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4화 하지만 복될 것이기에 (3)
나는 아주 당당하게 제 범죄를 실토하는 -그러면서 반성의 기미라곤 조금도 없는- 개새끼를 두고 심호흡을 시도했다· 등과 갈비뼈 척추가 펴지도록 크게 숨을 들이켜고 뱉을 땐 스으으 소리가 날 정도로 얕고 길게 잇는 호흡이었다·
“시발 진짜 뭐 하나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네·”
그러나 그 긴 호흡 끝에서 나오는 건 냉정을 되찾은 이성의 뇌까림이 아니었다· 기어이 마지막 억제기까지 풀려 버린 화의 개막사였지·
[하 하·]
기실 저 새끼가 순순히 죽어 주지 않으리란 건 알고 있었다· 아무렴 저치는 가장 나약한 몸으로 지옥에서 무려 삼백 년을 버텨 온 악바리 아니던가· 심지어 그냥 버틴 것도 아니고 천천히 힘을 쌓아 2인자의 자리까지 꿰찬 독기의 산물이다· 급박하게 처리한 계약으로 모든 걸 처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그러니 이런 뒤통수에도 새삼스럽게 배신감이 들거나 하진 않는다· 악착같이 약점을 찾아 물어뜯는 짓에도 경멸감보단 ‘어 그럴 줄 알았어·’하는 여상함이 먼저 들 정도로·
[화를 내· 네 바다에 잠긴 용암을 끌어내라고!]
함에도 지금 화가 치미는 이유는 그거다·
녀석이 이렇게 나올 수 있다는 걸 알았음에도 미리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나 자신의 무능· 짧게나마 고민해 보았지만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도통 떠오르지 않거나 떠올라도 그 이후가 장담되지 않는다는 회의감· 앞서간 인퀴지터를 향한 걱정· 내 뒤에서 쩔쩔매며 눈치만 보는 빌어먹을 애송이의 존재까지·
“야·”
켜켜이 쌓아 왔던 환멸감이 결국 내 이성 줄을 잘랐다· 그건 정말 끔찍하게 후련하고 정말 시원하게도 영락하는 기분이었다·
내 손이 메피스토펠레스의 목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넌 진짜 비열하고 추잡한 새끼야·”
메피스토펠레스는 아닌 척 누군가와 닿는 것을 무서워한다· 대상이 남성형이면 특히 그렇다· 접촉에 대한 그녀의 기호는 호불호를 떠나 공포와도 맞닿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걸 알면서도 굳이 그녀를 강제로 잡고 넘어트렸다· 키 큰 성인 남성에게 깔려 버린 상황이 되자 자신만만하던 악마의 입가가 설핏 굳었다·
“남을 끌어내리는 게 그렇게 재밌냐?”
그게 속 시원하면서도 불편하다· 나는 정말 폭력이 싫은데· 신체적 폭력이건 정신적 폭력이건 종류 상관없이 그게 남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이라면 전부· 하다못해 상처를 직접적으로 주는 게 아니라 간접적으로 건드리는 행위조차도·
“네 몸에 묻은 오물 남에게도 치덕치덕 묻혀서 똑같이 만드는 게 재밌냐고 시발아·”
하나 그중 가장 경계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상대의 약점을 후벼 파는 식의 공격과 그로 하여금 내 이익을 챙기는 짓이라· 나는 내가 가장 혐오하는 행위를 지금의 내가 행하고 있음에 염증을 느꼈다·
동시에 역겨움을 참고 목을 쥔 두 손에 더한 힘을 주어 그녀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도록 막았다· 심상에서 호흡이란 게 별 의미 없는 행동임을 알아도 그냥 했다· 이건 결과물을 위해 취하는 동작이 아니라 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어서 행하는 거였다·
[···그래!]
그리고 메피스토펠레스가 긍정했다· 그녀의 손에서 생겨난 단검은 한때 그녀가 왕위를 찬탈할 때 쓰던 것과 동일한 형태다·
[난 네놈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위선 떠는 게 제일 꼴 보기 싫어! 인간이라면 자기 자신이 가장 먼저인 게 당연하잖아! 너도 결국 너 자신만을 위해 움직이면서 왜 아닌 척 착한 척 지랄하는 거냐고!!]
그녀는 그 단검을 휘둘렀으나 그 칼날은 끝내 내 목에 박히지 않았다· 푸욱· 전부 나를 대신해 막아서는 누군가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죄 죄송해요· 끼어들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느샌가 내 곁으로 다가온 소년이 메피스토펠레스의 단검을 자신의 손으로 붙잡았다· 칼날에 손가락이 반쯤 잘려 나갔지만 소년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손에서 흘러나온 피가 순식간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이제 말 안 할게요· 죄송합니다·」
내가 그것을 물끄러미 응시하자 소년이 빠르게 사과하며 물러났다· 아무래도 앞선 지시를 어긴 것 때문에 내가 그에게 화가 났을 거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내가 침묵하는 동안 파우스트가 단검을 꾸깃꾸깃 빼앗아 뒤로 빠졌다·
“····”
그 모습에 내 목이 턱 막혔다· 화 때문인지 슬픔인지 차마 분간할 수 없는 응어리가 혀 뿌리에 고여 성대와 기도를 같이 틀어막는 기분이었다·
[하! 지극정성이구나 애송아! 어차피 이 남자는 널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건데!]
