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3화 그리고 복될 것이니 (2)
데스브링거는 줄어든 팔다리와 자신 앞에 우뚝 선 묘비를 번갈아 보았다·
에밋· 조악한 글씨로 삐뚤빼뚤 새겨진 글씨가 참으로 아렸다·
“에밋····”
그는 왜 이것을 보고 있을까· 에밋의 묘는 또 왜 여기에 나타났을까· 애초에 여긴 어디인가·
그런 상념들이 잠깐씩 들었으나 끝내는 아스라이 흩어졌다· 마치 꿈결과도 같았다· 묘지만 선명하게 존재할 뿐인 새까만 세계가 아득했다·
“에밋 일어나·”
다만 소년은 흩어지는 기억 속에서 그저 울었다· 그때 그 과거 에밋의 시신 위로 돌멩이를 하나둘 올릴 때 그러했듯 펑펑 울었다·
“나만 두고 가지 마····”
아 길이 보이지 않아·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어· 에밋 나는 정말로····
『뭐야 이 꼬맹인·』
그런데 갑작스레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지독하게 익숙하고··· 또 그리운 목소리였다·
『이 어린놈이 우리 애를 죽였다고?』
『정확히 말하면 우리 애는 아니죠· 일방적으로 우리 눈에 들고 싶어 했던 등신 새끼였을 뿐이지·』
『아무튼· 이 코딱지만 한 애가 뒷골목에서 패악질 부리던 호로 잡놈을 죽였다 이거잖아·』
이 목소리의 주인은 대체 누구지? 대체 누구길래··· 이렇게 그립지?
데스브링거는 눈물을 닦아 내고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런 그의 고개를 잡아챈 건 훨씬 더 가까운 곳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어딜 가려는 거야 카뮈?”
“에밋?”
돌아가려던 고개가 다시 붙잡힌다· 데스브링거는 에밋의 묘가 있던 자리를 황급히 살폈다· 여전히 우뚝 솟은 에밋의 묘 뒤로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형체가 있었다·
“카뮈·”
“에밋 에밋이야?”
저건··· 에밋인가? 에밋이 맞나?
데스브링거는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세상에 귀신 같은 게 있을 리 없다고· 있다 해도 그건 죄를 지어 신의 품으로 가지 못하게 된 놈들일 뿐이라고· 평상시 그렇게 생각해 온 사람이 바로 그였던 까닭이다·
“맞아 나 에밋이야·”
“···거짓말·”
무엇보다 에밋은 죽어서 신의 품으로 갈 자격이 있는 그것이 참으로 마땅한 사람이다· 그러니 귀신이 되어 이곳에 있을 리 없다· 데스브링거의 귀가 뾰족하게 섰다·
『바보 같은 놈! 이곳은 적진 한복판이다! 어떤 변수가 터지고 어떤 역경이 닥쳐 와도 넋을 놓지 마라! 알아들었나!』
그러자 뒤에서 또 한 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와는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정신 차렸다면 다음으로 할 일을····』
이건 또 누가 말하는 거야·
데스브링거는 그리우면서도 어쩐지 징글징글하고 그렇다고 싫은 것도 아닌 목소리를 두고 재차 고개를 돌리려 했다·
“카뮈··· 나를 못 믿는 거야?”
그렇지만 에밋도 끈질기긴 매한가지였다· 뭐 뒷골목에서 살아남는 아이중 끈기 없는 놈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에밋은 죽었어·”
“맞아· 나는 죽었지·”
“그러니까 너는 에밋이 아니야·”
“너무하다 진짜· 그렇게 딱 잘라 말하기야?”
데스브링거는 다가오는 에밋을 두고 발을 물렸다· 에밋이 한 발자국 다가오면 그가 한 발자국 물러나는 형상이었다·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오는 에밋의 몸이 점차 선명해졌다·
“하지만 카뮈·”
『말하지 않는 것엔 마땅한 사정이 있을 것입니다! 』
“난 에밋이 맞아·”
『저 바보는··· 저 바보는 비밀이 많으니까요·』
“네가 부정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그렇지만 그게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완전히 무시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고개를 한 번쯤은 돌리고자 했다· 빠르게 다가온 에밋이 그의 얼굴을 붙잡지만 않았다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카뮈 나를 봐·”
에밋의 억센 손길이 그의 고개를 강제로 고정시켰다· 마치 그가 뒤를 봐서는 안 된다는 것처럼 오직 자신만을 봐야 한다는 것처럼·
“이 이거 놔·”
“카뮈·”
하지만 소년은 싫었다· 이런 건 에밋이 아니었다· 억척스러울지언정 소년에겐 언제나 다정했던 에밋은 절대로 그를 붙잡고 무언갈 강요하지 않았단 말이다·
“놔!”
