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7
하루가 더 지난 베르켈의 위험지역·
“예상보다도 훨씬 불쾌한 곳이네·”
트릭시가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척 보기에도 불길하게 메말라 있는 지면 탁한 마력의 기류 셀 수도 없이 많은 마수까지· 여러 가지 위험 요소가 잠들어있는 이곳을 세 마법사는 걷고 있었다·
걷다 보면 가끔 알아들을 수 없는 마수의 울음소리가 소름 끼치게 귓전을 때린다·
“그 녀석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트릭시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마법진이 순간 이동과 관련된 것일 줄이야· 세 명 중 누구도 감히 예측하지 못했다·
조금의 오차도 없는 술식으로 마력을 촉매 삼아 모두를 위험 지역으로 전송하는 도박수이자 기적·
플란의 마법은 그러했다·
신호 긴급 회피 침착·
위험지역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지금 돌이켜보면 그 술식들 하나하나가 단서였다·
그 중 「침착」덕에 세 명은 이처럼 갑작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나름 차분할 수 있었다·
루이스가 입을 열었다·
“플란에게도 분명 계획이 있겠지· 우선 위험 지역만큼 점수가 많이 모인 곳도 없으니까·”
“···도대체 무슨 계획· 이제 토벌제 삼일 차야· 설상가상으로 플란은 우리랑 떨어져 있고·”
트릭시의 시선이 토벌제의 기록지로 향했다· 천축을 비롯한 상위 조들은 지금도 착실하게 점수를 쌓아가는 중이다·
···아니 쌓아간다는 표현에는 다소 어폐가 있다· 쌓을 수밖에 없다고 표현해야 옳겠지·
위험 지역에 진입한 조의 점수 상승이 더이상 확인되지 않는 순간 사실상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없는 것과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쿵· 쿵·
“지금부터는 정신 바짝 차려· 플란이랑 합류하지 못하게 된다면 우리끼리 해나가야 해·”
쿵· 쿵·
“말하는 데 자꾸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트릭시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내 자못 당황스러워했다·
“···?”
베키가 맨 뒤에서 걸으며 눈에 띄는 벌레형 마를 얼음송곳으로 눌러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뭐 하는 거야 넌·”
“응? 너도 해봐· 이거 잡으면 점수 올라·”
“···하·”
트릭시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새끼 거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점수는 너무나도 미약하다·
“얼마 되지도 않는 점수 모아서 뭐 하게·”
“작은 것부터 차곡차곡 모아야지·”
“소용없어· 말했잖아·”
티끌을 모아 태산을 만든다는 건 비교 대상이 없을 때나 통용이 가능한 이야기다·
순위 높은 기사 조들이 점수를 미친 듯이 벌어들이고 있는 지금 티끌은 모아봐야 결국 티끌로만 남게 될 것이다·
“위험 지역에 들어선 이상 점수가 큰 마수를 하나라도 확실히 공략하는 게 중요하다니까· 그리고 플란이랑 합류하는 게 먼저야·”
“플란은 아마 금방 마주치게 될걸?”
“막연한 희망을 내뱉지 말아줄래·”
“정말이야· 신호 비슷한 게 느껴져·”
트릭시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감지되는「신호」가 있다는 건가?’
트릭시도 「신호」술식을 이해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적어도 트릭시에게는 현재 딱히 감지되는 것이 없었다·
“플란의 신호인 거· 확실해?”
“응· 확실해·”
트릭시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베키를 바라보았다· 플란과 관련된 부분에서만큼은 베키는 유난히 기감이 예민한 구석이 있었다·
“····”
트릭시는 오묘한 표정으로 베키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흥 소리를 내며 코웃음을 쳤다·
“누가 보면 연인이라도 되는 줄 알겠어·”
“연···· 뭐라고?”
베키가 트릭시에게 딱 달라붙었다· 그것도 아주 가깝게· 서로의 숨결이 맞닿을 정도로·
“너 방금 뭐라고 했?”
“연····”
‘연인’이라고 말하려던 트릭시는 중간에 입을 꾹 다물었다· 뭐랄까 그 말을 듣고싶어하는 베키의 표정을 보니 괜히 하려던 말도 들어간다·
“···됐어·”
“응? 트릭시·”
“됐다고· 신경쓰지마·”
베키가 원하는 답을 해주지 않은 채 트릭시는 도도하게 머리카락을 쓸어 넘길 뿐이었다·
“그런데 여기 숲이 아닌 것 같지 않아?”
앞서 걷던 루이스가 드디어 한마디를 했다· 그의 말에 베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도 마침 그렇게 생각한 참인데·”
베키가 주변을 멀뚱멀뚱 살폈다·
“길을 막 발견했을 땐 안도했었는데 걷다 보니까 좀 이상해· 마치 유도당하는 느낌?”
