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9화 그래도 복될 것이고 (8)
[빌어먹을 악마의 종이!]
주작은 인간이 부탁한 바를 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적의 부패염은 그와 서로 상성이었고 거기서 비롯되는 고통도 적지 않았지만 하릴없었다· 주작에게조차 최선에 가까운 수는 이것이 맞았다·
키아악!
호루루루!
주작은 자신의 한쪽 발로 하와의 목을 짓밟고 다른 쪽 발로는 몸통 가운데를 밟았다· 하와 역시 다리를 길게 뽑아내며 그의 몸통을 할퀴려 들었지만 각도가 좋지 않았다·
주작이 하와의 머리 쪽으로 몸을 최대한 기울이자 하와의 발톱이 그의 옆구리를 간신히 긁고 내려갔다·
콱!
결국 주작은 공격의 방식을 바꾸었다· 이번엔 목뼈가 부러질 각오로 고개를 꺾어 주작의 발목을 깨문 것이다·
뀌이이!
그것은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하와의 입가에 넘실거리는 부패염이 부리에 집혀 상처난 자리에 들이부어지자 주작의 입이 절로 벌어진 것이다·
그의 다리에 넘실거리던 고운 색의 불꽃은 어느덧 새까만 불길을 못 이기고 사라졌다· 이제 그 자리에 남은 건 잿가루를 덧바르고 덧바른 끝에 까맣게 변질된 듯한 작대기 하나다·
호루루루!
하나 그 작대기를 하와가 물고 뽑아내려던 순간 주작은 포효하며 하와의 머리통과 정수리를 마구 쪼았다· 화르륵· 작대기만 남았던 다리에 새로운 불꽃이 차올랐다·
캬아아아!
반대로 뚝뚝 떨어지는 정화의 불꽃에 날개 피막이 뚫리고 부리에 눈이 쪼이기까지 한 하와는 가열찬 비명을 토해 냈다· 하와의 다리가 재차 쭉 펴지며 주작의 배를 기어이 움켜쥐었다·
쿠웅!
캬아아아아!!!
호루루루!!
하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리에 힘을 실어 주작을 옆으로 패대기쳤다· 주작이 하와를 절대 놔주지 않았기에 졸지에 그 몸은 주작을 따라 굴러 그 위에 선 형국이 된다·
캬악!
해당 상황에서 하와는 가장 먼저 목을 빼냈다· 그 과정에서 목의 절반이 찢겨 나가다시피 했으나 그는 그다지 개의치 않아 했다· 보통 공격에 당했을 때에 비하면 반 배 느린 속도일지언정 복구되기는 했기 때문이다·
되레 하와는 목이 자유로워지자 아까의 주작이 그러했듯 주작의 눈과 정수리를 쪼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펄럭거리는 날개에선 쉼 없이 검은 불꽃이 떨어진다·
쇄액!
하나 하와가 주작의 머리를 쪼기 직전 날아온 화살이 그것의 눈에 박혔다· 퍼엉! 화살이 터지며 그것의 안구가 증발했다·
[같잖은 것이!!]
물론 그 한 방이 전세를 갑작스레 뒤바꾸거나 하진 않았다· 상처도 여태껏 그랬듯이 금방 회복되어 큰 의미를 남기지 못했고·
쿠웅!
[아주 잘했어!!]
그러나 그 화살 하나로 인해 하와는 공격 타이밍을 잃었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칭찬의 말을 뱉은 주작이 하와의 몸을 옆으로 밀쳐 냈다· 둘 다 사족 보행 짐승이 아니었기에 서로 일어나기까진 많은 발버둥과 날갯짓이 요구되었다· 그들이 신화적 생물 그 어드메가 아니었다면 다소 추해 보일 움직임이었다·
[아까부터 더러운 벌레처럼 윙윙 윙윙─!]
[야 나 두고 어딜 가?]
각설하고 피막으로 이뤄진 날개 덕분인지 아니면 월주상골에 붙어 있는 작은 갈고리 손 덕분인지· 주작보다 먼저 몸을 뒤집고 일어선 하와가 날개를 펼치며 비행을 시작하려 했다·
그러나 연이어 일어난 주작이 하와의 꼬리를 물고 잡아당기면서 하와는 다시 지상에 처박혔다· 하필 경사가 진 땅이라 넘어진 하와의 몸은 주르륵 미끄러지기까지 했다·
[어딜 가냐고!]
그 틈을 노린 주작이 재빠르게 마운팅을 시도했다· 이번엔 배가 아니라 등에 오르는 마운팅이었다·
[감히 감히!]
일방적으로 유린당하게 생긴 작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까· 하와는 찢어져라 고함 지르며 몸과 날개를 마구 퍼덕였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격렬한지 주작은 밟고 있던 하와를 놓고 잠시 공중으로 떠올라야 했다· 펄럭! 불꽃의 깃털이 하늘하늘 떨어지며 주변을 정화하고 먼지구름이 사방으로 싸악 퍼졌다·
휙!
