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4화 그리하여 복될 것이며 (7)
전투의 포문은 사탄이 가져갔다· 냅다 점 같은 마기의 덩어리를 나와 인퀴지터에게 내리꽂아서 이렇다 할 반격(선타 빼앗기)도 할 수 없었다·
결국 공격을 포기한 우리 둘이 각자의 대응에 들어섰다· 나는 몸을 움직이는 쪽이었고 인퀴지터는 자리에 남아 방패를 드는 쪽이었다·
겨우 좁혔던 우리의 거리가 순식간에 벌어졌다·
“인퀴지터!!”
나는 사탄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 달려 나가며 인퀴지터를 불렀다· 그러면서 한 손으로는 검을 들어 마력을 가볍게 덧씌웠다·
사탄이 얼마나 강한지 아직 모르는 만큼 시작부터 큰 걸 날리기는 좀 그랬던 까닭이다· 포션이나 단약을 먹지 않아서 마력도 그렇게 낭낭하지 못한 상태고·
참고로 품속에 남아 있는 5개의 액상 포션과 2개의 단약은 당장 사용하기보다 좀 더 기다려 볼 요량이었다· 몇 개 안 남은 만큼 정말 위급할 때나 결정적인 순간이 도래했을 때 꺼내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하압!”
내가 그렇게 견제용 참격을 휙휙 날리는 사이 내 목소리를 들은 인퀴지터가 저돌적으로 달려 나갔다· 특별히 지시하는 말도 없었는데 내 의도를 대충이나마 알아챈 듯했다· 정말 대견한 김치만두였다·
[그런데 혹시 알고 있나? 이 싸움은 사실 의미가 없다는 것을·]
됐고 참격은 김치만두보다 먼저 사탄에게 도달했다· 또각 또각· 사탄이 움직일 때마다 그가 두른 케이프가 묵직하게 흔들렸다·
‘잘리긴 잘리는데····’
오밀조밀 날린 덕택일까 사탄은 회피를 했음에도 내 참격을 완전히 피하진 못했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참격이 지나간 자리에 상처가 남지도 않았다· 흡수나 통과는 아닌 것 같고··· 절삭 후 빠른 수복이 좀 더 어울리는 표현 같았다·
탕!
그때 인퀴지터의 몸이 사탄의 바로 앞까지 근접했다· 인퀴지터의 방패와 사탄의 손이 부딪쳤다·
키이잉!
금속과 맞닿은 흰 면장갑에서 거칠고 소름 끼치는 음역대의 소리가 연주되었다· 카앙! 아울러 연속으로 나오는 풍경은 사탄의 손으로부터 튕겨지듯 내쳐지는 인퀴지터의 모습이다·
“크읏!”
붉은 머리 이단심문관이 갑옷의 육중한 무게를 이용해 붕 뜬 몸을 빠르게 가라앉혔다· 쿵· 구덩이에 두툼한 크랙이 파였다·
타다닥!
그동안 나도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나는 핏물을 삼키며 쏘아지는 마기의 선을 피해 질주했다· 그리고 인퀴지터가 튕겨 나가던 그때 나는 사탄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마기가 한 겹 덧발라진 칼날이 사탄의 케이프를 양단해 버릴 것처럼 사납게 허공을 갈랐다·
깡!
그러나 내 공격 역시 사탄의 손에 잡히며 불발로 돌아갔다· 처음부터 첫 타가 순순히 들어갈 거라 기대는 안 했기에 실망도 없었다·
스르륵·
대신 나는 빠르게 라텔의 형태를 변형시켰다· 사탄의 손에 잡힌 칼날 부분이 녹아내리듯 하얀 면장갑을 빠져나왔다·
휘익!
이후 라텔은 사탄의 손 아래 그 밑에 모여들어 다시 원 형태로 돌아왔다· 내 손이 빠르게 옆으로 누운 V자를 그리듯 검을 조금 더 전진시켰다가 급격히 반대 방향으로 꺾었다·
케이프 자락에 칼끝이 간신히 닿는 듯했다·
사악!
