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8화 그리고 복될 것이니 (7)
“시발!”
얼마나 달린 걸까· 마이스터는 드디어 보이는 도시의 모습에 이유 없이 욕설을 지껄였다·
“드디어 도착했네 염병!”
아니 어찌 보면 이유가 있긴 할지도 모른다· 여까지 달려오느라─엄밀히 따지자면 직접 달린 건 프레드릭이지만 어쨌든─고생한 그의 몸뚱이가 현재 진행형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으니 말이다·
“꼬맹이! 살아 있냐?!”
“네!”
프레드릭의 목을 끌어안느라 힘이 잔뜩 들어갔던 팔은 갈수록 감각이 없고 달릴 때마다 들썩거리던 엉덩이와 허벅지 안쪽은 불에 덴 듯 홧홧하기 짝이 없다· 이게 다 이 더럽게 빠르고 더럽게 거친 말 때문이었다·
마이스터는 괜히 죄 없는 말탓을 하며 뒷자리의 소녀를 챙겼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징그럽다고 봐야 할지· 삭신이 다 쑤시는 그와 다르게 소녀의 목소리는 아직도 밝았다·
“그러냐····”
그는 다리의 얼얼함을 두고 무조건 찰과상 내지 멍이 들 것임을 확신하고 있는데 얘는 왜 이렇게 활기차냐· 아프지도 않나? 아니면 이게 바로 젊음인가?
마이스터는 아크메이지나 그의 할아버지가 들었으면 등짝을 후려칠 소리를 뇌까리며 슬슬 고삐를 당겼다· 그의 의도를 알아들었는지 프레드릭도 투레질과 함께 속도를 천천히 늦췄다·
푸르르륵·
2차 확장 지구에서 여기까지 질주하는 건 이 녀석에게도 제법 힘겨운 일이었는지 프레드릭이 수증기를 모락모락 피우며 투레질했다·
“흐히 흐히히히히·”
“열어 열어 열어어·”
“다 죽을 거야· 다 죽을 거야· 다 죽을 거라고·”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그사이 마이스터는 숨을 돌리며 성문의 상태를 확인했다· 먼저 도망친 사람들인지 뭔지로 성문 앞이 가득해 통과할 만한 길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던 탓이다·
“아까 주작도 지나가던데····”
1 2분 전의 일이긴 하지만 주작이 도시로 가는 것도 보았다· 그걸 보면 도시에도 뭔가 사달이 난 것 같긴 한데··· 아니 사달은 마왕성이 뚜벅뚜벅 걸어오는 시점에서 이미 났던가?
“지랄이 풍년이네 염병할·”
그는 프레드릭의 등에 앉아 한참을 고민했다·
그냥 갈까 아니면 말까· 전자를 택하자니 사람들과 부딪칠 것 같고 말에서 내려서 가자니 사람들의 상태가 영 아니어서 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저거 가도 되나 모르겠네·”
사람들 눈깔 풀린 게 괜히 다가갔다가 화만 입는 거 아니야? 마이스터는 자신의 합리적인 의심을 두고 공연히 눈만 게슴츠레 떴다· 그러자 그의 뒤에 있던 소녀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사람들이 왜 저러고 있는 건가요?”
“난들 알겠냐?”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해도 그의 명석한 머리는 저들이 왜 저러는지 대략적이나마 추론해 낸 채다·
“좆같은 악마 새끼들이 뭘 하든 한 거겠지·”
사실 추측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었다· 여기서 사람들이 단체 착란을 일으킬 이유는 솔직히 단 하나뿐이었으므로·
“감각 증폭이든 뭐든··· 사람 한둘 등신 만드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으니까·”
기실 그게 진실이건 거짓이건 이렇게 여기지 않으면 안 되기도 했다· 이 광경이 적들의 수작으로 이뤄진 일이 아니면 결국 저 병사들의 정신 무장이 덜되었단 소리인데··· 그게 정말이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 아니겠나?
