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3
“그 여자의 견갑을 부수면 점수를 어마어마하게 얻을 수 있다고 하더군·”
고작 그 발언만으로도 대표들의 얼굴 위에는 긴장감이 어렸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스칼렛이 토벌제에 참전한 이래 아직 그 누구도 성공한 적이 없다고 여기저기서 떠들던데····”
거기까지 내뱉었을 때쯤 일행의 얼굴은 벌써 창백해져 있었다· 걱정을 한가득 머금은 채 두려운 무언가를 상상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잠깐 잠깐잠깐! 그 그 그 전에!”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베키였다· 그녀가 손 하나를 번쩍 들어 올린다·
“우리가 지금부터 어떤 계획을 가지고 움직이게 되는지! 우리 그것부터 확실히 정하자···!”
베키는 기사들이 일제히 뛰어나갔던 방향과 나의 얼굴을 몇 번이나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다들 그림자 마수를 독점하러 가버렸는데···· 플란 너도 계획이 있을 거 아니야· 그 그렇지?”
그렇게 질문하는 베키는 잠시도 가만있질 못했다· 허벅지를 비비고 땀을 뻘뻘 흘려대면서 자신의 예상이 틀리기만을 바라는 듯 보였다·
“역으로 묻지·”
그런 베키에게 나는 차분하게 되물었다·
“토벌제에서 완벽하게 승리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부터 어떤 것들을 해야만 하는가·”
“어···· 음 그거야 당연히····”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배배 꼬면서 베키는 붉고 조그만 입술을 열심히 달싹였다·
“마수를 잡아서 점수를 잔뜩 벌어야겠지? 그리고 다른 조는 견제하고···· 아 위험 지역은 피해서 우회해야 할거고····”
“점수를 가장 크게 얻을 수 있는 방법· 그게 무엇인지는 너희도 잘 알 있을 텐데·”
“···!”
눈이 휘둥그레진 세 명을 향해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여줄 뿐이었다·
“너····”
이번에는 트릭시가 끼어들었다·
“혹시나 해서 묻겠는데 방금 잔불의 기사를 언급한 이유가····”
“너희가 생각하는 그대로다·”
놀랍게도 토벌제에서 점수가 가장 크게 책정되어있는 것은 마수 처치가 아닌 ‘스칼렛의 견갑 부수기’다·
한데 내가 이 항목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비단 큰 점수 때문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점수는 부차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성공한 사례가 아직 단 한 번도 없다는 점· 나는 바로 그 점에 주목했다·
“딱히 어려운 이야기가 아닐 텐데·”
“····”
트릭시가 헛숨을 집어삼켰다· 입술을 추가로 몇 번 더 달싹이는데 고장 난 것처럼 버벅거릴 뿐 내가 알아들을 만한 무언가를 내뱉진 못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트릭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으으····”
그녀가 제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조금 무모하다는 생각도 들어· 이유가 궁금해·”
“그따위 걸 지금 질문이라고 내뱉는 건가·”
답을 주는 데에 고민은 조금도 필요 없었다·
“우리가 마법사라는 걸 잊지 마라·”
◈
광장을 벗어나고 3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현재 베르켈의 숲속을 걷는 중이다·
임시 거처가 필요하다· 일행은 마나만 있다면 영구히 활동할 수 있는 소환수 따위가 아니기에 위험 지역에 진입하기 전에 쉴 곳을 만들어둘 생각이다·
물론 대충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
사소하더라도 완벽할 수 있도록 되도록 최선의 자리에 짓기를 희망한다· 강이 근접해있고 후방은 산이 감싼 그런 최적의 지형 말이다·
하지만 지능을 갖춘 마수들 역시 그러한 지형을 원한다· 일례로 지금 막 모습을 드러낸 ‘무명(無名)’이라는 이름의 마수들이 그러하다·
베키가 혀를 내둘렀다·
“···진짜 불길하게 생겼네· 역시 이쪽은 아직 어떤 조도 안 건드렸나 봐·”
무명·
표현 그대로 이 마수는 자신의 이름과 정체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전투가 시작되면 적의 외견을 그대로 흉내내어 불쾌감을 주기로 유명한 놈이다·
나는 조용히 한 명의 이름을 불렀다·
“트릭시·”
“···?”
