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9화 하지만 복될 것이기에 (8)
[어딜 가느냐!]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마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양옆으로 뛰자마자 세 개로 분열한 사탄이 우리를 쫓았다· 굳이 세 개인 이유는 분열체 중 두 개가 우리를 쫓고 남은 하나는 인퀴지터에게 보내 성역화를 방해할 심산인 것 같았다·
뱀과 비슷하지만 그것보다 더 추하게 생긴 괴물이 각각의 타깃을 쫓았다·
“글쎄 그건 이쪽이 더 하고 싶은 말인데·”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서도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 따윈 없다·
나는 핸드 스프링 한 번으로 공중에 뛰어올라 내 후면을 잠깐 바라보았다· 그러곤 내 다리가 다시 아래로 내려오기 전 라텔을 인퀴지터쪽 방향으로 던졌다·
‘가라 악마· 백만 볼트다·’
[난 전기쥐도 아니고 백만볼트도 못 써· 그리고 백만이 아니라 십만인 거 몰라? 주머니괴물 제대로 보기는 한 거야?]
‘그래 그걸 아직도 기억하는 네가 레전드다·’
나는 거기 나오는 애들 종류가 삼천 마리를 넘긴 시점부터 외우는 걸 포기했는데·
가벼운 만담이 오가는 찰나간 던져진 라텔에 강대한 마기가 깃들었다· 라텔의 하얀 몸체가 수만 가닥의 실로 화했다· 당연하게도 실타래의 끝을 장식하는 건 뼈밖에 남지 않은 염소의 머리다·
촤라라락!
라텔을 육신 삼은 메피스토펠레스의 손에 거대한 쥘부채가 쥐였다· 살은 철처럼 단단하고 부채 얼굴은 금속보다 날카로운 종이로 이뤄져 있으며 갓대의 길이가 사람 키만 한 아주 거대한 쥘부채였다·
서걱!
그 쥘부채는 한순간에 반원 형태로 펼쳐지며 사탄의 분열체를 베었다· 그리고 상대의 살갗을 전부 가르며 지나갔을 때 쥘부채는 자연스럽게 접힌 형태로 돌아갔다· 펼쳐지며 상대를 자르고 상대를 자르며 접힌 거의 신기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상대를 통과한 부채검이 이번엔 둔기처럼 휘둘러졌다· 사탄의 분열체가 갓대의 편편한 부분에 얻어맞고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혔다·
캬악!
뱀 형태의 분열체가 갈라진 혀를 날름거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어떻게든 메피스토펠레스를 배제하고 제 임무를 수행하겠다는 것 같았는데 어림도 없었다·
콰직· 부채고리와 연결된 명주실을 쥔 메피스토펠레스의 손목이 확 꺾이며 부채의 몸통을 틀었다· 촤라락! 휘두르는 것에 맞춰 반원형으로 펼쳐진 부채검이 뒤를 돌아본 분열의 머리를 냅다 절삭했다·
[하핫 하하하하하!!]
이 와중에 그녀의 손목 스냅은 또다시 쥘부채를 닫고 그 방향을 바꾸어 양단된 분열체 머리를 추가로 내려쳤다· 일반적인 검은 아닐지언정 과연 지옥의 2인자다운 솜씨였다·
메피스토펠레스가 광소를 터트리며 분열체를 자진모리장단 두드리듯 두드렸다·
퍼억!
다만 북 치고 장구 치듯 둥둥 두드리는 건 꼭 그녀뿐만이 아니었는데 나 역시 주먹으로 분열체의 온몸을 때렸다· 마치 여행 갔을 적 선비의 감독하에 더덕구이를 준비하던 기분이었다·
방망이로 더덕을 찧듯이 내 발과 다리가 크러셔를 모방하여 분열체를 두들겼다· 상단상단하단중단하단상단 방어공격방어방어공격공격공격 주먹다리다리다리주먹주먹·
라텔이 없었기에 오롯이 마력에만 의지해야 했으나 별로 문제 되진 않았다· 실시간으로 정교하고 섬세하게 조작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특정 부위에 두른 채로 밀도와 통제만 유지하면 됐으니까·
크러셔보다 느리고 베르세르크보다 약한 그렇지만 나름 현상 유지는 가능한 박투 속에서 내 손이 일순 손바닥을 쫙 펼쳤다·
촤아악!
