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1화 그래도 복될 것이고 (10)
“이게 완성품인가요?”
“네·”
호크아이는 나무로 만들어진 것도 철을 이용한 것도 기타 금속을 쓴 것도 아닌 천 재질의 화살을 보며 오묘한 눈을 했다· 어쩔 수 없었다· 그가 지금껏 많은 화살을 보고 또 사용해 온 건 사실이나 이런 식의 화살은 또 처음이었다·
애초에 천을 화살로 쓸 수는 있나 싶고·
“이렇게 하늘하늘한 걸····”
지금도 봐라· 지지대가 없어서 아무렇게나 꺾이고 구부러진다· 이런 걸 화살이라고 칠 수 있나? 그보다 시위에 걸어 날릴 수는 있고?
“아 아직 힘을 담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힘?”
“예·”
그러나 티마뉴크는 진지한 얼굴로 천 화살을 들어 올렸다· 옷을 벗으며 거대한 새로 돌아가게 된 주작이 조그만 천 화살에 얼굴을 묻었다·
스르르륵· 장엄한 붉은색 화염이 천 안으로 서서히 흡수되었다·
“···저 혹시 주작님 전체를 쏘나요?”
[그걸 쏠 수는 있고?]
“가능과 불가능을 떠나서 쏠 필요가 생긴 것 같은데요·”
[엥·]
주작이 문득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러곤 잠시 침묵한 끝에 대답했다·
[그러게·]
그들의 시야에는 이제 그물을 찢고 나오려는 뱀 하나가 있다· 주작과 티마뉴크의 털─혹은 비늘─이 삐죽 섰다·
* * *
촤아악!
베르세르크는 자신이 뚫어 준 용의 아가미를 보며 얼굴을 손등으로 닦아 냈다· 그런다고 해서 온몸을 적신 피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눈썹에 맺힌 것은 떨어져 나갔다·
더운 피가 안 그래도 열 오른 몸을 더욱 덥혔다·
구어어어!
“···하· 아직도 움직이나·”
목이 반쯤 잘려 나갔는데도 끅끅대며 살아 있는 용 때문인지 아니면 용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시점에서 고유의 생명을 구가하게 되는 것인지·
베르세르크는 자신의 뒤에서 우어어 다가오는 괴물들을 슬 보았다· 질척거리고 시간을 두면 부활하며 지능이 다소 낮은· 그러나 더럽게 많은 괴물들을·
“쯧· 이걸 버리고 갈 수도 없고·”
저놈들의 목표는 이미 그녀로 고정되었다· 즉 그녀가 도주한다고 해도 끝까지 쫓아올 가능성이 높다· 놈들의 집요함이 그녀의 예상보다 심하다면 저 성벽을 넘을 때까지 추적이 이어질 수도 있고·
“아니··· 버려도 되나?”
문제는 성벽 너머 도시에 있을 인간들이다·
그녀는 이 비늘인간들을 감당할 수 있지만 저 안쪽의 인간들은 이 괴물들을 결코 이겨 내지 못할 터· 안고 가기엔 너무 큰 부담이었다·
“흐음·”
물론 이것은 그녀의 비약일 수도 있다· 그녀가 따라잡기 어려울 속도로 이곳을 뜬다면 끝까지 따라오기보다는 단념하고 제 주인의 비늘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하나 이 경우엔 또 다른 문제점이 있으니· 만일 녀석들의 단념과 복귀가 용의 회복을 부른다면? 그래서 용이 다시 도시를 공격한다면?
“역시 처리하는 게 낫겠군·”
베르세르크는 빠른 사고 끝에 결론을 내렸다· 죽을 때까지 전부 쳐죽인다· 아주 단순하고 명쾌한 결론이었다·
그녀의 발이 척 척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처음 한 발은 느리지만 두 발째엔 조금 빠르고 세 발째에는 더 빨라진· 네 발째부턴 이제 달리는 것에 가까운 전진이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할버드가 단창과 도끼로 분리되었다·
“와라!”
