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9화 그리고 복될 것이니 (8)
마이스터는 머리를 붙잡고 끙끙 앓다가 또 고뇌하다가 기어이 벌떡 일어섰다·
“야 꼬맹이· 너 잠깐 여기 좀 있어봐·”
“네?”
“저 새끼 뭐 하는지 잠깐 보러 갔다 올 테니까 너는 여기 있으라고·”
사실 주작을 못 찾게 될 경우 그는 마탑에 먼저 가 보려 했다· 도시 내에서 무슨 일이 터지든 마탑은 어지간해서 멀쩡할 거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렴 마탑에 걸린 결계가 몇 개인데 그 새끼들이 벌써 다 뒈졌을까? 하물며 상주한 대마법사도 현시점에서는 무려 네 명이나 된다·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났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감수하더라도 희망을 걸어 볼 가치는 충분했다·
“내가 시발 진짜· 하·”
그러나 그럼에도·
“야 반경 10m 내로 다가오는 게 있으면 그게 뭐든 그냥 쏴 버리는 거 잊지 말고· 알았냐?”
“네 네!”
“그래· 하 썅· 내가 진짜 미쳤지·”
마이스터는 온갖 욕설을 지껄이면서도 자신의 짐을 점검하고 건물의 계단을 재차 밟았다· 혼자 남게 될 소녀의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어른이 없어도 제 앞길은 잘 찾는 아이인데다가 지금은 아이보다 사지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그의 목숨이 더 위험했다·
“아오 저 새끼가 뭐가 예쁘다고·”
마이스터는 장갑 밖으로 땀이 새는 것 같다 생각하며 권총을 고쳐 쥐었다· 분명 장갑에는 땀샘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그러했다·
땀 대신 고인 긴장이 뺨에서 한 방울 두 방울 얼어붙었다·
“아 저 새끼 움직이면 좆되는데·”
그는 위에서 보았던 데스브링거의 위치를 생각하다가 퍼득 새로운 대책을 떠올렸다· 그가 데스브링거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없다면 실시간으로 확인이 가능한 사람과 연락하면 되지 않을까?
“야 꼬맹이!”
그는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위로 우당탕 올라갔다·
“뭐예요!? 무슨 일이에요? 적습이에요!?”
그러자 방 안에서 소녀가 데구르르 굴러 나왔다· 그 잠깐 사이에 뭘 그렇게 많이 설치해 뒀는지 방은 입구부터 함정이 그득그득했다· 작게는 방울 함정부터 크게는 솥뚜껑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함정 따위였다·
“···너 이런 것도 할 줄 아냐?”
“저 이래 봬도 노르다인인데요·”
“아니 거긴 애도 함정을 만들어?”
“걷기 시작할 때부터 가르치는 게 함정 만드는 법인데요?”
“허·”
얘는 진짜 목숨 걱정 안 해도 되겠구만·
마이스터는 어이없는 얼굴을 하면서도 올라온 이유를 다했다·
“됐고 일단 이거 받아·”
“이게 뭐예요?”
“무전기 초기형· 거기 버튼 누른 채로 말하면 나한테 말이 전달된다·”
“오오·”
잣대를 삼기 위해 제작한 물품이다보니 한 세트─세 개─밖에 없고 사정거리도 300m 내외에 불과하며 결계가 껴 있거나 장애물이 많으면 작동이 잘 안되는 단점이 있지만 이 순간에는 이것만큼 쓸모 있는 것도 없다·
“창가에서 저쪽 관측하면서 이걸로 나한테 이것저것 알려 줘· 저 녀석들이 내 쪽으로 오고 있다거나 캄 녀석이 이동하고 있다거나· 이해했어?”
“이해했어요!”
“좋아· 그리고 이건 벽을 두고 작동시키면 잘 안되니까 창가에 찰싹 붙어서 말해야 한다· 배터리 한계도 있으니까 잡담 따위론 연락하지 말고·”
“넵!”
“좋아· 이제 내 목숨 너한테 달렸으니까 존나 열심히 해라· 난 애라고 안 봐준다·”
“걱정 마세요!”