「그레트헨은···!」
메피스토펠레스의 말에 반사적으로 응대하려던 파우스트가 아차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서 또 내 눈치를 보았는데 나는 그 꼬라지에 존재하지도 않는 넥타이를 풀고 싶어졌다·
진짜 두 놈 다 쌍으로 사람 좆같이 만드는 데 뭐가 있었다·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이 먼저야· 그레첸 네놈은 뭐 다를 것 같아?]
차마 손을 뗄 수는 없고 안압은 치솟아서 눈이 지끈거리고· 별 환장할 상황 속에서 메피스토펠레스가 목소리를 도로 낮추었다· 사근거리는 것처럼 부드럽고 유혹하는 것처럼 은근한 말씨였다·
[너도 이기적이긴 매한가지야· 지금도 봐 봐· 네가 저곳으로 가려는 건 결국 네 인간성 한 조각을 위해서잖아· 저들을 두고 보았다간 떳떳할 수 없다는 고집· 그 아집 하나 때문에 이 꼬맹이의 육신을 판돈으로 걸고 있다고!]
또한 그녀의 말투는 점점 격앙되는 쪽으로 이어졌다· 나를 질타하고 비난하여 어떻게든 내 마음에 상흔을 남기겠다는 심정이 노골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이곳에 남으면 살 수 있는데! 용사만 버리면 저 꼬맹이를 살릴 수 있는데! 결국 너는 이 꼬맹이보다 용사가 더 중요한 거잖아! 구해 준다고 말해 놓고 배반하는 거짓말쟁이! 위선자!]
하나 그 의도가 명명백백해도 휘둘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상황이라·
나는 네가 뭔데 감히 나한테 그런 말을 지껄이느냐 외치고 싶어졌다· 마음 한구석에선 메피스토펠레스의 말이 맞긴 하다고 작게 긍정하는지라 더욱 그랬다· 지레 찔린 사람들이 화를 더 내는 것처럼 내 마지막 남은 양심이 펄쩍 뛰며 격정을 토했다·
[결국 너도 똑같아·]
그리고 내 화가 기어이 어떠한 형상으로 화하려던 순간 귓속으로 빼액 하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닥쳐 버러지!!!」
파우스트였다·
「이분은 그레첸께서는 위선자가 아니야!!」
처음은 말을 얹는 꼬맹이가 더 역겹게 느껴졌다· 내가 이 소리를 듣게 된 이유가 뭔데 이 모든 고난이 누구 때문인데· 쌓이고 쌓인 화가 기어이 피아 구분조차 못 하게 되어 버린 까닭이었다·
「입이 있다면 똑바로 지껄여 쓰레기! 만약 그레트헨께서 진정 위선자라고 해도 너 따위보단 백 배 천 배는 나은 분이니까! 너까짓 호로 잡놈이 감히 비난해도 될 분이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그 화가 상대를 가리지 않고 터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남은 이성 한 줄기가 말했다·
파우스트는 아이다· 빌어먹게도 어린 다 자라지 않은 미성년이다·
「나보다 용사님을 우선하는 것? 그게 왜 그레첸 탓이지? 용사님께서 나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 내 더러운 육신 따위 이 세상이나 용사님과 비하면 당연히 후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그리고 저 망할 애새끼는 삶이 너무도 가혹했던 탓에 자신의 생명을 중하게 여길 줄조차 모른다····
「그레첸 듣지 마세요· 저 자식은 그레첸을 괴롭히고 싶을 뿐이에요· 도저히 살 방도가 없는 것 같으니까 마지막까지 지랄 발광을 떠는 것뿐이라고요·」
[하 애송이· 거짓말 마· 너도 사실은 기대하고 있잖아! 살 수 있다는 것에 희망을 품고 있었잖아!]