“응· 숲보단 미로의 느낌에 가까운 것 같아·”
“위험지역의 미로라니· 불길한걸····”
베키의 표정에 걱정이 차올랐다·
하지만 지형에 관한 의문은 곧 사그라들었다· 더더욱 심각한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
“잠깐만·”
세 명이 동시에 멈추어 섰다·
셋의 감상이 이번만큼은 전부 일치했다· 강렬한 기운이 한 순간 치솟았다 빠르게 잦아든다·
“가보자·”
“으으 괜히 무서운데····”
“어차피 길이 하나야· 가야 돼·”
앞장서는 두 명의 뒤를 베키가 얌전히 뒤따랐다· 그리고 십 분 정도가 지나 셋은 크게 발생했던 기운의 정체를 마주할 수 있었다·
“시체잖아·”
트릭시가 낮게 중얼거렸다·
기사 세 명이 피를 흘리며 처참하게 쓰러져있는 풍경· 눈조차 감지 못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저절로 소름이 끼친다·
“유령···? 유령이나 무명의 시체일까?”
베키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기사들을 상대로 유대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나 소녀는 타인의 죽음 자체가 안타까웠다·
루이스가 한쪽 무릎을 꿇고 시체들을 면밀히 살핀다·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인간이야·”
“인간 기사라고?”
“여길 봐·”
루이스가 가리키는 것은 맥박을 짚을 수 있는 손목 부분으로 시체들의 피부 위로는 고유 능력 사용자 특유의 파란 회로가 핏줄처럼 두드러져 있는 채였다·
“····”
소름이 돋았다·
동시에 세 명 모두 스스로가 현 어느 지역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지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
목숨을 건 경기라는 것 각서를 제출했던 것 위험 지역에 관한 경고···· 모든 것들을 진작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전부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다른 대표들이 죽어있는 모습을 보니 충격이 컸다·
“이게 실전이구나·”
베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대표라는 이름 아래 그들은 이제 누구로부터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찰나의 방심이 곧 영원한 안식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트릭시가 제일 먼저 차분함을 되찾았다·
“새삼스레 뭘· 애초에 사람들이 왜 토벌제에 열광하는데? 죽을수도 있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잖아·”
“그렇긴 하지만···· 으으·”
베키가 더 이상은 쳐다보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휙 돌렸다·
“역시 플란이 곁에 있다면 좋을 텐데·”
루이스가 조용히 한마디 했다· 이런 상황에서 떠오르는 사람이라면 역시 한 명뿐이었다·
“지금부터는 호흡조차도 신중하게 해· 우리라고 해서 다르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트릭시가 그렇게 경고한 순간·
바스락거리며 벌레형 마수 몇 마리가 세 명의 곁을 빠르게 지나쳤다·
“우웩 벌레형 마수들이 그새 더 커졌는데?”
까드득!
베키는 그것들을 통째로 얼려버렸다· 다음 순간 손바닥만 한 마수들은 한낱 얼음 조각으로 변하여 부서져 내린다·
“휴 처치가 쉬워서 그나마 다행이다·”
“너· 뭐 하는 거야·”
“응?”
베키가 뭘 되묻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렇게 처치해야 내장이 안 터져· 뭐가 튀기고 그러면 진짜 막 구역질이 나서····”
“아니· 이 멍청아·”
답답하다는 듯 트릭시가 한숨을 내쉬었다·
“호흡조차도 신중하게 할 것· 내가 방금 막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어? 똑똑히 들었잖아·”
“나름대로 신중하게 잡은 건데····”
베키가 억울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잡는 편이 더 안전하지 않아? 심지어 점수도 쏠쏠하게 오르는데·”
바로 그때였다·
스스스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이 이내 배로 겹치더니 귀를 아프게 할 정도로 시끄러워진다·
“응···?”
갈수록 커지는 소리에 세 명의 당혹감 역시 비례하여 커지기 시작했다·
모두의 고개가 근원지를 향해 돌아간다·
“···!”
“뭐야!”
“버 벌레형 마수? 이렇게나 많이?”
엄청난 수의 벌레형 마수들이 셋을 향해 파도처럼 밀려오는 중이었· 무리라고 표현하기에도 어폐가 있는 군세에 가까운 마릿수였다·
트릭시가 눈에서 불꽃을 튀겼다·
“베키 너···!”
“나 나 나 때문이라고?”
“너 말고 누가 있어 그럼!”
그 말과 동시에 트릭시가 화염 늑대를 조형해 나갔다· 상황을 파악한 루이스와 베키 역시 빠르게 마나를 끌어올린다·
쿠구구구구!
거미들의 군세가 가까워지자 대지가 통째로 진동한다· 한 마리만 있어도 기겁할 정도로 징그러운 것이 파도처럼 뭉쳐 덮쳐온다·
“이 일단 내 쪽으로 모여─!”
베키가 기겁하며 얼음 방패를 반원형으로 펼쳐서 세 명에게 뒤집어씌웠다· 반격이고 뭐고 일단 몸부터 좀 보호해볼 생각이었다·
“베키 너···! 이거 치워!”
“치우면 오히려 큰일 나!”
“오히려 우리를 가둔 꼴이잖아· 애초에 벌레형 마수를 왜 건드려서···!”
