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3화 하지만 복될 것이기에 (12)
메피스토펠레스의 영혼이 심상을 박살 내며 뛰쳐나간 직후 내 의식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몸을 혼절 상태로 유지할 게 아니라면 누구 하나는 조종을 맡아야 하니 당연했다·
“정신 차려라·”
다만 사람이 어디 기상하자마자 원하는 대로 몸을 가눌 수 있는 생물이던가? 하물며 몸을 구성하던 거대하고 영적인 요소가 방금 막 빠져나간 상태인데?
“쿨럭·”
“···쯧·”
그런 이유에서 나는 자의로 몸을 빼지 못했다· 계명이 약속에 따라 내 목덜미를 붙잡고 물러나는 그 순간까지 계속·
“하아 하·”
참고로 그녀가 나와 그런 약속을 한 이유는 혹시 모를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것이었다· 예컨대 메피스토펠레스와 사탄이 육신의 주도권을 갖고 다투는 과정에서 눈먼 공격이 이쪽으로 튈 걸 경계했단 소리다·
“조급해하지 마라· 최악은 면했으니·”
물론 이 염려는 정말 만에 하나를 위한 것이었다· 우리가 예상한 바에 따르면 메피스토펠레스와 사탄의 싸움은 정신 속에서만 이뤄질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실제로 그 허연 몸뚱어리는 현재 우뚝 멈춰 선 채로 미동조차 안 보이는 중이기도 했고·
“쿨럭 이건 생각보다··· 별로군·”
문제는 그래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우리를 향한 눈먼 공격은 없었으되 정작 깨어난 내가 몇 초가 지나도록 몸을 통제하지 못한 것이다·
“커억·”
“질식사를 원하는 게 아니라면 입 다물 것을 조언하지·”
하여간 메피스토펠레스는 정말 개자식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지나간 자리도 아름답다던데 이 새끼는 정말이지 곱기는커녕 어디 악마 새끼 아니랄까 봐 더럽고 불쾌한 감각만 남기고 갔다·
“쿨럭 컥 크읍·”
“하아·”
악마가 바닥까지 마기를 긁어 가며 텅 비어 버린 몸이 지속적으로 피를 쏟았다· 하나하나가 새빨간 선혈이었다·
「그 그레트헨····」
‘시이이발 진짜 내가 좆같아서····’
만약 세월을 건너뛰어 죽기 직전인 노인의 몸으로 들어간다면 이런 기분일까· 아니면 내장 하나하나를 꺼내어 바싹 말리거든 이런 느낌일까·
실로 토사물에 머리를 처박아도 이것보단 덜 불쾌할 수준의 고약함이다· 딱 대가리 한 대만 쳐서 편해지고 싶다·
“으·”
하나 내 고통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푸쉬쉬 빠진 풍선에 강제로 물을 부어 부풀리듯 또는 주사기로 짙은 농도의 액체를 주입받듯· 다음 순간 대량의 마기가 내 몸 안으로 스며든 것이다·
“흐으으·”
온몸이 화끈거리다 못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핏줄이란 핏줄은 전부 불타는 것처럼 아팠으며 근육과 신경계 역시 결 하나하나가 느껴질 정도로 둔통을 호소했다·
지금껏 겪어 본 것 중에서 손에 꼽을 만큼 끔찍한 고통이었다·
“···집중해라·”
나는 솟구치는 비명을 목울대 선에서 겨우 멈췄다· 사실 내가 멈춘 것인지도 불확실했다· 입에 텁텁하고 마른 천 뭉치가 쑤셔 박혔다·
“그대는 나와 상황이 다르다· 분노가 자신의 모든 힘을 가져갔을 것이니만큼 그대는 외부의 마력으로부터 그대 자신을 보호할 힘이 없으니·”
아울러 다리에 힘이 풀리며 몸이 풀썩 엎어졌다·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뻗어진 손은 주먹을 꽉 쥔 채 땅을 받치느라 여념이 없다·
