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외전 15화>
외전 15화
배틀넷 센터의 대회의장·
이곳은 상당한 크기를 자랑하여 언제나 공간이 넉넉한 회의장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사정이 달랐다·
“드디어 오늘인가···?”
전 세계에서 모인 언론사와 기자들이 설치한 카메라로·
이미 회의장은 공간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한국 기자들은 평소처럼 넉넉하게 공간을 쓰지 못하고 낑겨 있는 채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렇게 사람 많은 건 처음 아니에요?”
“그럴 만도 하죠· 던전 포탈 없애는 법을 공개한다는데· 공간이 여기보다 넓었어도 기자들로 꽉 차지 않았을까요?”
“그러게요··· 그런데 ‘초대자’들은 이미 다 와 있었다면서요?”
성지한의 초대한 30여 명의 사람들·
이들은 이미 2 3일 전부터 서울에 모여 대기 중이었다·
회의를 할 거면 진작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검왕 쪽 문제 때문에 미뤄진 거죠 뭐·”
“어제 불참할 거면 100억 GP씩 내라는 이야기 들으셨어요?”
“예· 스케일이 어마어마하던데····”
“사실 일본 측에서 시간을 더 끌려고 했는데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강한 압박이 들어갔다고 하더라구요·”
“살다 보니 미국과 중국이 이렇게 한 편이 되는 걸 보네요·”
“던전 포탈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데 자꾸 장난치니 열 받을 수밖에 없죠·”
불참하고 GP를 내던지 아니면 빨리 오던지·
두 초강대국에서 오늘 내에 결정하라는 압박을 하자 일본 측도 결국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덕분에 저희가 이렇게 공개 기자 회견으로 회의를 볼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맞아요· 원래는 비공개였다면서요? 일본 측에서 공개하자고 요구해서 급히 장소가 바뀐 거라던데·”
“하기야 이런 장소에선 분쟁이 일어나진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미국 중국에서도 안전 보장을 약속했으니··· 뭐 별일 있겠습니까?”
일본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중에게도 안전 보장을 요구하는 등·
‘안전’에는 아주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번에 회의가 공개로 바뀐 것도 성지한이 돌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억제하기 위함이었다·
“···별일 없겠죠? 성지한 이 사람 좀 예측이 안 되긴 하던데·”
“그래도 배틀넷 센터 와서는 조용히 있다던데요?”
“아니 그 소문 못 들으셨습니까? 이하연을 따로 불렀다는·”
“이하연이라면··· 그 이성의?”
“예· 결혼을 앞둔 신부인데 파혼시키려 한다네요·”
“그건 좀 너무한데요? 무슨 옛날 독재자도 아니고····”
기자들이 성지한에 대한 소문을 가지고 쑥덕쑥덕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저· 귀빈 분들 입장하십니다···! 길 좀 비켜 주세요!”
배틀넷 센터의 직원이 기자들에게 길을 터 달라고 호소했다·
하나 워낙 빽빽하게 자리한지라 공간이 금방 안 생기고 있을 때·
[하···]
센터 직원의 뒤에서 한숨 소리가 들리더니·
[뭐 이렇게 사람이 많아? 비켜!]
한 남자의 고함 소리와 함께·
와르르르!
기자들이 진을 친 자리가 양옆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배 배런···!”
“포스다···!”
공간을 지배하는 힘 포스·
배런이 이를 통해 기자를 밀어내자·
그때서야 사람들은 헐레벌떡 길을 내주었다·
[길 막지 마라·]
배런이 짜증 섞인 얼굴로 그리 내뱉곤 지나가자·
[미안해요··· 길드 마스터가 사고 쳐서·]
그의 뒤에서 거리를 두고 따라오던 소피아가 기자들에게 대신 고개를 숙였다·
[소피아· 뭐 하나! 빨리 안 오고·]
[아· 정말 성질하곤··· 가요· 정말 죄송해요· 망가진 카메라는 아메리칸 퍼스트에 청구하시면 될 거예요·]
배런의 닦달에 얼른 그의 뒤를 따라 회의장에 착석한 소피아·
“아야··· 소문 그대로구만····”
“그래도 포스에 밀린 거 가문의 영광 아니야?”
“배런 일반인한테는 힘 잘 안 쓴다고 하던데····”
“기분이 안 좋아 보여·”
“소피아는 착하네 역시·”
기자들이 어찌저찌 수습을 끝냈을 때·
“이쪽입니다!”
성지한의 초대자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찰칵· 찰칵·
연이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대부분 언론에서 많이 모습을 보였던 유명인이어서 이런 플래시 세례를 익숙한 듯 걸어 나갔지만·
“아····”
이하연 차례가 되자 그녀는 살짝 어색한 듯 주변을 보다·
“아가씨·”
“알았어·”
임가영과 함께 회의장 안에 재빨리 들어섰다·
‘저 사람이구나· 성지한이 따로 불렀다는 사람이·’
‘얼굴 보고 부른 건가?’
