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화 그리하여 복될 것이며 (13)
호크아이는 화살이 조금도 통하지 않는 대상을 보며 혀를 찼다·
“정말 쓸데없이 단단하네요· 짜증나게·”
관통 마법이 덧발라진 화살을 써도 소용이 없었다· 호크아이는 열 번의 시도 끝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시인했다· 그건 굉장히 불쾌한 기분이었다·
“너무 그러지 마십쇼· 아무것도 못하는 저보단 낫잖습니까요·”
불만을 속으로 삭이고 있으려니 옆에 있던 이가 한마디 했다· 어딘가 불퉁한 표정의 데스브링거였다·
“글쎄요· 현시점에선 저도 무력하긴 매한가지인데····”
“전 염병할 보이는 것도 없다굽쇼·”
뭐 그것도 맞는 말이다· 주작의 불꽃과 넘쳐흐르는 신성력의 금빛 덕에 시야가 어둑어둑하진 않지만 거리가 거리인 만큼 보통의 시력으론 세세한 걸 보기 힘들 테니까·
“제가 신경 써 드릴 부분은 아닌 것 같네요·”
하지만 그게 어디 호크아이의 탓인가? 타고난 재능의 부족함으로 곤란에 처했다면 그건 그 자신이 해결할 몫이다· 남에게 투덜거릴 것이 아니라·
“틀린 말은 아닌데····”
그렇게 호크아이는 데스브링거의 묘한 시선을 외면했다· 갈음하듯 그의 팔이 들어 올린 건 잠시 내려 두었던 장궁이다·
“방금 안 통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요?”
“직접적인 공격으로는 그렇겠죠·”
이미 쏘아진 공격을 비틀거나 약간의 틈을 벌어 주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호크아이의 시위가 튕기며 화살을 쏘아 올렸다·
콰직!
오직 호크아이에게만 보이는 세상에서 용사의 머리 쪽으로 떨어지던 바윗덩이가 분쇄되듯 사라졌다·
“왜 온 거예요?”
문득 궁금증 하나가 생겼다·
“여기 와 봤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을 거잖아요·”
호크아이는 데스브링거에게 새 화살을 건네받으며 물었다· 하필 데스브링거가 그를 돕고 있는 이유는 본래 그 역을 맡던 티마뉴크가 아크메이지를 보조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거 할 수 있는 게 있어서 좋겠습니다?”
“비꼬는 게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이에요·”
“본인 말이 재수 없게 들릴 수 있다는 건 알아서 다행입니다요·”
“왜요? 혹시 상처받았어요?”
“설마 그러겠습니까요· 북부인들 머릿속에 배려라는 두 글자가 없다는 건 세상 사람들 다 아는 사실인데· 애시당초 뒷골목 출신 애새끼들 말투는 지역 상관없이 싸가지 없는 편이고·”
다행스럽게도 부조하는 이가 바뀌었다고 해서 크게 불편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질로 따지면 티마뉴크보단 이쪽이 더 나았다·
눈치가 빨라서 그런가 아니면 반사 신경이 좋아서 그런가· 이쪽은 특별한 소통이 없어도 제때제때 필요한 걸 건네주었던 까닭이다·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요·”
그러나 그가 하는 말은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주작을 돕기 위해 재차 시위를 튕긴 호크아이가 새 화살로 손을 뻗었다·
“당신의 존재가 도움은커녕 민폐가 될 수 있는데도?”
“아까부터 계속 뼈 때리네 진짜· 하지만··· 예· 그걸 알아도 못 참았습니다요· 왜 어디 꼽습니까?”
“제가 꼬울 건 없죠· 당신이 방해가 되는 순간 전 망설임 없이 당신을 버릴 거니까·”
“아· 하여간 북부 새끼들 진짜 빠꾸없네·”
데스브링거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결코 호크아이의 손을 피하지 않았다· 그가 무슨 소리를 듣든 어떤 대화가 오가든 행동에서는 철저히 사감을 배제하는 게 확실히 용사의 일행으로 뽑힐 만한 베테랑이었다· 무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하여튼·
“그래도 좋네요· 만약 제가 발목을 붙잡을 것 같으면 바로 죽여 주십쇼· 제가 그러니까 저 때문에 나리나 샌님이 다치는 일 없게요·”
“···어려운 부탁은 아닌데 그럴 거면 처음부터 안 따라왔으면 되지 않았나요?”