“···!”
하나 끝내 베어 버린 것은 오직 공기뿐이라·
‘아· 최종 보스란 작자가 가오 떨어지게 백스텝이나 밟고 있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옆으로 굴렀다· 원인은 싸움의 개막을 장식했던 검은 점 검은 구슬이었다· 하여간 누가 오만 친구 아니랄까 봐 마법이나 난사하고 지랄이다·
팡! 파방! 팡!
내가 구르기 전 있었던 자리에 박힌 까만 마기가 자잘한 폭발을 일으켰다·
[하나의 대답조차 돌아오지 않다니 실로 유감이로다·]
사탄의 공세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내가 디딘 자리에 마법진이 꽃피듯 피어났다· 아래서부터 나를 관통하려 드는 종류의 것이었다·
“후·”
해서 나는 구르기를 마치자마자 땅을 손으로 짚고 연속 백핸드스프링을 했다· 내가 무슨 체조 선수라도 된 기분이었지만 이제 와서 자세를 고치기엔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좌로 굴러 우로 굴러 뒤로 굴러· 군대에서도 하지 않을 똥꼬쇼가 몇 초간 열몇 번 이어졌다·
쾅!
그런 나를 위기에서 구해 준 건 인퀴지터였다· 그녀가 사탄에게로 재차 다가가며 거대한 신성 망치를 소환 그대로 내려찍은 것이다·
어찌나 화끈했는지 구덩이 안에 새로운 구덩이가 파였다· 사탄이 또 백스텝으로 피한 게 아쉬울 정도였다· 저거 한 방이면 저 자식의 정수리가 으깨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는데·
아 머리통이 없으니 정수리도 없나? 하여간 눈치 없는 가면 새끼 인퀴지터가 때릴 머리통은 하나 남겨 놨어야지·
아무튼 텀블링으로 공격을 회피하는 데 성공한 나는 마력창을 여러 개 생성하여 사탄에게 쏘아 보냈다· 녀석이 뒤로 물러날 것까지 고려하여 각도를 세심히 조절한 일격이었다·
[내가 친히 그대의 헌신이 무가치해질 것임을 알려 주고 있는데 말이다·]
그보다 저 새끼는 왜 아까부터 조잘조잘 떠들어 대는 거야·
나는 손가락을 까닥이는 것으로 내게 날아오는 공격을 맞받아치며 사탄에게로 돌진했다·
“그런가?”
그러곤 가볍게 상념을 이은 후 입을 털어 보았다· 말하지 않고 호흡을 가다듬는 게 더 이득인가 한번 입을 털어 보는 게 이득인가· 그 모든 걸 따져 본 후에 결정한 입 털기였다·
“하면 나도 하나 알려 주지·”
신성력이 밀쳐진 순간 나는 스위치를 하듯 그 빈자리를 메우며 칼을 휘둘렀다·
채쟁 챙채챙!
물러날 공간을 인퀴지터가 절묘하게 선점하고 있기 때문인가 사탄은 몸을 움직이는 대신 팔을 움직여 내 검을 막아섰다· 좀처럼 뚫리지 않는 흰 면장갑이 무슨 강철인가 싶었다·
“싸움에서 보통 입을 터는 작자의 심리는─”
하지만 나도 나름 베르세르크─겸 웨폰마스터─랑 계명에게 이것저것 배워서 말이다· 나는 계명의 유려하면서도 끊기지 않는 검술과 베르세르크의 모든 걸 무기 삼을 수 있는 기교를 떠올렸다·
마침 내겐 형상 변환이 자유로운 라텔까지 있었다· 라텔이 찰나간 내 손등을 덮어 사탄의 주먹과 맞닿고 다시 검으로 화해 케이프 안쪽을 노리며 팔꿈치와 이어지는 칼날로 변해 회전하는 몸을 따라 사탄의 복부를 갈랐다·
콰앙!
