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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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광경이다·
마법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마탑·
내로라하는 마법사들이 오직 내 한 마디를 듣기 위해서 몰려들었다·
나를 둘러싼 그 울타리는 내가 움직이면 자연스레 따라 움직인다·
휘둥그레 뜬 눈동자 거칠어진 호흡 사소한거 하나라도 내가 이야기하면 받아적겠다는 듯 펼쳐든 노트·
그 모든 것이 내게는 하나의 선율처럼 느껴진다· 원래 흐뭇한 마음이 들면 풍경도 미화되는 법이다·
한 명이 우물쭈물하며 내 눈치를 살핀다· 이런건 불협화음인데·
“아··· 저···”
“뭘 그렇게 망설이나·”
그녀를 흘끗 바라보자 그녀가 화들짝 놀라면서 말을 잇는다·
“새 생각보다 너무 젊으셔서 놀랐습니다···! 대마법사인데····”
“용건은·”
“아! 카플란님! 이 이번에 발표하신 고대 마법 논문말입니다! 제 나름대로 2 페이지까지 해석해서 정리해보았습니다· 여유되실때 제발 한 번만 읽어주시면···”
“그러지·”
그것을 건네받자 논문의 원 주인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어버버거렸다· 이내 구십도로 허리를 접는다·
한 명의 논문을 받아들자 지켜보던 마법사들도 용기를 얻은걸까· 그들이 나를 둘러싼 울타리가 한층 더 가까워진다·
와중 그 울타리가 홍해처럼 갈라진다·
“럼블···”
“럼블님이다!”
그러한 수군거림과 함께 뚜벅뚜벅 걸어서 내 앞에 당도한 것은 2등위 벨트라 마법사인 럼블이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아··· 카플란! 최고 등위로 승격한거 축하하네· 혹시 아카데미에서 교수를 해줄 생각은 없나? 물론 조건은 자네 지위에 걸맞도록 조정될걸세·”
“없다만·”
“한번만 다시 생각해보게! 자네의 가르침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이 많아· 자네가 교수로 와준다면 학생들이 얼마나 기뻐하겠나? 이건 미래를 위한 일···”
“없다고 했을 텐데·”
표정을 구기자 그는 하려던 말을 꿀꺽 삼키더니 물러난다·
이번에는 다른 마법사가 들었다·
마탑에 들어온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풋풋함이 얼굴에 잔뜩 묻어있는 소녀였다·
“저기! 그럼 대마법사 카플란님께서는 앞으로 마탑에서 연구하시는건가요?”
“굳이 그럴 생각도 없다·”
나를 쫓아 걷던 마법사들 무리가 파도처럼 크게 들썩인다·
“대 대부분의 마법사는 마탑에서 더 나은 대우를 받고싶어서 승격을 목표합니다! 도대체 어떤 심경이었길래···”
질문을 이어가는 그녀를 향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무언가 대단한 이유라도 기대하는 것 같은데 돌려줄 대답이 너무나도 단순했기 때문이다·
“재미없으니까·”
모두들 경악하며 숨을 죽인다·
마법 연구 기관으로서 그 입지를 공고히하는 마탑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그 누가 마탑을 상대로 재미없다는 표현을 입에 담을 수 있을까·
오로지 나만이 그럴 수 있겠지· 나는 이런 것들을 좋아한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그러한 일들을 하기 위해서 정진하고 또 정진했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고· 그게 내가 마탑에 잔류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는 이유다·
남들도 뻔히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재미가 없다·
“재미 재미가 없다고요? 상위 마법사들과 마법을 탐구하는 마탑은 마법사에게 있어서 가장 즐거운 장소로 여겨지는데··· 혹시 어떤 점에서 재미없다고 느끼셨을까요?”