나를 한 번 바라보더니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못할 건 없지·”
트릭시는 화염으로 창을 엮어냈고 우릴 발견한 무명은 곧바로 베키의 외형을 뒤집어썼다·
베키 본인은 당연히 질겁했다·
“엑···· 왜 하필 내 외형이야···?”
트릭시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다· 빛살처럼 뻗어나간 화염창은 곧은 직선을 그으며 무명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케···· 엑····”
베키로 위장한 무명은 나름대로 저항하려 했으나 그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트릭시가 녀석의 머리에 화염창 세 개를 연달아 꽂아버렸으므로·
“어딜 감히·”
흥 하는 소리를 내며 트릭시가 코웃음을 쳤다·
“저기···· 트릭시?”
베키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열었다·
“그으···· 뭐랄까···· 내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 망설임 없이 죽이는 거 아니야···?”
“어차피 마수잖아·”
“그래· 그렇지· 그렇긴 한데····”
“아 물론·”
트릭시가 베키를 한 번 흘끗 바라보았다·
“워낙 못생긴 얼굴이라 처치가 쉬웠어·”
“뭐 뭐라고!”
두 소녀가 대화 같지도 않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무명 몇 마리를 더 치워내며 걷자 마침내 원하던 지형이 나타났다·
우선 강이 보인다· 그에 더해 뒤에는 산이 있고 위로는 숲이 있어 과연 내가 원했던 모습 그대로라고 할 수 있었다·
“주의해라· 여차하면 나무에 베일 터이니·”
나는 주변의 나무들을 염동으로 쥐었다·
신체 내부의 마나 머릿속에 그려낸 설계· 이 모든 것들이 마법이라는 이름 아래 아름다운 기적을 구현한다·
──!
가공할만한 소리와 함께 나무들이 모여들어 용도에 알맞게 깎이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이내 합쳐져 조그만 집의 형태를 구축해낸다·
내부는 상점에서 구매했던 생필품들을 활용하여 쾌적하게 개선했고 몇가지 부분에는 미적 감각을 발휘하여 흡족스러운 외견을 덧입혔다·
일행들의 입이 감탄으로 벌어지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입을 다물라고 지적하려다 그만두었다· 이런 건 익숙해지는 게 해답일 터이니·
“우아아아···!”
베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녀는 그새를 못참고 임시 거처의 문을 열어젖혔다·
안으로 들어가려는 그녀를 염동으로 붙잡았다· 졸지에 붙잡힌 베키가 손발을 휘젓는다·
“응? 어라? 뭐야 왜 그래···?”
“착각하지 마라·”
나는 임시 거처 안으로 왜곡 가방을 집어넣었다· 가방에 미처 담기지 못한 자료 등등은 차곡차곡 쌓아 정갈하게 정리했다·
열려있는 문을 닫은 후 일행에게 말했다·
“본인의 거처 정도는 직접 마련하도록·”
“····”
일행의 표정이 멍청해졌다·
◈
광장을 벗어난 지 10시간째·
기세 좋던 태양은 어느덧 졸음에 빠져 고개를 숙였고 베르켈에도 어둠의 장막이 짙게 드리웠다·
“흐음·”
장작을 우아하게 쌓아 불을 붙인 후 그 앞에 의자를 두고서 정자세로 착석했다· 현재는 서늘한 밤바람을 느끼며 여러 자료를 살피는 중이다·
아마 많은 조가 식량을 구하기 위해 다사다난한 첫날을 보내고 있을 터이나 우리는 초기에 얻어둔 점수 덕택에 아직 염려가 없다·
‘앞으로 2시간 정도인가·’
나는 임시 거처 주변에 그어둔 큰 원을 살폈다·
이 마법진은 단거리 순간이동의 술식이 담긴 것으로 다음 날 아침쯤에는 발동이 가능할 것이다·
목적지는 당연히 강 건너편의 위험지역이다·
마이에브가 건네준 자료를 갈무리한다· 고대 룬어 지도와 환상 지도를 비교하며 모종의 규칙성을 찾아내던 그 때·
문득 장미 향이 내 코끝을 간질였다·
“····”
나는 고개를 돌려 오른편을 바라보았다·
“아 플란· 바빠?”
