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3화 그리고 복될 것이니 (12)
“시발 더럽게 질긴 새끼·”
상대가 죽었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턱 하고 풀리는 느낌이다· 아울러 진통제와 각성제로 눌러 두었던 갈비뼈의 통증도 한꺼번에 몰려오는 기분이고·
스윽·
“···?!”
그때 머리통과 분리된 육신이 팔을 파르르 들어 올렸다· 무섭다는 감정 이전에 질린다는 감상이 먼저 들었다· 총을 든 데스브링거의 팔이 황급히 분리된 육신 쪽으로 향했다·
탕! 탕! 탕! 탕! 탕!
그는 방아쇠를 빠르게 다섯 번 당겼다· 그러자 발사된 총알이 남은 고깃덩이를 터트리고 박살 냈다· 툭· 상반신에 구멍이 뻥뻥 뚫리자 들렸던 팔도 다시 떨어졌다·
“···시발 진짜 식겁했네·”
죽은 거··· 맞겠지? 제발 맞다고 해 줘·
데스브링거는 몰려오는 탈력감에 무릎을 꿇었다· 실질적으로 그가 한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무언갈 더 감당할 체력이나 정신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이 기도는 더욱 간절했다·
데스브링거의 숨이 점차 가빠졌다·
“염병 약빨 다 끝났나··· 존나 아프네·”
그는 억지로나마 몸을 일으키려다가 이내 포기했다· 몰려오는 흉통도 흉통이거니와 다리 자체에 힘이 잘 안 들어갔다· 잘못했다간 철푸덕하고 머리만 처박을 느낌이었다·
“약····”
해서 그는 그의 가방이나 뒤적거리기로 했다· 탈출하는 방법이야 좀 늦게 찾아도 된다지만 가슴 쪽 통증은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일이 터질 수 있는 만큼 그리고 터진 일로 하여금 그가 긴급히 움직여야 할 상황이 도래할 수 있는 만큼· 움직이기 불편한 요소들은 미리미리 제거해 두는 게 낫다·
그는 그런 판단하에 약 형태의 진통제를 복용했다· 떫은 맛이 온 혀에 퍼지며 그의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맛없어····”
별개로 이 파티에 들어온 후 단 걸 너무 많이 또 자주 섭취하긴 한 모양이다· 예전에는 이런 쓴맛에도 별생각이 안 들었는데 요즘은 이런 걸 먹으면 자동으로 사탕이 떠오른다· 이제는 떠나보내야 할 나쁜 버릇이었다·
“····”
그보다 여기 진짜 어떻게 나가지· 땅 꺼짐은 슬슬 끝난 눈치지만 그래도 여기에 계속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진 않은데·
데스브링거는 빛 하나 들지 않는 주위를 응시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무너진 땅도 땅이지만 악마가 깃들었던 하얀까마귀의 시신도 꺼림직하긴 매한가지다· 역시 가능하면 빨리 탈출하고 싶다·
─칙 치직!
“···?”
그때 희미한 무언가가 품 안쪽에서 새어 나왔다· 데스브링거의 뾰족한 귀가 쫑긋 위로 섰다·
─칙─야!─치직!
“···어?”
또다시 품 안에서 흘러 오는 소리 한 줄기· 데스브링거의 몸이 벌떡··· 일어나지는 않고 철푸덕 넘어졌다· 진통제로 고통은 가셨을지언정 몸에 쌓인 피로는 한계치에 다다른 것이 분명했다·
데스브링거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야! 죽었냐?!
“아 그렇지·”
아무튼 지금은 답부터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이 잊고 있었던 무전기의 존재를 떠올리며 그것을 꺼내 들었다·
“저 살 컥·”
호흡을 할 때마다 드는 이물감이 하필이면 말할 때 좀 더 강해지는 바람에 약한 사레가 들렸다·
─! 살아 있─치직─냐?
“큽 큽· 예·”
─좋아· 딱 기다려· 간─치직─
근데 이 인간 어떻게 악마를 딱 잡고 난 타이밍에 무전을 친 거지? 설마 안 도망치고 계속 근처를 배회한 건가?
데스브링거는 점점 선명해지는 음질을 두고 고민하다가 퍼뜩 깨달았다· 정말 만약 진짜 만약의 일이지만··· 마이스터 이 인간 설마 바닥 안 보고 걷다가 여기 안으로 자빠지진 않겠지?
“거 바닥 크흡 바닥 조심·”
─뭐? 바닥·
“땅 꺼져 있 어요·”
결국 데스브링거는 먼저 주의를 주기로 했다· 음질이 안 좋은 까닭에 말을 몇 번 반복해야 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론 현명한 선택이었다·
─와 씨발 넘어질 뻔했네·
“와 시빨· 넘어질 뻔했네·”
무전기에서 튀어나오는 소리와 검푸른 공기를 타고 흘러드는 소리가 겹쳤다·
─야 거기 있냐?
“야 거기 있냐?”