그는 이 꼬맹이가 과연 해설을 잘 해 줄지 의문이었으나 이내 관련 고민을 그만두었다· 어차피 꼬맹이 아니면 이런 역할을 맡을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진짜 간다·”
“네!”
마이스터는 이제 진짜로 저 사지를 향해 뛰어갔다·
* * *
데스브링거는 여차하면 일대를 날려 버릴 함정을 파기 전 가장 기본적인 사항부터 파악하기에 앞섰다·
“강령에 걸리는 시간은 얼맙니까요?”
─으음· 이것은 저도 확답을 드리기 어렵네요· 바보가 아닌 이상 대악마도 저항하긴 할 테니까요·”
“그럼 함정 위에서 강령시키는 건 어려우려나····”
강령된 상태에서 함정까지 유도하는 게 최선인가? 데스브링거는 무너진 건물 안에 숨어든 채 악마와 하얀까마귀의 싸움을 관측했다·
콰앙! 곰가죽을 두른 나귀가 금안의 괴물을 후려치는 게 마침 보였다· 그것의 주변에서 윙윙 나도는 것은 꿈에서 불려 나온 기기괴괴한 생명체들과 하얀까마귀가 즉석에서 제작한 새로운 괴물들이다·
“강령은 원할 때 바로 시작할 수 있습니까요?”
─사실 그것도 아닙니다· 저도 사전 작업은 해야 해서요· 당신이 괜찮다 싶은 곳에 자리 잡으면 거기서 바로 시작하려고 했죠·
“진짜 개판이네·”
어째 미리 준비된 것이라곤 하나도 없고 죄다 앉은자리에서 만들어야 하는 거냐· 애초에 이런 걸 암살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가? 은밀하게 행동하고 그렇게 상대의 허를 찌른다고 해서 전부 암살이 되는 건 아닌데·
파스스·
그때 한 지점을 밟은 발로부터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데스브링거의 시선이 땅 아래로 향했다·
툭 툭·
그는 그 자리서 가볍게 발을 굴러보았다· 그때마다 잔해가 짓이겨지며 아래로 모래 가루를 흘려보냈다· 그가 예상한 것보다 더 깊이 더 아래로 말이다·
바스락·
데스브링거는 그 즉시 납작 엎드려 귀를 바닥에 대었다· 둥 둥 둥· 사방에서 이뤄지는 싸움의 진동이 가장 먼저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다음으로 찾아오는 건 은근히 균형을 잃어 가며 안으로 안으로 파고드는 잔해 무더기의 비명 소리다·
─문제가 있습니까?
“그건 아니고 강령 겸 함정 자리로 쓰면 딱 좋을 위치를 찾은 것 같습니다요·”
─그렇습니까? 다른 곳과 별 차이는 없어 보이는데·
“여기 지반이 엄청 약해졌습니다요·”
데스브링거는 땅이 울릴 때마다 파스스스 우는 땅을 일별했다· 이건 단순히 건물의 파편이 땅을 뒤엎고 있어서 이런 소리가 나는 게 아니다· 저놈의 인간결합체가 땅을 뒤엎고 흔드는 바람에 지층에 금이 가고 그 금이 점차 벌어지며 지반의 상태를 악화시켰기에 이리된 것이지·
“여기서 큰 충격만 몇 번 더 주면 땅 자체가 아예 꺼질 확률이 큽니다요· 그 충격이 얼마만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발을 한번 쿵 굴러 보았다· 들썩·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두고 땅 일부가 살짝 꺼지는 게 보였다·
“최소한 우리가 가진 화력으론 충분할 것 같습니다요·”
─그런가요· 운이 좋네요·
“운이 아니라 내 눈이 좋은 거겠죠·”
데스브링거는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을 올려 치면서도 땅이 얼마나 꺼질지를 가늠해 보았다· 그렇게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잔해가 땅을 가리고 있는 것도 있는 것이지만 자칫 잘못했다간 함정을 준비하기도 전에 지반이 붕괴해 버리는 수도 있던 까닭이다·
“강령 준비는 어떻게 합니까요?”
