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5화 그리고 복될 것이니 (14)
베르세르크는 간발의 차로 그림자 속에 스며든 악마를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지체 없이 창 부분을 회수한 후 바로 도약했다·
콰앙!
별안간 모닝스타 형식의 철퇴가 땅에 그대로 내리꽂혔다· 범인은 아까 기준으로 그녀의 좌측에 있다가 도끼에 얻어맞은 듀라한이었다·
단창 듀라한 철퇴 듀라한 대검 듀라한 대형 도끼 듀라한· 마지막으로 지켜야 할 것을 잃은 방패 듀라한·
그녀는 상대해야 하는 듀라한의 숫자가 넷에서 다섯으로 증가한 것을 보며 손에 쥔 무기를 바꿔 쥐었다· 바꾼 무기의 종류는 악마의 두개골을 박살 내기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망치다· 그것도 안쪽에 성수가 내장되어 있는 이단심문관들이나 쓰는 배틀 해머·
“버러지 같은 것· 도망쳤나·”
대악마가 스며들었던 그림자는 악마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삼켜진 그 시점에서 점으로 화해 완전히 사라졌다·
즉 대악마를 죽이려면 다시 본체부터 찾아야 하는 것이다· 참으로 귀찮고 짜증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네놈들에게 낭비할 시간 따윈 없다!”
그녀는 아까처럼 시간을 주지 않고 덤벼드는 듀라한들을 보며 해머를 휘둘렀다· 가장 먼저 덤벼든 대검 듀라한의 대검이 그녀의 해머와 맞닿으며 소름 끼치는 쇳소리를 내었다·
보다 우세한 쪽은 그녀였으나 저쪽의 무게감도 만만치 않았기에 결국 연출되는 장면은 서로 튕겨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너희! 악마가 도망쳤다! 찾아라!”
“뭐? 하이고야 또 숨바꼭질해야 하는 기요?”
베르세르크가 튕겨 나가는 해머를 수습하기도 전 연이어 단창의 공격이 들어왔다· 합공에 익숙해 보이던 모습은 역시 착각이 아니었는지 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횃불의 빛을 반사하느라 붉게 타오르는 창끝이 그녀의 심장 쪽으로 짓쳐들어왔다·
“흡·”
그러나 그 공격은 위협적인 만큼 읽어 내기는 더욱 쉬웠다·
베르세르크의 어깨와 팔뚝이 들리고 상체가 옆으로 살짝 기울어지며 그 사이로 창을 보냈다· 자신의 공격이 무용했음을 깨달은 듀라한이 바로 창을 회수하려 들었다·
턱!
하지만 창의 회수보다 베르세르크가 팔을 내리는 게 더 빨랐다·
베르세르크의 팔뚝과 옆구리 사이에 갇힌 창이 가죽의 마찰과 양쪽에서 들어오는 압력에 잠깐 멈추었다· 탁· 창을 가둔 쪽 팔의 손이 창을 움켜쥔 건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기억해라 악마!”
그녀는 한 손으로 움켜쥔 단창을 바깥쪽 방향으로 우악스럽게 휘둘렀다· 단창의 주인인 듀라한 또한 제 무기를 단단히 쥐고 버텨 보았으나 그녀의 힘을 이기진 못했다·
거대한 몸뚱이가 창과 함께 휘둘리며 그 옆에서 막 달려들던 제 동료를 후려쳤다· 아까 사슬 철퇴에 얻어맞은 놈이자 대형 도끼를 무기 삼았던 듀라한이었다·
두 마리의 듀라한이 서로의 무기를 붙든 채로 바닥을 뒹굴었다·
“내게 힘으로 덤벼선 안 됨을!”
그 두 마리가 그런 고역을 겪건 말건 베르세르크는 해머를 아공간에 집어넣고 앞으로 구르듯 점프했다· 쾅! 덕분에 자세를 고치자마자 다시금 철퇴를 휘둘렀던 듀라한은 이번에도 그녀를 놓쳤다·
모든 공격을 회피하는 데 성공한 베르세르크의 몸이 도약과 함께 양 다리를 앞으로 뻗었다·
콰앙!
