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1화 그리하여 복될 것이며 (14)
호크아이는 정수리에 바위가 내리꽂혀도 개의치 않는 도리어 머리로 바위를 두 쪽 내 버리는 용사까지 확인한 후 활을 잠시 내렸다·
그의 머릿속은 막 화살을 잡아채는 크러셔의 모습으로 가득 차는 중이다·
“그치만··· 보고 싶다는 감정 하나 때문에 목숨을 거는 건 역시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악마가 수작을 부린 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정신병 걸린 사고를 할 수 있어요?”
“진짜 안 미안한 발언인데 댁 정수리 한 번만 쪼갈라 봐도 됩니까?”
“그건 싫어요· 죽잖아요·”
“그런 사람이 왜 왜 정수리 쪼개고 싶어지는 말만 하는데요·”
그는 정말 크러셔 하나 때문에 이 자리까지 온 걸가? 자칫하면 죽을지도 모르는 마역의 최중심부에?
“그럼 당신은 대체 왜 목숨을 헌신짝처럼 내던져요? 그리고 보고 싶어서 왔다면서 정작 방해될 것 같으면 죽어도 좋다는 태도로 임하는 것이 정신병이 아니면 뭔데요?”
하지만 그는 이곳이 위험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위협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는 장거리 사격이 가능하고 그러니 후퇴도 상대적으로 쉽고· 그리고····
“아니 하·”
호크아이는 뒷목을 주무르며 한숨을 뱉는 데스브링거를 외면한 채 빠르게 활을 들었다· 호크아이가 신호를 주어서 어쩔 도리 없었다· 두 번째 화살이 빠르게 배송되었다·
“그래요 미친 인간이랑 대화하려고 한 내가 등신 새끼지· 네· 제가 좀 정신 나간 인간입니다요· 됐습니까요?”
“알면 왜 고치지 않아요?”
“시발 정신병이 고치고 싶다고 뚝딱 고쳐지면 그게 병입니까요? 그리고 내가 당신 말을 인정한 게 실제로의 긍정 의미는 아니거든요? 본인도 동료 때문에 여기에 왔다고 한 주제에 어이가 없어서는·”
“저는 제 목숨 하나는 건사할 자신 있어요·”
“아 퍽이나 그러시겠습니다? 제가 보기엔 전열이 다 쓰러지는 순간 우리쪽도 모가지가 싹 다 날아갈 것 같은데·”
“크러셔가 질 리 없어요·”
호크아이는 두 번째 화살이 정상적으로 도착한 걸 확인한 후 한숨 돌렸다· 주작의 불꽃 때문에 크러셔의 눈이 충혈된 것처럼 보여 괜스레 기분이 좋지 않았다·
“크러셔가 질 리 없어요·”
그래도 크러셔는 언제나처럼 ‘재밌었다!’ 하고 돌아올 테니까·
“거 주먹 나리에 대한 믿음이 강하십니다요· 그런데 만약 못 돌아오면요?”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그래요 전장 나간 사람한테 이런 소리는 하는 게 아니긴 하죠· 근데 그거 아십니까요? 주먹 나리에 대한 댁의 강한 믿음도 어떻게 보면 정신병이라는 거?”
“이게 왜 정신병이에요? 전 당연한 걸 말하는 거예요·”
“그게 왜 당연한데요?”
“그건·”
호크아이는 데스브링거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기실 그녀가 사지 멀쩡히 귀환한다는 건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게 진실이었으므로·
“그건····”
“것봐요· 동료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누가 누구보고 정신병이라는 건지·”
“이건 당신과 달라요·”
“제발 지랄 좀 말고요·”
마찬가지로 그가 죽지 않을 거란 보장도 없다· 그래 사실 그는 이 자리가 사지가 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왔다·
어째서? 크러셔가 이곳에 있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그것을 깨달은 순간 호크아이는 진심으로 토가 나올 것 같았다·
“저는 크러셔를 사랑하지 않아요·”
“허 지랄하지 말라니까 이젠 뜬금없는 개소리를 지껄이네·”
그렇지만 이건 사랑이 아니다· 이것이 사랑일 리 없다·
이것이 사랑이면 그는 그는····
“그리고 그거 사랑 맞습니다요·”
일순 그의 뒤통수를 데스브링거가 한 대 쳤다· 어찌나 은밀한지 호크아이는 뒤통수에서 통증이 느껴지고 나서야 그가 일어선 상태임을 알아챘다·
“당신이 정확히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지는 저도 모르지만 성애든 우애든 뭐든 간에 그것도 사랑일 거라고요·”
“···하지만 사랑은 역겹고 추잡한 거예요· 해 봤자 의미 없는─”
“사람 작작 빡치게 하고요·”
빠악!