─아 이걸 깜빡했군요· 사람 시체 좀 모아 주시겠습니까?
“···시발 이 미친 마법사가· 댁은 시체 없으면 마법 못 씁니까!?”
─그건 아니지만 가장 효율적인 재료가 시신이라서요· 그렇다고 촉매 재료를 가지러 마탑까지 갔다 올 순 없잖습니까?
“염병!”
데스브링거의 욕설에 하얀까마귀가 빙긋 웃었다·
─아울러 괜찮다면 작업 속도를 좀 올려 주지 않겠습니까?
“또 왜요·”
─제가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바로 밀려 버릴 상황이거든요· 최대한 버텨 보곤 있지만 아무리 저라도 몇 시간 내내 실수 없이 싸울 자신은 없는지라·
그는 동시에 그 작달막한 어깨를 으쓱였다·
─애초에 저 전투 특화 마법사도 아니고요·
“신빙성 존나 없는 말·”
─후후 제가 지금 버텨 내는 건 순전히 재료로 갈아 넣은 인간이 많기 때문임을 부디 기억해 주시길·
“···아오 진짜!”
아무리 필요에 의해서라지만 진정 악마숭배자나 할 법한 일을 그가 저질러야 하는가? 하나 이것을 하지 않는다면 이 싸움의 결말은 그들의 패배가 될 것이 너무 자명한데?
데스브링거는 죄악감과 대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기어이 눈을 감고 말았다·
그는 무언가의 희생 없이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용사가 아니었다· 스스로를 갈아 넣음으로써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모험가도 아니었고·
“···죄송합니다요·”
하여 그는 끔찍한 기분을 삼킨 채 그가 지나쳤던 시신을 챙기러 갔다·
“야!”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분명 그리했을 것이다· 데스브링거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내가 지금 헛것을 보나?”
─저도 같이 보고 있으니 환각일 걱정은 더셔도 됩니다·
“얀마!”
“아니 진짜 명장 나리?!”
저 인간이 왜 여기 있어?! 데스브링거의 온 털이 바짝 섰다·
* * *
“너 어깨에 그거 뭐냐?”
“하얀까마귀 새끼요·”
“뭐??”
─후후 여기서 얼굴 보게 될 줄은 몰랐군요· 그보다 괜찮다면 협력해 주지 않겠습니까? 마침 손이 부족하던 터라·
“아니 아니 너는 시발 저 새끼랑 왜 붙어 있어?”
“설명하자면 좀 길어지는데··· 그 혹시 괴물 새끼들이 싸우는 거 봤습니까요?”
마이스터는 데스브링거의 말에 일단 고개를 주억였다· 그 새끼들 싸우는 것 때문에 여기까지 오는 데 정말 힘겨웠던 까닭이다·
제때제때 들어오는 소녀의 정보가 아니었다면 그는 필시 소에게 밟혀 죽거나 인간결합체에 깔려 으깨졌을 것이다·
“하나는 대악마 거고 하나는 이 인간이 만든 겁니다·”
“하얀까마귀가 대악마랑 싸운다고?”
“지 말로는 예· 보이는 것도 실제로 그렇고요·”
─전 대악마 편이 아니니까요·
“대악마랑 내통해 놓고 뭐라는 거야·”
─그건 필요악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과의 거래로 얻은 정보를 통해 이렇게 대항하고 있잖습니까?
“궤변은 집어치워·”
─제 노력이 그리 보인다면 어쩔 수 없군요· 다만 당신도 내심 알고 있을 텐데요· 지금은 협력할 때가 맞다는 것을·
“····”
그건 그렇긴 하다· 데스브링거가 절대 멍청한 녀석이 아님에도 놈과 손잡은 것부터가 해당 사실을 증명하지 않는가· 지금은 아무리 경멸스러운 자식이라도 일단 협조해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래서 지금 뭐 하고 있었냐?”
