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7화 그럼에도 복될 것이고 (10)
서걱!
허망할 정도로 오만의 목은 쉽게 잘렸다· 오만의 목을 벨 때 들어간 힘보다 관리실의 괴수를 벨 때 들어간 힘이 더 클 정도였다·
‘아니··· 공간을 건너뛰지 않았다면 이리 쉽게 베이지도 않았을 테니··· 들어간 힘은 여전히 이쪽이 우위인가·’
물론 이는 계명이 오만의 움직임을 예측한 것과 계명 자신이 절대 할 수 없으리라 여겼을 능력을 이용해 허점을 찌른 덕이 더 컸다·
비록 이것이 실패했다면 엄청난 손해를 봤겠지만서도·
데구르르르
아무튼 잘린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목이 잘리는 과정에서 함께 추수된 머리카락은 마치 초목처럼 사방에 흩어진다·
“···죽었나·”
“죽었다·”
분노가 특이한 케이스일 뿐이지 보통의 악마는 머리와 몸이 분리되면 죽는다· 그건 대악마나 마법의 종주에게도 통용되는 진리였다·
어떠한 존재든 대비한 것이 없다면 부활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분노처럼 영혼이 남아 있다거나─”
“그것 또한 걱정할 필요 없다·”
영혼이 지상에 잔존하기 위해선 신체를 대신할 수 있는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나 지금의 오만은 어떤가· 싸우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마기를 소모해 버린 상태다·
즉 이것이 아무리 용을 써도 부활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
그래 그러니 오만은 죽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의 손에 살해당했다·
계명의 다리가 그제야 꺾였다· 해냈다는 걸 깨달은 순간 맥없이 풀린 긴장과 몰려온 누적 대미지가 벌인 일이었다·
온몸에 도배되다시피 한 상처들이 바닥을 향해서 핏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괜찮으십니까?”
“나는 괜찮····”
그녀가 주저앉는 사이 그녀의 전 직장 동료는 모험가를 부축했다· 그의 몸은 마치 햇살에 녹은 얼음처럼 무너지고 장작을 넣은 불꽃처럼 다시 수복되기를 반복하는 중이다·
“모 몸이····”
“건드리지 마라· 탈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모험가가 사파이어를 밀어냈다· 계명이 보기엔 미련한 행동이었다· 저 불꽃은 회복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일종의 허물 같은 것이지 실제로 무언가 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봐 어떻게 할 방도가 없나?”
결국 전전긍긍한 그녀의 전 직장 동료가 그녀를 채근했다· 당사자도 가만히 있는데 참으로 유난이었다·
“···단시간에 단약을 많이 섭취한 부작용이다·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해결될 것이다·”
보다 정확히는 단약 자체의 부작용보다 신체의 과부하가 더 많은 영향을 끼쳤겠지만··· 일일이 설명해 봤자 귀찮아질 뿐이다· 어느 쪽이건 시간밖에 답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고·
“하아·”
하므로 계명은 그쪽에 대한 신경을 껐다· 대신 자신의 앞에 널브러진 대악마의 육신을 보았다·
목이 떨어지는 순간에도 그리고 떨어진 지금도· 교만한 자의 입가에선 특유의 은은한 미소가 가시질 않는다· 부러진 뿔과 잘린 목에 맞춰 베인 머리카락 초점이 가신 눈만 아니었다면 그녀는 그것이 아직 살아 있노라 착각했을 것이다·
“···그대·”
교만은 분명 죽었고 살아날 일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감은 들지 않는다·
결국 계명의 손이 교만의 머리를 들었다· 죽는 순간에마저 여유를 잃지 않은 진정한 오만이었다·
“기분은 어떠한가?”
죽은 건 분명 상대인데 더 처절한 꼴을 하고 있는 건 정작 그녀다· 계명의 시선이 오만의 머리를 든 자신의 손등 쪽으로 살짝 비껴 나갔다·
그곳엔 온갖 생채기에 더불어 녹고 일그러진 화상흔 따위가 가득하다·
“그대가 실패작이라 부른 상대에게 당하고·”
그러나 결국 살아남은 건 그녀고 죽은 건 괴물과 오만이다·
계명의 입술이 비틀어지듯 올라갔다·
“그대가 권속이라 여기던 존재에게 배반당한 기분은 정말 어떻지?”