그녀의 발이 겨우 대검을 고쳐 잡은 전면의 듀라한을 가격했다·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안면을 노렸겠으나 듀라한은 머리가 없는 관계로 그녀는 차선인 가슴 부위를 후려쳤다·
발차기 한 번에 피와 마기를 잔뜩 머금은 갑옷이 살짝 우그러들고 육중한 몸뚱이가 뒤뚱뒤뚱 뒤로 대여섯 걸음 물러났다· 저것이 듀라한이 아니었다면 아마 갈비뼈가 함몰되며 뒤로 부웅 날았을 게 분명했다·
탁·
아무튼 드롭킥을 깔끔히 성공시킨 그녀는 자연스럽게 낙법을 취했다· 그러곤 약간의 쉬는 틈도 없이 대검 듀라한을 향해 튀어 나갔다·
다수를 상대하게 되거든 한 놈부터 차례차례 조지는 것은 기본이나 다름없는 일이었기에 심히 마땅한 판단이었다·
앞으로 나아간 그녀의 손에 잠시 집어넣었던 해머가 다시 들리고 그대로 대검 듀라한을 내려찍었다· 콰앙! 지독한 쇳소리와 함께 축적된 대미지로 하여금 분출된 성수가 듀라한의 몸뚱이를 태우기 시작했다·
치이익!
쉐엑 쉐에엑·
기실 성수는 제작에 걸리는 시간 및 비용 대비 악마에게 그리 큰 효과를 주는 무기가 아니다· 하나 주는 대미지가 적은 것과 주는 고통이 약한 것은 약간 결이 다른 이야기였으니·
으깨진 갑옷 사이로 성수가 끼얹어진 순간 듀라한이 상처에 소금 뿌려진 인간처럼 비명을 질렀다· 녀석에게 성대가 없어서 망정이지 있었다면 이 공간은 지금 괴악한 고함 소리로 가득 찼을 터였다·
“흡!”
으득 으드득!
심지어 베르세르크는 망치질 한 번 하는 것으로 공격을 끝내지 않았다· 뒤쪽에서 급히 달려오는 듀라한들을 피할 겸 넘어진 듀라한 쪽으로 뜀박질한 그녀의 몸이 망치의 윗면을 짓밟았다·
망치와 베르세르크· 도합 150kg의 무게에 짓밟힌 듀라한의 갑옷이 더욱 찌그러지고 뭉개진 건 덤이었다·
쿵 쿵 쿵!
그때 베르세르크를 향해 방패를 든 듀라한이 돌진해 왔다· 그녀는 그것을 진즉에 눈치챘으나 피하기도 반격하기도 애매했던 까닭에 그냥 맞아 주기를 택했다·
퉁!
그녀의 몸이 방패에 얻어맞아 가볍게 튕겨 올랐다· 적의 의도보다 그녀의 의도가 좀 더 많이 함유된 튕겨 나감이었다·
탁 타닥·
그리고 그녀가 대지에 착지하며 돌바닥 일부를 부수었을 때 그녀가 기다린 것이 날아왔다·
콰앙!
방패 듀라한의 몸뚱이가 작살과도 같은 화살에 옆구리를 관통당했다· 대악마를 노리느라 타점을 제대로 잡지 않았던 아까와 다르게 이번엔 심장이 있는 부분도 정확히 꿰뚫린 채다·
얼어붙은 심장을 잃어버린 기사가 그대로 작동을 정지했다·
“하! 깔끔하군!”
안 그래도 방패가 제일 귀찮았었는데 그놈이 죽었다면 됐다· 그녀는 튕겨 나가며 벌어진 거리를 도로 좁히며 그녀에게 덤벼 오는 철퇴 듀라한에게 무기를 던졌다·
콰직!