“염병 말했잖아요· 보고 싶었다고·”
“이 싸움이?”
“아뇨· 이 싸움이 끝난 후 떠나 갈 사람이· 그렇다고 방해가 되고 싶은 건 또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호크아이는 순간 구역질 날 것 같은 기분을 참으며 전장 상황에 집중했다· 신나게 살점을 파헤치는 크러셔가 눈에 들어오자 기분이 좀 나아졌다·
“그건 굉장히 바보 같아 보이네요·”
“원래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죠· 그런 댁은 왜 여기 있습니까요?”
“전··· 악마를 잡는 게 업이니까요·”
“원래는 후방에 대기하기로 했잖습니까요· 그게 효율적이라고·”
“후방의 악마는 다 잡혔잖아요·”
“그래도요· 그 정도 했으면 쉬는 걸 택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요?”
호크아이는 가볍게 툭툭 던져지는 질문을 두고 점점 속이 메스꺼워졌다· 북부에선 보통 첫 번째 질문으로 끝나지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는 없어서 그런 것 같았다·
“남쪽 사람들은 다들 대화를 이렇게 끈질기게 하나요?”
“어이없네· 이건 댁이 먼저였는뎁쇼?”
“저는 궁금한 것만 물었잖아요·”
“저도 궁금한 것만 묻고 있는데 뭐라는 겁니까· 혹시 먼지바람에 귓구멍이라도 막혔습니까요?”
하나 상대는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다· 무력이 약한데도 용사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엔 언어적인 노련함도 포함된 모양이었다·
“아니면 여기까지 온 각오 하나 묻는 게 그렇게 비싼 질문이에요? 딱히 그러진 않을 텐데·”
“그럼 당신이 먼저 제대로 말해 봐요·”
“전 이미 설명하지 않았습니까요?”
“누군가를 보고 싶어서 왔다는 거요? 그건 이유가 아니에요·”
“이건 또 뭔 개소리야·”
데스브링거가 처음으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뻔했다· 그러니까 집었던 화살을 떨어트릴 뻔했단 소리다·
“내 각오를 왜 댁이 부정합니까요?”
“보고 싶다는 감정은 다 가짜예요· 거짓이라고요· 그러니 그건─”
“염병하네· 그럼 댁은 여기까지 오면서 댁 동료 보고 싶단 생각 한 번을 안 했습니까?”
“그건··· 경우가 다르죠·”
그렇지만 호크아이는 그런 상대를 탓할 수 없었다· 호크아이의 시선이 필사적으로 크러셔를 좇았다· 주작이 사탄의 눈알을 쪼며 뒤흔들림이 심해졌을 것임에도 크러셔와 두 사람은 잘만 그 어깨에서 버티고 있었다·
“지랄하네· 그게 어떻게 다른데요·”
“제가 크러셔를 보고 싶어 한 건··· 그냥 크러셔와 합을 맞추는 게 편하니까····”
“얼씨구·”
“최소한 저는 크러셔를 보고 싶다는 감정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오진 않았어요· 그러니까 그건 다른 일이에요·”
“댁 말입니다요· 아까부터 모순된 말만 하는 거 압니까요?”
그러다 살점을 파헤치던 무기가 깨어진 듯 세 사람의 입술이 동시에 욕설 모양을 그렸다·
“그 감정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오지 않았단 건 결국 일부는 그 감정에서 비롯됐단 거잖습니까요· 그런 주제에 뭐? 보고 싶다는 건 다 가짜라고?”
