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7화 하지만 복될 것이기에 (16)
사야의 입에서 피가 토해진 순간 우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그중 가장 먼저 인퀴지터를 부축하다시피 한 게 나임은 말할 것도 없다·
“사야?!”
뭐야 대체 뭐냐고· 다 잘 끝날 것처럼 흘러가는 분위기였으면서 왜 왜 갑자기 애가····
“샌님?!?!?!”
“이 이런· 이게 무슨·”
“으왁! 뭐야! 너 다쳤어?”
“용사야 어디 아픈 거냐?”
[우왓 우왓!! 조상님 저거 우짭니까!!]
[뭐니 뭐니 뭐야!]
“괘 괜찮습니다!”
“괜찮긴 뭐가 괜찮나! 지금 피를 쏟았으면서···!”
나는 서둘러 찐빵 같은 얼굴을 꽉 붙잡은 채 입가와 눈 기타 등등을 확인했다·
눈동자는 여전히 초롱초롱하지만 눈가는 확실히 거뭇한 게 퀭하기 짝이 없고 바짝 말라서 부스럼이 난 피부도 과연 피로가 그득그득 묻어난다· 그럼에도 말랑말랑한 볼은 누르자마자 어째 뼈가 바로 와닿는 느낌이고 앙 깨물어 주고 싶은 코도 안쪽에서 핏물이 넘실거리고 또 또····
“그 그냥 무리해서 그런 겁니다!”
“그럼 당장 쉬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이고 우리 애 입가가 피로 번들거리잖아! 나는 왜 인벤토리에 침대를 넣어 오지 않은 거야! 물론 라텔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반환되고 그녀가 지옥에 남은 이상 내게 남은 인벤토리는 아공간 팔찌가 다이긴 한데 그래도!
“주작!!”
[어 어!!]
나는 내 아공간 팔찌에 남아 있는 것들을 떠올리며 인퀴지터를 번쩍 들었다· 다른 거 다 필요없고 어서 주작 라이딩으로 도시에 돌아가야 한다·
해후는 가면서 해도 늦지 않다·
[어이구 어이구· 잘한다· 그래 돌아가야지· 근데 그 전에 얼른 연결부터 끊어· 그 꼴로는 아무리 쉬어도 소용없어· 오히려 가다가 죽겠다·]
[으에?]
[아 그러네· 그쪽이랑의 연결이 문제였네·]
그때 육귀가 타박하는 어조로 끼어들었다· 내 고개가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휙 돌아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연결?”
연결? 김치만두가 뭐랑 연결되어 있는데? 지금 그녀와 대체 이어져 있을 게 뭐가 있다고····
아 설마?
나는 인퀴지터를 다시 똑바로 보았다· 보다 정확히는 온 감각을 이용해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와 그녀의 뒤편에 존재하는 무수한 존재감들을·
“···왜 아직도 그들의 힘을 담고 있지?”
지금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하나 따지고 보면 통로가 닫힌 시점에서 그들은 응당 물러갔어야 함이 맞는데· 그런데·
“나리 그게 무슨····”
“잠깐 참아 보게·”
상황을 묻는 데스브링거를 아크메이지가 제지하는 사이 나는 인퀴지터와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인퀴지터 대답해라·”
사야가 비밀을 들킨 아이처럼 입을 꾹 닫더니 눈동자를 다른 쪽으로 살짝 굴렸다· 그런 그녀의 눈가는 어느새 다른 의미로 불그스름해진 채다·
“이사야·”
“···으·”
대충 열매와 나무라고 뭉뚱그려 부르고 있긴 하지만 그들의 본질은 결국 신의 빈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존재다· 거짓들이 똘똘 뭉쳐 만들어진 것이긴 해도 나름 신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그런 일이 가능한 거대한 힘의 뭉텅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런 존재들의 힘을 아직도 짊어지고 있어? 지금 문제가 없다고 해서 1분 뒤에까지 괜찮으리란 법도 없는데?
“사야 모든 게 끝났다· 이제 그만두어도 된다· 당장 그들의 힘을 내보내라·”
“그으····”
“사야?”
“안 안 됩니다·”
[얘가 안 되긴 뭐가 안 된단 거니· 당장 내보내· 그들이 널 배려한다고 해도 본질 자체가 한낱 인간이 받아 낼 수 없는 원초적인 힘이야· 얼른 내보내지 않으면 후유증 생긴다?]
“사야!”
“새 샌님·”
“그 그치만···!”
나는 육귀의 말을 듣자마자 애간장이 다 타들어 갔다· 사야가 이렇게 고집 부리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어 더더욱 그랬다·
전부 끝났는데 모든 게 끝났는데 인퀴지터는 왜 후유증이 도질 수도 있는 행위를 지속하는가?
“전 모험가님과 더 있고 싶단 말입니다!”