베르세르크는 가장 먼저 도끼를 앞으로 내던졌다· 빠르게 날아간 도끼날이 비늘하피를 격추했다· 그 아래 있던 비늘인간 둘도 깔아서 움직임을 막는 일타삼피의 공격이었다·
촤악 촥!
그 다음으론 들고 있던 창을 손가락으로 굴리며 다른 손으로 넘겼다· 허공에 은빛 궤적을 남기며 넘어간 창은 바닥에서 꿀렁꿀렁 일어나는 놈들을 가르고 베며 단창다운 활약을 보여 준다·
휘익!
그녀는 주위를 장악하던 부유력의 소멸을 고려하여 창을 위로 던졌다· 동시에 그녀의 손바닥에 소환된 단검이 막 다가오는 박쥐 떼를 찢고 자르고 부쉈다· 하얀 날개와 몸뚱이들이 마구 분리된 채로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다·
탁!
그녀는 단검을 여전히 양손에 쥔 상태에서 떨어지는 창을 받아 냈다· 이어 약지와 소지로는 단검을 엄지와 검지 중지로는 창을 쥐고 창의 방향을 조절했다· 창의 접합부가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연이어 베르세르크는 바닥에 엎어진 채로 파르르 고개를 들던 하피의 턱을 걷어찼다· 하피의 하관이 으스러지고 미간에 박혀 있던 도끼가 발에 까여 떠올랐다·
탕! 차칵!
떠오른 도끼를 꿰찰 기세로 올려 치자 도끼의 접합부와 창의 접합부가 귀신처럼 맞아떨어지며 연결되었다· 서걱! 이런 와중에도 그녀의 다른 손에 들린 단검은 다가오는 비늘인간의 목을 가르고 다리로 명치를 걷어차 밀어낸다·
쾅!
그녀는 할버드로 돌아온 무기를 휘둘러 오른편을 정리하고는 그것을 투창하듯 던졌다· 이번 표적은 도마뱀 괴물· 그녀의 어깨로 반쯤 무너진 비늘인간이 질척거리는 손을 얹었으나 할버드는 정상적으로 날아갔다·
그녀의 손에 여즉 들린 단검이 뒤에서 덤벼든 비늘인간의 배를 찌르고 돌아서며 목을 벤 후 다른 쪽에서 오는 비늘인간을 업어쳤다·
콱!
그때 무너진 얼굴을 다시 복원한 하피가 그녀의 발목을 깨물었다· 날카로운 이빨이 두꺼운 장화를 뚫고 살갗을 긁는 게 느껴졌으나 베르세르크는 가볍게 단검을 던지는 것으로 끝냈다· 아래로 발사되듯 날아간 단검이 하피의 머리를 관통하며 다시 시간을 벌었다·
“후·”
그쯤 되어 그녀는 숨을 한번 돌리고 그대로 멈추어 점프했다· 크게 뛴 몸이 막 날아오던 다른 비늘하피의 몸을 짓밟고 공중제비를 돌았다· 그녀가 꺾어 낸 허리 옆으로 도마뱀의 혀가 촥 지나갔다·
촤악!
직후 그녀는 자신의 시야에서 달랑거리는 할버드의 창대를 붙잡고 그것에 힘을 실어 가며 아래로 착지했다· 낙하할 때의 힘과 근력을 함께 받은 할버드가 도마뱀의 입부터 옆구리까지의 부위를 그대로 찢어 냈다·
“흐·”
기어이 땅을 찍은 할버드가 긴 자국을 남기며 반대편까지 돌았다· 허공에 반원의 궤적이 잠시 남았다가 앞으로 달려 나가는 몸에 그대로 흩어졌다·
“정말 징글징글할 정도로 많군!”