그사이 자신과 주작의 간극을 이용해 몸을 뒤집은 하와가 다리를 하늘로 세웠다· 날카로운 발톱들이 이제 서로의 다리를 할퀴고 쥐어뜯으며 싸운다·
퍼엉!
[이익!]
그때 또 한 번 화살이 날아들었다· 주작의 거대한 덩치를 기기묘묘하게 피해 낸 화살은 이번에도 정확히 하와의 눈알에 박혔다· 이번엔 폭발을 일으키지 않는 그저 박힌 채로 거슬리게 만드는 형식의 화살이었다·
“나이스입니다!”
“차라리 이렇게 하면 시야가 가려지는 효과라도 나오려나····”
당연하지만 그 화살을 쏘아 낸 주역은 다른 누구도 아닌 호크아이 한 사람이라·
호크아이는 몸을 뒤트는 신조와 괴조의 싸움을 지켜보다가 다른 자리를 찾아 나섰다· 아까부터 지대의 높이가 애매하게 거슬렸다·
“흠·”
그러다 그는 보았다· 무너지다 만 벽과 그 벽에 걸쳐진 두꺼운 나무 기둥을· 언덕이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하고 더미라고 하기엔 많이 높은 벽의 잔해를·
“이 정도면····”
파스스스·
그는 일단 발을 올려 보았다· 그러나 잔해가 쌓아 올려진 형태는 너무 아슬아슬해 잘못 밟고 올라서면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았다·
“여기 좀 잡아 줄래?”
“예?”
그는 반사적으로 제 곁의 인물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곧장 제 실수를 깨달았다· 지금 그의 곁에 있는 건 크러셔가 아니었다·
“···나무 기둥 잡아 주실래요?”
아울러 저 호리호리한 마법사가 나무 기둥을 암만 붙잡고 있어 봤자 그가 원하는 안정감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결국 호크아이는 기둥을 밟고 서는 대신 기둥에 다리를 감았다· 기둥을 밟고 섰다간 균형이 흐트러져 무너질 것 같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빠르게 다리를 감고 반대편으로 몸을 기울인 후에야 잔해와 기둥 그의 무게감이 적절히 맞아떨어졌다·
“그 자세로 쏘실 순 있으십니까?”
“그럼요· 화살 좀 주실래요?”
“넵·”
호크아이의 요청에 티마뉴크는 서둘러 화살통을 찾았다· 호크아이가 기둥 위로 오르기 전 바닥에 내려 두고 간 화살통은 그 수가 무려 9개를 넘긴다·
“운동 좀 하세요·”
“···사 살아남는다면 명심하겠습니다·”
티마뉴크는 고작 화살 세 발을 건네주기 위해서 뒤꿈치를 바들바들 들었다·
호크아이가 허리를 낮추고 긴 팔을 유연하게 뻗어 줘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티마뉴크는 이 위태로운 곳에서 깡총깡총 뛰었어야 했을 것이다·
콰아앙!
아무튼 그 모든 고난을 지나 호크아이는 화살 두 개를 입에 물고 나머지 하나를 시위에 걸었다· 묘기에 가까운 자세임에도 당겨지는 시위의 팽팽함은 지상을 딛고 있을 때와 썩 다르지 않다·
핑!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 이번에도 그가 노리던 바는 정확히 이루어져 하와의 다른 눈에 화살이 꽂혔다·
“이번에도 적중입니까?”
끄덕·
“최고입니다!”
이것이 놈의 시야에 어떤 작용을 일으킬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중요 부위에 박힌 가시를 거슬려 하지 않을 존재는 아마 드물리라· 핑!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빼곡하게 박혀 있으면 더더욱·
“더 주세요·”
“넵·”
순식간에 세 발의 화살을 소비한 호크아이는 새 화살을 공급받았다· 적이 공중을 날아다니는 것도 아니요 그로 인해 기류가 엉망이 된 상황도 아니며 거리도 그리 멀지 않으니 연사 속도에 불이 붙은 것이다·
[이 이! 더러운 잡것들이!!]
[어· 너는 더러운 잡것한테 눈알 고슴도치 된 악마 새끼·]
그것에 하와는 굉장한 치욕을 느꼈지만 그래 봤자였다· 여기서 하와는 모두의 적이었고 그런 존재를 동정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반짝반짝!
“신호입니다!”
그때 안전지대 쪽에서 등대와 같은 빛이 올라왔다· 마법이 준비되었다는 효시였다·
“···불 거리를 둘 것?”
“아 화염 계열 마법을 쓰시나 보군요· 하긴 화력으론 원소 계열만큼 적합한 게 없으니─”
호크아이는 가볍게 기둥에서 떨어지듯 내려간 후 더미가 무너지기 전 티마뉴크와 화살통을 낚아채어 다른 곳으로 뛰었다· 와르르· 그가 기둥을 박찰 때의 충격으로 잔해가 완전히 넘어갔다·
“거리는 어디까지 벌려야 합니까?”
