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화 하지만 복될 것이기에 (7)
나는 적절히 들어온 계명의 서포트를 인지하자마자 반사적으로 입꼬리를 꿈틀 움직였다· 이후 내가 움직일 방향을 전혀 방해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내가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일정 부분을 계명이 기가 막히게 챙겨 줬던 까닭이다·
까앙!
그사이 나와 계명의 검에 막혔던 사탄의 칼이 순순히 튕겨 나갔다· 원한다면 몇 초쯤 더 힘겨루기를 지속할 수 있으나 사탄 본인이 바라지 않아 회수한 느낌의 튕김이었다·
이어 사탄이 붉은 대지의 자락 사이에서 새까만 촉수 같은 것을 네 개 꺼내었다· 사탄이 검을 회수하는 동안 우리를 견제할 추가 공격이었다·
“쳐 내겠다·”
그렇지만 그 촉수가 온전히 튀어나오기도 전 팔락거리는 옷자락만으로 공격을 예측해 낸 계명이 가볍게 한마디를 뱉었다· 많은 것이 생략된 한마디였지만 그녀가 쳐 낼 게 무엇인지 몇 개를 쳐 낼 것인지는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그녀의 검이 고귀한 보석의 광채를 두른 채 지그재그 모양을 그렸다· 내가 진행할 경로는 완벽하게 남겨 둔 대신 촉수는 완벽하게 갈아 버리는 검로였다·
“쏘지·”
하면 나도 그녀의 조력에 보답이란 걸 보여 줘야 하지 않겠나· 나의 발이 대지를 부수고 물러나는 사탄의 뒤를 쫓았다·
그러곤 검을 찌르기형으로 돌려 그 끝에 까만 마력을 모았다·
반짝·
라텔의 포인트가 순간적으로 갈라진 십자형 광채를 토해 냈다· 노리는 곳은 당연하게도 단 한 곳 아까 사탄이 루비 같은 심장을 숨긴 장소다·
[바닥·]
다만 쏘아 낸 광선이 사탄에게 닿기도 전에 나는 머릿속으로 전달되는 조언을 따랐다· 내몸이 옆으로 빠지자마자 대지가 쾅쾅 치솟았다·
계명이 조금 걱정되었으나 다행스럽게도 솟아오르는 지면 너머로는 점점 멀어지는 녹색 빛깔이 있었다· 울룩불룩 솟아오르는 대지를 피해 내 몸이 뒤로 뒤로 뒤로 빠졌다·
콰앙!
그러다 시야 너머로 사탄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표적은 아마도 계명· 가진 마기의 양이 적어 힘으로 찍어 누르는 공격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그녀였다·
“그건 안 되지·”
마기 부족이 문제지 기량과 기교 지능 순간 대처 능력만 따지면 여기서 계명을 따라잡을 사람은 없다· 그러니 아군이란 점을 배제해도 여기서 그녀가 리타이어되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아직 치솟기 전의 대지를 밟으려던 내 발이 녹아내리듯 불꽃으로 화했다·
샤라라락!
화염은 다리를 먹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순식간에 신체 점유율을 높인 불이 내 몸 전체를 살라 먹었다가 그대로 화살과 같은 모습을 띠었다·
[진짜 미친 새끼····]
아니 어쩌면 그건 새일지도 모른다· 화살대를 날개 삼고 화살을 몸통 삼아 창공을 꿰뚫은 몸이 삽시간에 계명과 사탄 사이에 끼어들었다·
“허·”
[그 모습은···!]
불꽃은 형체가 없다는 점에서 물리력 간의 다툼으로 들어가면 재미를 보기가 힘들다· 나는 그 점을 고려해 상체와 팔만을 우선적으로 되돌린 후 라텔을 휘둘렀다·
비처럼 쏟아지는 사탄의 마기와 만세를 하듯 쳐든 양팔의 단두대 검이 나에게로 쏟아졌다·
‘보조해·’
[어련한 말씀을·]
이윽고 타다다다당! 따위의 소리가 내 주변을 차지했다· 내 판단에 의해 휘둘러지는 검과 메피스토펠레스가 판단하여 거든 무형의 마기 이 두 개가 사탄의 공격과 충돌하는 소리였다·
[하 분노의 힘이 느껴지는구나· 찬탈자에게 모든 걸 빼앗긴 패배자가 손을 거들고 있어!]