저래도 곧 새 무기를 꺼내겠지· 호크아이는 여태껏 정해져 왔던 수순을 되새기며 용사를 돕기 위해 새 화살을 받았다· 데스브링거가 한번 쥐었던 화살은 놀랍게도 미지근해진 상태다·
“내가 어처구니없어서 하는 말인데 감정은 언제나 진실만을 말합니다요· 단지 사람의 이성이 그것들을 호도하고 왜곡할 뿐이지·”
그리고 용사의 머리 위로 커다란 조각이 떨어져 내리던 시점 크러셔가 손을 번쩍 들었다· 들리지 않을 걸 알면서도 경쾌하게 움직이는 입술은 단 한 가지의 단어만을 품고 있다·
“그러니 다신 내 각오보고 가짜니 뭐니 지껄이지 마십쇼· 더럽게 불쾌하니까·”
호크아이·
그는 그 부름에 홀리듯이 응답했다·
화살이 용사 대신 크러셔를 향해 날아갔다·
* * *
“짜식! 역시 믿고 있었다니까!”
크러셔는 순식간에 배송된 철시를 두고 발을 들었다· 타앙! 위로 뛰어오르며 공중제비를 돈 그녀의 다리에 철시의 옆쪽이 부딪치며 화살이 대각선으로 튕겨 나갔다·
“잡았다·”
“최고의 몸놀림이었소·”
더불어 튕겨 나간 철시는 베르세르크의 손에 붙잡혔다· 날아가는 크러셔를 붙잡은 미스틸테인이 농담 삼아 엄지를 추켜세웠다·
“다시 도끼로 패야 될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군·”
“그러니까 말이야· 그러게 뾰족한 무기 좀 넉넉히 넣어 두지 그랬어?”
“아쉽게도 앞선 전투에서 소모된 게 컸다·”
기존에 뚫은 구멍을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날붙이가 남아 있었다면 그녀는 그것을 진작에 꺼냈을 것이다·
“아무튼 됐어! 박아!”
“이건 나가 전문이제·”
크러셔가 사탄의 어깨에 납작 엎드리는 사이 베르세르크가 미스틸테인에게 철시를 던지듯 넘겼다· 조금 가는 창처럼 보이는 철시가 미스틸테인의 손에 잡히는 순간 화려하게 회전하며 그의 어깨에 안착했다·
“어디 사타구니꺼졍 뚫어 볼까!”
“이 새끼 사타구니가 있긴 해?”
“나도 모른다·”
연이어 미스틸테인의 다리가 어깨에서 머리로 이어지는 천과 머리카락을 밟고 수직 달리기를 했다· 베르세르크처럼 3층이나 타고 올라가는 수준은 아니되 2층쯤에서 도약하여 창을 날리는 솜씨가 마치 극한의 투창술을 보는 듯했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조그만 틈을 향해 미스틸테인이 날린 철시가 빨려 들어가듯 적중했다·
“잘 박혔는데!”
“이건 안 꺼내지겠군· 하나 더 받아 와라·”
“아하핫 얼마든지!”
할버드를 구멍 틈에 끼운 베르세르크가 상처를 좀 더 찢어 내는 동안 쾌할하게 웃은 크러셔가 폴짝 뛰었다·
“호크아이! 한 발 더 내놔!”
“참 신기하다니까네· 이 거리를 뚫고 우릴 본다는 게·”
“좋아! 화살 온다!”
미스틸테인은 크러셔가 또 한 발의 화살을 받아 주는 사이 힐끔 주작과 용사쪽을 살폈다·
주작은 표적을 바꾼 사탄으로부터 살아남는 데 급급하고 용사는 주작이 벌어 주는 틈을 이용해 사탄의 뱃가죽을 전부 갈아 버리다시피 하고 있다·
“진짜 괴물인가····”
한데 그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다소 탈력감이 들기도 했다· 그들 세 사람이 노력해서 내놓은 결과물이 고작 생채기인 데 비해 용사는 혼자서 치명상을 내고 있으니 당연했다·
“이래도 안 죽는 게 참 대단혀·”
하나 그런 허탈감보다 더 큰 감정은 역시 질린다는 쪽이다· 아무렴 정작 뱃가죽이 갈린 놈은 여전히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그런 꼬라지를 보고 있자면 이게 정말 죽일 수 있는 생물이긴 한가 의문이 든다·
“야! 왔다!”