그녀는 할버드를 풍차처럼 빙글빙글 회전시켜 가며 주위를 싹 쓸어버렸다· 쾅! 마지막 땅에 박힐 때 같이 끌려가 처박히는 건 날에 걸려 베이지 않은 비늘인간 두엇이다·
허벅지와 팔뚝에 힘을 주어 할버드를 뽑아낸 이가 이번엔 그것을 세로로 들었다가 장작을 쪼개듯 내려 찍었다· 촤악! 비늘하피의 머리와 상체가 양단되며 그대로 추락했다·
“쯧!”
그녀는 너무 힘을 준 나머지 땅에 깊숙이 박힌 할버드를 포기하고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대신 할버드와 비슷하게 생긴 하나 날 대신 망치가 달린 무기를 소환했다·
그녀의 골반이 틀어지며 이번엔 뒤쪽을 향해 망치를 내려쳤다· 쾅! 날아오던 도마뱀의 혓바닥이 망치에 짓눌리며 팡 하고 터졌다·
찌익찍찍찍!
이런 와중에 부활을 끝마친 박쥐 떼가 다시 날아올랐다· 기껏해야 시야를 가리고 살갗에 생채기만 남기는 등 귀찮은 수준의 놈들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놈들의 입지는 충분했다· 놈들은 정말 정말 정말 귀찮았다·
“날아다니는 쥐새끼들이····”
그녀는 망치를 짧게 쥐며 날아들 박쥐 떼를 대비했다· 다만 그녀가 박쥐 떼를 파쇄하고 다시 질척거리는 비늘생명체들을 상대하려던 찰나· 그녀의 눈이 부릅뜨였다·
으득 으드득!
안 그래도 그녀가 반쯤 잘라 낸 목· 죽어 가나 싶던 용이 억지로 고개를 흔들고 털어낸 끝에 완전히 뜯기도록 만든 것이다·
콰드득!
캬륵 캭!
몸으로부터 자신의 머리를 스스로 분리해 낸 용이 회광반조의 인간처럼 눈을 빛냈다· 피 섞인 거품을 부글부글 토하던 입은 우악스럽게 움직이더니 끝내 옆으로 뉘어 있던 자세를 정위로 만든다·
용과 베르세르크의 시선이 맞닿았다·
* * *
[야야야야야!]
“빨 빨리 쏴야!”
“저도 그러고 싶지만 화살이 완성되어야 쏘든 말든 하지 않을까요?”
호크아이는 주작과 티마뉴크의 호들갑에 하하 웃었다· 그라고 당황하지 않은 건 아니나 그렇다고 긴장할 것까진 또 없는 그런 상황이 바로 지금이었기 때문이다·
[그 그래! 빨리 담아야지! 마법사야 조금만 더 버텨 봐라!]
“대마법사님께 문제가 생긴 겁니까?”
[얘가 약빨 다 떨어졌다고 비명 지르네! 아이고 법사야!]
뭐 그래도 십오 년간의 용병 생활 중에선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갈 이벤트인가· 따지자면 악마와의 마지막 전투가 도래한 것 마왕성이 걸어오는 것 등 이 상황 전반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야겠지만 아무튼·
“다 실렸나요·”
중요한 건 어느 때에도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호크아이는 은은하게 웃으며 활에 건 시위를 다시 점검했다· 팽팽하게 조여진 활줄이 손끝에 가볍게 튕겨졌다·
[거의 다 됐다· 진짜 거의 다 됐어·]
“아 나온다·”
[아이고오!!!]
콰앙!
속박 마법이 기어이 깨졌다· 마법사가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이긴 하지만 뚫린 구멍을 비집고 머리를 내민 시점에서 탈출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캬아아악!
말하는 것조차 잊은 뱀이 어거지로 몸을 빼내며 그들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아직 멀었나요·”
“흐어 흐어어어·”
[진짜 거의 다 됐어 진짜!]
“먼저 걸어는 둘게요·”
주작이 힘을 부여한 덕택일까· 화살을 이룬 천은 빳빳해졌고 촘촘한 실 사이로는 온화한 화염이 넘실거린다· 이 정도면 시위에 미리 재 두어도 문제가 없을 수준이었다·
“먹히기 전에 완성해 주세요·”
다만 이걸 지금 발사해 봤자 저 뱀을 태우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활줄에 천 화살을 건 호크아이가 나긋하게 웃었다·
캬아아악!
