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알고 있었어·
노파는 지금처럼 끔찍한 광경은 처음이었다· 얼굴이 어떻게 계속 바뀌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더 이상 바뀌지 않았을 때는 입을 귀까지 찢어가며 웃고 있으니 질려버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그저 슬퍼보였다· 힘든 일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머리를 파묻은 채 남자가 웃고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왜 다가갔을까?
조금 늦더라도 원래 다니던 길로 갔더라면 이 밤 토지묘를 지나쳐가지 않았다면 어둠 속에 웅크린 이를 걱정하지 않았더라면 상냥히 말을 건네지 않았더라면 이 밤 손자의 웃는 얼굴을 보고 있었을 텐데· 하지만 이젠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할멈 할머엄! 할머어어엄!”
“부···부디··· 사 살려주십시오· 저에겐··· 보살펴야 할 어린 손주가 있습니다· 제가 없이는····”
목이 잡혀 들린 탓에 말이 잘 나오지 않았지만 그녀는 최선을 다해 빌어보았다· 그녀로서는 마지막 희망이었지만 돌아온 답은 엉뚱했다·
“손주는 있어·”
“···?”
“하지만 할멈은 없어!”
“····”
“이제 없어지니까·”
“····”
“내가 먹을 거니까! 내 뱃속에서 나랑 살 거니까! 으캬캬캬캬캬캬캬!”
그녀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시야가 뿌옇게 번졌다·
“할멈 할머엄! 할머어어엄! 내가 저녁을 안 먹었어! 들려? 들리냐고!”
“···네·”
겨우 대답했다·
“오늘은 특별한 걸 먹고 싶었거든· 걸쭉한 걸 먹고 싶었어· 죽처럼 수저로 떠올리면 진득하게 끌려오는 게 당기는 거야· 그런데 맑은 것들만 지나가는 거야· 계속 그러는 거야· 그러다 할멈이 왔어· 죽이 내게 왔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제발··· 제발··· 흑흑흑····”
“앵앵앵···· 제발 제바아아아알· 제바알 살려주떼요· 캬캬캬캬캬캬! 그냥 죽어줘· 죽이 되어 죽어줘· 나는 죽 먹고 할멈은 죽고· 어때? 좋아? 좋지? 캬캬캬캬캬캬캬!”
끔찍한 웃음소리보다 고작 열 살인 어린 손주의 해맑은 얼굴이 떠올라 노파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녀에게 남은 건 손주뿐이었고 손주에게 남은 것도 그녀뿐이었다·
‘우리 아가···· 어떡하니· 널 혼자 두고···· 불쌍한 내 새끼···· 이 할미가··· 이 할미가··· 미안해····’
“자 그럼 죽이 준비되었으니 인사부터 해야겠지· 잘 먹겠습니다아아아···· 맛있게 먹겠습니다아아···· 고오오오맙게 먹겠····”
“···?”
남자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왜 그러는지 모르는 노파도 놀라 눈이 커졌다· 말만 멈춘 것이 아닌 것이다· 찰나간 남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지는가 싶더니 급격히 일그러졌다·
동공도 커지다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그건 매우 짧은 시간에 일어난 순간의 변화였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뭔가가 달라졌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다·
‘뭘까?’
의문을 떠올렸을 때 이미 남자는 돌아서고 있었다· 목을 조르던 손이 놓아진 탓에 노파는 땅바닥에 주저앉게 되면서 보았다· 남자가 뒤돌아선 순간 앞으로 빠르게 튀어나갔다·
카앙!
금속성이 터져나오고 한순간 불꽃이 일면서 주변이 순간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
두근·
노파의 심장이 요동쳤다· 무슨 일이지? 어떻게 된 일일까? 남자의 양손에는 방금까지 볼 수 없었던 둥그런 형태의 금빛 물체가 들려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심장이 빨라진 건 금빛 물체 때문이 아니었다· 남자의 등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남자를 긴장시킨 누군가 때문이었다·
‘누굴까?’
순간 웃음소리가 밤을 찢었다·
“으캬캬캬캬캬캬캬! 날 찾았어? 와줬어? 찾아와 주었구나! 천화서고 대공자여!”
천화서고 대공자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목소리가 밤하늘에 울려퍼지는 틈을 타야 했기에 노파는 슬금슬금 엉덩걸음으로 뒤로 물러났다·
– 안심하세요·
순간 어깨가 짚혔다·
노파는 놀라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부드럽게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입을 틀어막지도 못하고 비명부터 내질렀을 것이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헌앙한 청년이었다·
– 이곳을 벗어날 겁니다· 놀라지 마세요·
남궁연은 평온한 미소로 안심시키고는 노파를 안아들어 그곳에서 멀찍이 벗어났다·
대공자의 부탁이었다·
하지만 남궁연은 지시로 받아들였다· 충분한 거리를 두고 멈추어 노파를 내려놓은 후 손을 잡았다· 노파가 바라봤기에 남궁연이 미소 지었다·
“잠시 잠들게 될 겁니다· 좋은 꿈이길····”
“···?”