“함정을 파고 있었습니다요·”
결국 마이스터는 총으로 하얀까마귀(인형)의 대가리를 날리는 대신 그들에게 손 보태기를 택했다· 기다렸다는 듯 데스브링거의 축약된 상황 설명이 줄줄 이어졌다·
“그렇단 말이지·”
강령이라· 마이스터는 그가 받았던 신체 강화 실험을 떠올리며 눈을 살풋 찡그렸다·
강령 실험이 실패─관련 연구자가 죄다 몰살당하고 연구 자료도 전부 불타 버려서 강제로 중단된 쪽에 가깝지만─하여 신체에 초점을 맞춘 강화 실험이 시작된 것이 떠올랐던 탓이다·
“일단 촉매로 쓸 만한 건 내가 가지고 있어·”
“정말입니까요?”
“그래· 그러니까 너는 함정을 파 둬· 이쪽 사전 작업은 내가 맡을 테니·”
“하긴 명장 나리는 마법을 잘 아니까··· 이게 좀 더 합리적이네요· 그렇게 합시다요·”
“좋아·”
─그럼 저는 이제 그쪽과 함께해야겠군요· 마법 이론엔 빠삭해도 강령 마법진의 생김새 자체는 모를 테니·
“···그래야지·”
하지만 지금은 그 기억에 붙잡힐 때가 아니다· 마이스터는 불쾌함을 애써 억누르며 하얀까마귀를 받아들었다· 장갑 너머로 느껴지는 살가죽의 촉감이 끔찍했다·
─좀 제대로 들어 주시겠습니까?
“시끄러워·”
그는 짐에 든 촉매를 꺼내 하얀까마귀가 알려 준 대로 마법진을 작성했다· 바닥이 울퉁불퉁하고 자주 지진─괴물들의 싸움이 일으킨 여파였다─이 일어 다소 까다롭긴 했지만 그래도 아예 불가능하진 않았다·
순식간에 칠중창 마법진이 빼곡하게 새겨졌다·
“이걸 해낼 수 있다고?”
─해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해내야 하는 거죠·
모든 것이 완성되었을 때 하얀까마귀가 진 한가운데로 폴짝 뛰었다· 이후 무거운 머리를 휘청휘청 움직이던 그것이 품에서 꺼내 든 물건은 검붉은 피가 담긴 병이다·
주르륵·
병 뚜껑을 딴 하얀까마귀가 그것을 뒤집어 피를 쏟아 냈다· 병 자체가 그리 크지는 않았기에 고작해야 서너 방울쯤 되는 양이 바닥에 톡톡 묻었다·
─이걸로 준비는 끝이군요· 저쪽은 어떤지 보러 갈까요?
“···강령에 실패하면 그땐 어쩔 거냐?”
─실패라··· 굳이 그 상황을 상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강령이 실패한다면 이 모든 준비는 헛것으로 돌아갈 테고 당신들도 전부 죽을 텐데요·
“그렇긴 하지·”
마이스터는 불친절하게 하얀까마귀를 집어 들며 변두리에서 작업하던 데스브링거를 찾았다·
“뭐야 그건?”
“고농축 성수 폭탄입니다요· 시작하자마자 이것부터 발사되게 했어요·”
안전지대에 있는 소녀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쪽은 한술 더 뜬다· 마이스터는 데스브링거가 그새 제작한 각양각색의 함정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게 제발 통했으면 좋겠는데·”
“통해야죠·”
데스브링거는 차례로 발사되게 설정된 장치들을 점검하며 마지막으로 자신이 자리 잡을 장소를 찾았다· 모든 함정을 발동시킬 수 있는 자리이자 침하된 지반 안으로 바로 뛰어갈 수 있는 위치였다·
“이제 여기로 몰면 됩니다요· 명장 나리는 혹시 모르니까 당장 대피─”
그는 붕괴된 땅 안으로 뛰어들어서라도 모가지를 딸 각오를 다지며 부정검을 손에 단단히 고정했다·
─이런·
다만 그가 마음을 완전히 다잡기도 전 하얀까마귀 인형이 싱긋 웃었다·
─아무래도 저 죽을 것 같네요?
데스브링거와 마이스터의 눈이 와락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