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7화 그래도 복될 것이고 (6)
쿠우우우웅!!
“하핫!!”
베르세르크는 등 뒤를 덥히는 열기와 가끔씩 옷을 뚫고 박혀 오는 파편 따위에 약한 희열을 느꼈다· 이것이 못해도 중간은 갔으리란 직감이 들었던 탓이다·
아울러 그녀는 용의 뿔에 감긴 밧줄을 강하게 당겼다· 흔들리지 않는 지지대 대신 그녀의 몸이 휙 끌려가며 용의 뒷머리 비늘에 발이 닿았다· 완벽한 착지였다·
캬오오오오오!!
콰앙 콰아앙! 쾅!
반면 그녀의 앞뒤로는 거칠기 짝이 없는 울음소리와 폭발음 따위가 연신 터져 나왔다· 전자는 살갗이 통으로 날아간 용의 귀곡성이고 후자는 아직도 연쇄 폭발을 일으키는 폭탄의 것이다·
베르세르크는 그 사이에서 지지대가 되어 주는 뿔을 오른팔로 단단히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미친 듯이 휘날리는 머리칼을 뒤로 넘겨 시야를 다시 확보했다·
짤랑· 한쪽 귀에 걸린 귀고리가 금속 장식과 함께 나부끼며 시야 가장자리에 껄떡거렸다·
촤아악!
하지만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역시 이번 공격이 용에게 얼마나의 타격을 주었는가 라·
베르세르크의 눈이 게슴츠레 늘어지며 폭발이 인 곳을 자세히 살폈다·
한순간에 사그라드는 붉고 노란 섬광 퍼져 나가는 새까만 구름 그 구름을 가르며 튀어 나가는 파편 공기 중에 방울방울 뜨기 시작한 거무죽죽한 핏줄기까지·
그녀는 핏방울들이 별처럼 하늘에 흩뿌려지는 과정에서 충분한 만족감을 느꼈다· 까만 구름이 빠르게 가시며 드러난─용이 계속해서 전진한 만큼 당연했다─놈의 상처는 못해도 그녀의 키보다 컸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건 겉으로 보았을 때만의 이야기였다· 폭발이 안쪽에서 인 것을 고려하면 내장 쪽은 이보다 더할 가능성이 높다· 베르세르크의 입술이 무의식의 단계에서 말려 올라갔다·
캬악 캬아악!
별도로 이번 공격이 먹혀도 너무 제대로 먹혔는지 용의 몸이 급속도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스스로가 노린 강하도 아니고 떠받치던 무언가가 사라졌을 때의 물건처럼 축 늘어지는 느낌의 낙하였다·
베르세르크의 몸이 다시 평상시의 무게를 되찾았다·
“하핫!”
그녀는 그 잠깐 사이에 어색해진 무게를 버텨 내며 뿔을 더 단단히 끌어안았다· 그녀의 왼손은 뿔에 감긴 밧줄을 그녀의 허리에 같이 감는 중이다·
콱 콱!
다만 그녀가 그리하는 동안 용이 허공에다 대고 의미 없는 입질을 해 댔다· 악어처럼 길게 튀어나온 주둥이에는 피 섞인 거품이 부글부글 일고 있다· 발악보다는 발작에 좀 더 가깝지 않을까 싶은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캬오오오!
각설하고 이제 남은 걱정은 이 용이 땅바닥에 처박히는 순간 같이 깔릴 도시인데····
순식간에 가까워진 도시의 풍경을 두고 그녀가 눈썹을 찌푸리려던 찰나 용이 정신을 되찾았다는 양 나선 형태의 비행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그녀를 가볍게 만드는 무형의 영역은 점멸하는 빛처럼 느껴졌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콰지직!
“으아아아악!!”
“꺄아아악!”
끝없는 노력 끝에 용은 간신히 완벽한 충돌을 면했다· 비록 건물 지붕을 몇 채 해 먹긴 했지만 땅바닥에 몸 전체를 완전히 뉘이진 않았단 소리다·
크르르!!!