내 손가락을 따라 마력이 마기가 움직이며 분열체를 찢어발겼다· 분열체는 사탄 본체와 달리 몸이 좀 물러서 압도적으로 힘을 싣지 않아도 베는 게 가능했다· 분열체의 이빨을 도륙 낸 내 왼손이 허공을 멤도는 동안 다리가 굽어지며 자세를 잡고 오른손이 천천히 뒤틀리는 허리와 함께 뒤로 조금 물러났다가 반동을 이용하듯 앞으로 뻗어 나갔다·
아도겐이다 개자식아·
분열체 뱀의 복부를 후려갈긴 손으로부터 원형 파동이 일더니 뱀의 비늘을 산산조각 내고 그 안쪽 내장을 뒤흔들었다· 콰앙! 분열체가 뒤로 날아간 건 덤이었다·
“질기기 짝이 없구나·”
마지막으로 계명· 그녀는 가진 바 마기의 총량이 넉넉하지 않아 마음껏 분열체를 베고 찌르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칼날은 그 어떠한 자보다 높은 기교와 기량을 품고 있었으니·
피할 수 없는 경로로 발을 움직여 머리를 걷어찬다· 이후 빠르게 검을 움직여 눈알에 칼날을 박았다 뺀 후 몸을 빠르게 낮춘다· 격노한 분열체가 계명이 있던 허공을 씹었다·
동시에 그녀가 검을 쭈욱 올려 분열체의 입가에 칼날을 걸고 자신의 몸을 회전시키며 그 원심을 이용해 분열체의 몸을 건너편으로 날려 버린다·
마치 예술과도 같은 정교한 검로였다· 때로는 분열체의 단단함과 유연함마저 이용하는 극도로 노련한 싸움이기도 했고·
키이잉· 그녀의 손에서 회전하는 검이 슬슬 비틀린 쇳소리를 흘리기 시작했다·
촤아악!
하나 그녀는 그런 검 상태에 당황하는 대신 분열체가 꼬리로 날려 보낸 파편이나 공격을 피해 검을 휘둘렀다· 탱 태댕 탱! 그녀에게 닿거나 닿을 수 있는 공격들이 전부 절단되어 한낱 가루들로 화했다·
흩날리는 그녀의 머리카락과 얽혀 너울거리는 더스트가 마치 그녀를 장식하는 보석 조각처럼 빛났다·
[이건 이럴 수는 없다·]
이렇게 되니 사탄이 이를 지르무는 소리를 내었다· 분열되었던 몸이 계명이 있는 쪽으로 빠르게 모여들었다·
이 와중에도 가장 약한 계명을 우선해서 노리는 게 싸울 줄 아는 놈 같다가도 비겁하고 쪼잔해서 한숨이 다 나왔다·
“물러나라!”
내 말이 닿기도 전─애초에 고함이 들리기나 할지 싶은 거리였지만─에 계명이 통통 뛰듯 뒷걸음질 쳤다·
아울러 내 몸은 다시 불꽃으로 변해 맹렬하게 그곳으로 달려 나갔다· 라텔로 잠시 몸을 갈아탄 메피스토펠레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육신 역의 라텔을 쭈욱 녹인 후 광선이 발사되듯 계명 쪽으로 합류해 왔다·
빠르기만 따지면 우리의 이동속도는 사탄의 분열체가 한곳에 모이는 것과 비견될 정도였다·
촤아악!
슬슬 불꽃 변환도 익숙해지는 것 같은데· 나는 신체를 물질화로 돌리며 발을 지익 끌었다· 날아온 라텔도 마침 내 손에 들어오며 평범한 검의 형태로 돌아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채검만큼은 능숙하게 다룰 자신이 없었는데 다행이었다·
[이곳의 왕은 나다!]
후욱!
합체한 사탄의 분열체 그러니까 사탄 본체가 단두대 검을 움켜쥔 채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콰앙! 문득 검은 대지의 지평선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섭식이 시작되었다·”
“이 근처에는 딱히 악마랄 게 보이지 않는데·”
내 말을 두고 계명은 생채기 가득한 손을 들어 올렸다·
“세계가 먹힌다·”
쿠웅 쿵·
소리보단 진동에 가까울 감각이 발바닥을 타고 온몸에 전해졌다· 전부 꿈틀거리는 지평선에서 흘러나오는 굉음이었다· 거리로 요란함을 가린 소동이 내 발끝을 향해서 들리지 않을 비명을 질렀다·
[내가 나야말로 왕이자 신이 되어야 한단 말이다!]