땅바닥에 닿은 이마가 바닥을 찧으며 피를 흥건하게 흘렸다·
“주입된 힘을 서둘러 그대의 것으로 만들어라· 그러지 않으면 힘이 폭주하여 그대의 몸이 찢겨 나갈 것이다·”
“이 정도일 거라고는····”
한마디도 안 했잖아 이 시발 놈들아····
나는 문장을 끝까지 잇지도 못한 채 끙끙거렸다· 「그레트헨····」 심상에 남겨진 소년이 나를 염려했지만 솔직히 그쪽 목소리는 작아서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너무 힘드시면 제게 고통을 넘기셔도─」
‘염 장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짜증나니까·’
나는 간신히 욕을 삼킨 후 몸에 흐르는 힘들을 움켜쥐었다· 내 힘이라곤 조금도 포함되지 않는 순수 100% 외부에서만 들어온 힘들이 계속 망아지처럼 내 혈관 속에서 날뛰었다·
진짜 농담 안 치고 프레드릭을 달랠 때보다 더 힘들었다·
“평생 누릴 고통은 다 누리는 기분이군····”
그래도 그래도 어떻게든 해냈다· 나는 약 잘못 먹어서 심장이 내려앉았던 날을 떠올리며 몸을 옆으로 굴렸다· 도저히 상체를 일으킬 자신은 없었다·
“본래라면 죽어야 정상인 행위이니 감수하는 수밖에·”
“경고라도 해 줬으면 어디 덧났나···?”
“경고했다면 아니 시도했을 것인가?”
“···아니·”
“답이 되었군·”
진짜 성격 나빠····
나는 괜히 꿍얼거리며 들썩거리는 마기를 신체 내부로 계속 돌렸다· 외부 마기로 인해 파괴된 세포가 내 통제하에 들어온 마기로 다시 회복되며 신체가 점차 새로운 마력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열이 오른 몸은 지옥의 더위조차 이겨 낸 채 하얀 증기를 풀풀 풍긴다·
“···만약 메피스토펠레스가 사탄을 몸에서 내쫓는 데 성공한다면·”
생리적으로 흐른 눈물 역시 눈꼬리를 따라 흐르기도 전에 말라붙었다· 반투명하게 남겨진 소금기가 화장처럼 내 눈가에 묻어나며 피부를 당기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온 사탄의 영혼을 완전히 소멸시키면····”
그래도 그 모든 감각이 마냥 짜증 나고 괴롭지만은 않다·
“그땐 정말 끝인가···?”
“그래·”
여기서 절망하기엔 내 곁에 아직 끝을 말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거··· 정말 기쁘군·”
나는 계명과 인퀴지터의 기척에 매달린 채 폭력적인 힘을 어르고 달랬다·
그러다 문득 봉헌초에 붙은 촛불의 향이 언뜻 코끝을 맴도는 듯했다· 끝이란 단어에 담긴 것처럼 달콤하고 재를 남기기에 쓰디쓴 불꽃의 냄새였다·
* * *
메피스토펠레스는 간만에 마주한 어릿광대를 두고 자신의 기억을 더듬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양손을 사용하는 대신 투명한 힘으로 그들의 추락을 멈춘 어릿광대는 그가 알고 있는 궁정 광대와 큰 차이가 없었다·
[죽을 때가 다 되니 별 같잖은 수를 다 쓰는군·]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궁정 광대의 존재는 그가 앞으로 할 일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그것은 이미 죽었고 끝나 버린 존재니까·
[아 걱정 마시오· 나는 그대를··· 이 사태를 방해하기 위해 이곳에 선 게 아니니·]
그러니 그는 오롯이 이것─사탄─을 내쫓는 데에만 집중한다· 메피스토펠레스는 몸의 원주인이라는 이점을 살려 사탄의 영혼을 밀어냈다·
[메피스토펠레스!!]