그리고 나는 다음 순간 알게 되었다· 인퀴지터는 단순히 무언가를 대비해서 혹은 염려해서 억지로 신의 힘을 붙들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는 것 역시 아니었다·
인퀴지터는 인퀴지터는 다만····
“제가 제가 통로를 여는 촉매가 되지 않으면 모험가님이 돌아가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가능하면 제가 그분들의 힘을 받고 있는 지금 문을 여는 것이 좋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또 한 번 피가래를 뱉는 사야를 멍하니 보았다·
“그런데 그런데 저는··· 욕심인 건 알지만 그래도 모험가님이랑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1분이라도 좋으니 제발 그러고 싶어서····”
대신전의 비보를 들은 직후에도 울지 않았던 인퀴지터는 지금 울고 있었다· 보는 사람이 더 애틋해지도록 내 가슴이 더 미어지도록 섧게 울었다·
여름의 숲처럼 새파란 눈이 이슬 방울을 툭툭 떨어트렸다·
“마 많이 아프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험가님··· 하루만 아니 일주일만··· 더 머물러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 고집이 참 기특하고 귀엽고 그러면서도 안타깝게 느껴진다면 내가 이상한 걸까· 네가 너무 예쁘고 참을 수 없을 만큼 깜찍하다면 그래서 더 슬프다면 역시 내가 미친 걸까·
나는 내 옷깃을 붙든 채 애원하는 인퀴지터를 보며 이도 저도 아닌 표정을 짓고 말았다·
정말 내가 가는 게 싫었다면 그냥 멋대로 힘을 철회하고 ‘아 신께서 오래 걸린다는데요?’라고 철판을 깔면 될 것을 그런 요령조차 없어 자기가 모든 걸 감당하려는 우직함이 너무 사랑스워서 울고 말았다·
“이사야·”
“모험가님·”
“내 이름은 전요백이다·”
“···요백 님·”
“온전할 전全에 빛날 요曜 넋 백魄을 써서 전요백이다·”
“온전히··· 빛나는 마음····”
“그리고 요백이란 단어는 내 세계에서 이런 뜻도 가지고 있다·”
북두칠성· 또는 북두성·
가장 뚜렷하게 빛나서 모든 항해자들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는 그 별·
“그러니 이사야· 나는 너를 떠나지 않는다·”
“···요백 님·”
“나는 언제나 저 하늘에서 너를 보고 있을 거다·”
“하지만···!”
“내가 하늘에 뜬 태양을 볼 때마다 너를 떠올릴 것처럼 언제까지고 영원히·”
돌아가거든 일출의 붉음에서 인퀴지터의 머리카락이 떠오르고 동네 산책만 해도 보이는 동산의 숲에서 데스브링거의 그림자가 보이겠지·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올 때쯤이면 분명 아크메이지님이 나를 쓰다듬어 주던 손길을 기억할 테고 눈이 내리면 베르세르크의 기척이 뒤에서 느껴지는 듯할 거다·
아울러 위대한 발전 발명의 소식이 들려오면 마이스터가 생각날 거고 올림픽 양궁 금메달 이야기가 퍼질 때면 호크아이가 연상될 거다· TV에서 채널을 돌리다 UFC라도 보게 되면 분명 크러셔가 눈앞을 헤아릴 테고 동전을 볼 때면 분명 미스틸테인의 기억으로 쿡쿡 웃을 테지·
“인퀴지터·”
그러니까·
“부탁하건대 우리의 이별을 피의 붉음으로 장식하지 말아 다오·”
우리는 서로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웃음만 보여 주며 헤어져도 아쉬운 순간 아니냐·”
이 이별조차도 언젠가는 추억이 될 것이다·
“···드리고 드리고 싶은 말이 많았습니다· 모든 게 끝난다면 같이 하고 싶은 것도 정말 정말 많았고요·”
“나도 그렇다· 나도 너와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말들이 이루고 싶은 것들이 있다·”
“이걸 이것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 겁니까? 무엇도 하지 못한 채 헤어지는 건 어떤 마음으로 버티는 것입니까? 모험가님 저는 저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습니다· 너무 아프고 이 안쪽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욱신거립니다· 분명 누군가 떠나는 것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인퀴지터·”
나는 투정 부리듯 내 품에 안겨 흐느끼는 청년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언제는 가신다면 당연히 보내 드리겠다며 어른스럽게 굴더만 갑자기 아이로 돌아간 이를 토닥였다·
“그래 당연한 거다· 이별의 아픔은 겪어도 겪어도 아픈 것이니까·”
“모험가님····”
“하지만 사야 이별에 매이면 안 된다· 인생은 언제나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니 너는 무언갈 떠나보낸 후에도 다시 만남을 이어 갈 수 있는 용기를 품에 지녀야 한다·”
조금 더 잘할 걸 그랬다는 후회· 같이 있을 때 무엇 하나 하지 못했다는 후회· 이렇게 떠나보내선 안 됐다는 후회·
그런 것들을 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미련을 가지게 되는 생물이기에 하다못해 나조차 그럴 것이기에 ‘하지 말라’라고 딱 잘라 말하는 것만은 못 한다·
“미련에 붙잡히면 그때부턴 후회가 망집이 되어 너를 망칠 것이다· 하니 사야 미련은 미련대로 흘려보내라· 후회는 반추하여 더 나은 것을 택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야 하지 너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어선 안 된다·”
이번에 그런 이유로 후회했다면 다음에 그러지 않으면 된다· 다음에 또 실수하여 후회하게 된다면 그 다음다음에는 그러지 않도록 노력을 해 보면 된다·
그러다 보면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고 한 걸음 더 나아지는 것이 삶이었다·
“자 이사야· 그래서 네가 그런 미래를 살아갈 것임을 슬픔에 정체되지 않고 성장하며 나아가 삶을 누릴 것임을· 내가 감히 믿어도 되겠나?”