“구질구질하군· 이렇게까지 해서 살고 싶나?”
나는 심상으로 돌아간 메피스토펠레스가 찔려 하건 말건 검을 제대로 꼬나쥐었다·
사탄도 두 쪽 난 자신의 단두대 검을 서로 맞붙이더니 원래의 형태로 돌려보냈다· 차캉· 쪼개졌던 단면이 언제 떨어졌냐는 양 매끈하게 달라붙었다·
[···그런데 감히 네놈이 네놈이!!]
연이어 그는 자신의 한쪽 팔을 본격적으로 변형하여 우리에게 뻗었다· 촉수보단 문어에 더 가까울 것이 우리에게로 막 쏟아졌다·
“내가 자르지·”
그렇지만 이런 건 더 이상 위협이 못 된다·
계명이 나보다 먼저 달려 나가며 검을 움직였다· 아이가 사진 한 장을 커터 칼로 아무런 규칙 없이 쪼개고 잘라 버리듯 그녀의 검도 남긴 궤적만 보면 검로를 유추할 수 없게 이리저리 휘어졌다· 그때마다 토막토막 썰려 나간 촉수의 팔은 바닥으로 온전히 추락하기도 전에 잿더미가 되어 사라진다·
[내 자식의 이름을 받은 주제에 감히 내 모든 것을 망쳐!]
그 꼬라지를 예견하지 못한 건 아닌지 사탄이 잘려 나가나는 팔을 뒤로하고 자신의 발을 땅에 박았다· 곧 엄청난 양의 줄기 넝쿨 혹은 촉수 따위가 튀어나왔다·
조금씩 움직이기는 하지만 문어발이라고 쳐주긴 오묘한 차라리 소라뿔 모양에 더 가까울 것들이었다·
[메피스토펠레스!!]
그런데 쟤 지금 뭐라고?
‘···너 사탄 자식이었냐?’
[미쳤어 그대?]
아니 쟤가 자식이라잖아· 정확힌 자식의 이름이라고 했지만· 그러다는 건 메피스토펠레스가 사탄의 자식 이름이라는 거 아니야?
[몰라 그런 건· 궁정 광대 새끼가 자식이었나 보지·]
‘···그러고 보니 그쪽이 있었지·’
나는 1대 메피스토펠레스를 떠올리다가 얄팍한 의문이 떠올랐다· 그 어릿광대가 진정 사탄의 자식이라면 그는 어째서 사탄의 주변에 있지 않고 아스모데우스의 산하에 있었는가?
[쓸모없는 상념은 집어치우자고 그대· 먹히기 싫으면·]
갉작갉작갉작·
그때 사방에서 기묘한 소리가 나며 내 사고를 끊었다· 어디서 이런 소리가 들리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면 솟아오른 소라 언덕들 표면에 무수한 입들이 돋아나 있다· 차마 개수를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입이었다·
“천박하군·”
“동의한다·”
그렇지만 산치 체크가 필요한 외형들에는 이미 이골이 다 났다· 나와 계명의 몸이 그 소라고둥 언덕들을 밟고 사탄의 본체를 향해 달렸다·
염소의 뿔이 굽듯 소라 언덕들의 끝이 오묘하게 구부러지며 우리를 쫓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표면에 우다다 새겨진 입들도 우리의 속도를 따르지 못했다·
나와 계명이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각자만의 길을 타고 나아갔다· 가끔씩 누구 하나 발목이 씹힐 것 같을 때에는 서로가 있는 쪽으로 뛰어 발과 발을 맞대거나 손을 맞잡아 괜찮은 공간으로 각자의 몸을 던져 주기도 했다·
나의 붉음과 그녀의 청색이 그 어떠한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전진했다·
[···용서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의 몸이 본체의 근처에 다다랐을 때 나는 그동안 꾹꾹 끌어모은 마력을 휘둘렀다· 놈은 더 이상 외부로 공격을 날려 버리지도 못하니 망설일 것도 없었다·
섬격· 검은 불꽃이 사탄의 본체를 한차례 지워 냈다·
[그대만큼은 반드시·]
[···하 그대· 불꽃이다! 피해!]
그렇지만 메피스토펠레스가 이미 예고했듯 사탄은 쉽게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다· 나와 비슷한 흑염이 아롱아롱 빈자리에서 일더니 그대로 단두대를 휘둘렀다·
“계명!”