하다못해 1차 2차 확장 지구의 사람들도 이 정도까지 난리 법석을 피우진 않았던 것을·
“저건 한둘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요·”
“망할 꼬맹이· 이 정도까지 말하면 대충 알아먹으라고·”
하여간 욥 녀석이랑 베르세르크 그 인간이 애를 다 버려 놨어· 너무 오냐오냐 해 주니까 애 기가 바짝 살았잖아· 어? 나 때는 어른이 한 마디만 해도····
마이스터는 청산호가 들었다면 귀를 후비적거릴 소리를 늘어놓으며 슬슬 선택을 내렸다· 여기에 계속 서 있을 순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야 준비됐냐?”
그는 아까보다 안정된 프레드릭의 숨소리를 들으며 녀석의 목을 툭툭 쳤다· 준비됐냐는 의미였는데 녀석이 곧바로 고개를 휘저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거부의 의지가 너무 명백하게 느껴지는 움직임었다·
푸륵 푸륵·
“···이 새끼가?”
마이스터의 얼굴에 빡침으로 도드라진 혈관이 울긋불긋 솟았다· 하나 안타깝게도 이 자리에서 가장 힘이 센 존재는 프레드릭이었기에 마이스터는 차마 ‘근거’와 ‘설득’이라고 이름 붙여 준 망치를 꺼내지 못했다· 실로 아쉬운 일이었다·
“···됐다· 네가 너랑 말을 해서 뭐 하냐·”
그는 대신 금수와 그 이상의 대화를 하지 않는 것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그의 자존심을 챙겼다· 그가 생각했을 때 가장 효율적이고 현명하며 정합한 선택이었다·
“야· 억지로 뚫고 가기나 하자· 사람은 눈치껏 살살 치고 어?”
푸르륵·
···아 근데 새끼 진짜·
“대명장님?”
“···왜·”
“정말 사람들을 뚫고 가나요?”
“그래·”
그때 소녀가 물었다· 그건 프레드릭에게 그리고 마이스터에게 있어 참으로 좋은 타이밍에 떨어진 신호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이스터의 주목이 소녀에게 향함으로써 프레드릭과 마이스터의 더럽고 추접하며 어리석은 싸움이 벌어지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제대로 잡아· 여기서 떨어지면 줍기도 힘들어·”
“네·”
각설하고 마이스터는 소녀가 자신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도록 유도했다· 제대로 잡으라 했더니 허리를 부러져라 잡는 통에 내일 멍이 들 것 같긴 했지만 그는 구태여 말을 취소하진 않았다·
“가자·”
다만 마이스터는 허리의 통증을 갈음하듯 프레드릭을 재촉했다· 한 번 더 투레질을 한 녀석이 앞으로 터벅터벅 나아가기 시작했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안 좋은데····”
프레드릭은 성벽을 왼편에 낌으로써 사람들과 부대낄 일을 최대한 줄였다· 그 과정에서 마이스터의 지휘나 힌트가 필요하진 않았다·
제 성질만큼이나 영리한 말은 미친 사람들을 피해 요리조리 톡톡톡 걸었다· 횃불이 곳곳에 놓여 있을지언정 밤 특유의 깜깜함으로 잘 보이지도 않건만 참 요령 좋은 놈이었다·
“우어어어!”
“와 씨발!”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어이 한 명의 광인에게 걸리고 말았다· 주홍빛 반사광을 입은 채로 달려드는 병사의 모습에 당황한 마이스터가 고삐를 잡았다·
이히히힝!
“우아아악!”
“와아악!”
그 고삐의 당김 한 번으로 모든 상황을 눈치챈 것인가·
프레드릭이 갑자기 속력을 높여 성문 안쪽으로 냅다 돌진했다· 녀석의 신 들린 회피 기동에도 결국 네다섯 명이 치이고 말았지만 프레드릭 위의 두 사람은 그것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시발 미친!”
보다 정확히는 그럴 정신머리가 없었다·
“꺄아아악!”
“야 야 야!! 떨어져! 떨어진다고 이 미친 말 새끼야!!”
아무렴 말이 펄떡펄떡 뛰어 사람을 피한다는 건 달리 말해 기승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도 반동이 엄청나게 간다는 의미였다·
아울러 잠깐이라도 그 반동을 버티지 못하고 힘이 풀린다면··· 그들은 안전장치 없는 비행이 어떤 것인지 체험할 수 있게 되리라· 분명히·
“흐아아악!”