“아까 위력을 생각하면 이번에도 사중창 내지 오중창으로 하셨을 것 같은데··· 그럼 100m 정도 벌려야 안전합니다· 안 된다면 못해도 50m는 벗어나야····”
“빨리 움직이죠·”
먼저 50m가량의 거리를 벌린 후 화살로 답을 주면 마법이 떨어질 것이다· 호크아이는 그렇게 대략적인 상황을 그리며 티마뉴크를 어깨에 메고 뛰었다·
“저·”
“네·”
“더 빨리 뛰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마법이 벌써 시작됐습니까?”
“예·”
다만 저쪽에서도 기다려 줄 여유가 없는 모양이다· 분명 밤이 찾아오며 새까맣게 물들었던 하늘이 노을진 것처럼 차차 붉어지기 시작했다· 설마 새벽이 벌써 찾아온 건 아닐 테고 저게 혹시 마법의 여파인가 싶었다·
“빠듯하네요·”
“화염 계열 마법의 특징입니다· 화력에 한하거든 전격 계열과 함께 으뜸을 논하지만 한번 마법을 외면 중간에 끊거나 지연시키기가 어렵습니다· 겹중창일수록 그 단점이 더 두드러지고요·”
“그렇군요· 고의가 아니라는 건 이해했어요·”
하마터면 그들까지 날려 버리려는 건가 생각할 뻔했다·
호크아이는 그리 웃으며 몸을 주우욱 미끄러트렸다· 쾅! 그런 그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돌의 파편이 지나갔다· 심상치 않음을 인지한 하와가 마구잡이로 난동을 피우다 쏘아 낸 잔해였다·
“음· 차라리 이 뒤에 숨는 건 어떨까요?”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뒤로는 굴곡 없이 평평한 그렇다고 방패막이 있는 것도 아닌 땅이다· 하니 50m 어림쯤 온 지금이라면 이 바위 뒤에 숨어 버리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호크아이와 티마뉴크 그들의 의견이 합치되었다·
“그보다··· 참 절경이네요·”
별도로 호크아이는 자리를 잡자마자 하늘을 밝히는 마법을 구경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대략 30m 상공에 떠오른 불덩이다·
“마법은 저런 것도 가능하군요·”
주작도 밤을 밝히는 데는 일가견 있는 존재지만 저 불덩이는 그보다 더하다· 저것은 이곳에 있어선 안 될 시간대의 베일을 통째로 가져와 이 부근 전부를 낮으로 바꾸어 버렸으니까·
“그렇습니까? 저는 그렇게 신기할 것까진 아니라 여깁니다만····”
“아뇨 대단해요·”
이쯤 되면 저 불덩이는 마법사가 지상에 구현해 낸 태양 그 자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으리라·
“전 저런 마법을 본 적 없거든요·”
하나 호크아이의 머릿속 한편에는 그런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것을 가능케 하는 마법조차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다는 게 참 신기하죠·”
태양을 지상으로 불러내는 힘조차 사람을 사랑을 구분해 내지는 못한다는 것·
“결국 사람의 마음이란 건 세상보다 더 복잡하단 걸까요?”
그 사실 하나만 떠올리면 참 웃음이 나온다· 활을 쥔 호크아이의 손이 아주 살짝 떨렸다·
* * *
아크메이지는 결계를 두고서도 느껴지는 열기에 침을 삼켰다· 마력을 다루는 데 주축이 되는 손은 전격 마법 때와 다르게 살이 익어 가는 느낌이다· 꼭 사막의 땡볕에 아무 조치 없이 손만 내놓은 기분이다·
“한데 저 청년은 화살을 어찌 쏘아 보낼지 의문이군요· 몸에 박아 둘 거라면 몸 전체에 골고루 분포하도록 해야 할 텐데·”
“뭐··· 수가 있으니 장담한 것 아니겠나?”
“그건 그렇습니다만·”
촉매가 있다면 속박 마법의 발동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하물며 아크메이지는 화염 마법을 준비함과 동시에 속박 마법의 기반까지 짜 두었으니 더더욱 그랬다·
저쪽에서 화살만 다 쏜다면 그들은 3분도 안 돼 저 악마를 묶을 수 있었다·
“이 부분을 미리 전달해 주게·”
“예·”
뭐 이에 대해선 저쪽의 협조도 필요하니만큼 여기서 아무리 떠들어 봤자 별 의미 없으리라·
그리 여긴 아크메이지는 겨우 미루고 미룬 마지막 주문을 외웠다·
“세상에서 처음 피어난 불씨여 내 적을 불사르소서·”
그녀가 구현해 낸 지상의 태양이 마치 유성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울러 신체가 성화聖火로 이루어져 마력으로 이뤄진 불꽃조차 무시하는 주작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몸을 빼냈다· 꼭 빠지지 않아도 위해를 입지는 않겠지만 자신이 사이에 낌으로써 하와에게 타격이 덜 들어가는 건 막기 위함이었다·
[무슨!]
하와 역시 최후의 순간까지 탈출을 시도했다· 하나 꼬리를 물어 대는 주작의 방해 끝에 하와의 탈출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는 그대로 불덩이에 직격당했다·
콰아아앙!
화염 기둥이 치솟았다가 그대로 버섯구름을 만들어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