[아직 아직 아직!]
그리고 어떻게든 몸의 절반을 빼낸 뱀이 그들에게로 쇄도했다· 쩌억 벌어진 입 안쪽에는 새까만 어둠밖에 보이는 것이 없다· 호크아이의 웃음이 좀 더 짙어졌다·
『저는 로빈을 악마숭배자로 고발합니다! 그녀는 저를 매혹했습니다!』
아 저 입· 저 새까만 입·
『아니에요 아닙니다! 이건 모함이에요! 저는 그를 매혹한 적이 없습니다!』
『거짓말! 너는 날 유혹했어!』
『무슨 어이없는 말을─ 잠깐 설마? 설마 당신 내가 저번에 고백을 거절했다고 지금─』
어디서 본 적 있어·
『···마숭배자 로빈과 그를 옹호한 사냥꾼 셔우드 그의 아내 피어스에게 사형을 선포한다! 단 그의 자식 록슬리는 어린 나이를 감안하여 무죄를 판결한다!』
『미안하다 아가· 미안해····』
『우리를 원망하렴·』
분명 사형을 언도받고 내게 사과하던 부모님의 입이 그랬지· 좌절과 슬픔 죽음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그런 입이었어·
『···미안· 정말 미안해· 하지만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어· 난 난 그 사람이 없으면 살 수 없단 말이야!』
배신자 타냐도 그랬다· 간곡히 빌던 그 혓바닥도 애절하게 휘어지던 입술도· 정말 까맣기 짝이 없었다·
[됐어! 쏴!]
아 사랑· 그것이 대체 뭐라고·
[쏴!]
그 덧없고 무가치한··· 쓰레기와 다름없는 정신병이 뭐라고·
[야 인간아?!]
호크아이는 그들의 양옆을 감싸며 막 닫히는 입을 두고 눈을 잠시 감았다· 팅· 수천 수만 번을 쏘아 낸 끝에 발사한 순간 성패를 확인할 수 있게 된 관록은 그에게 곧 있을 결말을 속삭인다·
“한 발 더····”
화살이 시위를 떠난 순간 그는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트인 시야에는 오색찬연하게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불꽃과 그로 인해 거둬지는 어둠이 보인다·
“한 발 더 준비해 주시겠어요?”
사악한 뱀은 더 이상 없다· 그것은 원뿔 모양으로 나아가는 화살에 알알이 분쇄되어 무로 돌아갔으니까·
“도시에 숨어 있는 다른 악마를 잡아야 할 것 같으니까·”
대신 그가 제일 경멸해 마지않는 악마가 남아 있다·
호크아이의 미소가 아스라이 흩어졌다·
* * *
자신을 보는 용대가리를 두고 베르세르크는 무기를 움켜쥐었다· 저것이 무슨 수로 몸과 분리된 상태에서 눈을 빛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봤자 뇌까지 곤죽으로 만들어 버리면 되지 않겠냐는 사고 덕택이었다·
캬아아─?!
“···!?”
하나 그녀는 한발 늦었다· 그렇다고 용이 한발 빠른 것도 아니었다·
쐐액!
머리만 남은 용이 그녀에게 덤벼들려던 찰나 유성처럼 날아든 은색 빛줄기가 용의 관자놀이를 뚫고 지나갔다· 와르르르· 이어지는 건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비늘생명체들의 붕괴다·
바닥에 흰 점액질들이 고이기 시작했다·
“어야·”
하나 베르세르크는 그런 진흙탕보다 은빛 섬광이 날아온 쪽을 우선해서 보았다·
“내가 쪼까 늦었제?”
그러자 술 처먹느라 출전 타이밍을 놓친 머저리가 성벽 위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필요는 없었지만 있어서 나쁠 것도 없는 인력이었다·
“흥·”
베르세르크의 입술이 다시 말려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