이런 관계로 마이스터는 일단 프레드릭을 붙잡는 데 급급했다· 자연히 주변을 둘러볼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기에 그의 근력과 체력은 너무 평범했다·
“히야아아악!!”
그리고 그건 마이스터에게 매달린 소녀의 입장도 매한가지라·
두 사람은 결국 성문 근처에 있던 병사들의 상태나 성문을 통과한 직후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도 보지 못한 채로 도심 한복판까지 이동했다·
딱히 바란 일은 아니었다· 선택지가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달리 그런 것도 아니지만·
“시 허어 시발 진짜 하 미치인····”
아무튼 프레드릭의 질주는 거리의 인적이 드물어진 후에야 멈추었다· 그 과정이 마이스터에게 있어선 진정 죽을 맛 그 자체긴 했지만 그래도 멈추긴 했단 점에서 참 다행이었다·
프레드릭 위에 엎어진 두 사람이 한참 동안 숨을 골랐다·
“그보다 허억 여긴 허억 사람이 허억····”
마이스터는 폐의 압박감이 줄어들 즈음 주변을 새삼 둘러보았다· 프레드릭이 멈춘 시점에서 대충 눈치채긴 했지만 그들을 쫓아오던 미친 광인은 더 이상 없는 듯했다·
“사람 사람들이 왜··· 왜 그랬던 걸까요? 늑대나 들개에게 물린 사람들이 종종 저것과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고는 들었는데····”
“공수병은 아닐 거야· 이렇게 빨리 집단적으로 유행하는 병도 아니거니와 그들에겐 물린 자국이 없었어·”
관련해서 좀비화가 진행된 것도 아닐 것이다· 좀비화가 이것과 다소 비슷한 경향을 보이긴 하지만 그 저주 역시 이렇게 빨리 퍼지는 부류가 아니니까·
“별개로 후방이 시발 이 지랄이 날 때까지 마탑이나 병사들은 뭘 한 거야?”
“그러게요····”
“어휴 어디가 안전한지도 모르니····”
마이스터는 주작이 어느 쪽으로 날아갔는지나 볼 걸 그랬다며 후회했다·
“···잠깐만 그 덩치면 지금도 보여야 하는데·”
그는 고개를 휙휙 돌려보았다· 어둠도 어둠이지만 당장의 건물들로 인해 딱히 보이는 건 없었다·
“높은 곳으로 가 보자·”
주작의 위치를 알아내면 최소한 어딜 가야 하는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이스터는 멈춰 있던 프레드릭에게 신호를 주었다· 대화를 알아듣기라도 한 것인지 프레드릭이 근처에서 그럭저럭 높은 건물을 찾아 그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여기면 적당히 보이겠지·”
마이스터는 말에서 내리기 전 허리춤에 먼저 손을 가져다 댔다·
“꼬맹이 먼저 이거 눈에 써·”
“이게 뭐예요?”
“어두워도 나름 보이게 해 주는 거· 전등도 있긴 하지만 그것만 믿을 수는 없으니까·”
그의 안경에는 원래 있는 기능이지만 꼬맹이는 아닐 거다· 그는 만약의 일을 대비해 시야를 밝혀 주는 여분의 아이템을 소녀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것도 꺼내· 내가 집어넣으라고 할 때까지 절대로 넣지 말고·”
“앗 네!”
“사용법은 알고 있을 거고 사람이 반경 10m 내로 다가오면 그게 누구든 반드시 쏜다고 생각해라· 알았지?”
“네!”
