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7화 그리하여 복될 것이며 (10)
베르세르크는 대뜸 화살을 날리려는 호크아이를 막아 세웠다·
“왜요?”
“모험가와 인퀴지터에게 역으로 방해가 될 수 있다·”
“흐음·”
마왕성에서 픽업한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모험가의 현 상태는 최악 그 자체였다· 예고 없이 날아온 초장거리 저격에 맞춰 대응할 수 있을지 없을지 도통 확실하지가 않다는 거다·
“아깐 맞춰서 잘 대응하시던데요·”
“아까랑 지금이랑 뭐 같남·”
해당 의견을 두고 미스틸테인도 동의해 주었다· 다소 사감이 섞인 느낌이었지만 억지가 아니란 점에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 또한 돌발 행동을 권고하지 않겠다·”
“그래· 보니까 지금 뭐 하는 것 같은데 일단 냅둬 봐·”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여기에 머리를 정리하던 계명과 손 위로 붕대를 두르던 크러셔까지 합세했다· 활대를 만지작거리던 호크아이의 손이 결국 내려왔다·
“···엄청난 힘의 밀집이군·”
“그렇습니다· 용사님께서 큰 한 방을 준비하시는 것 같습니다·”
한편 아크메이지는 그동안 경악하기 바빴다·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끔찍하리만치 강대한 힘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왕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더····”
“저 하얀 건 대체 뭘까요?”
한쪽에는 실시간으로 압축되고 있는 신성력이· 다른 쪽에는 기존부터 존재하던 거대한 마기가· 마지막으로는 철저하게 정제된 마기도 마력도 아닌 힘이·
특징이 워낙 뚜렷해서 헷갈릴 일도 없었다· 아크메이지는 각 힘의 주인들을 순식간에 특정하며 혀를 찼다·
“분노의 애검인가· 예전부터 생각한 것이지만 참 독특하게도 쓰는군·”
“확실히 여러 곳에서 요긴히 쓰시긴 하죠·”
“검? 저게 검이었습니까?”
“그러하다·”
“나참· 마법사 아니라더니 완전 마법사 저리 가라잖아·”
“뭐 그러니까네 용사의 검이니 뭐니 하고 불리는 것 아니겠수· 저건 내도 좀 질리지만·”
반면 호기심 넘치는 티마뉴크와 근접직들은 태도가 살짝 상이했다·
데스브링거는 계명의 말에 동의를 표하듯 고개를 주억이고 자신의 손에 붕대를 고쳐 감은 크러셔는 질린 얼굴로 호크아이에게 기댔다· 눈이 동그래진 티마뉴크의 옆에선 미스틸테인이 심드렁하니 너스레를 떠는 중이다·
“활잡이 육귀와 산군의 위치는?”
“잘 따라오고 있어요·”
그들과 달리 계명은 냉정한 얼굴로 정보 갱신에 주력했다· 그녀의 내부는 오만의 힘을 소화해 내느라 필사적인 형편임에도 티 하나 나지 않는 뻣뻣함이었다·
“그렇군· 하면 마법사들은 예정대로 내릴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 터다·”
동시에 그녀는 꼬아 두었던 다리의 방향을 바꾸었다· 참고로 그녀가 주작과 닿지 않게 받치고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베르세르크의 널찍한 어깨와 등이다·
자신의 정수리에 닿는 머리카락이 간지러운지 베르세르크가 가볍게 고개를 털었다·
“혹 작전에 대한 이견이 있나?”
