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1화 그럼에도 복될 것이고 (4)
릴리스는 뒤바뀐 중력과 떠오른 지반을 두고 빠르게 사고했다· 대지의 파편이 공중으로 떠올라 준 덕분에 화살 공격은 잠깐이나마 막힌 상태다·
‘너무 안일했어· 인간과 마주칠 가능성이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그는 그 틈을 이용해 이 상황에 대한 해결 방안을 떠올려 보았다· 쉽지는 않았다· 그가 전투의 전면에 나선 전적은 생애를 통틀어도 몇 번밖에 되지 않은 탓이다·
하물며 지금은 단순한 전투 상황도 아니었다· 앞에 있는 건 원거리전에 능하고 전투에도 익숙한 궁사요 하늘에서는 점진적으로 다가오는 건 옛 짐승 중 하나인 주작이었으니까·
와드득·
그때 신체의 내부가 진탕되며 마기가 일부 소모되었다· 인간과 신체 구조가 다르다곤 하나 신체가 뭉개지면 타격을 입는 건 동일하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카인의 힘은 그 본인이 아니면 제대로 다룰 수 없는 성질의 것이던가····’
카인의 능력은 중력을 0으로 수렴하게 만들되 그 대상은 피아를 가리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카인처럼 처음부터 무중력 상태를 버틸 수 있게 설계된 신체가 아니라면 대악마도 얄짤 없이 피해 입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태의 능력을 다시 쓸 수는 없어·’
악몽을 끌어 온다면 저 인간을 따돌릴 수 있을까? 하나 나태의 힘을 효과적으로 쓰려면 소비되는 힘의 양이 만만치 않다· 차라리 감정을 증폭시켜 강제로 빈틈을 만드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과연 저 인간이 뜻대로 움직여 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콰직!
“숨어도 소용없다는 거 알잖아요·”
릴리스의 생각이 거기까지 닿았을 때 화살 하나가 공중에 떠 있던 바위와 흙더미를 뚫고 발치에 꽂혔다· 장애물에 가려 그가 보이지 않을 텐데도 이런 적중률이라니· 인간이지만 정말 소름 끼치는 종자였다·
제물의 매개를 쥐고 있던 그의 왼손이 공연히 다른 손에 가려지며 품 안으로 숨어들었다·
“나와요 불타 죽거나 익사하느니 화살에 꿰뚫리는 게 더 나을 텐데?”
[···항상 생각하지만 당신께선 배려라는 덕목을 좀 더 갖추는 것이 좋겠네요·]
릴리스는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며 상대의 감정을 툭툭 건드렸다· 다만 안타깝게도 상대는 그렇게 동요한 것 같지 않았다·
보다 정확히는 감정이 본래부터 그를 향한 살의로 가득 차있어서 추가로 증폭을 시킨대도 별 의미가 없었다· 이미 살심으로 미쳐 버린 인간이라 여기서 더 미치게 만들어도 별반 달라질 게 없단 거다·
콰직! 콰직!
어떻게 인간이 한결같이 저럴 수 있을까· 릴리스는 화살을 열심히 피하는 한편 어느새 상대방의 감정에 반응하여 변한 제 얼굴을 쓰다듬었다·
너무도 강렬하여 처음엔 사랑인 줄 알았던 그러나 지금 와서는 도저히 사랑뿐이라 할 수 없는 그 대상의 얼굴을·
[아울러 누군가의 숙원을 집요하게 망치려 드는 그 막된 성정도 고치는 것이 좋겠어요·]
결정을 내렸다·
이 이상 제물을 소모했다간 오만이 정말로 화를 내겠지만··· 소모한 제물이나마 가져가지 못하면 그땐 대계가 완전히 어그러질 터이니·
[아 정말· 저는 당신을 정말 사랑하고 싶었는데·]
제물이 부족해지면 오만은 그까지 제물 삼아 버릴까? 하나 오만이 그런 판단을 내린다 해도 그는 차마 불만을 토로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능력 부족으로 일이 이렇게 흐른 건 사실이니까·
[이 세계도··· 정말 사랑하고 싶었어요·]
“버러지 새끼가 뭐라는 건지·”
하면 결국 그리될 운명이라면· 그는 차라리 그의 결말을 스스로 택하고자 한다· 어차피 타락하지 않은 세상은 사랑할 가치가 없고 사랑할 수 없는 삶 또한 별 의미가 없기에·
* * *
호크아이는 하늘 저편이 붉어지는 것을 보며 마지막이 다가옴을 직감했다· 주작이 먼저 당도하건 그 전에 그가 악마를 먼저 죽이건 결말이 달라질 여지는 거의 없는 까닭이다·
피유웅!