목소리의 주인은 베키였다· 그녀는 머리카락에 나뭇잎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었는데 정작 자신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거처는 마련했나·”
“아 거처? 응응· 아주 훌륭하게 만들었지·”
베키가 그렇게 대답한 순간 저편에서 무언가가 폭삭 가라앉았다· 보아하니 집의 형태를 띠고 싶었던 안쓰러운 조형물이었다·
“····”
베키가 낭패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흠· 아무튼·”
이내 헛기침하더니 통나무 하나를 낑낑거리면서 끌어왔다· 그것을 내 옆에 두더니 털썩 앉는다·
베키는 한동안 머리카락만 배배 꼬았다· 그녀가 입술을 뗀 것은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였다·
“플란 혹시 안 바쁘면 잠깐 이야기 나눌래?”
“나는 항상 바쁘다·”
“아아····”
베키의 표정이 살짝 시무룩해졌다·
“그러나 너와 이야기하는 건 어렵지 않지·”
말 그대로다· 베키와의 대화는 고지능을 요구하지 않기에 어렵지 않다· 바꾸어 말해 자료 점검과 충분히 병행이 가능하다는 소리다·
“오 그래? 그럼 잠깐만 이야기하자·”
시들었던 베키의 표정이 다시 활짝 핀다·
베키가 별안간 손바닥에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내 그곳에서 얼음꽃이 피어난다·
“기억나? 정확히 이거였어· 네가 나한테 처음으로 알려줬던 마법 말이야·”
“훨씬 수준 높게 가르쳐줬던 것 같다만·”
그러자 베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녀가 손에 쥐고 있던 얼음꽃은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아니 아니! 아무튼 알려준 게 이거라는 거지· 내가 방금은 급하게 만들어서 그런 거고!”
“용건이나 말해라·”
“하아아····”
베키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위를 올려다보았다·
베르켈의 밤하늘에서는 수많은 별이 반짝인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소녀는 어느 순간 오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있잖아· 우리 아빠는 공사 현장에서 일했었어· 근데 말 그대로 일만 했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화 한 번을 못냈으니까 말이야···· 그러다 돈을 받으면 꼭 마법서를 한 권씩 사오셨어·”
나는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근데 우리 아빠는 마법을 하나도 모르거든· 『원소의 기초』를 사와야 하는데 『원소의 이해』를 사 오셨어· 이해라는 말이 붙어있으니까 좀 쉬운 서적인 줄 아셨던 거야· 웃기지?”
“재능 있는 마법사에게는 기초 서적을 건너뛰는 방식도 나름 효과적인 전략이 된다·”
나는 조용히 자료를 살피며 대답했다·
“으음···· 나는 딱 하나· 1페이지에 적혀있는 술식 하나만 겨우 운 좋게 성공했어· 근데 그거 하나에 아빠가 정말 기뻐했던 기억이 나·”
“잘 됐군· 마법도 익히고 가정도 화목해졌으니·”
“화목···· 응· 그렇지·”
별을 담은 베키의 눈동자가 조금 더 깊어진다· 그녀는 아마 밤하늘을 도화지 삼아 과거를 그리고 있는 듯하다·
“우리 아빠가 어느 정도로 기뻐했는 줄 알아? 없던 용기까지도 마구마구 생겼는지 다음날에는 상사랑 대판 싸웠어· 처음으로·”
“승리했나·”
내 말에 베키가 푸흐흐 웃음을 터뜨렸다·
“어···· 음···· 그 뒤로 일을 안 나가시던데 이러면 졌다고 봐야하나···? 애매하네·”
소녀는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자신의 조그만 발을 쳐다보면서 말을 이어나간다·
“아무튼~ 내 하찮은 성공 하나에 그렇게까지 기뻐해 줬다는 게 너무 고맙고 신기하고· 아빠한테는 항상 그런 마음이었어· 그래서 아빠가 돌아가신 뒤로는 줄곧 마법에만 의지하려고 했었지·”
“그게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유인가·”
“그렇지? 근데 웃긴건 나 마법 그만두려고 했었어· 막상 아카데미에 입학해보니까 벽이 너어무 많이 느껴져서·”
그 벽이 무엇일지는 굳이 듣지 않더라도 이해가 되었다· 재능 신분 인맥 생활···· 모든 요소 하나하나가 평민인 베키에게는 난관이었을 터다·