할버드의 창 부분이 녀석의 가슴에 꽂혀 있던 도끼 부분과 결합했다· 그 충격으로 도끼날은 듀라한의 갑옷 안쪽 얼어붙은 살점 안을 향해 더욱 파고든다·
쉐에에엑·
베르세르크는 듀라한의 바람 빠지는 소리를 들으며 평소 형태로 돌아온 할버드를 붙잡았다· 도끼가 창대와 결합하며 2m 넘게 길어진 상태라 별로 어렵지도 않았다· 콱· 그녀의 손에 뽑혀 나온 할버드가 다른 방향으로 휘둘러졌다·
까앙!
그녀는 다시 일어서서 합류한 단창과 도끼를 단번에 튕겨 냈다· 금속이 마찰하는 과정에서 인 불똥이 사방으로 퍼졌으나 할버드의 예리함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을 향한 공격을 미리 차단한 베르세르크의 할버드가 다시 철퇴 듀라한 쪽으로 뻗어 나갔다· 할버드에는 도끼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창처럼 뾰족한 스파이크도 달려 있었기에 그 정도 동작만으로도 충분히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다·
미리 도끼에 의해 쪼개졌던 갑옷 사이로 스파이크가 파고들며 듀라한의 심장을 박살 냈다·
철퇴 듀라한의 손에서 철퇴가 쿵 하고 떨어져 내렸다·
“아따 시발 저게 인간이가· 중간에 도움이 있었다캐도 듀라한 다섯을 상대로 쪼까 밀리지를 않노·”
“키히히··· 저건 나도 좀 무섭네· 난 살면서 대장 이상의 신체 능력자는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러게 말─ 으악!”
한편 거인과 싸우던 미스틸테인은 베르세르크를 구경하다 말고 펄쩍 뛰었다· 원인은 그가 잠깐 눈을 뗀 사이 거인이 휘두른 팔 때문이었다·
“아따 진짜로 죽을 뻔했데이·”
“방심하지 말라고 대장· 키히히히·”
생존할 능력은 충분하지만 거인을 단번에 죽이긴 또 애매한 실력자가 바로 미스틸테인이었으니· 그는 눈알이 여럿 터지고 자잘한 생채기도 가득 생긴 거인을 힐끗 보았다·
“저짝에가 저렇게까지 해줬으니 우리도 성과를 쪼까 내야할 것 같은디·”
거인이 보통의 인간과 동일한 신체기관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하에 약점이라고 할 만한 부분은 심장과 뇌 정도다·
그러나 그가 두 부위를 노리려 할 때면 거인은 필사적으로 손을 들어 자신의 급소를 보호했다· 거죽이 무른 편도 아닌지라 그 보호는 더욱 효과적이었다·
미스틸테인이 최대한의 힘을 담아 던질 경우 나오는 최선의 결과는 손바닥을 뚫고 나가는 그렇지만 완전히 관통하여 너머까지 날아가는 수준은 아니었으니까·
“인마 로키· 아직도 로브 악마는 안 보이나?”
“이봐 대장· 악마가 모습을 감춘 지 아직 3분도 지나지 않았다고· 심정은 알지만 채근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하지 않아? 더불어 마법 같은 건 호드의 전문 분야지 내 전문은 아니야·”
미스틸테인과 달리 원숭이처럼 건물 사이를 요리조리 오가던 로키가 한 건물 창틀에서 키히히 웃었다· 그런 그의 시선은 거인이나 듀라한이 아닌 악마가 사라진 자리만을 계속해서 좇고 있다·
“그캐도 마 지금 니밖에 믿을 구석이 읎다 아이가·”
“그건 알지· 그래서 나도 지금 열심히 머리 굴리고 있잖아·”
로키는 창틀을 밟은 채 광장을 내려다보다가 가벼운 몸놀림으로 벽을 타 건물 옥상에까지 올랐다· 그러고는 건물의 지붕을 타고 달려 다른 건물로 사뿐히 뛰어넘었다·
쾅!
아슬아슬하게 로키가 있던 건물이 거인의 손에 맞아 와르르 무너졌다· 건물 안에 있던 두어 명의 모험가가 비명을 질렀으나 안타깝게도 그들을 신경 써 줄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아무도 없다·
“···아! 이거였군!”