“있 습니다요· 그리고 당신 목소리 무전기 아니어도 들리니까· 무전기 끼고 말하지 마십쇼· 이거 배터리도 있잖습니까·”
“아 오케이·”
조금 거리감이 있긴 하지만 주변이 워낙 고요해서 마이스터의 음성을 잡아채는 데는 지장이 없다· 그 자신이야 크게 말을 못 하는 상황이니 무전기를 통하긴 해야겠지만서도·
데스브링거는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뒤로 털썩 누였다· 아직 전부 끝난 게 아니란 건 알지만··· 너무 피곤했다·
“나는 너 안 보이는데· 넌 나 보이냐?”
“보이진 않는데··· 소리로 대충은··· 압니다요·”
“시발 찾아야 하는 건 내 쪽인데 왜 네가 아냐·”
“거 미안하네요····”
데스브링거는 마이스터의 힐난을 두고 어깨를 으쓱였다· 이게 마이스터에게 보이지 않을 건 알지만 본능적으로 나오는 몸동작이라 어쩔 수 없었다·
“아·”
“뭐야·”
그러다 잠깐· 그는 자신의 위치를 알릴 만한 물건을 떠올렸다· 멀리 갈 것도 없었다· 그는 가방 속 물건을 이제야 기억해 낸 제 멍청함에 헛웃음을 흘렸다·
치익!
“이참에··· 시야 좀 밝혀 둬도 괜찮겠죠·”
“뭐야 너 뭐 하게·”
이 근처에는 대악마 외 악마가 없던 걸로 기억하니까 괜찮겠지·
그는 그런 판단하에 신호탄을 꺼내어 바닥에 내리찍었다· 그 충격으로 신호탄이 작동하며 허공으로 불꽃을 쏘아 올렸다·
피유우우웅·
어둠을 가르며 올라가는 빛이 마치 별과 같았다·
“···이거 이렇게 보니까 엄청 예쁘네·”
데스브링거는 그렇게 한참 동안 자신이 쏘아 올린 그러나 잡을 수는 없는 별을 지켜보았다· 기분이 참 오묘했다·
스카일라는 데스브링거에게 붙여 둔 그림자를 향해 달렸다· 펑 퍼버벙 퍼버버벙· 이런 순간에도 하늘에선 신호탄의 불이 화려하게 반짝였다· 재료가 귀하여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잘 쓰지 않는 종류의 신호탄이었다·
“···?!”
그러다 잠깐· 그녀는 그림자가 있는 곳으로 달리다 말고 잠시 멈춰 섰다· 신호탄이 희미하게나마 밝힌 어둠 너머에 무언가가 있는 것만 같았다·
“···프랑?”
그녀는 긴가민가한 채로 물었다· 어둠 너머에 무언가가 있는 것이 맞긴 한지 있다면 그게 진정 프랑켄슈타인인지 모르는 채로 건네는 물음이었다·
“프랑켄슈타인 너야?”
물론 그녀도 알고 있었다· 이 너머에 프랑켄슈타인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을· 있었다면 진즉 그녀가 그에게 붙여 둔 그림자가 먼저 느껴졌을 것임을·
“프랑─”
하나 그녀가 프랑켄슈타인에게 붙여 두었던 그림자는 그녀에게로 돌아왔다· 프랑켄슈타인이 죽었다는 뜻이었다·
사악 사악·
그러니 저 소리는 결코 프랑켄슈타인의 것일 리 없다· 애당초 바람 소리에 더 가까운 저 소리가 누군가의 발소리일 가능성도 낮았다· 그녀의 감지에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만큼 더더욱 그랬다·
저건 생명체의 움직임 소리가 아닐 것이다·
“선배!”
“의뢰주?”
함에도 스카일라는 그것을 반사적으로 쫓을 뻔했다· 후배와 바람손이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면 분명 그러했을 것이다·
스카일라의 눈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다시 좇았다· 더 이상 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의 눈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래 이럴 때가 아니지· 가자·”
설사 하얀까마귀가 도망치는 중이라 해도 그녀의 꼬맹이를 살리는 것보다 중하진 않으니까·
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다잡으며 걸음을 떼었다·
“누구? 아니 악마숭배자만 아니면 누구든 상관없지· 여기 사람이 떨어졌는데 좀 도와줄 수 있어요?”
“당신은····”
“야! 좀만 기다려! 사람 왔다!”
그리고 그들은 꺼진 땅 끝자락에 서 있던 청초한 외모의 슬랜드족과 마주쳤다· 사람 수가 많았기에 구조 작업도 어렵지 않았다·
곧 핼쑥한 얼굴의 데스브링거가 지상 위로 끌어 올려졌다·
“악마는 죽은 거냐?”
“옙·”
“하얀까마귀도?”
“아마도 뒈졌겠죠?”
