
– 작작 좀 하면 안 될까? 진짜 언제까지 떠들 참이야·
한참 흥미를 느껴가던 후공으로선 진짜 어떻게 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낄 데 안 낄 데도 구분하지 못하고 나서는 것도 모자라 봇물이 터진 듯 말이 왜 이리 많단 말인가·
칠비단혼이 급 당황해 안색이 변했다·
그는 잠시 우물쭈물대다가 황급히 마무리지었다·
“어··· 그러니까··· 이 정도면··· 모두 알아들으셨겠지요· 험험····”
“····”
“····”
“····”
모두 대답 없이 칠비단혼을 바라봤다·
알아들었다·
너무도 확실히·
물론 다른 쪽이다·
– 언니 어쩜 좋아요· 진짜 맞았나 봐요·
– 그렇다니까· 내가 뭐랬니· 대체 대공자에게 얼마나 맞은 거야·
– 이쯤 되니 대공자의 경지가 더 궁금해지는걸요·
– 내 말이·
악영산과 남궁소혜가 전음을 나눴다·
다른 이들도 더 확인할 것도 없이 확신했다·
대공자가 살짝 미간을 찡그리는 것만으로 남궁세가 호법이 당황해하며 급 마무리했으니 확증이었다· 방금 상황만 놓고 보면 칠비단혼은 거의 천화서고 대공자의 최측근 심복이자 오른팔이라 불려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떠들던 칠비단혼이 고요해졌다지만 도리어 그 때문에 분위기가 착 가라앉고 어색해졌다· 누구 하나 먼저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만큼 난감해진 상태로
후기지수들의 시선이 겉돌았다·
이럴 때 나서라고 어른이다·
후공이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크흠····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군요· 초면이라 재주를 숨기려 했으나 이쯤 되니 저도 재주를 보이는 수밖에요·”
“···!”
“···!”
“···!”
모두의 시선이 후공을 향한다·
후공은 몸을 일으켜 방금 전 언교운이 들었던 술병을 집어들었다·
“명성 높은 진주 언가가 해내지 못한 술 따르기를 제가 해보지요· 잔을 들어주십시오· 모든 분들께 제가 한 잔씩 따르겠습니다·”
지켜보던 언교운이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은 옆 자리로 주위로 그렇게 번져갔다·
“형아 나도 줄 거지?”
“너부터 주마·”
후공은 소천개를 시작으로 모두의 잔에 술을 채웠다·
이는 천하제일인이자 무림맹주가 따라주는 술·
이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르면 어떠한가·
후공은 그렇게 생각했다·
모두의 술잔이 높이 들렸다·
***
후공은 남궁세가로 향했다·
천룡대전의 개최가 이틀 후다·
오늘 가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고 적당했다·
마침 후기지수들과 조우하였으니 그들과 함께 움직였다·
남궁세가에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반겨주는 이들이 있었다·
도착하기 전 미리 내부로 소식이 전해진 모양이다·
“여어~ 이게 누구신가· 천화서고 대공자가 친히 이 누추한 곳까지 왕림하시다니· 대공자 그동안 잘 지냈나?”
개방 안휘분타주 취운개를 필두로
“하하하하 범 형! 어찌된 일입니까· 못 오신다더니 무슨 바람이 불어 이리 오셨습니까·”
“어서 오게 대공자· 여기서 또 보게 되다니 우리 보통 인연이 아닌 것 같구만· 안 그런가?”
난화서원의 묵영과
무림맹 안휘지부장 몽연몽이었다·
그들이 다가와 연신 반가움을 표했다·
함께 도착한 후기지수들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취운개며 몽연몽까지 그들의 표정이며 몸짓이며 결코 형식적인 모습이 아닌 것이다·
개방 분타주 취운개가 누구인가· 알 만한 사람은 안다· 그는 차기 개방 방주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그뿐인가· 난화서원의 묵 공자는 널리 알려진 그의 천재성만큼이나 콧대가 높아 거만하다는 평가가 따라 다니는 이다·
그런데 지금 광경은 분타주든 묵공자든 서로 누가 해맑냐 경쟁하듯 표정이 밝기 그지없는 것이다·
거기에 맹의 안휘지부장 몽연몽도 대공자에게 말 한마디라도 더 붙여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니 보면서도 어리둥절함을 금할 수 없었다·
그들이 어찌 알겠는가·
취운개는 서문세가를 상대할 당시 탄복하여 그 뒤로 두 사제를 따라다니게 할 정도이고 묵영은 약왕문에서 천외천의 충격을 받고 아직까지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물론 안휘 지부장 몽연몽이야 무림맹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상태였고·
“사제야 우리 또 투명해진 거지?”
“말 걸지 마· 속상해·”
덕분에 두 거지는 다시금 투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