“카뮈····”
아 에밋의 형상을 하고 있을 뿐 진짜 에밋은 아닌 이것과 같이 있기 싫어· 에밋의 묘비뿐인 이 공간에도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아·
나는 나는 나가고─!
“날 떠나면 갈 곳은 있고?
거칠게 반항하던 데스브링거의 몸이 우뚝 멈췄다·
“카뮈 알잖아·”
인정하긴 싫었으나 그것의 말이 맞았다·
“너는 날 떠날 수 없어·”
소년은 혼자서 길을 찾는 법을 몰랐다·
“그러니 나와 있자·”
─가 그러했듯 아득한 진창에서 먼저 손을 뻗어 주지 않으면 ──가 그러했듯 중요한 순간에 그의 등을 밀어 주지 않는다면 그는 그는····
“이곳에서 오직 우리 둘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거야·”
···근데 그에게 손을 뻗어 주었던 ─이 누구였지? 중요한 때에 등을 떠밀어 주고 응원해 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던 사람은 또 누구였고? 아니 애초에 그 순간순간들을 기억하고 있으면서 정작 떠올리지 못하는 이유가 뭐야?
“응? 카뮈·”
손가락 사이를 타고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기억이 조각조각 떨어졌다·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잡히지가 않았다· 가슴에 새겨진 구멍이 점점 커졌다·
“카뮈?”
“···아무래도 가 봐야겠어·”
그쯤 되니 아까 그 목소리들이 거슬려졌다· 에밋의 묘밖에 없는 이 세계에서 그 목소리를 낸 것들은 도대체 누군가 하여·
“···어딜 가려는 거야?”
“찾아야 해·”
어쩌면 그가 잊고 있던 무언가를 그들이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들이야말로 그가 가진 기억의 키워드일지도 모른다· 소년의 몸이 에밋을 두고 돌아갔다·
“가지 마·”
탁·
그러자 손목이 붙잡혔다· 어느새 사람처럼 생생해진 에밋의 몸은 빌어먹게도 에밋 그 자체였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데스브링거의 이가 입술을 깨물었다·
“놔·”
“가지 마 카뮈· 넌 나를 두고 가선 안 돼·”
그렇지만 그는 가야 한다·
“네가 어딜 갈 수 있다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가야만 한다·
“난····”
기억의 빈자리와 기이한 열망이 충돌하며 소년의 몸을 뒤흔들었다·
“난 가야 해·”
“아니 넌 못 가!”
“갈 수 있어·”
“이 어둠 속을 헤치고?”
“···찾을 수 있어·”
“아니· 넌 찾을 수 없어·”
윽박지름에 가까운 에밋의 말에 공연히 혀와 입술이 말랐다· 반박할 거리가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는 기분이었다·
“넌 절대로 갈 수 없어·”
···어쩌면 그는 정말 길을 잃어버린 걸까?
『캄·』
소년의 고개가 내려가려던 순간 등 뒤에서 누군가의 온기가 느껴졌다· 그 목소리는 그리울 정도로 따뜻했고 슬플 정도로 부드러웠다· 소년의 눈꼬리에 이유 없이 눈물이 맺혔다·
『난 고향으로 돌아갈 거다·』
동시에 소년은 이상하게도 자신감이 생겼다· 마냥 근거 없는 자신감도 아니었다· 목소리가 들린 찰나 소년은 자신이 무언가 들고 있었음을 자각해 냈으니까·
“에밋·”
짜리몽땅했던 팔과 다리가 어느 시점부터 어른의 그것이 되었다· 그의 손목을 붙잡고 있던 에밋은 여전한데도 그의 눈높이는 불쑥 올라가 버린 것이다·
“미안해·”
“안 돼 안 돼 카뮈·”
그것이 생경하다가도 어쩔 수 없다는 감상만이 남는다· 당연했다· 죽은 사람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고 산 사람은 억지로라도 크게 되어 있으니까·
“미안해 에밋·”
“그러지 마·”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것이다· 소년은 이제 청년이 된 그는 자신이 들고 있던 검을 내려다보았다· 에밋이 그러했듯 그를 영원히 떠나갈 사람이 준 검이었다·
“난 가야 해·”
“날 날 두고 가지 마!”