본래대로라면 그녀는 관리실에서 죽었겠지· 꼭 죽지 않더라도 여기까지 오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고·
“···답을 듣지 못함이 한탄스럽구나·”
함에도 그녀가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것은 난데없이 부여된 힘 덕분이었다· 당최 누가 그랬는지 어째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그녀를 대상으로 한 의식이 펼쳐져 순간적으로 엄청난 힘을 낼 수 있게 됐단 소리다·
“아울러─”
그리고 이 성에서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존재는 단 한 명뿐이다·
“아벨 그대에게도 나는 영영 답을 듣지 못하겠지·”
스스로를 희생양 삼아 기적을 가져오는 목동 아벨· 오만의 반복되는 제물이자 유일한 양치기이고 영원한 신자이며 평생토록 단 한 사람에게만 충성하는 목자·
“이 정도의 힘을 선사할 정도면 아무리 그대라도 몸이 성치는 못할 터이니····”
아 당신은 정말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였나? 나는 여태 당신이 어떤 의도로 나를 부활시켰는지조차 모르는데· 내가 만들어진 직후 당신이 내게 보인 호의조차 이해 못 하고 있는데·
왜 당신은 그리 따르던 신조차 배신해 가며 나를 멋대로 도와주는가·
“····”
높은 지능으로도 차마 해명되지 않는 감정과 사실 앞에서 계명은 결국 한참 동안 침묵했다· 가라앉은 공기 속에서 그녀를 유일하게 응시하는 건 오직 죽은 자의 머리뿐이었다·
“계명·”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신체 기능이 어느 정도 안정된 듯한 모험가가 그녀를 불렀다·
중간중간 코피가 흐르고 피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게 완전한 정상 궤도는 아닌 듯했지만 모험가는 사지 말단의 소실이 멈춘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 같았다·
“약이 없나?”
“···있다·”
“그렇다면 치료를 하지 않는 다른 이유가 있나?”
“글쎄·”
이곳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있었다· 갑작스레 부여받은 힘이 시간을 되감는 성질의 체력 포션과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몰랐으니 당연하다·
“이제 먹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아벨이 준 아마도 주었을 힘은 거의 사라진 상태다· 성의 파츠를 움직여 이곳까지 단번에 도달하는 데 1/5· 공간을 뛰어넘는 데 3/5 괴수와 악마의 목을 치는 데 든 힘이 1/5 정도 든 까닭이다·
“그래·”
얻게 된 힘을 이리 소모해 버린 것엔 달리 미련이 없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증발하는 형식이었고 그런 힘이라면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옳으니까·
뭐 오만의 목이야말로 그녀의 표적이었음을 고려하면 딱히 합리적이지 않았더라도 이런 선택을 했겠지만 말이다·
“···아까 그 힘은 뭔지 물어봐도 되겠나?”
“누군가가 제물 바치기 의식을 치렀다·”
“내가 아는 사람인가?”
“알고는 있으되 지금 그대가 떠올린 존재들은 아닐 것이다·”
“그럼?”
계명은 포션을 전부 삼킨 후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것을 입 밖에 내어도 되는가· 한데 이것을 말하지 못하겠다 여긴 이유는 또 무엇인가· 말해 봤자 그녀에게 손해가 되는 내용도 아닌데·
“···아벨이 오만을 배반한 듯하다·”
“그런가·”
어쩌면 그녀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 같은 창조물 아래 태어났을 뿐 그외의 공감대라곤 하나도 없던 존재가 또다시 호의를 베풀었다는 게·
“그럼 아까 그건 공간 도약이 맞았나?”
“···그래·”
“시공간 관련은 부작용이 심하다 들었다만 괜찮나?”
“일찍이 말했으나 그쪽 계열의 부작용은 존재감이 강할수록 높다· 나는 잠깐 힘을 부여받았을 뿐 태생이 강한 자는 아니니 세계도 내 존재를 눈치채기란 어렵다·”
오만이 그녀의 기습에 대처하지 못한 이유도 실상은 동일한 맥락이다· 그녀의 존재감은 작고 받은 힘을 공간 도약으로 대부분 날려 버리기까지 하면 이동한 후의 기척은 급속도로 줄어든다·
오만의 앞에 시선을 끌어 줄 강력한 존재가 있다면 이야기는 더 완벽하다· 오만은 모험가의 섬격과 그 존재감에 그녀의 존재는 인지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면 오만이 이동한 위치를 정확히 파악한 건····”
“발동된 섬격에 대처하는 방법은 한정되어 있고 그중 가장 확실하며 안전한 것이 공간 이동이라· 그것은 존재감도 크니 사전 준비 없이는 한 번에 멀리 이동하는 것도 어렵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조건이 좁혀지면 오만이 이동할 만한 장소를 고르는 건 일도 아니다· 이럼에도 100% 확률은 되지 못해서 다소 도박적인 수가 되었지만·
“그런가· 섬격의 반경을 바로 파악하고 판단 내리기는 힘들었을 텐데· 역시 그대는 대단하군·”
“····”
그보다 액상화한 마력을 복용 및 체화 과정 없이 허공에 흩뿌려 장악해 버린 이가 무슨 말을 하는거지?