여기에 신께서도 슬슬 악마를 쳐 낼 때가 됐다고 판단하신 듯했다· 용병이 약속한 대로 쪽지를 묶은 효시를 날렸다·
콰직!
요란한 소리를 두른 화살은 그가 손 뻗으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공간에 딱 박혀 들었다· 그만큼의 실력은 아닐지라도 꽤 제법이다 싶은 궁술이었다·
촤악·
호크아이는 그것을 빠르게 낚아챈 후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하여 건물 위를 계속 깡총깡총 뛰었다· 이 도시의 건물들은 외벽이 울퉁불퉁하고 높이가 대개 일정하여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능숙한 솜씨로 건물 하나를 뛰어넘은 그의 손이 화살에 묶인 쪽지를 펴 냈다· 쪽지는 친절하게도 악마와 건물을 전부 표기한 상태에서 빨간색─빨간 잉크를 가지고 다닐 리는 없으니 피를 쓴 것 같았다─으로 화살의 위치를 점찍어 준 채다·
마법진의 형태를 고스란히 가져가면서도 주변 환경에 맞춰 고저 차까지 완벽하게 계산해 낸 실로 예술에 가까운 배치였다·
쐐액!
호크아이는 그 쪽지를 공중에 던진 후 시선은 쪽지 안쪽에 고정한 채로 견제용 화살을 네 발 날렸다· 공격이 뚝 끊기면 악마가 의심할지도 모르니 날린 화살이었다·
툭·
그러곤 막 내려온 쪽지를 다시 붙잡아 위로 던졌다· 그의 활이 하늘을 향한 것도 바로 그때였다·
촤자자자자작!
순식간에 자신과 건물의 위치를 파악·대조하여 발사해 낸 화살이 마치 폭죽처럼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숨어 있던 용병이 “어떻게 촉매를 배치하나 싶더라니·”라며 감탄한 순간이었다·
[야! 우리 왔다!]
“먼저 싸우고 있었군·”
“이야아· 많이 기다렸수?”
또한 마법진이 배치된 것에 맞춰 주작과 두 전사도 이곳에 당도했다· 아무래도 상대하던 괴물을 처리하거나 따돌리는 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호크아이가 색욕의 본체를 찾아낸 것이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악마 새끼! 너 이제 죽었다!]
“금방 오셨네요· 더 걸릴 줄 알았는데·”
“하모 거 있던 거시기가 본체가 아닐 수 있다 카는데 안 오고 배기겄소?”
실제로 얼마 안 가 괴물이 눈 녹듯 사라졌다며 막 대지로 뛰쳐 내린 창잡이 미스틸테인이 설명했다·
“버러지 같은 악마 놈· 도망조차 제대로 칠 줄 모르다니 대악마란 이름이 우습군그래·”
반면 비슷한 시점에 착지한 베르세르크는 설명보다 악마에게 더 집중해 보였다· 나쁜 태도는 아니었다· 아직 싸움은 진행 중이고 악마는 이 자리에 있었으니까·
[···그래 보여요? 하긴 당신들처럼 능숙한 전사들에겐 제가 무능해 보일 수도 있겠죠· 실제로 제가 싸움에 재능이 없는 것도 맞고 말이에요·]
그러나 악마는 여전히 흙과 바윗덩이에 둘러싸여 있었고 탈출할 조짐도 딱히 보이지는 않았다· 작게 들려오는 목소리와 그것이 품은 마기만이 그것의 생존을 여즉 알려 줄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저라도 제 마지막을 선택할 수는 있답니다·]
[···! 너희 이리 와!]
건물을 부숴 가며 길목 안으로 몸을 구겨 넣은 주작이 호크아이와 미스틸테인 베르세르크를 불꽃으로 휘감았다·
[루시퍼 제가 최선을 다했다는 건 기억해 주세요· 뭐 당신이 그럴 리는 절대 없겠지만·]
“뭐야 뭐야?”
“어서 많이 들어봤는디··· 잠깐 로키?!”
소리를 잘 들어 보면 용병도 어떻게 주작의 품 안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곧 강렬한 폭풍이 일대를 밀어 버렸다·
“아 진짜 죽을 뻔했잖아· 키히히히·”
“인마! 로키! 니 와 여 있노!”
