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5
‘바네사’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한 여기사는 걸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음식을 해치웠다·
모습이 워낙 안쓰러워서 음식을 제공하긴 했지만 사실상 잔반 처리에 가까우니 아까워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그녀에게는 몇 가지만 묻기로 했다·
“나머지 조원들은 어디에 있지·”
“커억 큽·”
바네사는 사레가 들렸는지 제 가슴팍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그 우아하지 못한 행각에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지만 나는 그녀가 물을 마실 때까지 별말 없이 기다려주었다·
“후우우 전부 탈락했어·”
“마수에게 당한 건가·”
바네사가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마녀의 혼령을 마주쳤다가 그대로····”
“마녀의 혼령?”
이렇듯 다급하게 끼어드는 목소리는 베키의 것이었다· 베키가 걱정을 잔뜩 집어먹은 눈빛으로 바네사를 쳐다보았다·
“마녀의 혼령이라고요?”
“응· 마녀의 혼령·”
“어 어디서요?”
“워낙 경황이 없어서 정확한 지점을 짚을 수는 없지만···· 그렇게 멀지는 않았어·”
베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대로면 우리도 위험한 것 아니냐는 듯한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그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마녀의 혼령은 나름대로 악명이 높은 녀석이니·
그러나 녀석은 밤의 정령인 헤라와 상성이 좋지 않다· 바꾸어 말해 그것이 자발적으로 우릴 찾아오는 일은 없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나는 베키를 향해 한마디 했다·
“마법진에나 집중하지 그래·”
“···네에·”
베키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서 마법진을 향해 돌아간다· 현재 대표 세 명에게는 술식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지시해둔 참이다·
“저기 근데· 마녀의 혼령보다도·”
베키가 돌아간 후 바네사가 말문을 텄다·
“다른 기사 조들이 너희를 찾고 있어·”
“그런가·”
“천축이 점수를 현상금처럼 내걸었거든 너희가 있는 위치를 알아내기만 하면 준다는 식으로·”
“그렇군·”
“····”
바네사의 고개가 모로 기울어졌다·
“별로 안 충격적이었어? 방금 이야기·”
“애초에 나는 숨은 적이 없어서 말이다·”
나는 덤덤하게 사실을 읊조릴 뿐이었다·
“얼마나 더 기다려줘야 하는 건지 궁금하군·”
나 역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밤이 찾아왔다·
바네사를 보내준 이후 나는 세 명이 마법진의 술식을 해독하는 데에만 집중하도록 지시했다·
예상대로라면 바네사는 어차피 곧 돌아온다·
“쯧·”
그래서 어제와 마찬가지로 모닥불 앞에 앉은 채 눈앞의 한심한 광경을 보며 혀를 찼다·
사각사각·
루이스는 눈조차 깜빡이지 못하고 종이에 무언가를 써 내린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가득했다·
그는 필기가 필요하다며 종이를 부탁했고 나는 흔쾌히 점검을 마친 자료들을 내어주었다· 그 양이 현재는 장작처럼 불어난 채였다·
“자꾸 어디서 어긋나는지를 모르겠네·”
콱 하는 소리가 나도록 종이를 신경질적으로 구긴 다음 새 종이를 집어 든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많이 초조해하는 모습이었다·
“계산은 틀린 부분이 없는데 도대체 뭐지?”
나는 고개를 돌려 베키를 바라보았다·
“─”
그녀는 무언가를 열심히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름 영창으로 접근할 수도 있게 되었는가·’
그녀의 중얼거림에 귀를 기울인 순간·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할 수 있나? 할 수 있어···?”
역시는 역시였다· 아직 술식에 영창으로 접근하기에는 베키의 역량이 부족하다·
까드득·
트릭시는 조용히 손톱을 물어뜯고 있다· 주변에 떠 있는 푸른 불꽃 몇 개가 어쩐지 음침하다·
“어떻게···· 종일 진척이 없을 수가 있나·”
내 한 마디에 세 명의 시선이 동시에 내게로 향했다· 모두 무언가라도 항변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그럴 기운조차 없는지 이내 한숨만 푹 내쉰다·
“심지어 너희가 꼭 알아야만 할 것인데·”
「신호의 술식」
「긴급 회피의 술식」
「명상의 술식」
마법진의 발동 요건으로 구성해둔 술식은 총 세 개· 위험 지역에서 대표들이 만일의 일을 겪지 않도록 실용적인 것으로만 구성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 정도도 익히지 못하고 위험지역에 들어서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는 소리다·
“이건 너무 어려워·”
베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건 최소 2학년 심화 과정이야· 내가 나름 논문 요약해본 짬이 있잖아· 무조건이야!”