“무리를 짓는건 약자의 특성이지·”
나는 솔직하다·
절약과 검소보다는 사치와 향락을 추구하며 성실함보다는 즉흥성에 이끌려서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 내게 마탑은 답답할 뿐이다· 가식으로 가득차있다·
나를 얽매는 것이 많으며 더이상 나아갈 생각이 없는 마법사들끼리 본인들 스스로의 최고점을 정하고 서로를 치켜세워주는 구조가 눈꼴시리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실 계획이신···”
“좀 쉬면서 생각해보지·”
마법사들은 내가 한 마디 한 마디를 할 때마다 격한 반응을 보인다· 여전히 나를 향해서 쇄도하는 질문이 많았다·
그 중에는 질문을 빙자한 질타도 있었다·
“최상급 등위로 승격했다면 책임도 뒤따른다고 생각합니다! 마법계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마탑에 잔류하는것이···”
“메르헨은 가르침 없이도 도달할 수 있는 등위다· 메르헨인 내가 보증하지·”
그러자 나를 쏘아붙이려던 마법사가 입을 꾹 다문다·
“이보게! 마탑에 남지 않더라도 이번 연구의 해석본만큼은 발표해주게! 온 마법사들이 그 해석본만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대략 그때쯤 나는 단상에 섰다·
“그래· 그러려고 오늘 마탑에 온 거 아니겠나·”
품속에서 서류를 꺼내자 일시에 내려앉는 정적·
손에 들려있는 이 가벼운 것이 내가 오늘 마탑에 방문한 이유· 고대 마법에 관한 논문을 해석할 자료다·
“뭐··· 우선 첫 페이지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마법사는 없겠지·”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서 나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도중에 끊기면 더 애달픈법· 그들은 가장 흥미로운 부분에서 해석이 막혔기에 그 어느때보다도 큰 갈증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화르륵—!
단 하나뿐인 자료가 내 손아귀 안에서 사그라든다· 이게 내 대답이었다·
“······!”
모두가 소리없이 기함을 토해낸다· 그 얼빠진 얼굴을 앞에 두고서 말을 잇는다·
“스스로 해석할 수 없는 경지라면 고대 마법에 접근하기에는 이르다···라는 것이 내 결론이자 해석이다·”
그러자 한 마법사는 허겁지겁 뛰어와서 재로 변해버린 자료를 손에 쥔다·
“카플란!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인가! 고대 마법을 활용할 수 있다면 세상이 배로 위대해질 것인데···!”
“세상은 위대해지겠지· 하지만 아직 마법사들이 위대하지 못하다·”
새파랗게 질려서 입술만 뻐끔거리는 교수들· 그저 맘 편하게 과실만을 좇아온 자들의 꼴 좋은 얼굴·
그 얼굴들을 뒤로하고서 마탑을 떠나려는데·
“어떤 선택을 하든 카플란씨의 선택을 응원합니다·”
그 목소리는 기이하리만치 선명했다·
순식간에 자신을 제외한 모든 소리를 소음으로 만들어버리고 오로지 자신의 용건을 내 귓가에 전달한다·
그래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듣고싶은 것이 있습니다· 현재 카플란씨의 솔직한 심경을 말해줬으면 좋겠는데요·”
심경· 심경이라·
나도 모르게 다시 입을 열었다·
“허무하군·”
별 거 없다· 라고 말하려다가 그래도 마법사들 앞이니 수위를 조절했다·
여전히 마법을 사랑한다· 진리와 지혜를 추구하는 마법사의 길은 여전히 내게 있어서 숭고한 왕도다·
다만·
정상에 도달해보니 말 그대로 허무 뿐이다·
이 위치에 오르겠다는 일념 하나로 수없이 많은 하위 목표들을 만들어냈었고 악착같이 이루었다·
죽어서도 달성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혹은 죽기 직전쯤에야 달성할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벌써 끝나버렸다·
선명한 목소리는 이어진다·
“그럼 카플란씨는 본인이 또다시 스스로를 증명해야만 하는 위치에 놓인다면 어떨 것 같나요·”
스스로의 증명이라·
부모가 없는 환경에서 자라 어릴적에는 그러한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남들에 비해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증명했고·
그 다음에는 마법적 기량을 난제에 접근하는 용기를 이론의 창조를···
살아오면서 수 많은 과제들이 주어졌지만 전부 같은 결론으로 귀결시켰다· 끝끝내 모든 것을 증명해냈고 결국 대마법사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썩 나쁘지는 않았네· 또 증명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받고싶다·
“재밌을 것 같은데·”
“진심인가요·”
“진심이다·”
줄곧 대화를 나누던 기자의 얼굴이 없다는 것을 눈치챈 것은 그때쯤이었다·
불쾌함을 넘어서서 기이하다·
얼굴이 있어야 할 위치에는 새까만 원이 하나 있을 뿐 그에게는 다른 사람에게는 으레 있을만한 것이 전혀 없다· 눈 코입 귀 그 모든게·
그 위화감을 더 길게 느낄새도 없었다·
“······!”