함에도 이별이 남기는 것은 비단 슬픔만이 아니기에·
데스브링거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이제 그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카뮈!”
“안녕·”
에밋에게 붙잡혔던 손목이 풀려났다· 에밋은 다시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데스브링거는 결코 잡혀 주지 않았다·
과거에게 발목 잡히는 건 이제 사양이었다·
“안녕 에밋·”
대신 그는 그를 기다릴 사람들에게로 달려갔다· 그의 현재와 미래··· 반복될 만남과 이별 그 사이로 뛰어들었다·
저 멀리서 악몽이 보였다·
* * *
꿈틀·
데스브링거는 무겁디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쿨럭·” 그와 동시에 기침이 튀어나왔다· 어떻게 막을 방도는 없었다· 내장이 으깨진 듯한 고통과 함께 잇새로 피가 울컥울컥 새어 나왔다·
“···! 꼬맹아 괜찮아?”
“으·”
못해도 갈비뼈가 두 대는 나간 것 같은데· 데스브링거는 익숙하게 자신의 부상 정도를 가늠하며 상체를 살살 움직여 보았다· 호흡할 때와 움직일 때 그러니까 상체가 조금이라도 흔들릴 때마다 엄청난 격통이 일었다·
“무리하면 안 돼· 너 지금 뼈 나갔어·”
“저도 압니다요·”
그냥 나간 수준이 아니라 부러진 뼈가 내장을 찌르는 느낌이다· 객혈한 시점에서 기분 탓 수준이 아니라 100% 확정이었다·
“상 황은 요·”
“···하얀까마귀와 악마 놈이 계속 싸우고 있다·”
“···어떻게 버티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시간을 길게 끌지는 못할 것 같아·”
“그거 좀 좆같네요·”
함에도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데스브링거는 자신이 쥐고 있는 검을 붙잡고 상체를 완전히 일으켰다· 왈칵· 피가 한 번 더 토해졌다·
“···무리해서 움직이지 마라· 죽는다·”
“이걸로 뒈지면 데스브링거 이름이 울지····”
뭣보다 주변 사람들 하는 거 보면 이건 죽을 상처도 아니었다· 데스브링거는 제 부상도 잊고 낄낄 웃었다· 그러다 한 번 더 토혈하긴 했지만·
“···설마 너 더 싸울 생각이니?”
“그럼 여기서 죽치고 있을깝쇼?”
“꼬맹아 이건 정말 아니야· 네가 강한 건 맞지만 그래 봤자 인간 레벨에서라고· 저건 범인이 상대할 게 아니야!”
“···뭐 그래 보이긴 합디다·”
데스브링거는 벽에 기댄 채 숨을 골랐다· 그러곤 천천히 창가로 몸을 옮겨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스카일라와 지부장 놈이 고른 탑은 관전이 편하면서도 발각될 위험은 적었기에 별걱정 없었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요·”
바람손 저 새끼는 진짜 기깔나게도 자네·
그는 갈비뼈만 멀쩡했으면 한 대 쳐 줬을 거라 생각하며 검을 고쳐쥐었다· 정수로 쥐인 부정검이 서늘한 색으로 빛을 삼켰다· 햇빛에 닿으면 푸른빛을 흘리고 그늘에 들어가면 검게 변하는 정말이지 우아하기 짝이 없는 색채였다·
“···가면 진짜 죽을지도 몰라· 이번엔 우리가 구해 주지도 못할 거라고!”
“괜찮습니다요·”
그리고 이 색채는 그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과 한없이 닮은 것이기도 해서·
“괜찮아요·”
그 색을 짊어진 이상 그는 움직여야 했다· 이 검을 쥐여 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또 그 사람 앞에서 떳떳하기 위해서라도·
“그보다 옷 좀 걷어야 하는데 도와줄 수 있습니까요?”