“오 이거 대장 아니야· 약속대로 잘 살아 있었네?”
“다른 아들은 또 어따 두고 온겨?? 설마 다 내팽개치고 온겨??”
“키히히 걱정 말라고· 다들 멀쩡히 돌아갔을 테니까· 아니면 따로 들은 게 없나 보지?”
호크아이는 만담을 나누는 두 사람을 등진 채 가장 먼저 주작의 품을 벗어났다· 딱히 노린 건 아니었으나 대악마가 도망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절로 그렇게 되었다·
그의 날카로운 눈이 보랏빛 광채를 흘리며 주작이 밝힌 밤 사이를 훑었다· 시야 한편을 가리고 있던 흙과 바위 더미는 어느새 없어진 상태다·
[또한 나의 왕이시여 내게 영원불멸한 사랑을 약속했던 이여·]
대신 그 모든 것들 위에 새로운 존재가 섰다· 넙데데한 귀처럼 보이는 천을 후드 위에 덧대고 로브의 자락 사이로는 전갈의 꼬리를 흔들고 있으며 왼손에는 무언가를 움켜쥐고 있는 여인이었다·
[당신의 거짓에도 속아 넘어가 준 저를 반드시 기억해 주시길·]
로브의 끝단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여인이 꼬리를 들어도 다리가 드러나는 일은 없었다· 만일 옷자락이 전부 들어 올려진대도 보이는 건 어둠으로 구성되어 있고 관절이 척행형으로 바뀐 다리뿐이겠지만 말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저 저주할 뿐이니·]
각설하고 저것이 어떤 형상을 띠었든 보인다면 그저 죽일 뿐이다·
호크아이의 손이 활을 다시 들었다· 처음 고른 화살은 언제나 그러하듯 상대방의 신체 강도를 확인하기 위한 일반 화살이다·
“하 모습을 그리 바꿔 댄다고 본인이 무언갈 할 수 있다 생각하나? 나약하고 한심하며 어리석기 짝이 없는 판단이군· 그 골통 안에 든 것이 바뀌지 않는 한 그 어떠한 육신을 지녀도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거늘·”
“···이야 말 한 번 묵직하구로· 이러다 저거 우는 거 아니요?”
“신랄하지만 정확한 평가네· 마음에 들어·”
[악마가 우는 걸 왜 신경 쓰니? 맞는 말만 했으면 된 거지!]
그리고 그가 화살을 쏘아 냄과 동시에 다른 이들도 움직였다· 베르세르크는 할버드를 미스틸테인은 창을 든 채 화살과 같이 앞으로 뛰쳐나온 것이다·
비록 주작의 경우는 건물을 무너트리게 될까 봐 함부로 전진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키히히히· 저것만 잡으면 대충 끝인 거지?”
상대적으로 무력이 부족한 용병 역시 전면에 나서진 않았다· 나설 수 없는 처지를 갈음하듯 호크아이의 옆에서 자신의 단궁으로 또 하나의 화살을 쏘았을 뿐이지·
[저는 당신들과 싸우지 않아요·]
“악마가 말하는 희망 사항 따위 내 알 바 아니다·”
[어림도 없지· 바로 반려다 이 자식아!]
“그 이런 상황에서 말하긴 쪼까 그런 것 같긴 한디 주작께선··· 거 말투가 다소 친근하신 것 같소?”
“여기서 말할 사항이 진짜 아니잖아 바보 대장· 그런 건 입안에 넣고 삼키라고·”
호크아이와 용병의 화살은 악마의 꼬리에 막혔다· 아무래도 저 전갈 꼬리의 강도는 강철판 이상의 단단함을 자랑하는 듯했다·
[아뇨 싸우지 않을 거예요·]
거기에 그것은 엄청난 다릿심으로 하늘 높게 뛰어올랐다· 덕분에 호크아이의 속사는 표적을 잃어 무위로 돌아갔고 베르세르크와 미스틸테인 역시 타점이 어긋났다·
“피해라!”
“대장!”
“어이쿠!”
휘둘러진 꼬리 사이로 뚝뚝 떨어지는 녹색 액체가 바닥에 닿는 즉시 치이익 소리를 내며 흙을 녹였다· 베르세르크와 미스틸테인이 양쪽으로 갈라져 구르지 않았다면 녹아내리는 건 흙이 아니라 그들의 살점이 되었을 것이다·
[···야! 쟤 간다!]
