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6화 그리고 복될 것이니 (5)
“시발 진짜 좆같구로!”
“참으라! 죽이뿌면 안 된데이!”
거리를 내달린 지 채 5분도 흐르지 않은 그 시간· 베르세르크는 골목 안쪽에서 느껴지는 소란에 눈썹을 까딱였다·
“발소리가 스무 개는 넘는군·”
“아따 사람만 빼고 튀는 게 좋겄구만?”
미스틸테인도 그 소동을 인지했는지 자연스레 방향을 틀었다· 그들의 몸이 골목 안쪽으로 진입했다·
“버티라! 버티라고!”
“시발 이걸 어떻게 버티라는···!”
“옴마나? 저 새끼들이 와 여깄는겨·”
그러다 아는 목소리 하나가 들렸는지 미스틸테인이 뚱딴지 같은 얘기를 지껄였다· 어안이 벙벙한 사람 특유의 늘어지는 어투가 선명했다·
“건물을 끼고 방어전을 펼치는 건가· 뚫고 가기엔 사람이 너무 많은데·”
“그카니까네· 이걸 우짜스까·”
몰려든 일반인의 숫자가 못해도 이십을 넘긴 상태다· 베르세르크와 미스틸테인은 사람들이 그들을 보지 못할 거리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유인하지· 그동안 구출해라·”
“그거 고맙구로· 알았수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들은 시시각각 상태가 나빠지는 건물 안 사람들을 위해 순식간에 결론을 도출해 냈다· 미스틸테인이 순식간에 다른 골목으로 빠지고 골목길 중심에 당당히 선 베르세르크가 철방패와 철퇴를 두 손에 쥐었다·
까앙! 깡깡깡!!
그녀는 방패가 부서져라 철퇴로 두드렸다· 그 격렬한 소음에 광인들의 이목이 끌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엔 한둘이 돌아보고 이어서는 열댓 명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너 너 너어어어!!”
“소리 소리 소리 소리!!”
광인들의 판단 능력이 이렇게나 떨어진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지·
그녀는 광인들이 자신을 잘 따라오도록 천천히 툭툭 달리다 시간이 되었다 싶을 즈음 빠르게 따돌렸다· 우악스러운 힘으로 건물 외벽을 타고 올라 도피로를 개척한 것이다·
미친 인간들이 그녀를 따라 벽을 타고 오르려 했지만 일반인의 신체능력과 평균 이하의 지성으로는 불가능했다· 소름 끼치는 악다구니 소리가 골목 아래에서 울려 퍼졌다·
“오· 생각보다 빨리 왔구마잉· 몸은 어찌 괜찮으소?”
“멀쩡하다·”
각설하고 그녀는 건물 위를 뛰어넘으며 아까 그 자리로 다시 복귀했다· 남아 있던 소수의 광인들은 미스틸테인이 제압한 것인지 건물 안쪽에 기절한 인간 너덧 명이 널브러진 게 보였다·
“바로 이동 가능한가?”
반면 깨어 있는 인간은 미스틸테인을 제외했을 때 다섯· 그중 하나는 다리에서 피가 흐르고 다른 하나는 허리춤이 붉다· 진통제까지 썼는지 두 눈이 몽롱한 건 덤이었다·
“나가 하나 댁이 하나· 요래 짊어지믄 될 것 같은디··· 괜찮겄소?”
“상관없다·”
“하모 그래 가는 걸로·”
“목적지는?”
“모험가 길드 주변에 생존자들이 만든 기점 하나가 있다 안그러요· 내 아들도 고짝에 있다는 것 같고· 해서 고짝으로 갈까 하는디 괜찮겄소?”
“나쁘지 않군· 안내해라·”
“하모· 그럼 바로 가뿝시다·”
미스틸테인과 베르세르크는 자의로 움직일 수 없는 두 사람을 각각 챙겼다· 배에 구멍 뚫린 놈이 미스틸테인 다리 다친 놈이 베르세르크의 몫이었다·
“하이고 이 미련한 놈들아· 우짜다 여까지 몰린기고?”
“아따··· 실수 한 번 한 거 가꼬··· 너무 그러지 맙시다····”
“시선 한번 끌리니까네 억수같이 몰려듭디다· 하여간 치사한 새끼들· 안 그래도 이짝은 책잡힐까 상처도 제대로 안 내고 있는디·”
덩치를 생각하면 그녀가 구멍 뚫린 녀석을 맡는 게 더 나았을 텐데 굳이 미스틸테인이 그를 고집한 건 그가 부하이기 때문이었나·
베르세르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생존자를 어깨에 둘러멨다· 불친절한 모양새였지만 차마 항의하러 나서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들은 그렇게 달렸다·
“저기 저깁니다!”