“···옷은 왜·”
“진통제 좀 투여할까 하고·”
“도와주지·”
스카일라가 망설이는 사이 지부장놈이 다가와 장갑을 벗겨 주었다·
“혈관 찾을 줄 알죠?”
“나는 장님이 아니야·”
“좋아요· 혈관을 짚어서 그대로 주사하면 됩니다요·”
“···벗어나면?”
“모르죠?”
그는 모험가가 ‘주사기’라고 부르던 물건을 넘겨주었다· 다섯 개의 주사기 안에는 각각 진통제와 각성제 도핑제 따위가 들어 있다·
“못 하겠으면 포기해도 돼요·”
사실 먹는 형태의 약도 있다· 주입하는 것보다 효과가 덜하고 약효가 도는 데 오래 걸려서 그렇지·
“으음····”
“···나와 내가 할 테니·”
혈관에 정확히 주사할 자신이 없는지 지부장 놈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 그를 옆으로 밀어낸 건 스카일라였다·
“하 실험체 인생이 도움되는 건 또 오랜만이네·”
“뭐요? 무슨 인생?”
“됐어 넌 몰라도 돼·”
아니 지금 흘려들을 수 없는 단어가 나왔는데 뭐? 몰라도 돼?
“장난해요?!”
“목소리 높이지 마· 들키고 싶어?”
“아니이─!”
“그리고 이거 진통제만 있는 거 아니지? 정확히 무슨무슨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 불어· 안 그러면 주사 안 해 준다·”
“···진통제가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잖아요· 그 부작용을 제거하기 위한 각성제랑 신체 능력을 강제로 끌어올리는 도핑제입니다요·”
“부작용은?”
“어 많이 쓰면 고자 될 수도 있다는 소린 들었습니다· 근데 한 번 쓰는 걸로 문제 생기진 않는댔어요·”
“···그건 다행이네·”
고자란 소리에 지부장 놈이 눈썹을 구기고 스카일라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그가 이 약물에 대한 부작용을 처음 들었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보다 실험체 인생은 진짜 뭔 소리냐고요·”
“넌 몰라도 된다니까·”
“아오·”
데스브링거는 끝까지 입을 다무는 스카일라의 모습에 주먹만 쥐락 펴락 했다· 주사형은 약효가 직빵일 거라더니 확실히 가슴에서 느껴지던 통증이 점차 멀어져 갔다·
“살아 돌아오면 말해 주깁니다요·”
“···그래·”
“약속했어요·”
그렇다면 이제 움직일 수 있다· 갈비뼈가 내장을 찌르는 중이란 것도··· 폐만 찌르지 않는다면 별문제 없고·
“···나도 손을 보탤 구석이 있나?”
“하 됐습니다요· 저 머저리랑 스카일라나 챙겨 줘요·”
“····”
지부장이 마지막으로 건넨 제안까지 무른 데스브링거는 천천히 탑을 내려갔다· 쿵· 거리에서 여즉 이어지고 있는 싸움이 걸을 때마다 울리는 땅으로서 전해졌다·
“좋아····”
아까의 암살은 답이 없었지· 그렇다면 그게 본체가 아니거나 좀 더 특수한 방식으로 상대를 죽여야 한다는 것인데·
‘···성수를 부어 버릴까?’
고농축 성수탄을 쑤셔 넣으면 저 악몽도 흩어질까? 데스브링거는 아공간과 연결된 가방에 손을 넣은 채 그 안에 든 성수탄을 마지작거렸다· 그에겐 딱 하나만 배부된─이마저도 그의 무력이 약해서 주어진 것이었다─물건이었다·
“아 진짜· 이게 통할지 아닐지 당최 알 수 있어야지····”
하나 이것을 쓰자니 나태가 현신하고 있는 모습의 크기가 너무 크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탑을 끝까지 내려온 데스브링거의 눈이 그늘에 삼켜졌다·
─잠깐 대화 좀 할까요?
그러다 잠깐· 그는 뒤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황급히 몸을 돌렸다·
─저 악마를 죽이려면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거든요·
그러자 여태껏 무시해 왔던 조그만 기척이 그러나 예상치 못한 형태로 그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아 제 소개는 굳이 할 필요 없죠? 당신도 눈치가 있을 테니까·
사람의 살로 만들어진 인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