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1화 그리고 복될 것이니 (10)
“아따 속 시끄럽구로· 내 이럴 줄 알았다·”
미스틸테인은 압도적인 속도로 괴물을 박살 내는 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딱 봐도 나가 질 것 같았다니까네·”
애초에 자기가 이길 걸 알면서도 내기를 거는 심보는 당최 뭐란 말인가· 뻔한 승리도 승리다 뭐 그런 건가?
이쪽에 한해 패배 페널티가 없어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거시기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금을 지켰을 것이다· 저 거구만큼의 금은 그래도 되는 수준의 양이었다·
“키히히히·”
그때 그의 뒤쪽에서 무언가가 날아왔다· 체구는 조그맣지만 활 솜씨 하나만큼은 귀신같은 로키의 화살이었다·
“대장 뒤를 조심하라고·”
특유의 조소 같은 웃음을 흘린 로키가 방패병 사이로 숨어들며 손 인사를 했다· 흡사 놀리는 것만 같은 행동이었으나 혼낼 마음은 별로 들지 않았다·
로키가 쏜 화살이 실제로 그를 노리던 괴물을 저격해 떨어트린 까닭이다·
“마 로키· 잘했다·”
“키히히히·”
그는 로키의 화살에 맞고 죽은 그리하여 그의 등에 기대듯 풀썩 엎어진 괴물을 옆으로 떨쳐 냈다· 그러곤 그에게로 덤벼드는 새로운 괴물에게 창을 찔러 넣었다·
머리통 한가운데가 꿰뚫린 괴물의 몸뚱이가 그대로 정지했다· 창이 조금만 더 짧았다면 괴물의 팔은 그의 몸통을 분명 할퀴었을 것이다·
‘아까부터 뭔가가 쪼까 이상하단 말이제····’
다만 그는 자신이 당할 뻔했다는 사실보다 다른 것에 주목했다· 예컨대 도저히 뛰쳐나올 수 없는 각도로 뛰쳐나온 괴물의 움직임이 그랬다·
‘아 쓰읍 진짜 뭐 있는디····’
그는 창에 꽂힌 괴물을 발로 차 떼어 내며 생각을 좀 더 이어 나가려 했다· “어? 어??” 그런 그의 사고를 끊어 버린 건 다른 이들이었다·
“뭐야 잠깐 밀면 안─”
“아 시발 새끼야· 왜 미는─!”
“크리스!”
그가 또 하나의 괴물을 처지할 즈음 모험가와 용병 기타 병력들이 형성한 진 하나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원인은 진 가운데서 창을 잡고 있던 모험가의 이탈이었다·
“크리스!!”
“저 저 미친 새끼가!”
“잡지 마! 냅둬! 진부터 수습해!”
“온다!”
해당 모험가는 형성된 전열을 무너트려 가며 앞으로 뛰쳐나왔다· 그 대가로 다른 이들이 괴물의 공격을 제대로 막지 못하게 됐지만 그는 도통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뒈질 거면 혼자 뒈질 것이지!”
“저 시발 새끼는 왜 나가는 거야?!”
“크리스으!!”
다만 신기한 것은 방어 진형이 무너지자마자 괴물들이 덤벼든 것에 비해 진을 뛰쳐나간 인간은 정작 괴물의 습격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라·
기이하리만치 운 좋은 모습이 미스틸테인의 의혹을 샀다· 혹시 저놈은 숨어 있던 악마숭배자였던 걸까?
“크리─”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모험가가 뛰쳐나가건 말건 다른 인간들이 그를 구하려 들지 않자 괴물들이 바로 그를 급습해 버린 것이다·
아득 아득 아드득·
그다음 과정은 달리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산 채로 사지가 분리되어 악마들에게 잡아먹혔다· 악마들의 턱뼈가 움직일 때마다 뼛조각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들의 턱을 타고 흘러내려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핏줄기는 이 거리가 어쩌다 피 칠갑이 되었는지를 알려 준다·
탱 탱그르르르·
모험가의 허리춤에 달려 있던 전등이 바닥에 떨어져 아련하게 굴렀다·
“쯧·”
그보다 악마에게 먹힌 걸 보면 진짜 악마숭배자는 아닌 듯하고··· 그럼 저 새끼는 정말 무슨 의도로 저딴 행동을 한 거지? 두려움에 미쳤다거나 저주의 여파라거나· 그렇다고 여기기엔 행동 양상이 이전 사람들과 사뭇 다른데·
미스틸테인은 마음 한편에 그런 의문을 건 채로 창을 움직였다· 벌써 열댓 마리는 죽인 것 같은데 그의 근처에는 괴물들이 여전히 득실거렸다·
서로 부딪칠 것을 저어하여 한 번에 달려들지 않는다는 게 유일한 기쁨일 정도였다·
“어이 형씨! 아직도 뵈는 게 없소?!”