“기초에 불과하다·”
“····”
베키가 헛기침하더니 항변했다·
“플란 네 수준에서 기초인 거 아니고?”
“전혀·”
그때· 트릭시가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물론 완전히 집중하면 풀 수도 있겠지· 그런데 지금 우리는 심적으로 몰려있는 상황이야·”
그녀의 검지 끝이 하늘의 달을 가리킨다·
“다른 조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점수를 벌어들이고 있는데 우린 이틀 차 밤이 되도록 아무것도 안 했어· 착잡해져서 술식에만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렵다는 거지·”
“이 술식이 우승의 첫걸음이다· 말했을 텐데·”
“그렇게 말해도···· 그래· 그냥 솔직하게 말할게· 사실 온전히 집중해도 풀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결국 손가락을 튕겼다· 허공에는 푸른 빛으로 이루어진 마나 칠판이 생성된다· 자력으로 해낼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더이상은 시간이 없다·
“집중해라· 설명은 정확히 10분으로 마친다·”
무엇을 설명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먼저 술식을 보기 전에 너희들에게 어떤 역량이 요구되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설명에 정확히 10분만을 할애한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나는 세 가지 술식에 관한 단서를 축약하여 제공했다·
협력 생존 냉정함···· 이 세 가지가 핵심이었다·
그러나 정확히 9분 12초를 설명했을 때·
“····”
불현듯 느껴지는 인기척에 나는 설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눈을 깜빡이는 대표들을 놔두고서 잠시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집중했다·
나는 허공에 떠 있는 칠판을 소멸시켰다·
“너희는 지금부터 마법진에 집중하도록·”
“응?”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세 명은 나에게 더 이상을 묻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시선을 몇 번 교환하더니 이내 마법진에 달라붙는다·
하나 둘 셋 넷····
수는 당장 느껴지는 것만 세더라도 열이 넘는다· 나는 그 인기척이 기사의 것임을 확신했다·
나는 불붙은 장작을 염동으로 투척했다· 인기척의 근원지에 떨어진 그것이 주변을 밝힌다·
그리고 아주 익숙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여기 있었네· 플란·”
장미가 인간으로 피어난 듯한 여기사다· 베일 듯 날카로운 붉은 색 단발을 손으로 빗으며 천축의 단장 생도 자네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네트의 뒤에는 바네사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서 있었다· 그녀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 미안해····”
몰골을 보아하니 바네사도 꽤 험한 일을 겪은 듯했다· 아니 애초에 그녀를 탓할 생각이 없다·
이렇게 될 것이라 예상했고 또한 의도했으니·
그저 덤덤하게 자네트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술래에는 영 재능이 없군· 자네트·”
“숨바꼭질에서 잡아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서 말이야· 아 잠시만 기다려줄래?”
크아아아─!
그 순간 숲으로부터 그림자로 엮어진 들개 열 마리 정도가 쏘아져 나왔다· 들개라는 명칭에는 사실 어폐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최소 바위만 한 크기였으니·
스윽·
자네트의 세검이 정교한 반원을 그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허공으로 뛰어오른 마수들은 다시 지면을 딛기도 전에 주요 혈을 전부 관통당해 찢어발겨졌다·
관절이 뜯겨지고 몸체가 분쇄되는 소리· 세검의 얇은 춤선 하나에 사방으로 흩어지는 내장·
사방에서 쏟아지던 그림자 들개는 이제 살덩어리에 불과해진 채로 지면에 쌓인다· 고유 능력의 능숙한 활용이었다·
“흐흐흠·”
자네트가 콧노래를 부르며 품속으로부터 손수건 하나를 꺼내 자신의 검날을 닦아냈다·
“보다시피 베르켈에는 귀찮은 게 많네·”
“하소연하러 여기까지 왔나·”
“그럴 리가 있겠니· 오히려 지금부터는 네가 하소연해야 할지도 몰라· 플란·”
자네트는 검을 허리에 찼다· 대신 동전 하나를 꺼내서 일정한 박자로 허공에 튕긴다·
“환상 지도를 모두에게 공개했다는 점· 그리고 이틀 동안 사냥에 나서지 않았다는 점···· 분명 네 머릿속에는 무언가 계획이 있을 거거든·”
팅 동전이 다시 한번 튀어 오른다·
“계획을 말해보렴 플란·”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소연이 아니라 정보 구걸이 이유였던 거군·”
“흐음?”