각설하고 계속해서 건물 사이를 뛰어넘던 로키는 뒤늦게 악마의 수를 깨달았다·
“어이 대장! 찾았어! 찾았다고!”
“뭐!? 어디고!”
“키히히 하늘 하늘이야!”
“엥?”
조실부모한 후 유언에 따라 어느 순간에도 웃음을 잃지 않게 된 이가 하늘을 가리켰다· 그가 보는 하늘에는 질척거리는 하얀 액체가 소용돌이를 그리며 한 점으로 막 모여드는 중이다·
“···아따 저건 또 뭐하는 긴데·”
“글쎄 그렇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좋은 일은 아니겠지· 키히힛!”
로키는 그 특유의 이만 보이는 반달 미소를 지으며 활을 쥐었다· 각도와 방향만 일러 줘도 백발백중으로 맞혀 내는 호드만큼은 아니나 그 역시 활솜씨로는 어디서 밀리는 편이 아니었다·
쉐엑!
쾅!
그러니까 지금 듀라한을 저격하고 있는 저 궁사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솔직히 저기는 비교선상에 넣어도 될 아니 넣으면 안 되는 인재에 가까웠다· 아무렴 보기만 해도 최소 한 단계 아니면 두 단계는 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뭘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한단 말인가·
“거기 노르다 출신 전사 듀라한을 다 잡았다면 거인부터 어떻게 좀 해 봐· 아무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더 큰 적이 출현할 것 같으니까 말이야· 키히히히·”
로키는 그렇게 외치며 당겼던 시위를 놓았다· 핑! 날아간 화살이 거인의 어깨쪽 눈에 박히며 거인의 구슬픈 울음소리를 끌어냈다·
“아직도 못 잡고 빌빌대고 있었나?”
“거 우리는 댁맨치로 일당백을 찍아대는 괴물이 아니라니까네·”
그쯤 되어 궁사의 지원을 받아 듀라한을 전부 처리한 베르세르크가 합류했다· 그녀가 합류하자마자 거인의 다리가 쓱싹쓱싹 베여 나간 건 덤이었다·
“아따 시원하다· 하여간 창은 이런 식의 공격이 안 되서 참 아쉽다니까네·”
“흥 구멍을 일렬로 내면 될 일이다·”
“아니 그게 뭐 쉽나·”
“못 하는 쪽이 무능한 거겠지·”
“거 신랄도 하셔라·”
베르세르크가 한쪽 다리를 베어 넘어트리자마자 미스틸테인의 진가도 드러났다· 처음 눈을 공격했을 때 외에는 투창을 자제했던 이가 다시금 투창기를 꺼내어 창을 장착한 것이다·
“카면 이번 일격은 그쪽이 하소?”
“필요 없다·”
“흐·”
용에게 가하는 막타를 빼앗었던 것을 꼬집으니 베르세르크가 단칼에 거절했다· 뭐 미스틸테인도 이미 예상했던 답이었다·
온몸에서 마력을 아지랑이처럼 풀풀 풍기는 이가 단단히 쥐고 있던 투창기를 기어이 휘둘렀다·
“날아· 태양을 꿰뚫을 것처럼·”
막 일어서려던 거인의 미간이 창에 꿰뚫리며 피 분수를 토해 냈다·
“대장! 온다!”
“하고 마 타이밍 참 칼 같다· 그제?”
동시에 하늘을 덮을 것처럼 모인 흰 액체가 거꾸로 된 용오름처럼 지상으로 내려왔다·
콰앙!
[그걸 그새 죽이다니· 역시 미리 인정하길 잘했네요·]
또한 그것은 내려오는 과정에서 어떠한 형태를 서서히 갖추었는데 그 모습이 실로 기괴하고 끔찍했다· 마치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공포심을 전부 반영한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떨까요? 실체를 갖춘 악몽의 용마저 당신들은 죽일 수 있나요?]
당대 최고의 시인을 데려온대도 차마 현세의 언어로 묘사할 수 없을 혼돈이 지상에 강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