해서 그는 그보다 앞서 나간 이를 불러 보았다· 악마를 죽이는 데 집중한 그녀의 주변은 갈기갈기 찢긴 악마들의 사체로 가득하다·
“없다!”
그러나 악마들을 그렇게나 죽여 댔음에도 그녀에게서 돌아오는 답변은 부정적이었다· 길을 그만큼이나 개척해도 여즉 이 사태의 원인은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참으로 빌어먹을 일이었다·
“로키! 위치!”
결국 미스틸테인은 그의 영리하고도 장난기 많은 부하를 찾았다· 로키의 명석한 머리라면 그들이 탐색해야 하는 구역의 범위와 그들의 현재 위치를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을 거란 판단이었다·
“키히히히· 예상한 탐색 범위는 한참 전에 지나쳤어· 아무래도 구역 자체에 장난질이 가해진 것 같은데··· 키힛 어떤 장난질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
역시나 로키는 그들이 있는 지점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비록 긍정적인 답변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진짜 지랄 났구만·”
미스틸테인은 창을 짧게 끊어치듯 휘둘러 괴물 한 놈의 팔을 쳐 냈다· 그다음으론 쳐 내진 팔과 몸통 사이의 틈으로 창을 꽂아 넣어 머리통을 꿰어 버렸다·
다른 괴물들이 대응할 틈도 없이 벌어진 정말 삽시간에 이루어진 공방이었다·
그 뒤에 이어진 공격도 굉장히 신속했다·
미스틸테인은 다른 괴물들이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기 전에 창을 거두었다· 그러곤 단단한 팔뚝에 힘줄이 도드라지도록 힘을 주어 다른 방향으로 창을 내질렀다·
푸욱!
그의 두 손을 대신한 창이 기어이 괴물의 두 팔을 관통했다· 인간으로 치면 팔꿈치와 손목 사이 노뼈와 자뼈 사이에 난 구멍을 정확히 노린 공격이었다·
우지직!
“허잇차·”
그는 그 상태에서 가볍게 움직이는 것만으로 손쉽게 괴물의 두 팔을 뽑아 버렸다· 놈들의 피부와 근육이 다소 질기긴 했지만 그래 봤자였다·
듀라한 미만의 강도는 그의 완력으로도 충분히 감당 가능하거니와 관절을 분리하는 것은 요령만 있으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드 드미트리?”
“미친 가지 마! 야!”
그때 모험가 집단에서 또 한 명의 탈주자가 발생했다· 이번에도 사람 이름으로 추정되는 단어를 지껄이며 달려 나가는 게 어째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날 막지 마! 넌 날 막을 자격 없어!”
“아악!”
“드미트리! 가지 마 드미트리!”
“얼씨구?”
다만 이번에 홀린 놈은 사고를 쳐도 단단히 쳤다· 단순히 진형만 무너트린 것이 아니라 탈출하는 과정에서 동료(추정)의 팔뚝을 하나 해 먹기까지 한 것이다·
“이번엔 반드시 구해 줄 테니까!”
“저 씹 미친!”
“진형 무너진다! 안 돼!”
“버텨!!”
뛰쳐 나간 새끼가 어떤 정신으로 저런 결론을 내렸는지는 모르겠다· 하나 그의 탈출로 인해 해당 진형은 구멍이 뚫려도 단단히 뚫리게 됐다·
뛰쳐 나간 놈도 전위요 그놈에 의해 다친 놈도 전위였던 탓이다·
“에 에밀리!”
심지어 상황이 이런 개판으로 변하는 중에도 홀린 듯이 탈주하는 놈은 점점 늘기만 했다·
“예카테리나?”