파블리첸코가 데스브링거를 업는 동안 그들은 서둘러 묻고 싶었던 것을 물었다· 궁금한 내용이야 거기서 거기였기에 오간 질답은 그렇게 많지 않다·
“고생했네·”
“고생은 뭘··· 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사체 위에다가 폭탄 꾸러미 하나만 더 깝시다·”
바람손의 칭찬에 데스브링거는 어깨만 으쓱이다가 손에 쥐고 있던 쇳덩이를 흔들었다·
“그걸로 뭐 하게?”
“한 발 남았는데 이걸로 폭탄 쏴 맞혀서 터트리게요·”
“···그게 돼?”
“화살처럼 포물선을 그리는 것도 아니고 직선으로 나가는 물건인데요 뭐·”
데스브링거가 너스레를 떨며 자신을 업은 파블리첸코를 툭툭 쳤다·
“위험할 수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먼저 보내고 우리끼리 처리합시다요· 설마 철패인 주제에 땅 무너지는 것보다 빠르게 못 뛰진 않겠죠?”
“하· 날 무시하지 마라·”
데스브링거의 도발에 파블리첸코가 코웃음을 쳤다· 사이가 나쁜 듯 안 나쁜 모습에 스카일라는 잠시 미소 짓고 말았다·
“끝까지 위험한 일 맡겨서 미안해·”
“괜찮습니다요· 여기서 총 잘 다루는 건 저뿐이잖습니까요·”
“나도 다룰 줄 알거든 새끼야?”
“그래서 날아가는 거 맞힐 수 있습니까요?”
“···아니 시발 몇 번 쏴 보지 않은 건 너나 나나 똑같은데 왜·”
“재능이죠·”
낄낄 웃은 데스브링거가 어서 가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스카일라는 그것이 뿌듯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해서 묘한 얼굴만을 했다· 장성한 자식을 보게 된다면 지금과 비슷한 느낌일까·
“의뢰주?”
“가자·”
그녀는 그런 마음을 숨기며 바람손과 슬랜드족 청년을 끌고 달렸다· 얼마 안 가 폭발음이 뒤에서 들려왔다·
“진짜 시원하게도 날리네····”
거대한 인간 결합물 근처에 선 바람손이 감탄했다· 스카일라도 놀라긴 했지만 솔직히 더 놀라운 걸 꼽으라면 바람손 뒤편에 있는 인간 결합물 쪽인데· 바닷사람이라서 그런가 이런 기괴한 것엔 내성이 있는가 했다·
“오 이거 뭐야·”
“응? 뒤에 뭐가 있─ 앗 시발 깜짝아!!”
“아 아니었구나·”
그냥 어두워서 못 본 거였구나· 스카일라는 펄쩍 뛰다 못해 거하게 바닥을 구르는 바람손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까 싸우던 그건가····”
반면 슬랜드족 청년은 저 끔찍한 외형에도 불구하고 열렬하게 탐구심을 드러냈다· 데스브링거가 명장 나리라고 부르던 점과 미지에 대한 저 열정을 보면 아무래도 저이가 그 유명한 ‘마이스터’ 같았다· 스카일라의 눈길이 마이스터의 행동에 닿았다·
“근데 금안 괴물은 왜 안 보이는··· 이건 또 뭐야·”
“응?”
그러다 그녀는 마이스터와 함께 하나의 흔적을 발견했다·
“···핏자국?”
거대한 무언가가 피 묻은 몸을 질질 끌며 어딘가로 향한 자국이었다· 스카일라의 고개가 신호탄이 미처 밝히지 못한 어둠 너머로 향했다·
* * *
스윽 스윽·
금안의 피조물은 점차 사그라드는 창공의 불빛을 보았다· 참으로 아름다우면서도 덧없는 풍경이었다·
“하아·”
악몽은 끝났고 남은 한 마리의 악마도 얼마 안 가 죽을 것처럼 느껴진다· 해서 피조물은 이 이상 상황에 개입하는 대신 대지의 저편을 향해 물러나기로 했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살아남음이라····”
모든 것을 끝마치지 못하고 물러나는 것에 미련은 없었다· 그는 혹은 ‘그였던 것은’ 딱히 결말을 직접 관람하는 것에 집착하는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하니 이런 건 모든 결론이 난 후에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피조물의 몸이 다시 바닥을 쓸어 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다시 볼 수 있을까?”
다만 피조물의 몸이 준비된 탈출로를 통해 성벽을 넘었을 때 그는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았다·
“···그럴 리는 없겠지·”
보이는 건 성벽뿐이었으나 피조물은 그 너머가 보인다는 양 어설프게 웃었다·
“색욕과 마주치면 안 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네·”
정말로 어설픈 웃음이었다·
“그렇지 엘리?”
피조물의 몸이 얼어붙은 설원을 따라 점차 멀어졌다·
곧 내릴 눈이 모든 잔재를 파묻을 수 있도록 그리하여 그 어떠한 존재도 그의 뒤를 쫓을 수 없도록·
그렇게 한 전선이 또 매듭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