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8화 그래도 복될 것이고 (7)
아크메이지는 손끝을 타고 허공에서 응집하는 마력을 느꼈다· 그것은 참으로 서슬 푸르고도 따뜻해서 그 어떤 것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전능감과 그 무엇도 하지 못하리란 무력함을 동시에 선사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선이여· 태초에 땅이 있고·”
그러나 마법사의 첫 번째 소임은 그 강렬한 장엄함에 굴복하지 않음이라·
그녀는 세상을 이루는 파편들을 그러모아 하나의 선을 그렸다· 지상을 뜻하는 선이었다·
“땅이 있기에 하늘이 있으며·”
이어 60도로 꺾인 선이 첫 번째 선과 동일한 길이에서 멈춰 섰다· 하늘을 뜻하는 선이었다·
“하늘이 있기에 비가 바다가 있으니·”
다시 60도로 꺾여 진행된 마지막 선은 기어이 첫 번째 선과 맞닿았다· 바다를 뜻하는 선이었다·
“그 사이를 내달리며 이곳에 임하라·”
아울러 이렇게 세 개의 선─지상과 하늘 바다─으로 이뤄진 정삼각형은 마법 체계에서 세계 그 자체로 여겨지느니·
모든 마법의 기반이자 토대가 되는 시작점에서 아크메이지는 삼각형의 세 꼭짓점을 지나는 원을 이어 그렸다· 사람을 뜻하는 원이자 연쇄되는 인연 거듭되는 삶과 죽음을 뜻하는 원이었다·
“우레는 신의 창이요 천둥은 신의 노성이요 벼락은 신의 심판이니· 그 섬광처럼 찾아오라·”
그다음으로 역위 정삼각형과 원이 덧그려졌다· 이는 마법의 종류를 결정짓는 요소이자 준비 없이 시전되는 마법의 보편적인 한계선이었다·
“태양과 달과 별과 구름 사이를 오가며 더한 빛으로 내리꽂혀라·”
그렇지만 아크메이지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마력의 선 역시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주문 영창이 거듭될 때마다 정사각형과 원 정오각형과 원 역위 정오각형이 추가로 배열되었다· 선들 안쪽에 새겨지는 문자들은 주문을 마법에 쓰이는 기호로 표현한 것이다·
“하 홀로 사중창입니까· 하여간····”
그동안 마력을 보조하던 보라뱀은 허탈하게 웃었다· 아무렴 대마법사라도 사전 준비 없이 즉석에서 작성하는 마법은 최대 삼중창이 대부분이었다·
소모되는 마력도 마력이지만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필요로 하는 마법인 까닭이다·
“대마법사가 주문 생략 없이 벌이는 사중창이라····”
한데 사중창이다· 심지어 대마법사라면 보통 생략하기 일쑤인 기본 영창─세계의 삼요소─까지 잊지 않고 챙겨 낸 정말 제대로 된 사중창·
“위력이 기대되는군요·”
마법사 다수의 보조를 받은 사중창이야 자주 봤으니 궁금하지 않지만 아크메이지 개인이서 해낸 사중창은 과연 어떨까?
그의 시선이 막 마지막 주문을 뇌까리는 아크메이지에게 다다랐다·
“···천둥벼락이여!”
한 손엔 마력 증폭기 다섯 개를 꽃처럼 피워 낸 지팡이· 다른 손엔 마법적 중심 좌표를 체크하기 위해 피워낸 마력 구체 하나· 마력 구체 주변으로는 사중창에 걸쳐 만들어 낸 마법진과 몰아치는 마력의 흐름·
“내 적을 섬멸해 다오!”
아크메이지의 새하얀 머리카락이 마력의 광풍에 휘날리던 찰나 그들의 눈을 멀게 만들 섬전이 내리꽂혔다·
* * *
호크아이는 눈을 감고 귀를 막으라는 지시가 떨어진 순간 티마뉴크를 감싸 안으며 지시를 따랐다·
콰르르르르릉!
직후 세계가 아주 거칠게 흔들렸다· 귀를 막았음에도 고막이 터진 것 같은 기분은 덤이었다·
“귀 귀가·”
“괜찮아요·”
피가 안 나는 걸 보면 최소한 고막이 터지진 않았다· 윙윙거림이나 먹먹함은 뭐··· 소리가 워낙 컸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고·
“끄응·”
다만 이 상황을 두고 티마뉴크는 유독 몸을 가누지 못했다· 귀에 남은 잔향이 심한지 비틀거리다 그대로 풀썩 자빠진 것이다·
“안 되겠네요· 안전지대로 가죠·”
어차피 화살에 대한 조정은 다 끝났다· 당장 쓸 수 있는 화살도 있고·
그러니 티마뉴크를 당장 안전지대에 던져 놓고 온다 해서 문제가 생기진 않으리라· 호크아이는 그렇게 판단을 내리며 티마뉴크를 둘러업었다· 웨엑· 어지러움을 참지 못한 티마뉴크가 기어이 토사물을 게워 냈다·
“으으····”
“흐음·”
묻은 토사물이 옷을 타고 앞섶까지 흘러내렸다· 하나 호크아이는 그것에 신경 쓰는 대신 벼락에 직격당한 새를 찾았다·
찾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는 지금껏 어떻게든 고지를 점해 온 상황이었고 하와는 지대 상관없이 상공을 노닐다 추락하는 상태였으니까·
호루루루루!