“오·”
미스틸테인은 던져진 철시를 매끄럽게 받아들며 몸을 회전시켰다· 강풍에 힘입어 빠르게 회전한 몸이 곧장 크러셔와 베르세르크가 찢어 내는 균열로 철시를 박았다·
콰직!
앞서 박힌 화살 위로 정확히 꽂힌 새 철시가 그것을 아래쪽으로 짓눌렀다· 으드드득· 미스틸테인이 힘을 줄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아래로 파고드는 화살이 꼭 말뚝 같았다·
“한 번 더 뛰어야겠구마잉· 상처 찢는 건 좋은디 맞지 않게 조심하소·”
“하 빗맞힐 정도로 실력이 허접했나?”
“거 너무 도발하지는 말고·”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 화살이 박히지 않았을 때 미스틸테인은 그것을 도로 꺼냈다· 그러곤 처음에 그러했듯 사탄의 머리를 타고 올라 상공에서 창을 내리찍었다·
콰직! 한 점으로 집중된 창이 원래박혀 있던 철시를 밀어내다 못해 관통하며 안쪽 살점에 철조각을 흩뿌렸다·
“간 다!”
으지지직!
“좋아!”
아울러 틈에 할버드날을 걸고 옆으로 당기던 베르세르크와 크러셔에게도 신호가 왔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렵냐는 듯 살가죽이 추가로 찢어지며 가죽이 벗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정도면 들어갈 수 있겠는데!”
“그럼 먼저 들어가가꼬 굴 좀 파고 있으소· 이짝은 더 찢어 놔야 몸을 구기 늫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네·”
뿔이 잘리며 150도 채 되지 않게 된 크러셔와 달리 180에 달하는 미스틸테인과 2m가 넘는 베르세르크는 어딘가로 비집고 들어가기 힘든 사람이었다·
해서 그들은 크러셔를 먼저 구멍 안쪽으로 들여보낸 후 그들은 구멍 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쫘아악!
“아하하! 이 새끼 살점은 적당히 찢을 만해서 좋은데!”
“거 너무 떠들지는 마소· 입에 피 들어갈라·”
“피는 이미 먹을 만큼 먹었어!”
“이따 마기침식이 무섭지도 않남·”
그사이 찢어진 살갗 아래로 들어간 크러셔가 안쪽 지방층과 근육을 악력으로 찢어 바깥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눈을 파헤치는 것처럼 빠르진 않았으나 최소한 목 안쪽의 살점을 전부 떼 내 버린다는 목표는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했는디 이짝은 눈 하나 깜짝을 않는구만·”
“복부가 터져 나가고 있는데 이쪽으로 시선을 돌릴 리가·”
“하긴 그것도 그렇소·”
사탄 입장에서 이 공격이 거슬릴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어깨 좀 파이는 것이 배를 따이는 것보다 후순위로 여겨질 거란 건 확실하다·
미스틸테인이 베르세르크가 건넨 작은 도끼 창을 틈새에 걸었다·
“그 작대기는 언제 쓸 거지?”
“작대기라니 말 너무 심한 거 아니오·”
그의 창이 다소 나무결 같은 무늬를 하고 있긴 하지만 나뭇가지 소리 들을 정도는 아니다· 미스틸테인은 킥킥 웃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
“어데 심장 같은 게 느껴지며는 그때 날릴 거요·”
“나쁘진 않군·”
찌지직· 바위 같은 살결이 조금씩 갈라지기 시작했다·
“야 이 새끼 진짜 심장 비슷한 거 있나 본데?”
그리고 그들이 사탄 기준으로 한 움큼 살점을 파내는 데 성공한 시점 건틀릿이 붉게 물들 정도로 손을 움직이던 크러셔가 피투성이굴 안쪽에서 손가락질을 했다·
“맥 뛰는 소리가 들려· 인간으로 치면 성대 쪽 부분에·”
“···그거 꽤 괜찮은 소식이군·”
처음엔 단순히 아래로 파고들 목적이었던 그들의 굴 파기가 어떠한 방향성을 띠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