“나는 없다· 하지만 더 접근하기 전에 내려야 할 사람은 내리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은 있다·”
베르세르크는 자신의 어깨와 등에 걸터앉은 이가 무겁지도 않은지 허벅지에 팔꿈치를 대고 손에는 턱을 괸 채로 견해를 툭 토로했다·
지금껏 침묵하고 있던 자르딘과 사파이어가 각각 어깨나 입을 들썩였다· 물론 끝까지 나오는 반박이나 대답 따위는 없다·
“···역시 그렇겠죠·”
“그래·”
짐짓 욕망을 못 이긴 채 따라온 데스브링거 또한 담담히 받아들였다· 표정은 다소 풀 죽은 채지만 그마저도 목소리에선 결연함이 묻어 나왔다·
모두의 암묵적인 동의를 인지한 아크메이지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린 여기서 내리도록 하겠네·”
여기까지 오면서 계획한 것에는 주작과 베르세르크 계명 미스틸테인 크러셔 이렇게 다섯 존재만 사탄의 앞까지 간다는 게 있으니·
나머지는 무력 미달이건 특화된 능력의 종류 때문이건 각각의 사유에 따라 중도에 내리기로 약속했다· 나름 고심하고 고심한 끝에 결정한 최적의 인선이었다·
“저쪽에 신호를·”
결정이 내려지자 계명이 가볍게 턱짓했다· 호크아이는 그것을 오묘한 눈으로 보다가 자신의 활을 들었다·
“주작·”
[어 어 그래·]
지상에서 따라오고 있는 육귀와 산군에게 효시가 가는 동안 주작도 비행 고도를 서서히 낮추었다·
[쓰읍 마기 품은 놈을 둘이나 등에 태우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 과정에서 따라붙는 약간의 투덜거림은 아이의 생각 없는 투정과 별반 다름이 없다· 주작의 몸이 지상에 닿을 듯 말듯 아슬아슬한 비행을 시작했다·
“신호가 온다· 하나 둘 셋·”
그리고 산군이 그런 주작을 거의 따라잡았을 때 여섯 명의 사람이 주작의 아래로 뛰어내렸다· 몸이 원체 날렵한 데스브링거와 호크아이는 알아서 홀로 몸치인 티마뉴크와 아크메이지는 기사 두 명에게 각각 업힌 채였다·
[히히 잡았다!]
[얘네도 보면 담이 참 크다니까· 우리가 조금만 늦게 꽃 피워도 사지 하나 박살 날 일인데····]
[아이 참 그만큼 우리 믿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울러 그들이 지상에 닿으려던 차 마역을 뒤덮을 것처럼 꽃과 풀들이 쑥쑥 자라났다· 낙하의 충격을 전부 덮고도 남을 만큼 푹신 포근한 식물들이었다·
“어푸푸!”
“우왓·”
단점이 있다면 닿자마다 다들 솜 같은 것을 사방으로 흩뿌렸다는 것인데··· 잘못해서 그것을 코로 흡입한 데스브링거가 거하게 재채기를 했다·
하얀 솜들이 파라락 허공에 흩뿌려지며 그 옆에 있던 호크아이를 덮쳤다·
“우와 우아아아·”
“잠 잠시만· 함부로 움직이시면 균형이!”
“우왓!”
반면 티마뉴크는 사방에 번지는 꽃잎들을 보며 감탄하다 자신을 업고 있던 자르딘과 함께 뒤로 넘어졌다· 자르딘이 민첩하게 옆으로 구르다시피 하지 않았다면 그는 자르딘의 거대한 몸에 깔려 ‘어풉’ 따위의 신음을 흘렸을 것이다·
“최후의 수까지 안 가서 다행이군·”
“···그렇습니다·”
그나마 가장 처지가 좋은 쪽은 사파이어&아크메이지의 조라· 아크메이지는 쑤시는 삭신을 툭툭 두드리며 사파이어의 부축을 받았다·
“다치셨습니까?”
“아 그건 아니니 걱정 말게· 이건 그냥···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걸세·”
이 나이 먹으면 관절이 죄 삐걱거려서 최고급 침대에 몸을 던질 때도 조심해야 한다· 아크메이지는 그렇게 말하며 허허롭게 웃었다·
[다친다 이놈아·]
“어엇!”