뒤통수에 한 번 더 충격이 가해졌다·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댁은 돌아가서 사랑의 정의나 다시 배우십쇼· 색욕의 대악마 때문에 사랑이란 단어에 민감한 건 아는데 그걸 고려해도 댁 머릿속은 좀··· 돌아 버린 것 같으니까·”
세 번째· 호크아이는 뒤통수를 손으로 확 감싸 방어했으나 상대는 응용기로 등짝을 후려쳤다· 두꺼운 가죽옷 너머로도 맵싸한 아픔이 퍼졌다·
“대악마 때문에 호의를 의심하게 된 건 뭐 그렇다 칩시다· 그건 저도 이해하는 부분이니까· 그래도 자기 감정을 두고 멋대로 재단하는 건 자제하십쇼· 최소한 자신이 무슨 감정을 품고 있는지는 알고 있어야 그걸 경계하든 말든 할 거 아닙니까요·”
“···그만 좀 때려요· 때리지 않아도 경청할 거니까·”
“내 속이 답답해서 때린 거니까 받아들이십쇼· 꼬우면 댁도 치시든가·”
“····”
호크아이는 데스브링거의 말을 들으며 입을 꾹 다물었다· 속이 매스꺼웠다·
“이게 정말 사랑이면·”
동시에 지금껏 그가 죽여 온 수십 수백 명의 숭배자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게 정말 사랑이면 어떡해요·”
그들은 전부 애절하게 사랑을 했고 서로를 위해 목숨을 걸었으며 그렇게 정신 나간 것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쳤다·
사랑 때문에 그를 홀로 두고 간 부모님처럼· 사랑으로 인해 그를 배신한 타냐처럼·
“저 때문에 크러셔가 괴로워지면 어떡해요····”
그러면 그도 그렇게 될까? 추잡하고 역겨운 그의 정신병이 또 하나의 피해자를 만들어 낼까·
“어떡하긴 뭘 어떡해요·”
호크아이가 저도 모르게 눈물방울을 떨어트리는 사이 데스브링거는 담담하게 속삭였다·
“괴롭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상대가 받아 주면 다시 손잡고 나아가면 되는 거지·”
그건 어찌 보면 스스로에게 뇌까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받아 주지 않으면?”
“그땐 슬픔을 안고 헤어져야죠 뭐· 근데 제가 본 주먹 나리는 사과하면 받아 줄 사람 같던데요?”
“···맞아요 크러셔는 관대해요·”
“그럼 됐네요·”
데스브링거가 화살을 새로 뽑아 들었다·
“깨달았으면 어서 움직여요· 사과하고 싶은데 사과할 기회도 없어지기 전에·”
화살은 여전히 미지근했다·
* * *
인퀴지터는 슬슬 열이 오르기 시작한 몸을 두고 가쁜 호흡을 뱉었다· 악의 종주인 만큼 상대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싸움이 이렇게 길어지니 그녀로서도 슬슬 벅차단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다·
“···신이시여!”
그래도 아까 사탄이 아무 말이나 주절거리던 때보단 낫다· 놈이 하는 말은 믿고 안 믿고를 떠나 하나같이 듣기 역겨운 소리뿐이었으니까·
“저에게 단죄할 힘을···!”
거기에 여태껏 있었던 싸움을 토대로 판단하건대 이 정도는 무리라고도 할 수 없다· 아무렴 아직 쓰러질 것 같은 느낌도 없고 한계라는 생각도 아직인 상황 아닌가·
하여 인퀴지터는 더 강하게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세계와 그녀가 연결되는 압도적인 충만감과 그녀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그리하여 해일에 쓸려 가는 모래알이 된 무력감이 손끝 발끝으로 파고들었다·
“하압!”
하나 그녀는 그 힘에 밀리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자신의 팔다리처럼 다루어 냈다· 세상 모든 생명력을 한데 모아둔 것처럼 광할하고 경이로운 금빛이 거대한 망치가 되어 그녀의 손을 따라 휘둘러졌다·
완전히 통제되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날리는 금빛의 가루가 불꽃처럼 혹은 별처럼 태양처럼 마기에 절어 든 세상을 정화했다·
콰앙!
더불어 그 망치가 사탄의 뱃가죽을 후려친 순간 그 단단한 복부에서 거대한 폭발이 여럿 일었다· 마기와 신성력이 닿으면 터진다는 성질을 이용한 공격이었다· 사탄의 겉면이 지글지글 끓어오르며 안쪽의 어둠을 드러냈다· 살점과 근육만 안쪽에 갇혀 있던 내부 장기를 대신하는 힘이었다·
[거짓나무의 개가···!]
그녀는 그 속으로 몇 개의 고농축 신성력 탄을 던져 버리며 다시 한번 힘을 응축했다· 효율이 좋지 않다 해도 그저 뭉쳐진 채 길쭉하게 던져질 힘이었다·
[용사야!!]
그리고 그녀가 메이스를 주축 삼아 황금과 번개로 이루어진 창을 쥐었을 때 주작이 재차 사탄의 눈을 쪼았다·
[불꽃이 온다!]