캬아아아악!
물론 하와는 몸이 곤두박질치는 순간에도 날갯짓을 하여 전락의 대미지를 줄였다· 감전된 상황임에도 저런 판단을 내리고 행하는 것이 적이지만 참 경이로운 정신력이었다·
쿵!
각설하고 거대한 몸이 기어이 바닥과 충돌했다· 검은 몸에는 파르란 전류가 아직도 탁탁 튀고 있다· 허공을 선회하던 주작이 섣불리 하와에게 달려들지 못하고 고도를 유지했다·
[버 러지 들이·]
그사이 전류를 대지에 완전히 흘려보낸 하와가 날개를 바르작 떨기 시작했다· 피막이 들릴 때마다 언뜻 보이는 배에는 각도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꽂힌 철시들이 있다· 번개에 맞을 때 같이 새까맣게 그을린 철시들이었다·
“흐음·”
물론 그 철시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초반에 기준점을 세운다고 날려 먹은 화살이 세 개나 될뿐더러 놈이 스스로 뽑았거나 날아다니다 알아서 뽑힌 것이 무려 일곱 개나 되기 때문이다·
콰악!
그렇지만 남은 다섯 개만으로도 놈을 번개 구이로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그의 화살 솜씨와 마법 주작의 능숙한 견제가 해낸 합작이었다·
캬악!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일격이라 봐야겠지· 숨통을 한 번에 끊지는 못했더래도 일단은 추락시키는 데 성공했으니까·
[같잖아서 내버려 두었더니 기어코 내 화를 부르는구나·]
···아니 정말 괜찮은 일격이었던 걸까? 호크아이는 자못 후회하는 사람처럼 웃었다· 그런 생각마저도 결국은 뻔뻔스러움의 발로였지만 하여튼·
호루루루루!!
하와가 무엇을 하기도 전 주작이 사냥하는 매처럼 갑작스레 하강을 시작했다· 일부러 낮추지 않았던 고도는 강하할 때의 가속을 한층 더 늘려 준다· 접힌 날개가 그를 포탄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화악!
캬아아악!
지상에 거의 다다르고 나서야 날개를 펼친 주작이 발을 길게 뻗어 하와의 몸통을 찢었다· 하와도 막 일어서 날아오르려던 상황이었지만 타이밍이 너무 좋았다·
주작의 발이 하와의 목덜미를 바닥으로 내려찍으며 지상에서의 다툼이 시작되었다· 서로의 날개가 펄럭일 때마다 먼지구름이 일고 건조물의 잔해들이 날아가는 싸움이었다·
싸움 장소로부터 꽤 멀리 서 있던 호크아이조차 쏟아지는 먼지바람에 눈을 살풋 가렸다·
“후· 하아·”
그때 등에 매달린 티마뉴크가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이제 괜찮습니다· 내려 주셔도 됩니다·”
호크아이는 군말 없이 그를 내려 주었다· 어차피 안전지대로 간다는 기존의 계획은 산산조각 난 상태였기에 별로 상관도 없었다·
“이제 어쩔까요·”
하와와 주작의 싸움이 하필 안전지대로 가는 길목에서 벌어질 게 뭐람· 그렇다고 돌아가기엔··· 저 싸움의 파장이 너무 컸다· 기존에 흩뿌려진 부패염의 분포도 썩 좋지 못했고·
“글쎄요··· 저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티마뉴크가 입가에 묻은 토를 닦아 내며 잠시 골몰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왕 땅에 떨어트린 것 더는 날아오르지 못하게 막는 건 어떻겠습니까?”
“좋은 의견이에요·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요?”
피막을 찢어도 바로 수복하는 부정형 새를 어떻게 해야 지상에 붙들 수 있을까· 하다못해 나비를 박제하듯 날개에 화살을 꽂아도 저놈은 날갯짓 한 번으로 다 빼 버릴 것 같은데· 강제로 빼는 과정에서 화살이 빠질 필요는 꼭 없고 상처가 더 벌어진대도 저놈의 피막은 화살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알아서 회복될 테니까·
“그물····”
“그물?”
“예· 그물은 어떻겠습니까? 아니면 화살에 줄을 달아 쏘는 식으로 붙잡는다거나····”
“여기서 줄을 마련할 방도가 있는지는 둘째 치고 녀석이 과연 당해 줄까요?”