노파가 갸웃한 순간 스륵 고개를 떨궜다·
수혈을 짚어 잠들게 한 남궁연은 노파의 손을 잡은 채 기운을 불어넣어 혈맥을 안정시켜 갔다·
당장 인가가 밀집한 쪽으로 돌려보낸다 해도 기가 쇠진된 노파는 걷지도 못할 것이다· 게다가 내적 충격을 받은 터라 이대로라면 며칠 앓아눕게 될 테고 큰일을 치를 수도 있었다· 잠들게 한 것은 그저 지금 들려오는 미친 웃음소리 때문이었다·
“으캬캬캬캬캬캬캬캬캬캬!”
광기가 밤하늘을 휘저으며 퍼져나갔다·
“올 줄 알았어! 너라면! 너니까! 그런데 말씀이야 나는 어떻게 찾았지?”
예상이 들어맞아서
반가운 마음이 들어서
스산해져서
귀오령은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후공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서로 인사나 나누자꾸나·”
“인사?”
“그래· 나는 알고 있는 듯하니 너만 이야기하면 되겠다·”
“이 개새끼 짜증나게 할래!”
쿵쿵!
귀오령이 발을 굴렸다· 대지가 흔들렸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남궁연도 진동으로 몸이 울리자 미간을 찡그렸다· 상대의 내공이 심후하다 싶으니 대공자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 걱정이 맺혔다·
하지만 이어진 뒷말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무섭다고 개새끼야야아아!”
남궁연은 멍해졌지만
귀오령은 진심이었다·
남궁세가에서부터 느꼈던 것이다· 저 표정이 싫었다· 저 태연함이 미치도록 두려웠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두려움을 주는 자였기에 그는 알 수 있었다· 일말의 긴장감도 없고 분노하지도 격동하지도 않으며 애써 태연한 척하지도 않는 자·
천화서고 대공자는 그저 바라봄이다·
그래서 그 앞에 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져서 무서웠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귀오령은 모르는 것이다· 그를 탓할 건 아니었다·
그저 상대가 나쁜 것뿐·
본래의 수행을 찾아가는 천하제일인을 만난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귀오령의 광기는 후공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후공이 만나고 겪어온 이들은 진정한 광기의 극에 이른 자들이었고 그들은 지극히 고요했다· 평범함과 분별이 불가능할 정도였으며 심연에 머물러 있는 자들이었다·
그러니
“실망스럽군·”
후공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짧은 순간이지만 눈앞에 있는 놈이 어설픈 광기를 흉내내는 원숭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는 그저 속해 있는 자라는 뜻인 것이다·
이런 놈들은 우두머리가 될 수 없고 그저 제어받고 있는 자일 뿐이다· 이 강호에서 혼자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자이기도 했다· 미친 짓에는 대가가 따르고 강호의 문파와 고수들은 이런 놈들에게 자비가 없다·
그렇기에 실망했다·
이놈이 여태 살아남은 건 울타리 안에 있어서일 테니·
그렇기에 울타리의 주인은 따로 있다는 뜻이다· 이놈으로 끝나길 바랐는데 이제 그 너머를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사는 놈을 물은 것이 아니었다·
놈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누구의 제어를 받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뿐· 가끔 떠벌리길 좋아하는 놈들은 승리를 장담하고 떠들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섭다고 징징거릴 뿐이라면
말하게 하는 수밖에·
후공이 검령과 함께 쏘아져갔다·
귀오령도 이미 맞이할 준비는 끝낸 터·
귀오령이 양손을 떨쳐 두 개의 금륜을 날려보냈다· 다시 오른손이 번개같이 뒤춤을 훑었다· 순간 수십 개의 암기가 그의 수중에 들어왔고 뿌려졌다·
달빛을 받은 암기들과 금륜이 반짝이며 맹렬히 쏟아져갔다· 빠르게 회전하는 두 개의 금륜은 무엇보다 번쩍거렸고 기이한 소리까지 더해지니 흉폭함이 말로 할 수 없었다·
‘···?’
그 광경에 남궁연의 눈이 커졌다·
대공자의 질주는 마치 쏟아지는 빛의 화살 속으로 스스로 뛰어드는 형국인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고 의아한 건
‘왜 저렇게 반짝이지?’