「지랄 말고 닥쳐· 난 단 한 번도···!」
열정적으로 반박하던 파우스트가 자신의 말실수를 깨닫고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파우스트의 반박이 없더라도 나는 본능적으로 메피스토펠레스의 말이 거짓임을 깨달은 상태였다·
사실 넘어가고 싶어도 넘어갈 수 없는 거짓말이 바로 저것이기도 했다· 파우스트가 가장 먼저 잃어버린 인간성은 아마도 삶을 갈구하는 생존 본능이었을 터이므로·
「···저 그레첸께서 저를 위해 노력하는 걸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니예요· 다만 저는··· 그러니까·」
“너는·”
그래서 화가 풀렸다· 이걸 과연 풀렸다고 표현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지금 내 머리를 잠식하고 있던 대부분의 감정이 한순간에 부질없게 느껴졌다·
“너는 정말 나쁜 아이야·”
다만 슬펐다· 하염없이 슬펐다·
[···왜 왜 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위선자 새끼! 또! 또 가증스럽고 역겨운 짓을···!]
나는 순식간에 범람하여 심상세계를 가득 채우는 빗물을 보았다· 사람이 흘린 거라 그런지 생각보다 춥지는 않았다· 소금이 함유되어 있어 조금 짭짤하긴 했지만 여튼·
“그리고 너는····”
물에 잠겨도 호흡에는 문제가 없다· 그렇기에 나는 메피스토펠레스를 가만 내려다보았다·
불꽃이 사라진 자리에 스며드는 상념은 ‘불쌍하다·’ 한마디로 축약이 가능할 감정이다·
“가여운 놈·”
[···!!]
참고로 진심으로 마음을 내주고 공감하며 같이 슬퍼해 주고 싶은 느낌의 연민은 절대 아니다· 단지 화면 너머 파멸이 예정된 빌런을 보며 ‘정말 안타까운 이야기야·’라고 한마디 뱉은 후 영상을 끄는 그런 느낌에 더 가까웠다·
[이 개자식이!]
하므로 화면 너머의 빌런에게 이 이상 화내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목을 옥죄던 손을 풀었다· 그녀가 그것을 두고 도리어 눈을 표독스럽게 치떴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철회해 철회하라고!!]
나는 그녀를 내려다보던 자리에서도 냉큼 비켜 섰다· 이제 와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나보다 작은 여자를 강압적으로 깔아뭉개는 건 역시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당장 그 말···!]
“그리고 깔아뭉갠 거 미안했다· 아무리 화가 났어도 해도 되는 거랑 하면 안 되는 게 있는 거였는데·”
내가 듣기에도 무미건조한 도저히 사과라고 보기 힘든 말이 튀어 나갔다· 사과는 본디 정성과 진심이 어려야 하는 것이지만 나도 이것만큼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상황이 상황이고 대상이 대상이다 보니 최선을 다해 말을 꺼내도 이 정도밖에 나가지 않았다·
[···너 너·]
“아 또· 듣고 보니까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나는 이기적인 놈이야·”
「···! 그레첸 아니예요· 그레첸은 절대···!」
“그런데 꼬맹이 말마따나 내가 이기적인 것과 별개로 네가 지적할 부분은 역시 아닌 것 같다· 그렇지 않냐?”
머리가 다시 차분하게 식는다· 여전히 뒷목은 뻣뻣했지만 그마저도 몇 번 주무르니 좀 나아졌다· 어딘가 허탈해진 시선이 물에 잠긴 세계를 응시했다· 신이 노해 홍수를 벌인 것 같은 풍경은 기이하게도 몽환적이면서 편안한 느낌이 있다·
“그리고··· 내가 좀 더 생각해 봤는데·”
나는 그 고요한 대해 아래를 걸어 내가 피운 사과나무 집으로 다가갔다· 꽃까지만 피우고 열매는 누군가의 몫으로 남겨 둔 사과나무 집이었다·
“내가 지옥으로 못 넘어가고 여기 남는다고 해서 네 미래가 달라질 것 같진 않단 말이지? 지옥으로 도망간 것도 일단 격퇴로 쳐줄 테니까·”
[···!]
나는 그 사과나무 집 앞 그네 벤치에 앉아 몸을 뒤로 기댔다·
“사살이든 추방이든··· 최소한 이 세계에서 사탄이 제거된 건 사실이니 게스타스는 내게 약속했던 보상을 줄 수밖에 없어· 용사와 계명이 사탄을 잡고 돌아오건 돌아오지 않건 간에 나와 그의 거래 조건은 이미 달성되었으니까·”
보그르르·
벤치가 뒤로 살짝 밀리고 그네의 사슬에서 쇳소리가 나는 대신 기포가 뽁뽁 올라왔다· 그런 기포 방울에 비치는 우리의 모습은 이리저리 굴절되어 실로 기이하기 짝이 없다·
“자 그러면 메피스토펠레스·”
나는 그 반사광 속에서 보이지 않는 가면 너머를 가늠했다· 메피스토펠레스가 나를 지옥으로 못 가게 막는 건 그녀의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밑밥을 깔기 위한 기반 작업일 것이라는 믿음 하나만을 붙든 채로·
“거래를 해 볼까?”
자 그래서· 지옥에 가지 못하게 됐을 때 더 손해를 보게 되는 건 과연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