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9
키안이 능청스레 말을 이었다·
“오해는 하지 말아주었으면 해요· 그 기사조를 우리 손으로 직접 죽인 건 아니니까요·”
“그럼····”
곁에 서 있던 베키가 되물었다·
“죽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죽는 걸 지켜봤으니까요·”
“설마 일부러 방관했다는 이야기야?”
“일부러라····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네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키안의 태도에 베키가 헛숨을 삼켰다·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되묻는다·
“그럼 시체 정도는 수습해줄 수 있었잖아· 아니 애초에 그걸 왜 방관하고만 있었던 거야?”
“마법 학부가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을까요?”
키안이 살짝 고개를 꺾으며 대답했다·
“따지고 보면···· 당신들이 우릴 위험 지역으로 보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 거 아니에요?”
“청운은 충분히 강하잖아· 구해줄 수 있었잖아!”
“글쎄요·”
키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죽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원망의 화살은 순간 이동을 사용한 마법 학부로 향하겠죠· 그걸 굳이 막아줄 의무가 제게는 없어요·”
“이유가 고작 그게 끝이야? 우리가 더 많은 사람에게 원망받기를 바라서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보고도 모른 체 했다는 거야···?”
트릭시가 조용히 베키의 가슴 앞으로 손을 뻗었다· 우선 진정하라는 뜻이었으나 베키는 도리어 목에 핏대를 세웠다·
“제정신이 아니네· 완전히 도박 중독자잖아! 무슨 사람 목숨을 포커 카드처럼 취급하고 있어!”
“으음· 진정해요·”
귀가 아프다는 듯 키안이 제 귀를 문질렀다·
“실전이라는 것도 포커랑 별반 다를 바 없지 않나요? 더 좋은 패를 위해서 안 좋은 카드를 버리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에요·”
“포커에 비유하는 것부터가 문제야· 악의적인 의도를 비겁한 핑계로 포장하는 것 뿐이잖아!”
“글쎄요 과연 우리중에서 어느쪽이 악의적으로 보일지는····”
키안이 허리춤의 검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사람에 따라 다를 거에요· 밖에서는 지금쯤 누가 악의적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을까요?”
“····”
베키가 베키가 할 말을 잃어버린 채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분이 가라앉은 것은 아니었기에 여전히 씩씩거리는 모습이었다·
“언론을 이용할 생각이구나· 너희·”
트릭시가 중얼거렸다·
그녀의 지적은 정확하다· 기자들의 수정구가 위험 지역의 모습을 담지 못한다는 점을 이용해 청운은 마법 학부로 인해 많은 피해자가 나온 것처럼 꾸밀 생각인 듯 했다·
굳이 그것에 분해할 생각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목덜미에 있다·
“그리고 쟤네 목덜미가 왜 저래·”
이제는 시야가 어둠에 익숙해졌는지 트릭시가 낮게 중얼거렸다· 현재 네 기사의 목덜미에는 검은색의 핏줄이 나뭇가지처럼 뻗어있는 채다·
대답은 곁에 있던 루이스가 대신했다·
“마인·”
“마인?”
“그래· 핏줄이 검게 변색되는건 마인의 힘을 받아들였을 때 나타나는 특징이야· 다시 말해····”
루이스의 표정이 한층 더 진지해졌다·
“···영혼을 바쳤다는 이야기야·”
그 말에 베키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트릭시의 반응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기사조와 목숨을 걸고 전투를 치러야 한다는 것부터가 주저할만한 일일 터인데 심지어 마인과 계약까지 한 상태라면 당연히 더 망설여지겠지·
하지만 오히려 안심했다·
결국 마인과 계약해버린 그들을 바깥 사람들은 결코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을 테니 말이다·
키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우린 영혼까지 바쳐버렸고 따라서 원하는 걸 반드시 손에 넣을 생각이에요·”
청운의 단장 키안이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마수를 도륙 내기 위해 날카롭게 벼려진 양날 검은 이제 인간도 서슴없이 베어버릴 듯했다·
베키가 어이없다는 듯 따져 물었다·
“원하는 게 뭔데? 우승? 그것 때문에 영혼까지 팔아치웠어?”
“착각하지 마세요· 우리 목표는 이제 단순히 토벌제에서 우승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럼 도박장에서의 복수?”