그 뒤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용의 몸이 도시 위를 날았다· 이번엔 아슬아슬하게 거리를 재어 풍압으로 박살 내고 다닐 여유도 없는지 그냥 고도를 높이기에만 급급했다· 이마저도 잘 안되는지 오르락내리락이 몇 번이나 반복되며 건물 몇 채를 추가로 또 부쉈고 말이다·
“큿!”
물론 이 덜그럭거림은 용의 입장에서 의외의 행운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의 거센 움직임이 베르세르크를 떨어트리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마음껏 그 몸을 패도록 만들지도 못한 것이다·
캬오오!
그렇게 힘겨루기 하기를 약 십여 분· 도시 위를 마구 노닐던 용이 결국 도시 끝자락에서 추락해 버렸다· 쿵! 거대한 덩치가 땅과 닿는 순간 굉음이 울린 건 덤이었다·
“꺄아아악!”
“아아아아악!”
아울러 용의 몸체에 짓눌린 모든 것들이 으깨지고 뭉개졌다· 성벽 탑 집 상가 그 외 모든 건물과 그 안에 들어 있는 세간살이들· 마지막으로 운 없이 그곳에 있던 생명체 수십까지·
캬르르륵 캬악!
그나마 놈의 몸뚱이가 성벽에 걸쳐 떨어진 건 천운이었다· 성벽이 우르르 무너진 게 다행이란 것이 아니라 7:3 비율로 몸이 성벽 바깥으로 튀어 나가 피해가 덜했단 소리다·
쿵 쿠웅·
크르으으으·
함에도 휩쓸린 사람은 기십 혹은 기백에 달했지만··· 그들의 불운까지 그녀가 신경 쓸 필요는 없으리라· 충격을 덜기 위해 마지막 순간 밧줄을 끊어 가며 대지로 점프한 베르세르크의 손이 새 무기를 쥐었다· 재수 없는 놈의 손에서 탄생한 할버드였다·
으르르르르·
한편 그녀를 앞에 둔 용이 고개를 들었다· 몇 번이고 고개가 고꾸라지고 몸을 지탱하려던 앞발 역시 두어 번 미끄러지며 몸 전체를 무너트렸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놈은 거대했고 그 거대함은 놈이 어떠한 상황이건 간에 그녀를 내려다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용의 선명한 홍채가 분노의 빛을 담아 그녀를 노려보았다·
“왜 나를 죽이고 싶으냐?”
괴수의 성대가 늑대의 그것처럼 크르르 울렸다· 하나 눈밭에 엉망인 채로 뉘어진 몸뚱이와 내장이 보일 정도로 움푹 파인 상처 따위를 보고 있노라면 놈의 위협은 그저 가소로울 뿐이었다·
“하면 해 봐라!”
하물며 가장 유리했던 상공에서조차 그녀에게 이리 당했는데 더는 날지 못하는 몸으로 지상을 밟아 버린 지금은 어떨까·
그녀는 그 사실을 떠올리며 조소를 머금었다· 입새로 핏줄기를 줄줄 토해 내는 용의 눈이 더욱 강렬하게 빛났다·
“노르다의 전사가 먼저 꺾일지 네놈이 먼저 꺾일지 나도 궁금한 참이니까!”
캬오오오오오!!!
그녀의 몸이 달려 나감과 동시에 용이 포효했다· 둥글게 부푼 목은 그것의 비늘을 한껏 세웠다가 그대로 우수수 떨어트린다·
사방으로 흩어진 비늘이 땅에 닿는 순간 씨앗에서 곡물이 자라듯 인간의 형상을 띤 무언가가 만들어졌다· 사지는 제대로 뻗어 있으나 이목구비는 갖춰지다 만 어정쩡한 괴물이었다·
“하! 우습기 짝이 없구나!”
어찌 보면 그 광경은 거대한 괴수와 수백의 괴인들을 단 한 사람이서 상대하는 꼴이라·
함에도 베르세르크는 광소하며 자신의 할버드로 첫 씨앗을 박살 내었다· 농부가 곡물을 수확하듯 할버드를 가로로 휘둘러 그대로 쪼개 버린 것이다·
콰직!