여기에 득달같이 달려들며 밀어붙이는 인퀴지터의 금빛 방패까지· 사탄이 참지 못한 사람처럼 거대한 파동을 일으켜 우리 둘을 양쪽으로 밀어냈다·
[심리는?]
“─너무 여유가 넘치거나 너무 쪼들리는 것· 둘 중 하나라는 거다·”
한쪽은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서 한쪽은 자신의 불안을 숨기고자 부리는 허세· 하면 사탄은 어느쪽일까·
나는 벽에 가깝도록 기울어진 경사면을 밟으며 고개를 휙 들었다·
“그런데 네놈은 아무리 봐도 후자 같군· 아니 그런가?”
정말 여유가 넘쳤다면 나를 상대하던 초반의 오만이 그러했듯 화력을 쏟아부었을 터· 그러지 않은 점에서 사탄은 결코 완전한 고지를 점하고 있지 못하다·
결국 시간 싸움이다·
[호오····]
모든 대악마가 사라진 지금 더 이상의 조력 없이 사탄이 우리를 제거할 수 있는가· 아니면 우리가 먼저 사탄을 사살하는가·
내 손에 라텔이 맺히며 내가 딛고 있던 구덩이의 벽면이 와르르 무너졌다· 밤에도 일렁일렁 퍼지는 먼지 자락 사이로 튀어나오는 건 바로 내 몸이다·
[흥미로운 고견이다· 하나 틀린 점이 하나 있구나·]
콰앙!
내 칼날과 사탄의 손이 다시 충돌했다· 콰직! 둥글게 퍼진 충격파가 대지를 조각내고 계단처럼 울퉁불퉁 치솟게 만들었다·
[나는 그대들을 죽이지 못하기에 이리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 참 설득력 있는 변명이군·”
나는 그 상태에서 튕기듯 뒤로 공중제비를 돌며 참격을 쏘아 냈다· 사각! 깔끔하게 잘려 나간 사탄의 몸이 순식간에 이어 붙어졌다·
“모험가님!”
그때 인퀴지터가 배에서부터 올라오는 우렁찬 음성으로 나를 불렀다· 휘익! 투포환을 던지듯 몸을 반 바퀴 돌린 청년이 무거운 공 대신 방패를 냅다 투척했다·
흔히 쓰이는 방식은 아니었으되 효과를 아예 기대할 수 없는 부류의 것도 아니었다· 인퀴지터의 방패는 끄트머리가 날카롭고 금속제라 엄청난 무게를 자랑해서 잘만 맞히면 사람 하나 절단하는 건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나를 불렀지?’
다만 방패는 올곧게 사탄에게로 던져지고 있었고 그 경로에 내가 있거나 하진 않았다· 만일 내가 그 사이에 껴 있었어도 알아서 피했을 거고·
함에도 인퀴지터가 나를 부른 건 혹시 모를 일을 대비했을 뿐임인가?
“저를···!”
아니· 단순히 그런 것일 리가 없지·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인간 중에선 인퀴지터가 제일일 텐데·
“변명은 무덤에 들어간 후에나 하시지·”
내 손에 쥐여 있던 라텔이 하얀 밧줄처럼 앞으로 쏘아졌다· 그리고 날아오던 방패를 사뿐히 스쳐 지나 방패를 던졌던 인퀴지터에게로 닿았다· 그녀가 앞으로 한 손을 뻗고 있었기에 닿는 건 아주 조금 더 빨랐다·
라텔이 인퀴지터의 팔을 꽁꽁 옭아맨 후 밧줄 부분을 수축시키며 그녀를 끌어당겼다·
인간 포탄이었다·
[후후후····]
방패에 이어 쏘아지는 신성력의 근원지는 어떠냐· 나는 인퀴지터에게 닿자마자 부식되는 라텔을 얼른 수복시켜 주며 내게 쏘아지는 공격들을 하나하나 맞받아쳤다·
상대적으로 적은 마력을 콩알처럼 빚어 던진 후 내게 닿기 전 폭발시키기· 오만을 먼저 상대하며 단련된 게 있다 보니 그 작업은 훨씬 쉬웠다·
[하나 그대 그대는 정녕 이 세계에 대해 의문을 품어 본 적 없는가?]