혹시라도 사탄이 피해 버릴 가능성을 제로로 만들며 주작은 그렇게 외쳤다· 그 대가로 주작의 몸통은 사탄의 손아귀에 잡혀 찢겨 나갔지만 정작 주작의 외침엔 고통 한 점 담긴 기색이 없다·
“갑니다!”
[대비해!]
찢어진 조각 중 하나에서 몸을 재생시킨 주작이 작아진 몸으로 사탄의 어깨에 스며든 순간 인퀴지터는 들고 있던 창을 던졌다·
[어딜!]
어깨에 손을 가져다 대려던 사탄이 다급히 남은 단두대 칼을 방패 삼아 들었다· 물론 그걸로 막힐 힘이었다면 이렇게 시간을 끄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던진 창을 향해 손을 뻗은 인퀴지터가 집중을 위하여 소리를 와악 질렀다· 나아가던 창이 단두대에 닿는 순간 사방으로 퍼지며 사탄의 온몸을 휘감았다·
“넌 반드시 죽는다!”
아 몸에서 떨어져 나간 힘을 제어하는 것도 힘든데 이렇게 멋대로 모양을 바꾸는 건 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그리고 그걸 어렵지 않게 해낸 모험가님은 얼마나 대단하신 걸까·
인퀴지터는 새삼 그녀의 우상에 대해 감탄하며 다시 집중에 집중을 가했다· 온 정신을 그쪽으로 몰아넣은 까닭에 안구 속 핏줄이 터지고 입술이 이에 깨물려 피를 줄줄 흘렸지만 그조차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다·
발광하는 빛이 그녀의 모든 피를 날려 버리는 순간 그녀가 끌어올렸던 모든 힘이 사탄을 가두는 족쇄가 되어 그를 불태웠다·
콰직!
동시에 사탄의 목 안쪽에서 작렬하는 홍염이 터져 나왔다·
[빨리 튀자!!]
“아하하핫!!!”
“아 음· 저거 아직 덜 터진 것 같은디?”
“그럼 던져라· 심장 비스므리한 걸 발견하면 작대기를 던지기로 하지 않았나?”
“오····”
그 불꽃이 속에 품고 있는 것은 세 명의 사람이라· 주작이 부순 살갗 사이로 루비처럼 반짝이는 광물이 쿵 쿵 맥동했다·
“사내가 돼서 약속을 어기며는 안 되겄제·”
또한 넘실거리는 붉음과 노랑 사이에서 미스틸테인이 그의 창을 들었다·
“날아· 태양을 꿰뚫을 것처럼·”
바람에 흩날리는 밀처럼 부드럽게 일렁거리는 광채 속으로 그 속에서 번쩍이는 삿된 태양을 향해서· 겨우살이 창이 직선으로 날아갔다·
“모든 생명을 재로 이끄는 열기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아울러 창이 사탄의 맥동하는 보석으로 나아가던 그 시점 모두의 조력하에 준비를 외친 이가 주문을 외웠다·
“재에서 생명을 끌어올리는 광채여· 우리를 축복하소서·”
그녀의 곁에 선 재단사와 활잡이 도적 두 명의 기사 두 마리의 신수가 그녀의 뒤편에서 그녀를 수행했다·
“어둠과 공존하고 어둠을 배척하는 첫 시작점이여· 우리를 축원하소서·”
신수가 피운 꽃이 한순간 불꽃으로 화했다·
“그러면 우리가 복될 것이오·”
동시에 신성력에 감긴 사탄의 주위로 고리 모양의 열원이 형성되었다· 결코 바깥으로 표출되지 않는 오직 안으로만 발화하는 열원이었다·
“그렇게 복될 것이며·”
고리는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위로 갈수록 크기가 커지는 여러 개의 링을 기둥에 차곡차곡 쌓아 두듯 그녀가 한 번의 복을 외칠 때마다 하나의 고리가 생겨났다·
“그래도 복될 것이고·”
세 번째 고리· 안으로 확장되는 열기가 더는 정면으로 바라보기 힘들 수준의 광채를 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복될 것이니·”
네 번째 고리· 이런 중에도 고리는 점차 회전을 시작하여 더 많은 열기를 일으켰으니 수백 미터 떨어진 그들에게도 점차 온후한 공기가 다가왔다·
“그럼에도 복될 것이고·”
다섯 번째 고리· 이제는 소용돌이처럼 공기를 끌어들이던 고리가 갑자기 크기를 줄였다· 양쪽 너비만 비교한다면 두 번째 고리와 동일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복되도록·”
그리고 첫 번째 고리와 동일한 폭의 마지막 고리가 생성되었을 때 그것은 정면에서 보았을 때 원처럼 보이는 여섯 개의 직선이 되었다·
“영원히 타올라 주소서·”
위에서부터 녹아내리는 고리가 기어이 구체를 이루어 사탄을 가두고 그대로 압축되었다 그대로 터졌다·
콰앙!
하늘 그보다 더 높은 곳까지 향할 것처럼 모든 열기가 위와 아래로 뿜어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