‘재벌가에서 미인으로 유명하다더니 그럴 만하네·’
그런 이하연을 향해서 플래시를 터뜨리던 기자들은·
“어···?”
“검왕이다!”
검왕 이토 류헤이가 들어오고·
그의 옆에 어색한 듯 팔짱을 낀 여자를 보자 두 눈을 크게 떴다·
“저 저 사람이야?”
“이토 시즈루가···?”
“우와····”
성지한의 초대자 중 미인이라 불릴 수 있는 사람은 적지 않았지만·
이토 시즈루만큼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여성은 지금껏 없었다·
‘왜 일본에 갔는지 알 거 같기도····’
‘이건··· 이건 찍어야 해!’
찰칵· 찰칵· 찰칵·
아까보다 훨씬 더 빈번하게 터지는 플래시 소리·
“····”
검왕은 이를 보고 살벌한 눈으로 기자들을 바라보았지만·
[검왕님·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다케다 카즈오가 싹싹한 태도로 나서서 맨 뒷자리로 그를 안내했다·
그렇게 성지한이 초대한 이가 모두 착석하자·
저벅· 저벅·
“다 왔군·”
대회의실의 단상 너머에서 성지한이 걸어 나왔다·
***
-이거 뭐 다 아는 얼굴이구만?
-지금도 잘 나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뭐··· 1명 빼고 ㅋㅋㅋ-시즈루··· 이쁘긴 이쁘네 ㅎㅎ성지한의 초대자들·
그중 시청자들의 시선을 끈 건 역시 시즈루였다·
여기 초대받은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 있는데 반해·
시즈루만은 성지한에게 완전히 몰락했으니까·
-근데 예전처럼 개쩐다는 느낌은 아닌데? 엘프를 많이 봐서 그런가?
-매료를 안 써서 그런 거 아냐?
-그런가? 처음엔 진짜 컬쳐 쇼크였는데···
검왕이 데려온 시즈루를 보며 시청자들이 뭔가 느낌이 다르다고 할 때·
‘흠·’
성지한은 단상 위에서 그들을 지켜보다가 묘한 웃음을 지었다·
‘얼굴만 베낀 가짜군·’
어쩐지 하루 만에 순순히 온다 했더니·
자기 얼굴을 한 가짜를 만들어서 보낸 건가·
‘끈질기게 살려고 발악하는 걸 보니 예전 생각이 나네·’
정신을 차린 윤세진과 함께 일본을 뒤져가면서 시즈루를 추격했었지·
하도 잘 도망쳐서 추격전을 오래 하긴 했지만·
결국엔 완전히 소멸했었지·
그렇게 그녀를 세상에서 완전히 지웠을 때를 떠올리자니·
지이잉····
[서브 퀘스트 ‘10명 이상의 지인과 만남’을 클리어했습니다·]
[스탯 청이 1 오릅니다·]
퀘스트 클리어 메시지가 떠오르며 힘이 확연히 강해진 게 느껴졌다·
‘이 정도면 검왕을 제압할 수 있겠군· 좀 반항은 하겠다만····’
스탯 청이 3이 되었다 해도 상대 역시 현 인류 최강의 전사·
나름의 저항은 하겠지·
주변에 기자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으니 재수 없으면 인명 피해가 발생할지도 몰랐다·
‘일단은 던전 공략법을 알려 주고 사람 빠질 때를 노릴까·’
아무리 미션 속 세계라고 해도 일반인까지 휘말리게 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성지한이 그렇게 일의 우선 순위를 정하고 있을 때·
[FxxK!]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배런이 갑자기 영어로 욕을 내뱉었다·
[지금 바쁜 사람 불러다 놓고 뭐 하는 거지? 빨리 이야기해라!]
검왕의 처리에 대해 잠깐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짧은 시간도 참지 못하고 화를 내는 배런·
-배런 저거 정신 못 차렸네 ㅋㅋㅋㅋ
-여기선 성지한 님 맛을 못 봤잖아 ㅎㅎ
-하긴 몇 번을 깨져서 개념 좀 찾은 거였지···
-근데 턱수염은 왜 기르고 있냐? 여기보다 나이 들어 보여 ㅋㅋㅋ급발진하는 배런을 두고 시청자들이 그를 비웃을 무렵·
[설마 불러놓고 사실 방법이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겠지?]
[배런···! 왜 갑자기 화를 내요?]
[하· 이 나라에 지금 며칠을 머물렀는지 아느냐?! 일본에서 누가 안 왔다면서 시간을 끄느라 지금 딜레이된 일정이 얼마나 많은데!]