[마능 망잉니다·]
그사이 하룻강아지처럼 꽃밭에서 팔딱거리던 티마뉴크가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원인은 티마뉴크의 망토를 입으로 냠 문 흰 뱀이었다·
곧 다른 이들도 육귀과 산군에 의해 차례차례 지상으로 내려졌다·
[그보다 인쟈 뭘 허야 한다고 했지요?]
[이거 바보 아냐· 마법진 새기는 데 도움 좀 달라는 걸 그새 까먹냐?]
[아 쫌! 지가 까먹을 수도 있지요!]
[됐어 이 촐랑아· 빨리 일이나 해· 저 조그만 애들이 우리 잘 보이라고 크게도 그려 줬잖아·]
연이어 육귀의 정수리가 산군의 아래턱 부분을 후려갈겼다· [조상님이 후손 잡는다!] 텅텅 빈 황야에 산군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뭐라고 하시는 걸까요?”
“글쎄요····”
“신입 경계를 준비해라·”
“아 네!”
다만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도리가 없는 인간들은 미리 얘기해 둔 역할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은 그들이 준비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마법 준비 호크아이는 엄호 사격 및 보조 두 기사는 최악의 순간 마법사들을 대신해 죽을 수 있도록 호위를 하는 것이었다·
“무슨 마법으로 준비할까요?”
“불·”
더불어 이 무리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아크메이지는 자신의 소매를 걷어붙였다·
“아까는 4중창으로 끝냈지만 이번엔 6중창까지 가 보겠네·”
“오····”
악마기사는 불을 무효화하는 구슬이 있고 나머지는 주작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렇기에 아크메이지의 결단에는 한 점 망설임이 없었다·
“이거 탑을 무너트릴 때 이후로 처음 써 보는 거라 심장 떨리는구만·”
“예?”
한때 온갖 결계와 방어 마법으로 떡칠된 마탑을 불살랐던 이가 중창을 시작했다·
* * *
[어디 애들 멀쩡히 착지했니?]
한편 여섯 명의 인간이 뛰어내린 후 주작은 남은 이들을 닦달했다· 산군과 육귀가 받아 주기로 얘기가 되어 있긴 했지만 둘이 워낙 칠칠맞지 못한 놈들이라 걱정이 되었던 까닭이다·
“네·”
“다들 팔팔해 보인다·”
“아 완전 멀쩡하이· 걱정할 필요 없수다·”
다행히 먼저 내린 이들에겐 이상이 없었다· 주작은 마음 놓고 날개를 펄럭였다·
[좋아· 그럼 계속 간다·]
“네·”
그리고 그의 몸이 사탄의 지척까지 다다랐을 때·
슬라임처럼 사탄을 속박하던 하얀 점액질이 모험가를 따라 저편으로 나가떨어졌다· 반면 그들의 존재감을 완전히 파묻어 버릴 정도로 성성한 신성력은 지상에서 막 엉덩이를 떼어 사탄에게로 날아가는 중이다·
“이미 알겠지만 그대로 박아라·”
이 두 가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들이 그들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을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신성력을 피해 계명이 대지로 뛰어내린 후 남은 세 사람은 주작의 날개나 머리 깃털을 움켜쥔 채 다른 손에 무기를 쥐었다·
“눈깔 하나는 내 거다·”
“그럼 남은 눈은 내가 맡지·”
“거참 선점도 빠르셔라· 그럼 내는 귓구멍이나 찌르겄수다·”
신성력과 주작의 필살 몸통 박치기가 사탄에게 들이닥쳤다· 빈대가 옮겨 붙듯 주작을 타고 있던 세 사람이 사탄의 몸에 달라붙은 것도 바로 그 시점이었다·
“내가 먼저다!”