“오 생각보다 가까웠구로·”
대략 10분에 걸쳐 도착한 거점은 상인 조합으로 쓰이던 것 같은 3층짜리 건물이었다· 광인들의 집단 습격을 대비한 것인지 입구와 계단은 사물로 막혀 있는 채다·
물론 밖을 오갈 사람들을 위한 출입구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소수의 창가마다 내려진 여러 개의 밧줄이 부는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이러면 급할 때 올라가긴 힘들겠군·”
“그래서 옆 건물도 비워 뒀다 안캅니까·”
미스틸테인의 부하─멀쩡한 쪽─가 낄낄 웃으며 손가락으로 한쪽 창문을 가리켰다 옆의 2층짜리 건물과 마주 보고 서는 자리였다·
“널판지····”
아군이 전부 건너오거든 판자만 회수하면 된다· 완벽하게 안전한 방식은 아닐지언정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처임은 분명한 것이다·
“급조한 것치곤 괜찮은 방비군·”
“그제? 우리 호드 참모장님이 모든 모험가 놈을 제치뿌고 낸 의견 아닙니까· 하하·”
미스틸테인의 부하가 너스레를 떠는 동안 미스틸테인은 위로 향하는 밧줄을 잡았다· 엉덩이를 받치는 손이 사라졌음에도 미스틸테인을 붙잡은 용병은 잘만 버텼다· 허리에 구멍이 뚫린 걸 생각하면 참 대단한 정신력과 근력이었다·
“저 저는 혼자 올라갈 수 있····”
“쓸데없이 움직이지 마라· 방해다·”
베르세르크의 차례는 마지막이었다· 약한 놈들 먼저 보내는 게 낫겠다 판단한 결과 벌어진 일이었는데 덕분에 어깨에 얹어진 사람은 달달달 불안에 떨었다·
“저 저 진짜 혼자 올라갈 수 있─!”
“말하지 마라· 혀 씹는다·”
베르세르크는 어깨의 사람을 한 팔로 휘감은 채 밧줄은 잡지 않고 3층 창문까지 올랐다· 오롯이 도움닫기와 그 관성을 이용한 벽 달리기로 이룬 결과였다·
“···내색은 안 했어도 내 정도면 어디 가서 꿀릴 일은 없겠제 하고 생각했는디 댁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구마잉·”
그 경이로운 모습에 감탄을 보낸 건 먼저 올라와 있던 미스틸테인이었다· 자주 들어 본 말이었기에 베르세르크는 큰 감흥 없이 받아들였다·
“하 용사나 모험가 놈이 앞에 있었으면 기절했겠군·”
“거 그짝 인간들은 애초에 시작점이 다른 종자들이고·”
미스틸테인은 너스레를 떨며 거점 안을 둘러보았다· “대장!” 마침 한쪽 구석에 몰려 있던 이들이 그들을 불렀다·
“오냐· 다들 잘 있었나?”
그는 업고 있던 부하를 다른 이들에게 넘겼다· 대장의 무사 귀환에 들뜬 이들이 어이쿠 따위의 소리를 흘리며 부상자를 받아 들었다· 베르세르크 역시 둘러멘 이를 넘겨주었다·
“생각맹키로 빨리 돌아오셨으요·”
“가보니까네 저짝이 이미 다 해치웠더라고·”
“···거 대단하구만·”
호드는 미스틸테인의 발언에 깜짝 놀라더니 이내 정중히 손을 뻗어 왔다· 명백한 악수 요청이었다·
“호드라 불러주소· 부족한 몸으로나마 대장을 모시고 있지요·”
“베르세르크다·”
“베르세르크··· 들어 본 적 있다 아입니까· 노르다 출신이시고·”
“이 이름을 아는군·”
“내 눈이 안 보인다카지 귀는 밝은 편에 속하는지라·”
베르세르크는 상대가 자신의 이명을 안다는 것에 눈썹을 까닥였다· 감흥이 크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뜻밖이란 것도 사실인 까닭이었다·
“그보다 호드 로키는?”