철시를 내버려 두었다가 번개에 처맞은 놈이다· 여기서 줄이 달린 화살을 과연 몸에 남겨 두려고 할까? 만에 하나 놈이 남겨 둔다고 해도 저 거대한 새를 지상에 묶어 두려면 줄을 단단히 고정할 수단이 필요한데 그건 또 어디서 구하지?
“흠· 그렇다면 다시 그물로 돌아가서 아예 그물을 화살에 매달고 쏘는 건 어렵겠습니까?”
“···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요· 하지만 마법의 힘을 빌린다면 쏘아 내는 것 자체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다만 그가 쏘아 낼 수 있는 그물의 한계선은 저 새를 가두는 것만 못할 것이다· 애초에 그물을 쏘아 냈을 때 펼쳐 낼 수도 고정할 방도도 달리 없고·
그들의 궁구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그럼 차라리 저쪽에 다 떠맡기죠·”
“저쪽에 다 맡기자?”
“네·”
“어떻게요?”
“화살을 촉매 삼아 속박 마법을 펼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정확힌 그런 촉매용 화살 제작이 가능한 거지만요·”
“···그리고 제가 그 화살을 저 새에게 박아 버리면 저쪽에 계신 마법사님께서 마법을 발동해서 새를 묶어 버리는 거고요?”
“정확한 이해입니다·”
티마뉴크의 말은 어찌 보면 상대 측에 모든 걸 떠넘기는 작전이라· 하지만 호크아이는 그것이 썩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아까 그 전격 마법이 혹은 그 비슷한 걸 저쪽에서 얼마나 더 뽑아낼 수 있을까요?”
“당사자가 아니니 정확한 판단은 내리지 못합니다만 기껏해야 두 번 정도가 끝일 겁니다·”
“속박 마법에 드는 마력은요?”
“저 새를 단단히 묶을 정도면··· 방금 화력과 비슷한 수준의 마력이 들겠네요·”
“그럼 마지막으로 질문할게요· 촉매 화살의 제작 시간은 얼마나 걸려요?”
호크아이의 질문에 티마뉴크는 말간 눈을 깜빡였다·
“15분이면 스물세 발 정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거 괜찮네요·”
15분이면 딱 방금 전 벼락 마법의 준비 시간과 동일하다· 호크아이가 입고 있던 안쪽 옷 일부를 찢었다·
“방금 계획 저쪽에 전달하게 글 좀 적어 주세요·”
“네·”
글자가 새겨진 옷가지는 곧 화살에 매여 쏘아졌다·
* * *
“속박이라·”
아크메이지는 광포한 마력을 통제하느라 저릿저릿해진 손을 주물렀다· 이 와중에도 그녀의 시야에선 난투극을 벌이는 두 괴수와 그 사이에 폭탄을 매단 화살을 쏴 보내는 활잡이가 들어와 있다·
“꽤 괜찮은 의견인 것 같군· 자네는 어찌 생각하나?”
“어찌 생각하고 자시고····”
반대로 그녀의 시야 바깥 바로 등 뒤에 위치한 이는 성한 팔로 쥐고 있던 천 조각을 이내 버리듯 던졌다·
“저것이 유일한 방도 같습니다만·”
“그렇지?”
아크메이지는 결전의 때를 위해 준비한 소량의 각성제 및 진통제를 입에 물었다· 대부분의 제품은 돌입조에게 준 까닭에 그녀가 가진 것은 얼마 없지만··· 티마뉴크가 요구한 두 번 정도는 얼마든지 채울 수 있었다· 보라뱀이 등 뒤를 받쳐 주는 이상 세 번도 빠듯하게 가능했고·
“잘하면 마왕성에 같이 짓밟힐 동지를 구할 수 있겠군·”
“시간을 잘 맞춰야 합니다·”
“그래· 저놈도 머리가 있다면 쉽게 당해 주진 않을 테니·”
당장 지금만 해도 하늘을 다시 전장 삼고자 얼마나 노력 중인가· 주작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서 망정이지 상처가 남지 않는다는 특징은 놈의 비행을 쉽게 막을 수 없도록 했다·
“저 상태에서 전격 마법은 좀 무리겠고··· 화염으로 가야겠구만·”
“원소 마법 전문도 아니면서 두 개를 사중창으로 할 수 있는 대마법사라니··· 끝까지 대피를 권해 볼 걸 그랬군요·”
“그래서 내가 자네 말을 들었을 것 같나?”
“하아·”
하지만 이미 추락했다· 그거면 됐다·
“주작님 들리신다면··· 15분 아니 20분입니다· 딱 그만큼만 버텨 주십시오·”
[들리긴 하는데 진짜 양심도 없네· 20분이 뉘 집 쥐 이름이니?]
“허허 죄송합니다·”
[됐다· 방금 같은 한 방이나 제대로 부탁한다·]
“해내겠습니다·”
아크메이지는 희미하게 웃으며 손 끝에 재차 마력을 포집했다· 바다처럼 무겁고 바람처럼 가벼운 세상의 조각들을·
“끝없이 이어지는 선이여·”
진리에 순응한 채로 공상을 구현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