퍼억!
그러자 사탄이 저항하듯 발로 그의 복부를 걷어찼다· 그 과정에서 사탄이 외친 ‘메피스토펠레스’가 과연 누구를 뜻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왜 죽을까 봐 쫄려?]
하지만 그는 그게 자신을 향한 부름이겠노라 적당히 넘기며 역으로 반격을 가했다· 심상에서의 외상은 재생력을 지닌 현실에서보다도 더 의미 없는 존재였기에 그 부분에 대해선 티끌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다·
[쫄리냐고!!]
푸욱!
메피스토펠레스의 손에서 생겨난 검이 사탄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단순히 상대의 죽음을 노리는 형태가 아니라 가능한 고통을 주기 위한 톱질이었다·
[인간에게 모든 걸 빼앗긴 패배자 주제에···!!]
그건 제법 효과적이었는지 사탄이 품위조차 내다버린 채로 악을 썼다· 메피스토펠레스에겐 아주 기쁘기 짝이 없는 꼴이었다· 그는 고고한 척 하는 놈들이 진창에 처박혀 저열한 본성을 드러내는 게 가장 보기 좋았다·
[하하! 그런 넌 넌 뭔데! 대계가 어그러지다 못해 인간에게 내쫓긴 너는···!]
메피스토펠레스의 광소가 서슬 퍼른 칼날이 되어 사탄의 뱃가죽을 헤집었다· 사탄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메피스토펠레스가 기억하는 가장 커다란 고통은 두개골이 으깨지는 게 아니었다·
[참 여러모로 딱하구려·]
한데 그런 그들의 싸움을 두고 궁정 광대가 툭 한마디 뱉었다· 가만히 있겠다더니 왜 주둥이를 움직이는지 모를 일이었다·
[특히 친애하는 아버지· 그대는 더욱 그러오·]
[···꺼져라 메피스토펠레스!]
그래도 저 광대의 존재가 사탄의 심기를 긁는다면 그걸로 됐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어릿광대가 무어라 지껄이건 사탄을 추방하는 데 집중했다·
그것은 대부분 싸움의 형태였지만 가끔은 서로의 영혼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이뤄질 때도 있었다·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팡팡 소리가 나며 심상의 일부가 무너졌다·
[저런· 나라고 원해서 이곳에 있는 건 아니오만·]
[네놈···!]
뭐 이렇다 저렇다 해도 역시 가장 효과적인 건 직접적으로 겨뤄 가며 권한을 뺏어 오는 것이라·
메피스토펠레스의 손에 생겨난 부채검이 사탄의 몸을 베고 쳐 내며 그 영혼을 끝없이 공격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머리 위로는 지반이 갑자기 생기고 중력이 뒤바뀌었으며 생겼던 지반이 다시 없어지며 추락을 발생시키길 반복했다·
[애당초 나를 먼저 떠올린 것은 아버지 바로 당신이잖소·]
당연하지만 그 모든 건 메피스토펠레스가 의도한 바였다·
모든 공격을 바뀌는 현상에 맞춰 절묘하게 대처하는 것으로 손쉽게 타격을 넣은 그의 뒤에 광대가 내려섰다·
[한데 우습지 않소? 친애하는 당신이 지옥에 첫발을 들였을 적 가장 먼저 버린 것이 나일진대··· 그런 나를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도로 떠올리다니·]
[너는 너는···!]
[혹은 이제 와 내가 필요해진 것이오?]
기묘한 일이었다· 심상 전투에 익숙하지 못한지 사탄은 이다지도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데 광대는 방관자의 입장일지라도 상황에 쉬이쉬이 적응한다는 것이·
메피스토펠레스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참 통탄스러운 일이오· 후회는 자기 자신을 나약하게 만들 뿐이라며 스스로 갈라 낸 주제에····]
그 거슬림을 차마 건드리지 않는 건 어릿광대가 단언했던 것처럼 단 한 번도 끼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라·
광대의 펄럭거리는 옷자락이 아닌 척 두 사람의 주목을 빼앗으며 혼란한 까만 세계를 거닐었다·
[정작 후회하는 자신이야말로 가장 강했음을 이제 와서야 깨닫다니·]
[메피스토펠레스···!]