어둠 속에 암기가 유난히 빛을 더한 것이 그저 달빛 때문인가?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친 순간 남궁연의 입이 쩍 벌어졌다·
대공자의 신형이 빛을 그대로 돌파했다· 솟구쳤다가 허공에 잠시 멈췄다 싶은 순간 이내 기이한 각도로 연달아 휘도니 옷자락 나부끼는 소리가 맹렬해졌고 지면에 발이 닿았다 싶을 때는 암기와 금륜의 그물이 이미 대공자를 스쳐지나간 뒤였다·
그리고 이내 다시 남자를 향해 짓쳐들고 있었다·
“어···어떻게 움직였지?”
남궁연이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을 때 이미 귀오령의 동공도 경악에 차 있었다·
그는 서둘러 기운을 뻗어 금륜의 방향을 끌어와 대공자의 뒤를 치게 했고 그제야 대공자의 검이 금륜을 쳐내자 그 사이 신형을 빠르게 뒤쪽으로 물려 충분한 거리를 확보했다·
척· 척!
귀오령이 튕겨졌다 돌아온 금륜을 손으로 낚아챘다·
“····”
이미 그의 안색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런 신법은 본 적이 없었다·
더불어 그가 날린 암기는 총 36개로 그중 24개의 암기는 표면을 매끄럽게 처리해 유난히 빛에 반짝였고 나머지 12개의 암기는 무광으로 달빛에 반사되지 않게 만들어졌다·
어두운 곳에서 갑작스럽게 발출된 반짝이는 24개의 암기는 그저 감각을 빼앗는 용도이며 그것을 벗어나려 할 때면 상대는 침묵 속 12개의 암기에 당하게 되어 있다·
그럴진대 상대는 그걸 간파했고 또한 신법만으로 벗겨낸 것이다·
“설마 이게 전부는 아니겠지?”
“전부가 아니라면?”
나직한 음성이 들려와 귀오령은 울컥했다·
“보여 봐라·”
귀오령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시금 태연한 표정을 마주하니 피가 바짝바짝 말라갔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한 끝낼 수 있었지만 그저 뭘 하는지를 보고 싶다는 태도가 미치도록 무서워 더 이상 웃을 수도 없었다·
“좋아· 후회하게 해주마!”
그 즉시 금륜을 부딪혔다·
캉!
두 개의 금륜은 부딪힌 순간 날아갔고 날아가면서 두 개에서 네 개로 다시 늘어나 어느샌가는 열여섯 개가 되어 후공을 향해 짓쳐들었다·
‘꽤 그럴싸하군·’
자령안에 들어온 금륜은 12개가 아니다·
그저 둘·
나머지는 그저 환영·
정교하게 구사되고 있었다·
사성에 이르지 못하였다면 알아보는 데 조금 더 수고를 해야 했을 듯하다·
후공은 눈앞으로 달려드는 세 개의 금륜을 그대로 마주해 갔다·
“대공자!”
그 광경이 무모해 보여 남궁연이 소리쳤을 땐 세 개의 금륜이 후공의 몸을 관통하고 지나간 뒤였다·
귀오령이 흠칫해 뒷걸음쳤다·
환영은 간파되었고 대공자는 가공할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환영이 진작에 구별되었음에 놀라 다급히 실재를 불러들였다·
하나의 실재가 목 부위를 덮쳐오니 후공은 검에 허운의 반탄을 실어 튕겨보냈다·
카앙!
금륜은 불꽃을 일으켰다가 밤하늘로 보이지도 않게 치솟아 사라졌다· 하지만 금륜은 하나가 더 남았다· 또 하나의 금륜은 후공이 검을 쳐내는 사이 이미 오른쪽 옆구리 쪽을 파고들고 있었다·
후공은 좌장으로 밀었다가 놓아 정체되게 한 후 손가락을 튕겼다·
카카카캉 기음을 내며 금륜이 튕겨 방향을 바꾼 사이 검으로 휘감았다· 금륜은 검광에 갇혀 몸부림치듯 꿈틀댔지만 이내 힘을 잃고 검끝을 따라 빙글빙글 회전하다 흉포함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후공의 시선이 귀오령에게 닿았다·
귀오령이 웃었다·
“그래 맞잖아· 이럴 줄 알았어· 내 생각이 맞았어·”
웃고 있었지만
귀오령은 손을 덜덜 떨며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남궁세가에서 스칠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때도 아는 척했다면 죽었을 거라고·
그가 서너 걸음 물러났을 때 그는 보았다·
꺼졌다 나타난 듯 얼굴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다· 검광이 휘돌았고 그 검광 안에 보이는 이는 천화서고 대공자·
스악!
화끈한 통증이 오른다리에 피어올라 쳐다봤을 땐 이미 다리 한쪽이 비었고 피가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으으으····”
약하게 내뱉은 신음은 이내 커졌다·
“크아아아아아악!”
검이 복부를 파고들었고 등 뒤 나무까지 꿰뚫었다·
그렇게 걸린 채로 귀오령이 천화서고 대공자를 올려다봤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이제 이야기를 해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