그의 부하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미스틸테인의 눈썹이 위로 올라감과 동시에 로키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공기를 때렸다·
“키히힛 정신 좀 차리지? 카챠는 땅에 파묻힌 지 오래라고!”
“하지만 저 짝에─”
“당연히 환각이지 이 머저리야!”
로키는 뛰쳐 나가려는 동료의 어깨를 팔로 감쌈과 동시에 발로는 상대의 오금을 걷어찼다· 대상의 무릎이 순식간에 접히며 로키의 키와 대략 맞아떨어졌다·
“이반· 네가 카챠를 좋아했다는 건 알지만 전장에서까지 등신처럼 굴지는 말자고 우리· 네가 이렇게 굴면 저승에 있을 카챠의 친구가 늘어 버리지 않겠어?”
로키는 동료 이반의 목을 감싼 쪽 손으로 이반의 턱을 강하게 쥐었다·
그러면서 그는 상대나 그의 고개를 각각 틀어 시선이 얽히도록 유도했는데 그런 로키의 다른 손에는 예리한 단검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언제든 이반의 목을 썰어 버릴 단검이었다·
“키히히히· 자 이반· 마지막으로 묻겠어· 네 앞에 뭐가 보이지?”
“예····”
“묻잖아! 대체 뭐가 보이냐고!”
앙칼지다 못해 노래하는 것처럼 들리는 로키의 목소리가 쨍하니 재차 울려 퍼졌다·
“로 로키·”
“좋아 이반! 드디어 정신을 차렸군· 이대로 너를 죽여야만 하는지 나 정말 걱정했잖아·”
“미 미안·”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정신을 못 차렸다면 죽는 건 너였을 테니까· 아니 내 시간을 낭비시켰고 동료들을 위험하게 만들 뻔했으니 사과할 일은 맞나? 아무튼 당장은 쓸데없는 감정 소모로 힘 빼지 말자고· 아직 적이 남았으니까 말이야·”
···하여간 속내 하난 기가 막히게 숨겨 내는 녀석이라니까·
미스틸테인은 비정하리만치 냉혹해 보이는 로키의 비꼼을 흘려들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저렇게 말해도 정작 진심은 전혀 다른 형태를 띠고 있을 것임을 알았기에 그의 미소는 더욱 어색했다·
캬아악!
“하여간··· 눈치도 없제·”
한데 이 순간에도 괴물들은 눈치 없이 덤벼들었다· 촤악! 두 개의 몸뚱어리가 단번에 꿰뚫렸다가 그대로 허공에 던져졌다·
“찾았다!”
“진짜가!!”
그때 더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앞서 나간 베르세르크가 외쳤다· 미스틸테인의 눈도 절로 빛났다· 그의 부하까지 정신 나갈 뻔했던 만큼 이제는 제발 좀 적의 중추가 발견됐으면 했었던 까닭이다·
“쪼까만 더 힘내보그라!”
미스틸테인은 고개를 돌려 용병들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그러고는 몸을 빠르게 틀어 무작정 치고 나갔다·
혹여 부하들이 무너질까 싶어 적정 거리에서만 싸우던 것을 인제 포기하고 베르세르크와 같은 절차를 밟은 것이다·
“어디 있소?!”
“저곳·”
그는 순식간에 베르세르크의 옆자리에 도달했다· “역시 힘 빼 놓고 싸웠군·” 베르세르크가 약간 딴소리를 하긴 했지만 미스틸테인은 신경 쓰지 않았다· 저건 그가 고려할 사항이 아니었다·
“확실히····”
각설하고 드디어 보인다· 미스틸테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게 핵심이 아니라카믄 아무것도 핵심이 될 수 없긴 하겄소·”
둥근 광장을 기반으로 곳곳에서 타오르는 횃불· 창대에 효수되어 일정 거리마다 배치된 인간의 머리· 중심에서 언덕을 이루고 있는 시체들의 산· 그 앞 돌로 만들어져 사람의 심장을 뜯어낼 때 쓰이는 제단·
거리의 비린 혈향으로 막힌 것처럼 느껴졌던 콧구멍에 더 심하고 짙은 피비린내가 박혀 왔다·
키에에에엑!!
끄에에에에!!
끼에에에엑!!
“···!?”