그러다 새까맣게 불타 버린 나무 배경이 쪼개져 저편으로 사라졌다· 사탄이 육신의 지배권을 상실해 감을 뜻하는 명백하고도 노골적인 증거였다·
화르륵· 메피스토펠레스의 심상 영겁의 불꽃이 그 자리를 갈음하듯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버지 아니··· 나였던 왕이여 경고하건대 너무 비루해지지는 마시구려· 피차 결말은 이미 알고 있지 않소·]
[아직 아직이다!]
[당신은 내가 후회가 필요했었소·]
이대로 조금만 더 하면 된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사탄의 잿덩이 나무를 완전히 전소시키며 사탄의 목에 또 한 번 칼을 박았다· 사탄도 슬슬 심상의 전투가 제법 익숙해진 것인지 이것으론 당황하지 않았으나 의미는 없었다·
육신의 진짜 주인이란 이유만으로 인간 소년이 대악마와 비등하게 싸웠을진대 비슷한 서열 사이에서 이 이점이 영향을 끼치지 않을 리 없었다·
[설사 내가 당신을 필요해하지 않을지라도·]
기어이 사탄의 영혼이 밀려났다·
부스러지는 재의 나무와 함께·
[너도 꺼져·]
[안 그래도 그럴 예정이었소·]
그렇지만 어릿광대는 아직 불꽃 속에 남아 있음이라·
메피스토펠레스는 자신의 육체를 빠르게 되찾으면서도 궁정 광대를 노려보았다·
[왜 바로 안 꺼진 거야? 설마 사탄 찌끄레기가 남았나?]
[그럴 리가· 그는 이 심상에서 완전히 추방되었소· 함에도 내가 이 자리에 남아 있는 이유는 그대 역시 나를 기억하기 때문일 뿐이고·]
[기억이 왜 멋대로 인격을 가지고 움직이는데? 죽어 꺼져·]
그때 파하하하 하고 광대가 웃었다·
[그건 친애하는 사탄 경께서 마지막에 나를 떠올리고 만 것처럼 친애하는 그대 또한 차마 나를 놓지 못했기 때문이지·]
[뭐?]
[친애하는 그대· 내가 언젠가 한 말 기억하시오?]
[기억 안 나니까 꺼져·]
[어떤 후회는 복수를 분노를 불러온다· 또 어떤 후회는 미련을 절망을 일으키며 또 다른 후회는 정체를 체념을 가져온다·]
또각또각 하고 울려 퍼지는 맑은 굽 소리는 유난히 신경을 거스르는 종류의 것이다·
[다만 때때로 후회는 성장이라는 눈부신 것을 빚기도 하니····]
그리고 그 거슬림이 기어이 그녀와 시선을 맞댔을 때 광대는 자신의 뼈 가면을 잡았다·
[그중 무엇을 택할지는 친애하는 그대의 몫이다·]
[뭔─]
[당시의 그대는 후회조차 살라 먹는 분노가 된다고 했지·]
후회의 악마가 거짓된 사랑에 몸을 위탁하여 광대로서 살았던 악마가 자신의 가면을 벗었다·
[하지만 친대하는 그대· 그때는 어째서 지금 나의 후회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거요?]
덜그럭· 광대의 몸체가 한순간에 사라지고 광대의 뼈 가면만이 남아 바닥을 굴렀다·
남은 건 이제 갈 곳을 잃은 분노와 장작 없이 타오르는 분노뿐이다·
[꼭 후회하는 사람처럼·]
메피스토펠레스의 히스테릭한 비명이 심상 세계를 전부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