[다음 누천년의 대계가 망쳐진 악마·]
‘웃긴 소리 하지 마라· 집중 풀린다·’
[하지만 그대 들어 봐· 저놈이 먼저 꼴받는 소리를 했잖아·]
‘그럼 뭐 해 듣고 있는 게 나뿐인데·’
나는 사탄의 검을 주목적 삼아 검을 휘둘렀다· 저쪽이 쌍수인 만큼 라텔도 어느새 두 개로 분열되어 내 손에 쥐인 상태다·
너무 둔탁하여 챙챙 대신 두두두 소리를 내는 우리 둘의 부딪침이 주변의 폭발을 배경 삼아 끝없이 이어졌다·
[그 힘을 어디서 났는 줄도 모르는 주제에 감히!]
참고로 사탄이 쏟아 낸 마기의 비는 메피스트펠레스가 적당히 막아 주었다· 내가 품이 남을 때마다 같이 베어 주긴 했지만 기본적인 담당은 바로 그랬다·
마기가 터지고 폭발하며 사방을 온갖 충격파로 채웠다· 보통 인간이었다면 살가죽이 불타거나 북 터지듯 찢겼을 풍경이었다·
[감히는 무슨· 전진해·]
하지만 나는 불꽃이었고 화염은 이런 무형의 공격에 별 타격을 안 받는 법이라· 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말을 믿고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내가 나아가는 걸음걸음마다 검은 실선이 허공에 흔적처럼 남았다· 한 번의 끊김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낚시줄 따위의 반짝임이 검붉은 세계를 조각내었다·
콰앙!
결국 이 대치 상태를 참지 못한 사탄이 마지막 공격에 엄청난 힘을 담아 나를 밀어냈다·
별로 밀리고 싶진 않았으나 힘 싸움으로는 차마 버틸 재간이 없었다· 울퉁불퉁해진 지면에 내 다리가 크랙을 몇 개 남겼다· 동시에 사탄의 몸이 둥글게 부풀어 오르며 팡 터졌다·
“내 뒤로·”
그때 기척 하나가 어느새 내 등 뒤에 바짝 붙었다·
“왕을 청하는 자여 그대의 세월은 도통 발전과 걸음을 함께하는 법이 없구나·”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 기척의 뒤로 물러났다· 계명의 세검이 12시를 가리키는 초침처럼 섰다가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며 궤적을 새겼다· 어찌보면 반투명한 베일 같고 어찌보면 오로라 같은 녹색 광채가 공기 중을 장식했다·
콰아아아아앙!
직후 사탄이 있던 자리로부터 터져 나온 마기가 사위를 전부 감싸안았다· 계명이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있던 자리도 휘말렸을 것이 분명한 공격이었다·
[전에 본 적 있어· 이제부터 타이밍만 나면 주변에 있는 걸 하나하나 삼켜 댈 거다·]
벌써부터 이걸 꺼내다니 도망치기 직전 공격이 꽤 아팠던 모양인데? 하며 메피스토펠레스가 깔깔 웃었다· 나로선 말에 긍정하고 싶되 태도에 동조하고 싶진 않은 모습이었다·
‘···이건 가능하면 인퀴지터가 맡아 줬으면 하는데· 될까 모르겠군·’
별도로 나는 그런 판단을 내렸다· 일방적인 결정이었지만 마냥 내가 하기 싫어서 떠미는 행동은 아니었다·
아무렴 나와 계명은 마기의 보유자고 인퀴지터는 신성의 사용자다· 거기에 그녀는 지금 쐐기 역을 대행하느라 힘 일부가 묶여 버리기까지 한 터· 당장의 그녀가 이곳에 합류하는 건 역시 득보다 실이 많았다·
“주변 정리를 인퀴지터에게 맡기는 것· 어떻게 생각하지?”