그다음으로는 가까이 다가온 비늘인간의 정수리를 내려찍었다· 그것은 급조된 인간치고 굉장히 단단했지만 그래 봤자였다· 땅을 단단히 딛고 선 베르세르크에게 이 정도의 강도는 얼마든지 쪼갤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녀의 내려찍기가 비늘인간을 세로로 양단하여 두 번째 수확을 거둬 냈다·
우어어어!
덤벼드는 세 번째 비늘인간·
그녀는 바닥에 찍힌 할버드를 바로 뽑는 대신 할버드의 창대를 붙잡은 양손을 서로 반대되게 비틀었다· 달칵· 창대의 가운데 부분이 분리되며 할버드가 각각 양날도끼와 단창으로 화했다· 도면을 보았을 때 그녀가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부분이었다·
부웅!
그녀는 몸 전체를 회전하는 것으로 도끼를 땅바닥에서 뽑아냈다· 휘리릭! 그뿐만 아니라 몸을 회전하며 생긴 원심력을 그대로 도끼에 실어 세 번째 너머 네 번째 비늘인간에게로 날려 보냈다·
퍼억!
던지는 것에 적합한 형태도 크기도 아닌 도끼가 비늘인간의 미간에 정확히 박혔다· 머리에 박힌 도끼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비늘인간의 몸은 결국 뒤로 넘어가 쿵 소리를 내고 만다·
그러나 해당 시점에서 베르세르크의 관심은 이미 그것을 떠난 지 오래였다· 그는 던지는 순간 이 공격이 적중할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이요 그 외의 적들이 시시각각 그녀에게로 다가오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휘익!
하여 그녀는 도끼를 던져 내는 한편 다른 손에 들린 단창을 180도 회전시켜 장침 부분─도끼와 연결되었을 땐 가려져 있던─이 뒤로 가도록 만들었다· 푸욱! 단창을 역수로 쥔 그녀의 어깨가 뒤로 당겨지며 후방에 있던 적을 찔렀다·
그어어어!
그녀는 창에 찔렸음에도 팔을 뻗는 비늘인간을 보며 눈썹을 살짝 구부렸다· 촤악· 그녀의 팔뚝과 밀착해 있던 단창이 팔뚝과 떨어지며 비늘인간의 배에서 떨어져 나왔다·
콰악!
그녀는 골반을 뒤틀고 빈손에는 아무 검을 소환한 후 적의 몸을 갈랐다· 양단된 몸뚱이의 상반신이 액상화된 토기처럼 주르륵 흘러내렸다·
우어어!
그녀는 그 사람 같지 않은 꼴을 가볍게 일별한 후 뒤틀었던 골반을 원래대로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보통 사람에겐 대검으로 분류될 수준의 검이 전방의 새 적을 쪼갰다·
“흐읍!”
그녀는 적이 쪼개지자마자 무너지는 그 몸뚱이를 건너뛰었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손에 들린 단창은 다시 반 바퀴 회전했다· 스르륵· 머리에 도끼를 꽂은 채 일어나려던 비늘인간의 머리통을 향해 단창이 쇄도했다·
콱!
그녀는 단창의 침 부분을 정확히 결합부에 집어넣으며 비늘인간이 일어나는 것을 억제했다· 철컥! 결합부에서 고정음이 들려올 즈음엔 할버드의 도끼날은 비늘인간의 머리통을 뚫고 땅바닥까시 쑤셔진 채다·
“덤─벼라!!”
베르세르크의 사자후가 눈밭 위로 성성히 뿌려졌다· 양손에 들린 할버드와 대검이 돌아가는 그녀의 몸에 맞춰 회오리처럼 풍차처럼 휘둘러졌다· 자칫 잘못했다간 균형을 잃기 딱 좋은 동작이었다·
콰직! 콰직!
그러나 그녀는 그 회전으로 다섯 개의 비늘인간을 분쇄한 후 대검을 던져 버리는 것으로 해결했다· 날아간 대검이 그 크기와 실린 힘으로 두 개의 비늘인간을 넘어트렸다·
으득 으드드득!
으르르르!