그렇게 자신을 향한 공격을 피해 낸 대악마는 근처 건물을 밟고 선 뒤 다시 뛰어올랐다· 싸우지 않을 거라고 지껄이더니 진짜 도망갈 심산인가 했다·
“날개는 뒀다 국 끓여 먹을 건가? 막아라!”
[아 맞다!]
주작이 다급하게 날아올랐다· 아마 앞서가서 진로를 막으려는 것 같은데 나쁜 판단은 아니지만 반 박자 늦을 것 같았다· 지금뿐 아니라 앞으로도 쭉 계속 말이다·
“어딜 가는 거예요?”
하여 호크아이는 주작이란 무력을 잠시 배제하기로 했다· 덩치 차이가 너무 심해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가지 마·”
다만 그는 빠르게 건물 위로 뛰어올라 활시위를 당겼다· 머리에 달린 나비 장식은 태풍에 휩쓸린 것처럼 도통 내려앉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절대로 안 보내·”
화살이 대악마의 어깨를 기어이 꿰뚫었다· 꼬리보다는 강도가 덜할지언정 전반적으로 신체의 단단한 정도가 올라갔는지 아까처럼 관통되지는 않았다·
[지긋지긋하네요· 옛 생각이 날 정도예요·]
주작이 겨우 대악마의 진로를 틀어막았다· 거대한 덩치가 이럴 때는 도움이 됐다· 비록 대악마가 방향 전환을 할 때마다 즉각즉각 반응 못 하는 건 아쉽지만서도·
“어딜!”
“쓰읍 진짜 드릅게 징그런 악마구로·”
그러나 대악마를 쫓는 건 주작뿐이 아니다·
어느새 바짝 따라붙은 베르세르크와 미스틸테인이 양쪽에서 포위망을 형성했다· 둘 다 기본 신체 능력만으로 대악마를 따라잡을 수 있는 인사라 가능한 일이었다·
콰직!
베르세르크의 할버드와 미스틸테인의 창이 절묘하게 대악마를 찔러 들어갔다· 싸움에 재능이 없다는 건 사실인지 대악마는 그 합공에 합당한 대처를 보이긴커녕 어리숙하게 손을 보호하려다 치명타를 허용했다·
저 둘이 노련한 전사인 걸 고려해도 참 미천한 실력이었다·
[····]
다만 정작 악마는 그 사실에 별로 개의치 않아 했다· 되레 그는 상처가 벌어지건 말건 치명타가 더 생산되건 말건 막무가내식으로 도주에만 집중했다·
마치 이 자리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이 정도 손해는 얼마든지 감수하겠다는 태도였다·
“아따 저 또또 재생하는 것 봐라! 시발 저게 악마가 걍 구더기제!”
거기에 그것은 또다시 과한 생존력을 보였다· 어떤 상처든 순식간에 재생되는 생존력이었다·
앞선 마법사들의 대화로 저것이 본디 불가능한 일임을 아는 호크아이의 눈이 가늘어졌다·
콰직!
그래도 일단 공격은 하고 봐야겠다· 그는 그런 마음으로 의구심을 밀어 둔 채 화살을 계속 쏘아 보냈다·
몇 개는 전갈 꼬리에 막혔지만 몇 개는 기어이 머리통을 부수거나 심장을 꿰뚫는 등 대악마라도 분명 타격을 입을 만한 피해를 남겼다·
“···반응이 없네·”
하나 이런 수모에도 대악마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그것은 어떠한 방해에도 멈추지 않았고 그 시도는 꽤 효과를 보여 순식간에 설치된 마법진의 반경에 다다랐다·
“키히히 이러다 마법은 날려 먹게 생겼는데·”
아군과 섞인 채 거칠게 움직이는 타깃을 노릴 자신까진 없었는지 아까부터 발광등을 이용해 마법사들이 있는 곳과 소통하던 용병이 웃었다·
“멈추게 하는 것이 낫겠지?”
“···아뇨· 계속하라고 전해 주세요·”
“···?”