저것에 맞으면 나는 몰라도 계명은 죽는다·
나는 그 즉시 손을 뻗었다· 찰떡같이 내 의도를 파악한 계명이 내 손바닥을 밟고 먼 곳으로 뛰었다·
서걱!
그와 함께 단두대가 내 몸을 갈랐다· 순간적으로 몸을 불꽃화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격은 꽤나 강하게 들어왔다· 쨍! 허리춤에 걸어 두었던 등자끈이 하얗게 세 번 반짝였다· 한 번의 공격으로 모든 힘을 잃어버렸는지 등자끈에서는 더 이상 어떠한 힘도 느껴지지 않는다·
[젠장! 그대 내가 담당한다고 그냥 처맞는 거지?! 그런 거지?!]
등자끈 덕에 충격도 절반밖에 안 들어왔으면서 징징대기는· 파우스트는 이런 것도 별로 없었다고·
나는 고통 분담이 끝나자마자 지쳐 쓰러지다시피 한 그래서 말도 안 하고 있는 소년을 떠올리며 몸을 이동시켰다· 힘을 잃은 등자끈은 더 이상 달고 다니는 의미가 없었기에 아공간 팔찌에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죽음으로 끌고 가겠노라·]
하지만 내가 몸을 옮긴 자리에 사탄이 같이 나타났다· 나와 비슷한 원리로 이동하는 것 같지는 않았으나 빠르긴 빠른 속도였다·
‘사방에 뻗어 둔 줄기 중 하나에서 임시 육신을 분열시키는 건가?’
땅에서 솟아난 소라 언덕들이 색을 띠고 형체를 띠어 세포분열 하듯 툭 하고 떨어진 걸 보면 대충 그러지 않을까 싶다·
내 검이 사탄의 단두대 검과 맞부딪쳤다· 콰앙· 그 부딪침 한 번만으로 사방이 조각나며 산산히 부서졌다·
화륵!
다만 나는 한자리에 오래 있으면 안 된다는 페널티가 있다· 온 사방이 나를 먹으려 드는 상태였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쉐에에엑!
심지어 사탄은 사위를 자신의 육신으로 채우는 것도 모자라 거기서 또 변형을 가해 내게 창 형태의 침 따위를 날리거나 가시를 내리꽂거나 했다· 아마도 산성일 액체가 간헐천처럼 뿜어져 나와 내가 가야 할 경로를 막기도 했고 말이다·
콰악!
그럼에도 나는 그 모든 것들을 베고 태우고 가르며 끝없이 사탄과 대적했다· 설사 그가 이 행성을 모두 먹어 치운대도 그리하여 끝이 없는 싸움이 이어질 거라 해도 상관없었다·
“신이시여·”
나는 어디로 갔는지 모를 계명과 어렴풋이 들려오는 기도문을 들으며 사탄이 쏟아붓기 시작한 화염비를 맞받아쳤다·
[절망하라·]
“당신의 목자가 기도하느니 그러면 우리가 복될 것이오·”
이 비도 언젠가는 끝날 것임을 알기에 추호의 불안도 갖지 않았다·
[비통하라·]
“그렇게 복될 것이며·”
그러다 어느 순간 자잘하게 쏟아지던 화염비가 한곳으로 뭉치는 행태를 보였다·
[좌절하라·]
“그래도 복될 것이고·”
나와 사탄을 감싸는 거대한 고리 태양의 탄생이었다·
[애원하라·]
“그리고 복될 것이니·”
그러나 나는 그 검은 불꽃을 보며 도리어 친숙함을 느꼈다·
[복종하라·]
“그럼에도 복될 것이고·”
검은 불꽃· 검은 태양· 검은 마력· 검은 마기·
부모· 자식·
[순응하라·]
“그리하여 복될 것이며·”
나는 무의식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 조여 드는 검은 고리와 똑같은 형태의 마력을 모았다·
[한때 그대의 근원이었던 것에게 돌아오라!]
“하지만 복될 것이기에·”
만약 이 불꽃과 저 불꽃이 섞이면 어떻게 될까·
[메피스토펠레스 너의 이름은 영원히 나 괴테의 아래에 존재하리니·]
“저는 영원히 기도하나이다·”
같은 곳에서 시작된 불꽃이라면 과연 물과 기름처럼 분리될까 아니면 섞일까?
[그리하면 나는 네게 다시 기회를 주리라···!]
“우리가 영겁토록 복되기만을·”
사탄의 태양과 나의 고리가 겹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