반대로 주변의 악마들을 처리하는 건 가능하다는 가정하에 꽤 괜찮은 이야기다· 우리끼리 충돌할 필요가 없으면서도 사탄의 힘은 깎아 낼 수 있으니까· 잡졸들이 그녀에게 무리가 될 리도 없으니 인퀴지터로서도 부담이 한층 덜할 테고·
“불가능하진 않겠군·”
아··· 저쪽에 있었을 적 쐐기 역이었던 사탄이 한곳에서 옴짝달싹도 안 했던 걸 고려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으려나?
“이쪽은 방관하고 뒤편부터 정화해 나간다면 꽤 승산 있는 이야기가 되리라·”
다행히 내가 낸 의견은 완전한 무의미가 아니었다· 정말 인퀴지터에게 부담이 갈지 안 갈지는 모를 노릇이지만 그래도·
“그럼 이야기는─”
“듣고 있습니다·”
나는 크툴루처럼 거대한 문어발을 휘두르는 사탄을 보며 검을 휘둘렀다· 더 이상은 막아야 할 팽창도 없었기에 계명 역시 나와 등을 맞댄 채 자신이 커버할 수 있는 공간을 커버했다·
메피스토펠레스가 멋대로 가져간 마기와 라텔의 일부가 계명을 보좌하듯 사탄의 문어발 몇 개를 견제했다·
“인퀴지터···?”
“하니 여러분께선 생각하신 바를 그대로 행하시길·”
그렇게 우리가 버텨 내는 사이 쐐기를 완성하기 위해 멈춰 있던 인퀴지터가 이쪽을 일별했다· 분명 그녀를 묶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기이하게도 시선에 비치는 그녀의 모습은 세상에 꽁꽁 묶인 것 같았다·
인퀴지터의 발아래부터 조금씩 바스러지는 땅이 색다른 성질로 천천히 변화했다·
[···같잖은 것이! 어디서 성역화를 시도하는 것이냐!]
성역화? 저걸 성역화라고 부르나 보지?
“뭐라는 거냐· 이쪽 세계에선 멋대로 마계화나 싸지르던 놈이·”
“분수와 주제를 모르는 자와 말 섞지 말라· 저런 미련함마저 옳으면 그대도 못 써먹을 존재가 되리·”
“음 그럼 지금은 써먹을 만하다는 건가? 그거 영광스럽군·”
“····”
“그보다 실례 좀 하지·”
나는 마계화의 반대 개념을 머리에 인지하며 계명의 허리를 한 팔로 가볍게 감쌌다· 계명 역시 내 팔을 감싸 안듯 어깨를 짚으며 다른 손으로 검을 다잡았다·
쿵!
내 발이 지표면으로부터 떨어졌다· 한 발짝 늦게 우리가 있던 자리로 들이닥친 건 멧돼지와 썩 비슷하게 생긴 형상의 짐승이다·
“낚시는 할 줄 아나?”
다만 우리가 저 짐승을 피해 버린 통에 저 짐승이 인퀴지터가 있는 곳까지 일직선으로 달려갈 수 있게 됐다·
“꺾이지 않을 작살을 내놓아라· 세상마저 꿰어 줄 터이니·”
나는 계명이 밟을 수 있도록 공중에서 무릎을 허벅지를 직각으로 세우며 들고 있던 라텔을 살짝 던졌다·
반대로 계명은 들고 있던 세검을 내려놓듯 떨어트리며 다리를 접었다· 이후 접힌 다리가 내 허벅지보다 높은 위치에 다다랐을 때 그녀는 내 허벅지를 발판 삼아 더 높게 점프했다· 그 손에는 어느새 내가 위로 던진 라텔(작살폼)이 들려 있는 채다·
세계 최고 악을 향해 작살이 던져졌다·
휘리리릭!
작살이 악을 꿰차기 위해 나아가는 사이 나는 계명이 맡긴 세검을 챙긴 채 대지에 착지했다· 발판이 되었던 충격은 공중제비를 돌며 적당히 해소했기에 내려앉을 때의 파장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30cm가량의 크랙이 내 키를 낮추었다·
[방해 따위···!]