“그래서 눈 질끈 감고 전부 그만두려 했는데 너를 딱 만났어· 네가 내 꿈을 지켜준 거지 뭐·”
거기까지 이야기한 뒤 베키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발치를 바라보았다가 나를 바라보았다가· 그걸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혼자 뜸을 들인다·
그 부산스러운 동작이 신경쓰여서 결국 침묵을 먼저 깨는 것은 나였다·
“너는···· 뭘 그리 요란스럽게 뜸을 들이지·”
“아 어? 아···· 그게····”
베키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저기 플란· 음· 말이 나온김에 물어보는 건데· 그러니까···· 막 어려운 질문은 아니고·”
그녀가 볼을 몇 번 긁적거리더니 아주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내게 묻는다·
“혹시···· 너 몸이 좀 별로야? 어때?”
“여러모로 형편없는 몸이긴 하지·”
나는 짧게만 대답했다·
애초에 기사의 핏줄을 지니고 태어난 몸이다· 마법사 입장에서 그리 친절한 육체는 아니었다·
베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형 형편이 없다고? 왜? 그게 무슨····”
“너는 본인 성장에나 집중해라·”
나는 그녀의 말을 잘라냈다·
베키의 재능은 이제야 막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바꾸어말해 지금은 그 어느때보다도 스스로에게 관심을 쏟아야 할 시기라는 거다·
“아···· 응· 그래·”
베키는 머쓱해졌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또다시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저기 플란·”
그녀가 문득 나의 이름을 불렀다· 조막만한 손바닥으로 제 옆자리 툭툭 두드린다·
“1분만이라도···· 나란히 앉아있지 않을래?”
“지금도 나란히 앉아있는 것 같다만·”
“아니 옆에 딱 붙어서 앉는 거 말이야·”
허공에서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베키의 얼굴이 조금 붉어지더니 그녀가 변명을 하듯 재빨리 말을 바꾸었다·
“아니 아니야· 못 들은 걸로 해주라·”
“통나무에 앉을 생각은 조금도 없다·”
“아 으응· 나도 그냥 실수로 뱉은 말이라니까·”
◈
바로 자리를 벗어나는 것도 어색할 것 같아서 베키는 한동안 말 없이 통나무에 앉아있었다·
밤이 깊다·
플란은 집중하고있기에 더이상 말을 걸어 방해하는 것은 좋지 않을 듯하다· 아니 말을 건다고 하더라도 당장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
“저기 플란· 나도 이만 거처로 돌아가볼게·”
“저 잔해 더미를 말하는 건가·”
“····”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얼음 원소에 특화되어있기에 거처를 마련하는 일은 너무 어려웠다·
사각사각·
“으 응?”
그때 갑자기 베키가 앉아있던 통나무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제멋대로 깎이고 휘어지더니 이내 고풍스러운 흔들의자로 모습을 변모한다·
가장 신경쓰이는 건 베키의 흔들의자가 플란의 의자 옆에 바로 나란히 놓여있다는 사실이었다·
“차라리 여기에 있어라·”
소녀가 눈을 깜빡이며 플란을 쳐다보았다·
“···나 여기 있어도 돼?”
“소란스럽게 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아아·”
더없이 서늘한 음색이었지만 베키에게 흔들의자를 만들어준 배려만큼은 따뜻하고 상냥했다·
그의 몸은 무슨 상태일까 그는 베키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의문은 여전히 많다·
베키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일정한 박자로 넘겨지는 종이 자료의 소리·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의 온기·
베키는 몸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은 방청객이 되어 소녀를 내려다본다·
누군가가 이 밤이 길어지기를 기도한 순간·
풀벌레 우는 소리가 고즈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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