자네트는 고개를 살짝 꺾으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격식 있고 인자한 여기사의 표본 같은 모양새였다·
“말을 신중하게 고르는 편이 좋지 않겠어? 나는 지금 고민 중이거든 마법 학부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두려웠던 모양이지·”
그 말에 자네트는 입을 다물었다· 대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다음 말을 이어보라는 듯·
나는 기꺼이 그리했다·
“너는 점수가 가장 높은 상황에서도 두려웠던 거지· 1등을 차지한다는 확신이 없었을 테니·”
자네트는 흐으음 하고 비음을 내더니 동전을 튕기는 것을 그만두었다· 여전히 여유로운 듯 보이지만 눈동자에는 흥미가 한층 더 깃들었다·
“마수를 잡고· 잡고· 또 잡아도· 내 생각밖에 나지 않았을 터다· 언제 뒤집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마음 언저리에 남아있으니까·”
“후후후····”
자네트는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미묘한 웃음을 흘리더니 상을 내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아주 멋진 생각이야· 일리가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플란 네가 간과한 점이 하나 있는데····”
자네트가 티잉 하는 소리가 나도록 동전을 아주 높게 튕겼다·
그리고 다음 순간·
후웅─!
내게로 거친 바람이 몰아쳤다· 어느 순간 내 앞의 대지가 일직선으로 파여있었다· 그 균열 너머로 자네트의 흡족한 미소가 보였다·
눈 한 번 깜빡할 찰나 자네트가 검을 휘둘러 대지를 가른 것이었다·
나는 일부러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 검격이 눈앞에서 멈출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플란 네가 대단하다는 건 나도 인정해· 하지만 동시에 내가 패배한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단다·”
자네트는 다시 미소를 되찾았다· 손으로는 어느덧 다시 동전을 튕기고 있는 채였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점도 칭찬해· 흐음~ 물론 네 동료는 그렇지 않은 것 같지만·”
나는 고개만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세 명 전부 염려스럽다는 듯한 얼굴로 내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법진에 집중하라고 했을 텐데·”
“어···· 풀었어· 플란· 풀긴 풀었는데····”
베키가 우물쭈물하면서 주변을 빙 둘러보았다· 비단 천축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기사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자네트가 한 차례 어깨를 으쓱였다·
“이것도 동맹이라면 동맹일까? 변수 덩어리를 남겨서 좋을 게 없다는 거· 그 점에서만큼은 전원 만장일치였거든·”
나는 다만 베키에게 한 차례 더 물었다·
“풀었다는 말에는 분명 틀림이 없겠지·”
“으응· 검산까지 했어·”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을 잇는다·
“이쪽에 집중해주지 않으면 섭섭한데? 슬슬 계획을 말해줘야겠어· 오늘은 더 이상 검이 휘두를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어때?”
“그렇게 하지·”
“말하지 않는다면 이번에야말로···· 음?”
자네트가 말을 매듭짓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도하고 우아한 걸음걸이를 하며 내게 가까이 다가온다·
그녀가 내게 천천히 되묻는다·
“말하겠다고?”
“그래·”
“또 한 번 내 예상을 벗어나는구나· 플란 오늘 너에게 세 번 정도는 검을 휘두를 줄 알았거든·”
고요해진 주변 일대·
모두 내 입에서 무언가가 뱉어지만을 기다린다· 나를 바라보는 기사들의 눈동자에는 호기심과 긴장씩 반반씩 뒤섞여 일렁이고 있었다·
정적의 가운데에서 한숨처럼 말을 내뱉었다·
“한데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늘 그랬듯 나에게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
마나를 있는 힘껏 끌어올렸다·
“지금부터 두 눈으로 직접 보도록·”
새하얗게 빛나는 고화력의 직선· 그것이 원 안에서 네다섯개 연달아서 그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면 전체가 빛을 발한다·
그 즉시 빛무리가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이의 몸을 휘감았다·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기사들의 얼굴이 보였다·
“─!”
그들의 얼굴에 어떠한 판단이 어릴 때쯤· 이미 마법은 발동되었다·
단 한 번의 발동으로 여러 대상을 전송하는 공간의 기적· 마법사가 추구하는 소환 계열의 낭만·
“이거···!”
“설마?”
“무슨···!”
순간 이동의 마법진·
계획에 변경은 없다·
나는 예정대로 위험지역에 발을 딛는다·
“너희도 함께 경험하게 해줄 터이니·”
···여기 있는 모두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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