그때 하늘로부터 유성과도 같은 것이 수십 수백 개 떨어졌다· 초반 계명을 노릴 때와 비슷한 패턴이었다· 창탄 하나하나가 좀 더 굵어서 그렇지·
“계명!”
“통하지 않는다·”
하나 아까와 다르게 지금은 힘으로 찍어 내리는 주된 존재 즉 사탄이 다른 곳에 있다· 나는 계명이 저를 제외한 별들을 전부 추락시키도록 내버려 두며 불꽃으로 화했다·
쾅 쾅 콰쾅· 사탄이 만들어 낸 듯한 거대한 촉수가 나를 막아서려 했으나 그런 뻔한 공격엔 당하지 않는다· 나는 대지를 내달리다 공중으로 튕겨 오르듯 하며 진체를 꺼냈다·
“왕 주제에 오만보다 상대하기 편하군· 아니 그러한가?”
서걱!
가시 바퀴가 공중을 구르듯 칼을 내미는 것으로 아래에 있던 사탄을 베어 가른 내 몸이 사탄의 바로 앞에 착지했다· 물론 사탄은 여전히 돌진하는 상태였기에 나는 곧 부딪칠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쾅!
하나 세상도 꿰어다 줄 수 있다 자신하던 여인은 적어도 내게 몇 초의 미래를 꿰어 보는 것으로 자신의 실력을 증명했으니·
사탄이 내게 도달하기 전 작살이 먼저 사탄에게 닿았다· 본래대로라면 조그만 것으로 그쳤을 그렇지만 내 영향권에 먼저 들어온 탓에 내 마력을 강제로 주입당한 작살─라텔이었다·
사탄에게 닿기 직전 거대하게 부푼 라텔이 멧돼지의 목을 꿰뚫었다·
콰직!
“오만은 그 이름에 걸맞도록 준비하는 자요 이 존재는 끈질긴 생명과 단단한 맷집만으로 상대하는 자이니· 그 둘을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또한 그 거대한 작살에 계명이 내려앉았다 재차 점프하여 내 쪽으로 내려왔다· 우산을 펼쳐 착지하는 캐릭터처럼 아주 사뿐한 도약이었다·
“마력을·”
“분노·”
[오 그대 제발·]
또한 계명은 착지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돌려차기의 품새를 취했다· 그녀의 부탁에 맞추어 내 조작을 받은 라텔 일부가 그녀의 다리를 감싸고 라텔을 따라 분노가 마기를 움직였다·
[이렇게까지 섬세한 조작은 나한테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고· 이런 건 그만 시키면 안 돼?]
‘내가 라텔로 이끌어도 줬고 잘 따라도 가면서 왜 우는 소리야? 닥치고 해· 아니면 이제 와서 삶에 대한 애착이 사라졌어?’
[···가차 없기는!]
콰앙!
라텔이라는 작살을 뽑아 낸 사탄이 우리에게로 다시 덤벼들었다· 계명의 돌려차기가 그 콧등이 오는 지점에 정확히 위치하던 찰나의 일이었다·
우연와 의도의 교차로에서 나는 계명의 세검으로 그 커다란 덩어리를 베어 버렸다·
쩌적!
그러나 양쪽으로 갈라진 몸뚱이는 죽지 않고 그대로 다른 형태로 바뀌어 우리에게로 몰아쳤다· 계명이 아직 다리를 회수하지 못했고 나는 반동 때문에 움직이기가 조금 모호한 순간이었다·
“움직이지 마라·”
그렇다면 회피 대신 공격으로 방어하면 그만이다· 나는 계명에게 말과 검을 전하며 나로부터 반경 1·5m 지점을 따라 마력의 선을 그렸다· 지표면부터 시작하되 미미하게 경사졌으며 나를 주위로 곡선을 그리는 마력의 선들을·
콰가가가각!
삽시간에 나와 계명을 감싸는 마력의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상대에게 타격을 준다는 마음가짐보단 자세를 추스를 시간을 벌기 위한 회오리였다·
“2·”
1· 마력의 선이 사라짐과 동시에 나와 계명의 몸이 양쪽으로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