크러셔는 공중제비를 돌며 가장 먼저 사탄의 몸을 밟았다· 몸이 작고 가벼웠던 탓에 추락의 충격도 가장 덜했다· 그녀의 몸이 수직 달리기를 하듯 사탄의 몸을 등반했다·
“선수를 빼앗겼나·”
두 번째는 베르세르크였다·
자신의 무게에서 오는 충격조차 타고난 근육과 맷집으로 버텨 낸 그녀는 수직에 가까운 사탄의 등쪽 옷에 칼을 박아 자신의 추락을 막았다· 사탄에게 박힌 칼날은 곧 그녀의 발판으로 역할을 탈바꿈할 예정이다·
“거 용사님· 미리 말하지마는 의뢰 시작일은 오늘 아침이었으니까네· 늦었단 이유로 후불금 깎으면 쪼까 곤란하요?”
마지막으로 미스틸테인은 베르세르크와 비슷한 시점에 다만 가장 낮은 위치에서 첫발을 디뎠다· 추락한 장소가 가장 좋지 않았던 게 원인이었는데 정작 미스틸테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등지고 있는 방향에서 몰아치는 신성력의 광풍이 썩 기분 좋기도 좋았거니와 창을 잘만 던지면 바로 눈을 찌를 수 있는 지점이 그곳이었던 탓이다·
“···여러분!”
콰앙!
화색하는 인퀴지터의 신성력과 모험가로부터 간신히 풀려난 사탄의 잘린 검이 충돌했다·
[같잖은···!]
[하하! 드디어 네놈 면상을 보는구나!]
하나 사탄을 노리는 강대한 존재는 인퀴지터만이 아니다· 약속한 대로 세 근접직의 안위를 무시하기로 한 주작이 사탄의 등에 달라붙었다·
사탄이 워낙 거대했던 통에 흡사 매 한 마리가 인간 등을 긁는 꼴이 되었지만 주작은 개의치 않았다· 그의 역할은 싸움의 승패를 결정짓는 비수가 아니라 그 비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주목을 끌고 시선이 돌아가는 걸 막는 등의 일이 그의 주된 목표란 거다·
[누천 년의 계획이 끝장나기 전 기분은 어떻냐? 응? 더럽지? 열받지? 짜증나지!?]
[···언젠가는 사냥되어 스러질 짐승 따위가·]
그렇다고 주작의 위험성이 아주 떨어지느냐면 그건 또 아니다· 특별한 성질이 부여되지 않아도 정화의 힘을 지니는 게 불꽃일진대 주작은 그 두 가지를 전부 가지고 있으니까·
[한때 너희를 사냥하던 자가 바로 나였음을 잊었나?]
[하! 잊었을 리가!]
이 와중에 사탄의 앞에선 신성력을 계속 끌어오는 이가 있고 몸체에는 무시하고 싶으나 정말 그리하면 등이 간지러워지는 존재가 무려 셋이나 붙어 있다·
[기억력이 일을 안 하는 건 도리어 네 쪽 아니야? 타락한 자들을 사냥하기 위해 물려받았던 이름과 자격을 송두리째 내던진 사람이 누군데!]
사탄의 고리 태양이 조금씩 회전하기 시작했다·
[내던져? 아니! 나는 내가 받아야 할 마땅한 대가를 돌려받으려 하는 것뿐이다!]
[하! 지랄하시네! 넌 그냥 변절한 거야! 자신의 헌신이 아까워져서 그 값을 뒤늦게 치러 달라고 땡깡 부리는 진상 손님이 된 거라고!]
하지만 고리 태양의 회전이 유의미한 결과를 불러오기 전 크러셔가 먼저 사탄의 턱 아래를 붙잡고 눈이 있는 곳까지 뛰어올랐다·
“내가 말했지!”
살갗 위로 붕대와 건틀릿 마법 스크롤까지 장착한 주먹이 사탄의 눈알로 날아갔다·
“눈알 하나는 내 거다!!”
퍼엉!
일반인도 볼 수 있는 유형의 폭발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