계명은 급해서 대충 넘기고 갔던 기행을 다시 한번 곱씹다가 그대로 질린 얼굴을 했다· 신체 과부하로 감각이 이상해졌을 텐데 그걸 뚫고 외부의 마력을 통제해? 진짜 인간이 맞나?
“아 그렇지· 이걸 말하려던 게 아니라·”
그때 모험가가 오만의 시신을 가리켰다·
“심장 뜯어낼 건가?”
“···어떤 의미지?”
“심장 섭식할지 물은 거다·”
그 말을 들은 순간 계명은 모험가를 다른 시선으로 보았다·
“···마치 내게 양보한단 소리로 들리는군·”
“정확히 들었다·”
“···모험가님?”
저 말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를 거면서 전 직장 동료가 경악한 얼굴을 했다· 말투로 대강의 뜻을 짐작해 낸 모양이었다·
“나는 지금 먹을 수 없다· 내 마력도 제대로 못 받아들이는 상태인데 남의 마력 따위 탐낼 수 있을 리 없지·”
“그래서 내게 주겠다? 그대의 전리품을?”
“전리품이라고 해 봤자 당장 써먹을 수도 없는 사체다· 반면 심장은··· 소화해 낼 수 있다는 가정하에 당장의 전력이 될 수 있는 것이고· 해서 물어봤을 뿐이다· 위험성이나 기타 위생 문제로 꺼려진다면 굳이 먹지 않아도 된다·”
딱히 꺼려지는 건 아니다· 저것이 마기로 구성되어 있다곤 하나 악마도 인간도 아닌 그녀의 신체는 무리 없이 받아들일 테니까· 그녀가 오만의 살점을 받아 만들어진 만큼 부작용은 더 덜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공통되는 본질은 저것의 마력을 온전한 타인으로 여기지 않을 테니까·
“···그대는 진정 내가 힘을 얻어도 괜찮다는 건가?”
“그것으로 승리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다만··· 아니다· 저 존재가 이해할 수 없는 판단을 내린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까·
“모험가님····”
“아 그래· 계명에게 힘을 쥐여 준 걸 두고 다른 이들이 문제 삼는다면 내 독단이라 전하도록·”
글쎄· 과연 문제 삼을 자가 있긴 할까? 솔직히 오만 사냥의 지분은 모험가가 독차지하고 있고 따라서 오만의 사체도 그의 전리품에 속하며 그는 자기 몫의 전리품을 자기 의사에 따라 처분한 것인데·
“···아닙니다·”
모험가는 그녀가 내려 둔 오만의 머리통을 집어 들었다·
“이름과 영혼은 내가 챙기지·”
“내게 말할 필요는 없다·”
애시당초 오만의 영혼도 이름도 그녀에겐 필요 없는 것들이다· 계명의 칼이 오만의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냈다· 금과 에메랄드로 이뤄진 심장이었다·
“그 모험가님· 악마의 심장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감히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악마의 힘은 뇌와 심장에 몰려 있다· 그래서 그 부위를 먹으면 대상의 힘을 얻을 수 있다· 뭐 힘이라고 해 봤자 마기로 이뤄져 있으니 평범한 인간이 써먹을 방도는 아니지만·”
“···그 런·”
“너무 걱정하진 마라· 나와의 싸움으로 힘을 대부분 소모한 상태니 심장을 섭취한다고 해서 계명이 폭발적으로 강해지진 않을 것이다·”
“그렇 군요·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계명은 그 심장을 베어 물었다· 광물로 이뤄진 것 같아도 심장은 심장이었기에 손쉽게 이에 잘렸다· 심장이 순식간에 그녀의 입속으로 모조리 들어갔다·
“소화할 시간이 필요한가?”
“아니·”
“그럼 바로 가지· 흩어진 일원들을 찾고··· 사탄도 잡아야 할 테니·”
모험가가 주르륵 흐르는 코피를 또 한 번 닦으며 바깥으로 나가는 길을 턱짓했다·
“그보다··· 중도에 오만이 사탄을 불러내기라도 할까 걱정했는데 끝까지 안 나타나서 다행이군·”
“···?”
계명은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미지근한 기운과 확장되는 그릇을 느끼다 말고 모험가의 뒤통수를 직시했다· 그러자 이상함을 인지하기라도 한 것인지 모험가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내가 뭘 잘못 말했나?”
“···어쩐지 조급함이 없더라니· 그대 이미 사탄이 소환된 상태임을 몰랐나?”
“뭐?”
모험가의 한쪽 눈이 크게 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