눈앞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물든다·
불쾌한 이명이 귀를 가득 채우며 호흡이 곤란해진다·
어느 계열 마법이지? 술식을 대하듯 접근하려하지만 느껴지는 마법은 없다·
마법이 아니라는건가? 그렇다면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메르헨의 등위에 도달한 대마법사는 내가 유일할 텐데·
모든 감각이 사라져간다· 공허속에서 오로지 사고만이 남아 유영한다·
혹시 이게 새로 증명해야만 하는 그 과제인가?
그렇다면···
‘재미있겠는데·’
◈
“미안해·”
“번복해서 정말 미안한데··· 너랑 사귀는건 역시 안 될 것 같아·”
불쾌한 이명이 잦아들고 처음으로 들은 것은 모르는 여성의 목소리다·
누군가가 알 수 없는 이별을 내게 통보하고 있었다·
시야를 살피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빛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숨을 들이마쉬고 내쉰다· 호흡이 가능하다· 다행히 아직 숨은 붙어있는 모양이다·
“솔직히 플란도 예상하고 있었지? 어라 충격이 너무 컸나?”
내 어깨를 툭툭 건드리는 감각· 그때쯤에서야 눈이 번쩍 뜨인다·
내 몸을 건드린건 모르는 사람이다· 처음보는 여자가 유감이라는듯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겠다·
“······”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뭐하는 곳인지는 알겠다·
저 앞에 놓여있는 칠판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배치되어있는 책상과 의자·
누군가가 굳이 설명해주지 않더라도 이곳은 강의실이다·
‘강의실?’
건너편의 여자는 여전히 내 안색을 살피고 있었다·
창밖의 빛을 받아 찬연하게 빛나는 금빛 머리카락 호수처럼 푸른 눈동자·
아름다운 외양이지만 그것에 감탄할 겨를이 없었다· 문제는 내가 이 여자를 전혀 모른다는 점이다·
“나 솔직히··· 연애는 내가 존경할 수 있는 남자랑 하고싶어· 루이스같은 남자 말이야·”
최근 누군가에게 고백을 한 기억도 받은 기억도 없다·
그런데 이 묘한 분위기는 뭐지· 심히 거슬린다·
“너한테는 아직 그것도 무리잖아· 생각해봤는데 나 네가 남자로는 안 보여·”
혼란스러운 상황속에서 여인이 검지를 펴 내 손을 가리킨다·
그러고보니 내 손에는 책이 한 권 들려있었는데 표지에는 『 기초 마법이론 』 이라고 적혀있었다·
‘기초 마법?’
기초 마법이론이라· 카플란은 자신의 과거를 되짚는다·
도대체 얼마나 예전에 학습했던건지 기억조차 희미하다· 물론 그 근간은 그의 영혼안에 새겨져있다만·
“너를 좋아하려고 노력하더라도 마법을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고있으면 점점 나도 모르는 사이 정이 조금씩 떨어질 것 같아·”
그녀가 차분하게 말을 잇는다·
“그러니까 사귀기로 했었던 약속은 취소야· 우리 아카데미에서는 그냥 인사만 하는 사이로 지내자·”
아카데미?
마법사들을 길러내는 학습의 요람· 내가 아카데미를 졸업한 지는 한참이나 지났는데·
이제보니 눈앞의 여자가 아카데미 제복을 입고있었다· 가슴부근의 명찰에는 ‘헤일리’라고 적혀있고·
상황 파악을 위해서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일단 내가 기초마법조차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오해부터 정정하고싶었다·
“전부 다 아는거로군·”
“응? 너 모르잖아·”
“정말로 다 안다만·”
거기까지 이야기한 후 소스라치게 놀랐다· 목소리가 변성기가 이제야 온 소년의 목소리라서·
“아· 아·”
그래 이건 내 목소리가 아닌데·
아무래도 뭔가가 단단히 잘못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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