어 없어· 없어 이 자식아· 여기는 내가 살던 세계도 아닐뿐더러 보통 세상 자체를 두고 상념에 빠지는 사람은 철학자와 과학자 정신병자밖에 없다· 슬프게도 철학자와 과학자들은 맨 마지막 것을 겸업하는 경우가 많지만 하여튼·
[이 세계는 완벽하지 않다· 세상을 둘러싸고 있는 보호막은 언제나 벗겨질 것처럼 위태위태하고 신이란 것은 그런 세계에 사는 존재에게 별 관심이 없지·]
응 안 물어봤고 궁금하지도 않아·
나는 또 한 번 우리를 강력하게 밀어내는 힘을 두고 인퀴지터를 더욱 강하게 당겼다· 내가 더 많이 튕겨 나갈수록 인퀴지터는 사탄에게 조금이라도 더 접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런 주제에 몇 인간들은 이 세계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신을 멋대로 자청하였으니····]
근데 이거 그 뭐냐 열매랑 나무 이야기 아니냐?
[그들이 그대의 헌신을 알아 줄 것 같은가?]
“하압!”
도발을 위해서 적당히 들어 주고 있는 나와 달리 인퀴지터는 아예 무시하기로 다짐한 모양이다· 사탄이 신을 운운하건 말건 중도에 방패를 낚아챈 인퀴지터가 마치 식판을 휘두르듯 대형 방패를 휘둘렀다·
터엉!
신성력과 마기의 폭발이 구덩이의 지반을 한층 가라앉혔다· 거기서 갈라져 나온 신성력의 파장에 공연히 내 신체가 피해 입을 정도였다·
쩌엉· 삽시간에 정화된 옷자락과 살갗이 타들어 가며 내 상반신을 날렸다·
‘이런 식으로 같이 싸우는 건 거의 처음이라 몰랐는데 팀킬 진짜 오지는구나·’
「···신장이랑 뒤꿈치 근육이 녹았어요· 이것도 확인해 주세요·」
‘그래·’
이쯤 되면 그냥 옷은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뭐 오만과 싸울 때부터 겉치레 부분은 복원하길 포기한지 오래긴 한데··· 이렇게 계속 불탈 거면 좀 더 빼도 되겠다· 인권을 위한 하의랑 발 보호용 부츠만 빼고 나머진 싹 버리는 거야·
어차피 살갗이 죄다 불타서 맨살도 잘 안 보이니까·
‘앞으로 피부 재생은 안 하는 게 낫겟어·’
「저도··· 같은 판단이에요·」
‘움직임에 방해될 것 같을 때만 말해 줘·’
「네!」
그래· 피부도 버리자· 탄 살갗이 좀 버스럭거리겠지만 알바야· 어차피 회복하는 족족 신성력 빔에 맞아서 타들어 갈 것 같은데·
나는 같이 정화빔 당할 뻔한 라텔을 회수하며 신성력이 최대한 오지 않는 쪽으로 치고 들어갔다· 나도 계속 복원하며 버티는 싸움을 해 왔으나 끝이 있기는 한 것처럼 저쪽도 언젠가는 재생이 불가능해지려니 하는 믿음의 맹공이었다·
[그대는 나와 같은 실수를 해선 안 된다·]
그리고 내 검이 사탄의 가면과 실크 햇을 갈랐을 때 깨진 가면이 뒤집혔다· 우는 얼굴이었다·
[설령 그대가 나를 죽인다 해도 결국 나와 같은 자는 끊임없이 나올 것이니·]
동시에 케이프 사이로 붉은 바위의 대지와 검은 하늘 고리 모양의 태양이 떠올랐다·
[차라리 나와 함께하라· 그것이 그대의 유일한 구원이 될지어다·]
지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