그러다 잠깐· 그들의 시선이 제단에 닿은 그때 그들을 꾸준히 공격하던 악마 떼가 마구 소리를 지르며 지랄 발광을 시작했다·
사사사사사사삭·
타다다다다다닥·
“잠깐─”
하물며 놈들의 기상천외한 행동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들을 강하게 밀어붙인 것은 어디 사는 누구였냐는 양 갑작스럽게 물러난 것이다·
그것도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하던 전부가·
“하이고 저 새끼들은 또 왜 저카노·”
“···글쎄·”
처음엔 떼거리로 덤벼드는 줄 알았다· 그래서 베르세르크와 등을 맞댈까도 했고·
그러나 놈들은 단둘뿐인 그들까지 외면했다· 마치 물이 바위를 피해 흘러가는 꼴이었다·
베르세르크와 미스틸테인의 눈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하지만 지금 달려가는 것이 좋을 거란 사실만은 알겠군·”
“···그건 그렇제·”
하지만 그렇게 멈칫거리는 것도 잠시· 그들은 놈들이 준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적들이 그들을 공격하지 않는 건 그들이 일방적으로 공격해도 된다는 의미였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미스틸테인의 팔이 창을 휘리릭 던졌다·
푸욱!
키엑!!
캬아아악!
우당탕탕!
그의 절묘한 창 던지기에 다리를 꿰뚫린 괴물이 그대로 넘어졌다· 그리고 그것의 고꾸라짐은 자연히 그것과 함께 달리던 수십 마리의 괴물들도 함께 나동그라지도록 만들었다·
거꾸러지면서 서로 얽히고 쌓인 괴물들이 버둥거렸다·
“흡!”
베르세르크도 다른 방향에서 비슷한 꼴을 만들어 냈다· 넓은 거리가 순식간에 쓰러진 괴물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달리라!”
하면 지금이야말로 달려야 하는 시점이다· 미스틸테인이 뒤에 있던 용병들에게 신호를 주고 베르세르크는 냅다 앞으로 질주했다· 혹시 몰라 사람들을 끌고 오긴 했지만 정작 그들의 도움은 받을 생각은 없어 보이는 태도였다·
“아따 참말로 참을성은 요만치도 없는 사람이라카이·”
뭐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이 용병단을 창설하기 전의 그도 저런 식으로 삶을 살았으니까· 그게 꼭 좋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된 건 로키를 만난 후였지만·
“거 같이 좀 가소!”
아무튼 뒷사람에게 따라오라는 신호를 준 이상 그도 더는 거리낄 것이 없다· 미스틸테인의 다리가 베르세르크의 뒤를 따라 땅을 박찼다·
[으음· 정말이지 인간들은··· 놀라울 정도로 변수를 만들어 낸다니까요·]
그리고 그들이 향하던 숭배자들의 제단 앞 로브를 쓰고 있던 존재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카인도 하와도··· 벌써 죽어 버리면 안 됐는데·]
그것은 보이지 않는 손가락을 서로 맞댄 채 손목을 조용히 꺾었다· 구분되지 않는 목소리는 미약한 한숨을 내뱉느라 바쁜 상태다·
[하지만 아직 괜찮아요· 네 괜찮고말고요·]
그러나 그것은 이내 밝은 목소리로 명랑하게 노래했다· 꽈드드드득· 그것의 옆에는 어느 시점부터 서로 뭉치기 시작한 괴물들이 있는 상태다·
[비가 거의 끝나 가고 있어요· 그리고 그 준비가 끝나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되겠죠·]
악마들의 이와 손톱이 서로의 살점에 틀어박히며 그들의 몸을 멋대로 결합시켰다· 더없이 거대하고 끝없이 광오하며 하염없이 끔찍한 형태였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 릴리스가 마지막까지 이곳을 지켜 낼게요·]
마법사가 훔쳐 낸 지식이자 그 근원이 되는 괴물이 몸을 일으켰다·
“역시 맞았잖아·”
또한 그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종탑· 대마법사의 힘을 빌려 밤을 꿰뚫어 보고 주작의 재단사가 만든 화살을 시위에 내건 궁사가 살풋 웃었다·
“안녕 타냐·”
새하얀 얼음의 땅에서 한 마리의 나비가 날갯짓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