베키를 향한 원성이 차근차근 높아진다· 당사자는 눈을 질끈 감고서 필사적으로 얼음을 펼쳐낼 뿐이었다·
“응···?”
하지만 그 오해가 풀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새끼 거미들은 보란 듯이 세 명을 지나쳤다·
너희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거미 마수들은 세 명을 감싼 반원형의 얼음을 빠르게 밟고 지나쳤다·
“···뭐야?”
“우리한테 오던 게 아니었나?”
셋 모두 벌레형 마수들의 꽁무니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쿠르르르─!
그런데 그때·
소름이 끼치는 공명이 대지를 울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거대한 여왕 거미가 무수히 많은 눈으로 세 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무가 우스워보일 정도의 크기 이전에 마주쳤던 마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음험한 기운· 대표들이 할 말을 잃기에는 충분했다·
“····”
방금의 거미들은 전부 도망치는 중이었구나· 찰나의 순간이지만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다·
“···이제 어떡하지?”
베키가 낮게 중얼거렸다· 돌아오는 대답은 아무것도 없었다·
쿠르르르─
거미가 몸에서 붉은 실을 길게 뽑아낸다·
그것이 기사들의 주요 관절을 휘감더니 이 시체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
그 경악스러운 광경에 셋 모두 잠시 멍했다·
“시체를 조종하는데? 지금이라도····”
“아니· 두 발로 뛰기에는 늦었어·”
베키의 말을 트릭시가 툭 잘라냈다·
“벌레형 마수·”
그때· 루이스가 조용히 읊조렸다·
“루이스 벌레형 마수인건 우리도 알아····”
“아니· 눈앞에 있는 거 말고·”
그가 고개를 천천히 젓는다·
“그럼?”
“작은 벌레형 마수들 뒤에서 다시 오는데?”
“···?”
루이스의 말은 사실이었다· 돌아보니 세 명을 지나쳐갔던 것들이 다시 밀려오는 채였다·
아까는 거미 마수뿐이었다면 이번에는 온갖 벌레형 마수가 뒤섞여있었다· 파도가 한 차례 지나갔었다면 이번에 덮쳐오는 것은 해일·
“으아아아악!”
베키는 비명을 지르며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 냈다· 반구형으로 펼쳐진 얼음 위로 벌레형 마수들의 해일이 일대를 휩쓸고 지나간다·
“저게···· 저게 왜 다시 돌아오는 거야!”
“우선 방어에만 집중해!”
일 초· 십 초· 삼십 초·
마나를 극한까지 끌어올리자 격통이 엄습했다· 이를 악물고도 견뎌지지 않는 고통이었지만 역시 살고 싶다는 욕망이 훨씬 컸다·
그렇게 버티고 또 버틴 결과·
“···됐다!”
마침내 마지막 거미까지 지나갔을 때· 베키가 기쁨에 겨워 소리쳤다·
그러나·
이내 기뻐할 틈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눈 앞에는 믿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무슨····”
사방으로 흩어져있는 벌레의 몸통과 다리들 벌레형 마수들이 전부 잘게 토막난 채였다· 원인은 여왕 거미가 다루는 기사들의 몸이다·
“말이 돼?”
베키는 눈앞의 현실에 몸을 떨었다·
‘해일’처럼 여겨졌던 수를 한낱 먼지처럼 치워버렸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질 않았다·
붉은 실에 매여있는 기사들의 시체가 말을 걸어오는 듯 하다· ‘다음 차례는 너야’ 라면서 말이다· 다리가 저절로 후들거린다·
바로 그 순간·
붉은 실이 조금 팽팽하게 당겨지는가 싶더니 눈 한 번 깜빡하기도 전에 기사들의 시체가 코앞까지 쇄도했다·
아니 시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의 활력과 기세였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아직 생각조차 마치지 못한 채였다·
“베키! 막아!”
루이스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늦었····”
거기까지 중얼거렸을 때였다·
콰아아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공간이 폭발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더니 붉은 실이 저 멀리까지 튕겨져 나간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셋의 얼굴이 멍해졌다·
그리고 그 예기치 못한 상황을 다음 순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뭐 하나· 고작 벌레 한 마리인데·”
특유의 서늘한 음색·
벌레형 마수의 해일을 만든 원인·
또한 위험 지역으로 모두를 오게 만든 장본인·
자신의 저택을 드나드는 듯 태평한 얼굴의 사내· 오로지 마법사의 길만을 탐구하는 자·
플란·
그는 여전히 무미건조하게 서 있지만 근처로 방사하는 마력은 바다처럼 아득하다·
모두의 얼굴에 안도가 어렸다·
“너····”
“플란!”
어느 순간 그가 천천히 발걸음을 떼었다·
“한데 아직도·”
손가락을 몇 번 튕기기 시작했다·
“주제를 모르는 벌레가 하나 있군·”
붉은 실이 허공에서 전부 끊어져 내렸다·
“빠르게 처리하고 넘어가지·”
거미 여왕의 인형극을 강제로 종료시키며 플란은 덤덤하게 말을 매듭지을 뿐이었다·
“아주 재미있는 것을 찾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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