그때 비늘 일부를 잃어 특정 부위가 민둥민둥해진 용이 몸을 일으켰다· 회복력은 썩 좋지 못한지 상처는 여전히 심했지만 슬슬 앞발과 고개에 힘이 들어가긴 하는 모양이었다·
상체나마 땅을 딛고 선 괴물이 피를 토하며 포효했다·
콰오오오오오오!!
일순 용의 수염과 갈기가 너울너울 흔들림과 동시에 세계의 법칙 일부가 굴절되었다· 꼭 추락하기 전 상공의 그 때와 같았다·
몸을 붙드는 힘이 약해지고 모든 것이 붕 뜨기 시작했다· 쩌적 쩍! 일부 대지는 바닥에서 뜯어져 하늘로 가라앉는 파편처럼 떠오르기도 했다· 마치 세상의 진리가 역전된 듯한 풍경이었다·
“쓸데없는 짓을!”
하나 이런 짓을 한다고 그녀의 걸음을 막을 순 없다· 이건 그저 결말을 늦추기만 하는 해 봤자 별 의미 없는 짓거리에 불과했다·
우어어어!
“흡!”
베르세르크는 그것을 용에게도 주지시켜 주기로 했다· 그녀의 할버드가 새로운 비늘인간의 몸을 가른 후 아공간 속 창으로 교체되었다·
휘이이익─!
소리가 줄어든 세상에서 창이 용을 향해 던져졌다· 땅으로 잡아끄는 힘이 약해진 만큼 그것이 쇄도하는 속도는 가히 눈으로 좇기도 힘들 정도다·
캬오오오!
하나 그 투창은 용이 고개를 가볍게 흔듦으로써 무위로 돌아갔다· 목표하던 자리 대신 용의 뿔에 맞고 튕겨 나간 창이 눈밭 어딘가로 떨어졌다·
“후·”
그래 아주 쉽지는 않다 이거지·
그녀는 그것에 도리어 호승심을 느끼며 발끝에 힘을 주었다· 콰앙! 진각 한 번에 대지가 산산조각 나며 몸이 수십 미터를 도약했다· 그녀를 노리던 비늘인간들은 졸지에 그들끼리만 남겨져 굼뜬 걸음을 이어 나가야만 했다·
캬오 캬오오오오!!
하나 용도 나름의 계획 같은 것이 있는지 놈의 목이 부풀며 두 차례에 걸친 포효를 내질렀다· 그 과정에서 또 한 번 우수수 떨어진 비늘이 이제 만드는 것은 날개 달린 괴물이다·
우어어어·
그어어어!
비틀린 법칙의 세계를 날아다니는 비늘하피들이 뭉그러진 입으로 힘 빠지는 소리를 내었다· 개중 일부는 박쥐만큼이나 작고 매만큼이나 빨라 도약한 상태의 그녀를 급습하기도 했다·
무리진 비늘박쥐들이 그녀의 몸을 마구 할퀴고 때리며 지나갔다· 베르세르크의 몸이 아래로 내려섰다·
퉁- 촤악!
가만히만 있어도 붕 뜨는 느낌이 드니만큼 추락 때의 충격은 크지 않았다· 하물며 그녀는 착지할 때 어찌해야 덜 다치고 덜 충격받는지 본능적으로 숙지해 낸 사람이었다·
베르세르크의 손이 바닥을 짚고 몸을 굴리듯 발을 땅에 대었다· 이후 벌떡 일어선 몸은 오묘한 무게감으로 인해 주우욱 뒤로 밀려나 스키드 마크를 새겼다·
“쯧·”
박쥐 새끼들에게 입은 타격은 크지 않지만 고공 도약을 통한 전진은 해선 안 됨을 직감했다· 베르세르크는 그 사실 하나에 혀를 차며 단검들을 꺼내 꼬나쥐었다·
찌익찍찍!
때맞춰 저편으로 날아갔던 박쥐들은 공중을 선회한 끝에 그녀에게로 다시 달려드는 중이다·
“덤-벼─!”
이번엔 지상에서 그녀와 박쥐 떼가 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