맨 앞에서 배런이 잔뜩 화를 내자·
단상까지 은은하게 알콜향이 퍼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맨 앞자리라고 해도 여기까지 술 냄새가 날 정도면 꽤나 마셨다는 건데·
“····”
성지한이 배런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자니·
[뭐냐 그 눈빛은? 감히 나 배런을 내려다봐?!]
배런은 시뻘게진 얼굴로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아니 미친 놈인가 그럼 위에서 내려다보지 올려다 봄? ㅡㅡ-이런 자리에서도 술 쳐먹고 제정신이 아니네;
-쟤 미친 놈 맞긴 함 ㅇㅇ
-여기서도 참교육 여러 번 받아서 사람 된 거지 원랜 개차반이었음 ㅋㅋ-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저 정도는 아니라고!!!
그렇게 채팅창에서 배런의 인간성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는 가운데 한 사람만 애써 실드를 치고 있었다·
‘본인이 등판했나·’
성지한이 채팅창을 보며 피식 웃자·
[날 비웃어?!]
자리에서 일어난 배런이 성지한의 웃음을 보고 제멋대로 착각하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그의 몸에서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하는 포스의 영역·
[배런! 뭐 하는 짓이에요···!]
당황한 소피아가 그의 팔을 잡으려 했지만·
[가만히 있어!]
[아···!]
그녀는 배런이 뿜는 포스에 눌린 채 자리에 옴짝달싹하질 못했다·
[애초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던전 포탈 좀 부술 줄 안다고 세계 랭킹 1위를 오라 마라 하다니···!]
그러면서 위협적으로 성지한을 노려보는 배런·
애초에 한국 온 것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여기서 성지한의 사정에 의해 뜻하지 않게 대기하게 되니 화가 치솟은 것 같았다·
하나·
“진정하지?”
스윽·
그러며 성지한이 손가락을 뻗자·
파아아앗···!
허공에서 균열음이 나더니·
[뭣···?! 포 포스가···]
강렬한 기세를 뿜던 배런의 표정이 순식간에 딱딱히 굳었다·
그가 장악했다고 생각했던 공간이 순식간에 깨져나갔으니까·
그리고·
스윽·
성지한이 손가락을 가볍게 내리자·
툭! 배런의 몸이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니··· 배런의 포스가···?”
“저렇게 쉽게 박살 나는 거였나?”
“성지한은 딱히 뭘 한 거 같지도 않은데····”
카메라로 현재 상황을 생중계하면서도 기자들은 자신이 본 장면을 쉬이 믿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배런은 현재 세계 랭킹 1위로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는 플레이어였으니까·
특히 공간을 지배하는 ‘포스’는 뚫는 게 쉽지 않았는데·
성지한이 손가락질만으로 없앨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근데 너 왜 이렇게 지저분하냐?”
탁·
성지한이 손가락을 한번 튕기자·
두두두둑!
배런의 머리에 있는 털이 모조리 뽑혀 나갔다·
“아··· 아아악!!!”
수염과 눈썹 거기에 머리카락까지·
모든 털이 일제히 뜯겨 나간 채 땅바닥에 떨어지자·
“이제 깨끗하네·”
성지한은 이제 봐줄 만하다는 듯 산뜻하게 웃어 주었다·
“····”
그러자 쥐 죽은 듯 조용해지는 대회의실·
그야 배런이 먼저 시비를 걸긴 했다만·
머리의 털이 죄다 뽑힌 채 저런 참혹한 몰골이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질 못했다·
그만큼 세계 랭킹 1위의 존재감은 대단했으니까·
한편·
‘바· 박 과장! 분명히 성지한이 안전 보장··· 해 준다고 들었다며!’
‘그 그게····’
‘빨리 가 봐! 어떻게든 수습해!!! 진정시켜!!!’
상사에게 떠밀려 단상으로 올라가게 된 박윤식 과장은·
울상이 된 얼굴로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서 성지한 님··· 죄송하지만 그 안전 보장···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응? 그래서 했잖아?”
성지한은 몸을 떠는 박윤식을 보면서·
손가락으로 배런을 가리켰다·
“쟤 머리 안 뽑았잖아·
“머 머리요···?”
“응·”
스윽·
성지한이 손가락으로 땅바닥을 가리키자·
배런의 금색 털이 모조리 허공에 떠올랐다·
“털 뽑는 거나· 머리 뽑는 거나 그게 그거거든·”
화르르륵···!
털이 급작스레 피어오른 푸른 불꽃에 휘말려 일제히 사라지자·
“아····”
박윤식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포스도··· 써?’
영역을 완전히 지배하는 것이·
배런의 포스와 흡사해 보였으니까·
아니 오히려·
‘더 능숙한 것 같은데···’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한 올까지 떠올라 푸른 불꽃에 타오르는 광경은·
카메라를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