곧 그의 손에 ㄱ자 형태의 쇳덩이가 들려 나왔다· 모험가가 ‘권총’이라 이름 붙여 준 쇳덩이였다· 마이스터는 그런 이름보다 ‘대화’ 내지 ‘협상’이라고 더 많이 부르는 중이지긴 하지만서도·
“후·”
참고로 이것이 그에게 있는 이유는 제작 성공과 별도로 악마에게 유효한 성능이 나오지 못해서다· 화력이 부족한 이상 이런 무기는 돌입조에게 있어 짐덩이일 뿐이었고·
해서 자신과 소녀의 안전을 위해서나 쓰자고 마음먹은 것이 이틀 전이었는데····
“이걸 진짜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마이스터는 권총의 차갑고 무딘 촉감을 장갑 너머로 느끼며 프레드릭의 등에서 내렸다· 프레드릭의 키가 그랑 비슷했던 탓에 다소 바동거려야 한 것은 덤이다·
바닥으로 겨우 착지한 마이스터의 몸이 잠깐 휘청였다·
푸힝·
“···존나 사람처럼 비웃네· 말 자식이·”
그는 발목이 시큰거리는 걸 느끼며 소녀를 받아 주었다· 평상시 강철을 많이 날랐기에 소녀를 내려 주는 건 그나마 쉬웠다·
우드득·
“···대명장님 방금·”
“말하지 마라·”
아마도 쉬웠던 것 같다· 마이스터는 잠시 지끈거리는 허리를 붙잡았다· 뭔 애새끼 무게가··· 잠시 진한 허탈감이 들었다·
“후우··· 야 너는 여기 근처에 적당히 있다가 부르면 와라·”
푸힝·
“아오 모험가만 아니었어도·”
됐고 그는 프레드릭의 고삐를 놔주었다· 혼자 남겨질 녀석 걱정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저놈은 위험하다 싶으면 그와 소녀를 나 몰라라 하며 도망칠 게 뻔했다·
“너는 내 뒤에 잘 붙어서 와라·”
“네·”
거기에 현실적으로 따지면 발 빠른 말보다 일반인에 불과한 그들 목숨이 더 불안한 게 사실인지라·
마이스터는 권총을 양손으로 그러쥔 채 건물 안으로 조용히 들어섰다· 지나쳐 온 거리는 너무 소란스러워서 문제였는데 이곳은 또 너무 고요해서 몸서리가 다 쳐졌다·
끼이익·
그래도 달려드는 인간이 있는 것보단 없는 게 더 낫다· 마이스터는 문고리를 강제로 부수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뭐야·”
한데 그렇게 들어선 집 안엔 쓰러져 잠든 사람이 둘 있었다· 마치 한순간에 잠에 든 것처럼 식탁에 엎어져 있는 꼴이 가관이었다·
“다들 먹다가 잠든 거예요?”
“몰라· 하지만 세 사람 모두가 수프 그릇에 코 박고 자는 것이 정상은 아니겠지·”
마이스터는 그리 말하며 세 사람의 체온을 확인했다· 불운하게도 세 명 모두 사망한 상태였다·
“수프로 인한 익사라· 등신 같은 죽음으로는 세계에서 손에 꼽히겠구만·”
“죽었어요?”
“어·”
“왜··· 이렇게 된 걸까요?”
“글쎄··· 아무래도 여긴 또 다른 수작질이 들어간 것 같은데·”
아까의 거리에 비해 유난히 조용했던 건 이 거리의 사람들이 전부 잠든 게 원인이라고 보면 되는 걸까· 마이스터는 그런 추측을 내놓으며 권총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약실에 탄환 제대로 들어가 있지?”
“아 잠시만요··· 네! 잘 들어가 있어요!”
“좋아·”
다행히도 미리 채워 둔 총알은 약실에 멀쩡히 있었다· 그들의 차오르는 불안이 약간은 덜어졌다·
“주작은··· 안 보이네·”
그러나 그들이 이 건물의 옥상까지 올랐던 이유는 끝내 해결되지 않았으니·
“···시발 저건 뭐야·”
“지 징그러워····”
그것을 대리하듯 지나쳐 왔던 거리의 반대 방향에서 기묘한 광경이 보였다·
“하얀까마귀 이 씹새끼가 진짜· 대체 뭘 만든 거야?”
밤의 어둠에도 가려지지 않는 거대한 윤곽은 종종 불이 붙은 집을 지날 때마다 자세한 형태가 드러났으니· 그건 보기만 해도 토가 쏠리는 인간결합체와 아무리 보아도 악마새끼인 곰가죽 나귀의 싸움이었다·
“저··· 저기 저 불타는 집 앞쪽 캄 아저씨 아니에요?”
심지어 그것들의 싸움터에는 예상치 못한 정확히는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얼굴까지 끼어 있었다·
“아니 시발 진짜 뭐냐고!!!”
기어이 마이스터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