우리가 이 영원한 슬픔에서 희망을 찾는 방법이었다·
“···네· 믿어도 믿으셔도 됩니다! 얼마든지 저는 절대로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 겁니다!”
“그래·”
하므로 우리의 동행은 여기까지다· 나는 갈림길 앞에서 헤어질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건강 하셔야 합니다요· 진짜 진짜로요·”
“고생 많았네· 부디 부디 자네의 앞날에··· 축복만이 가득하길 바랄 뿐이네·”
“언제 어디서나 너는 나의 자랑스러운 전우이고 친구일 거다· 행복해라 전우야·”
“파티··· 하고 싶었는데· 그래도 선물은 제가 꼭 전달드릴게요·”
“어 귀향 축하하고··· 가서 잘 살아· 그런데 선물은 또 뭔 이야기야?”
“아차 말하면 안 됐는데·”
“안녕히 가세요· 고향에선··· 음· 아니에요· 좋은 짝 만나세요·”
“이짝은 별로 할 말이 없는디··· 아 근디 보수는 안 받고 가는감? 무려 세계를 구했는디 무상 노동이라니· 이거 완전 비난 대상감이라니까네·”
“···세계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배신자··· 에 대한 부분은 죄송합니다·”
[흐이이잉· 기사님 보러 여까지 온 건디 별로 보지도 못하고· 히이잉· 그래도 가서 건강하셔요· 지도 꼭 생각해 주시고요·]
[어휴· 하여간 걔네들은 일 참 못한다니까· 어떻게 누구 하나 갈지 않으면 뭘 진행을 못 해? 진짜··· 고생 많았고 잘 가· 건강하고·]
[이럴 줄 알았다면 구슬 말고 영혼에 가호를 내려 줄 걸 그랬다· 아이고··· 집에 돌아가면 이런 싸움터에 나서지 말고 푹 쉬면서 평안 누리렴·]
한 사람 한 사람 차례로 말하는데 이리도 북적일 수 있는 건지· 나는 맨 처음과는 참 달라진 상황을 보며 인퀴지터에게서 한 걸음 떨어졌다·
“저도 정말··· 그간 신세 많이 졌습니다· 이런 저와 끝까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걸어갈 모든 앞날 건강하시고 무탈하시길· 자리에 없는 사람들에게도 꼭 전해 주세요·”
이 몸으로는 처음으로 허리를 숙여 보는 건가? 나는 기억도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래된 이곳 생활을 더듬으며 허리를 최대한 반듯이 꺾었다·
‘파우스트 너도 듣고 있지? 지금 한 이야기는 너에게도 마찬가지로 통용되는 말이야· 알아들었어?’
더불어 끝난 뒤로 잠잠하던 심상을 두드려 보았다· 사과나무집 앞에서 멍하니 서 있던 소년이 그제야 내게 반응을 보였다·
「···알고 알고 있어요·」
‘그래· 알았다면 다행이야·’
소년이 정말 이해했는지 아니면 들었다는 의미로만 알았다고 하는 건지는 글쎄· 그렇지만 거기까진 내가 차마 신경 써 줄 수 없다· 아이는 이제 혼자 걸어갈 때였다·
‘잘 살아·’
프레드릭을 부탁해· 나는 스쳐 지나가듯 한마디를 뇌리에 새겼다 지우며 허리를 폈다· 마지막이 될 얼굴들이 시야에 가득 들어오자 참았던 눈물이 핑 도는 듯했다·
“그럼 안녕히·”
그것에 울음을 그치는 듯하던 인퀴지터가 다시 와앙 울며 힘을 터트렸다·
“안녕히 안녕히 가십시오!!”
동시에 처음으로··· 처음으로 찬란한 금빛이 나를 아프지 않게 휘감았다·
“···사야! 이건 개인적인 소원인데 열매는 되지 마라!”
세상이 휘황찬란한 광채로 뒤덮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