“···모험가 출신 치료사들과 함께 대원들의 상태 좀 살펴보고 있소· 우리 아들 몇 명을 포함해 멀쩡했던 사람들 일부꺼졍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아입니까·”
“뭐라꼬?”
호드의 말에 미스틸테인이 눈을 확 치켜떴다· 가느다란 웃음마저 사라진 눈매가 제법 날카로운 수준이 아니라 맹수처럼 사납고 포악한 형태다·
“자세히 자세히 말해 보그라·”
“으음 자세한 건 로키 본인에게 물어보는 것이 나을 거요· 제가 들은 건 현기증을 호소하는 몇 마디의 말과 한 가지 감정에만 매몰되어가는··· 그런 느낌의 중얼거림이 다였으니까네·”
“···그랴·”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던 이들이 어느 순간부터 현기증을 호소하고 어떤 감정에 매몰되기 시작했다라·
베르세르크는 이 자리에 있는 소수의 사제들을 바라보았다· 저들이 가만히 있는 것을 보면 저주는 아닌 듯하고 저주가 아니라면 남은 가능성은····
“마법인가?”
“응?”
그녀가 기억하기로 남은 대악마는 나태와 색정 오만 분노다· 그중 분노는 모험가가 봉인하다시피 한 상태고 나태는 꿈에 간섭하지 감정에 간섭하지는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하면 지금 일은 색정 또는 오만 그중 하나가 벌였단 소리인데···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마법이 원인이지 않겠나? 마침 오만은 마법의 종주라고 불리기까지 한다는 모양이니·
“마법이면 사제들이 죽을 못 쑤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겠나·”
“흐음· 그런가····”
“아니 이 현상은 마법보단 저주라고 부르는 게 맞아·”
그때 베르세르크의 말을 끊으며 누군가가 다가왔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어린아이인지 어른인지 구분이 참 모호한 이였다·
“로키·”
“단지 식탐의 에릭식톤이 그랬듯 너무 전방위적으로 저주가 퍼져서 해결할 방도가 달리 없을 뿐이지· 뭐 신전에 데려간다면 얘긴 또 달라지겠만·”
저게 그 로키인가· 베르세르크는 작달막한 애송이를 보며 입을 벌렸다·
“그럼 저주의 근원지가 어디인지도 아나?”
“아직· 저주의 반경을 파악해야 근원지를 찾을 수 있는데 그게 아직 안 됐거든·”
“그럼····”
저주의 반경을 파악하기만 하면 이 현상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건가· 베르세르크는 이곳까지 오길 잘했다 생각하며 그녀가 하면 되는 일을 물었다· 로키가 조금 고민하는 얼굴을 했다·
“일단 지금까지 알아낸 정보는 이거야·”
로키는 모험가 길드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양피지─뒷장이 의뢰서였다─를 여럿 펼쳤다· 가장자리가 조금씩 겹쳐지게 그리하여 거대한 그림판이 만들어지는 형상이었다·
“광증의 조건은 공포심과 정신력에 달려 있어· 그러니까 이 상황을 너무 두려워하거나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비관적인 사고에 사로잡히면 바깥의 사람들 꼬라지가 난다는 거야·”
“···고것 참 조건이 애매하구만·”
정신력이라니 그것만큼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이 얼마나 있을까· 베르세르크의 혀가 끌끌 차였다·
“멀쩡했던 사람들도 점차 미쳐가는 건 그런 이유였나· 하고마·”
“그래서 일단 같이 연구하던 사제들로 하여금 성물이든··· 성물을 가장한 무언가든 좀 신성해 보이는 걸 만들어 거점 주위에 치라고 하긴 했어· 멍청한 애들은 그것만으로도 마음을 좀 놓을 테니까·”
로키가 그 말을 할 땐 소리를 죽였다· 그런 로키의 뒤로는 로키와 함께 관찰을 마치고 돌아온 이들이 각자의 세력에 합류하고 있다·
“잘했다 로키· 가짜라캐도 위안거리가 있는기 사기 안정엔 더 도움되겄제· 어차피 정신력 문제면 티 나지도 않을 기고·”
“그렇지? 키히히히·”
“그보다 지금 그리는 건 뭐지?”