용병은 자신이 들은 말이 맞냐는 듯 그를 올려다보았다· 호크아이의 시위가 또 한 번 튕겨졌다·
“다시 끌고 오면 되는 걸요·”
“무슨 수로? 애초에 당신 화살도 이제 얼마 안 남았잖아·”
“아 괜찮아요· 화살은·”
호크아이는 처음에 쏘아 보냈으나 꼬리에 튕겨 나가서 혹은 다른 이유로 건물 위를 굴러다니고 있는 헌 화살을 재빠르게 낚아챘다·
“재사용도 가능하니까·”
“오··· 그래도 소모율이 회수율보다 더 높을 텐데·”
“그 전에 죽이면 돼요·”
“당신의 능력을 무시하려는 건 아니지만 마법사들 말로는 저 악마가 지금까지 모은 제물을 왕창 소모해서 자신을 강화시키고 있다는 듯해· 그러니까··· 단번에 죽이긴 힘들 거라 이거지·”
“그러면 더더욱 마법진의 중심으로 끌어와야겠네요·”
그는 연사하되 담는 힘을 약간씩 달리하여 네 발의 화살이 동시에 날아가도록 조절했다· 기울어진 사각형처럼 쏘아진 화살이 또다시 대악마의 사지를 요격했다· 악마가 막 뛰어오르려던 순간이었다·
악마의 왼팔을 제외한 팔다리가 화살에 맞아 힘을 잃었다·
[완벽했다!]
아울러 주작이 위에서 아래로 악마를 내려찍었다· 정화의 불꽃에 악마의 로브 자락이 활활 타올랐다· 재생이야 바로바로 이루어졌지만 마기가 소모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명백하게 느껴질 수준이었다·
[···을!]
그때 격렬한 파동이 주작의 불꽃을 뚫고 사방을 휩쓸었다· 거리를 두고 있던 호크아이와 용병은 무사했으나 가까이서 싸우던 세 존재는 달랐다·
세 사람의 몸이 찰나간 멈칫거렸다가 다시 움직였다· 워낙 짧은 순간 벌어진 일이라서 호크아이 외엔 눈치챈 이들도 없었다·
세 존재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전히 악마를 쉽게 따라잡았고 그를 방해했으며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
단지 그들이 약간 달라진 게 있다면 아주 조금씩··· 정말 점진적으로 당사자들조차 눈치 못 챌 만큼 단계적으로 타이밍이 어긋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왜 그래?”
“악마가 수작을 부리지 않는 건 아닌가 보네요·”
호크아이는 베르세르크의 날이 악마의 빈자리를 반복해서 찍는 걸 보며 그리고 그녀가 그 사실을 두고 미묘하게 눈살 찌푸리는 걸 보며 악마가 무슨 수를 썼음을 짐작했다·
“또 또 장난질·”
무엇을 한 걸까· 또 어떤 짓을 해서 저 민감한 전사들의 감각을 흐트러트렸을까·
왜 이렇게 죽어 주질 않는가·
그는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는 정신병의 악마를 보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분명 미소였으되 결코 웃음이라고 볼 수 없는 일그러짐이었다·
“무엇이 너를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만드나요?”
도대체 무슨 이유로 거짓된 감정을 속삭이고 사람을 등신으로 만들어 가며 살아가는가? 호크아이는 어지간하면 쓰지 않는 그가 개인적으로 구비하고 다니는 화살을 하나 꺼냈다·
“도대체 사랑이 뭐라고·”
사용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 제작 비용으로 든 1kg짜리 순수 금괴가 무려 다섯 개·
“제발 좀 죽어 주면 안 돼요?”
호크아이의 활대가 팽팽하게 당겨지고 단 하나뿐인 화살이 시위를 따라 당겨졌다가 그대로 튕겨 나왔다·
쇄애애액·
사용한 금속에 의해 보랏빛을 띠게 된 화살이 허공을 매섭게 가르며 나아갔다· 나선으로 휘감기는 바람은 화살을 막기는커녕 그것의 전진을 도와 더욱더 속도를 가중시키는 중이다·
“제발·”
그리고 끝내 그 화살이 닿은 곳은 악마의 그 어떠한 곳도 아닌 그저 왼손일 뿐인 부위라·
“이 정도면 할 만큼 했잖아·”
대상과 닿은 순간 화살에 새겨진 마법이 작동하며 그 일대의 공간이 잘려 나갔다· 고작해야 각 가로변이 20cm에 불과할 직육면체의 부피로 다만 악마의 왼손만큼은 확실히 삼킨 상태로·
[···!]
“그렇지 않아 타냐?”
악마의 왼손에 쥐여 있던 두 개의 구슬이 공간째로 도려 내는 힘 앞에 저항하다 그대로 깨져 버렸다·
구슬에 담겨 있던 웅혼한 힘이 일대를 휩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