“지도· 정확히는 지금까지 발견된 광인들의 위치야·”
로키는 도시의 윤곽을 대략적으로 그려 낸 후 대로를 중심으로 길을 찍찍 그었다·
중간중간 그 길이 무슨 길인지 식별할 수 있는 특징─눈에 띄는 건물이나 속성─들도 그려 넣어 이 도시가 익숙지 않은 베르세르크까지 대강이나마 구분이 가능했다· 꽤 괜찮은 솜씨였다·
“이쪽 이쪽 그리고 이쪽 구역은 이미 다 먹혔어·”
“신전이랑 마탑은? 그짝이 버티고 있다카면 쪼까 나을긴데·”
“안 그래도 그 주변에서 탈출한 사람이 있길래 이야기를 좀 들어 놨어· 그런데 둘 다 광인들에게 제대로 포위당한 눈치야· 혹시 몰라 자원한 사람을 정찰병으로 보내 두긴 했지만 기대는 안 하는 게 나을걸?”
각설하고 지도를 완성한 로키가 다듬어진 돌멩이를 꺼내 탁탁탁 놓았다· 각각 생존자의 위치와 적들이 유난히 밀집된 장소 등을 표기하는 말이었다·
“아 성벽에는 사람이 싹 없어졌데이· 참고하그라·”
“그래? 그럼··· 여기까지네·”
“어이 혹시 멀리 다녀온 놈들 읎나? 지금 악마새끼 찾을라 하는디 도움이 쪼까 필요해서·”
“음···?”
여기서 미스틸테인을 시작으로 다른 세력의 사람들이 정보를 더하며 조금씩 조금씩 저주의 범위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복귀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정보의 갱신은 더욱 빨랐다·
이윽고 귀퉁이가 조금 일그러진 원형이 완성됐다·
“범위 한번 지랄맞게 넓네· 도시의 절반이 먹혔잖아····”
“그래도 식탐 때보단 낫지· 그땐 도시 전체가····”
“아니지 등신아· 그땐 전투가 가능하기라도 했잖아·”
“끄응·”
로키는 나온 정보를 토대로 저주의 근원지다 싶은 공간을 짚었다· 우연찮게도 여기 모인 모든 세력이 지나간 적 없는 길목이었다·
“이렇게 되면 확실하네· 거리가 먼 것도 아닌데 지나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건··· 무슨 수를 썼든 간에 이쪽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막았단 거니까·”
“···아마 무의식에 영향을 줘 가꼬 길을 돌아가도록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데이· 아예 길을 막아 뒀다카면 의심을 샀을 기고 공간을 도려내는 기는 품이 많이 드니까네요·”
“그럼 그걸 인지하고 진입하면?”
“들어갈 수 있을 깁니다· 아니 들어가집니다· 이런 마법은 품이 적게 드는 대신에 알아채뿌는 사람이 하나라도 나와뿌면 파훼가 쉬워지는 단점이 있다 안캅니까·”
하면 되었다· 베르세르크는 망가진 망토를 둘둘 말아 구석으로 내팽개치며 무기를 챙겼다· 용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날이 무뎌지거나 파손된 무기들을 죄 버리고 멀쩡한 무기만 챙겨 다시 가방에 넣은 것이다·
“출발하지·”
“조오오오아· 가자고·”
“잠깐 바로 가는 건가? 이 야밤에? 대악마가 있을지도 모르는 곳으로?”
“이런 상대는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진다· 우리의 인원은 갈수록 늘기보다 줄어들 확률이 더 높으니까·”
더불어 상대가 저주를 완성한 후 그저 가만히 놀기만 했을까?
베르세르크는 아까 용병들을 공격하던 광인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어쩌면 놈은 그런 공격성 높은 광인들의 개체 수를 더 늘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제!”
해서 그녀는 방 곳곳에 기도상을 둔 사제를 불렀다·
“···왜 그러십니까?”
“나는 지금부터 저주의 근원지로 추정되는 곳으로 향할 거다· 다만 그 과정에서 미쳐 버린 일반인들의 공격이 쏟아질 게 분명한 바· 나는 악마사냥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비상시에는 일반인들도 악마로 취급하고자 한다·”
“····”
일반인이랍시고 손속에 사정을 두었다가 이쪽이 벼랑에 몰리면 상황은 더 악화될 뿐이다· 베르세르크는 그것을 꼬집으며 사제를 직시했다·
“신전은 이런 나를 죄인 취급할 것인가?”
호박색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났다·
“···어떤 순간에도 저와 제 동료들은 당신의 선택을 지지할 것입니다·”
또한 사제의 눈 역시 슬픔의 빛으로 물들었다·
“부디 악마를 단죄해 주시길·”
허락이 떨어졌다·
이제 베르세르크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