“그런 유치한 게 아니에요· 그쪽은 모르겠지만 이 위험 지역에는 엄청난 게 잠들어있거든요·”
키안이 검 끝으로 우리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게 내가 당신들을 기다린 이유죠·”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청운이 말하는 엄청난 것이라는 게 무엇일지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고대 룬어 지도에 표시되어있는 물건이 바로 그것일 터·
그 물건을 얻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면 마인과 계약했다는 사실도 충분히 납득할만하다·
다만 그렇다는 것은····
‘결국 마인도 그 물건을 노리고 있었군·’
대단한 물건에 여러 목적을 지닌 이들이 꼬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다· 하긴 보통 대단한 것도 아니고 고대 룬어의 힘과 관련되어있는 물건이니·
지금으로서는 마인들이 기사들을 체스 말처럼 이용해서 물건을 손에 넣을 계획으로 보인다·
트릭시가 제 허리춤에 한 손을 얹는다· 미간을 좁히면서 키안을 향해 물었다·
“결론만 말해· 우리를 상대로 어쩌겠다는 거야·”
“결론이라 죽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직설적인 표현에 세 명의 몸에는 뻣뻣하게 힘이 들어갔다· 트릭시는 재빠르게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청운은 자기들끼리 시선을 교환한 직후 빙그레 웃었다· 승리를 확신한 미소였다·
“지켜보는 기자들도 없고 마인의 힘까지도 얻은 참인데· 이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시나? 도망을 안 치는 모습을 보니 나름대로 신기하네요·”
“뭘 의미하는지는 나도 충분히 알거든?”
베키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응수했다·
“근데 도박 중독자 상대로는 도망치기 싫어! 애들아 너희들은 어떡할 거야?”
붉은 소녀가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차피 도망칠 수도 없어· 그렇지만····”
루이스가 빛살 하나를 생성해내며 베키의 옆에 나란히 섰다·
“정순하게 갈고닦아야 할 영혼을 팔아치웠다는 거· 그건 마법사로서 정말 마음에 안 들거든·”
듣고 있던 트릭시도 이번만큼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키안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이런 끝까지 들어주세요· 죽이겠다고 아직 확정하진 않았으니까요·”
그의 검끝이 내게로 향했다·
“지도를 넘긴다면 목숨 정도는 얼마든지 살려줄수 있는데 어떤가요?”
“지도? 무슨 지도·”
베키의 되물음에 키안이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시선이 다시 한 번 내게 닿는다·
“아하· 아직 나머지 조원들은 모르나 봐요?”
내 눈동자를 키안은 물끄러미 마주보았다·
“조원들 입장에서는 조금 섭섭할 것 같은데요· 아 혹시···· 조원들을 버리고 물건만 챙길 계획이셨나?”
“뭔지는 몰라도 플란은 절대 안 그래!”
베키가 버럭 소리쳤다·
키안은 태연하게 말을 잇는다·
“나한테 소리치지 말고 당사자에게 물어요·”
마법 학부의 대표들이 하나둘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얼굴들에 의심보다는 불안감이 살짝 어려있었다·
나는 조용히 품속에서 지도를 꺼내 들었다·
“보아라·”
환상 지도와 고대 룬어 지도가 합쳐진 이것은 이미 완전히 새로운 지도로 변해있었다·
은은한 빛을 발하는 지도의 모습에 세 마법사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청운 역시 드디어 원하는 걸 찾았다는 듯 반가운 표정이었다·
차분하게 계획을 있는 그대로 설명했다·
“고대 룬어와 관련된 보물이 이 위험 지역에 잠들어있고 나는 그것을 손에 넣을 생각이다·”
“손에 넣으려는 이유가 궁금하네요·”
키안의 물음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당연하다·
세 마법사 입장에서는 그 보물이 무엇인지보다도 내가 그것을 왜 원하는지가 궁금할 테니까·
나는 턱으로 세 마법사를 가리켰다·
“이 녀석들의 성장에 쓸 생각이다·”
“성장?”
“그래· 최소 7등위쯤이겠군·”
“···마법 학부 총장이 6등위 아니었나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한 번 정적이 흘렀다·
두어번 눈을 깜빡이더니 키안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하하하····”
작은 웃음은 큰 웃음으로 번져나간다· 옆의 기사들도 전염된 듯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이래서 마법사랑 대화하는 게 재밌다니까?”
그가 능청스러운 말투로 말을 잇는다·
“아~ 너무 감동적인 이야기였어요· 하지만·”
키안은 검지를 폈다· 손가락 끝으로 베키 트릭시 루이스를 순서대로 가리킨다·
“그렇게 되기에는 패가 너무 아쉬운데요? 포커에서는 이런 잡패가 잡히면 보통 다이를 해요·”
다른 기사들도 하나둘 키안의 말을 거들었다·
“빠르게 처리하자고· 머릿속에서 자꾸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와·”
“나도 마찬가지야· 두통 때문에 안 되겠어·”
트릭시가 얼굴을 굳혔다·
“기운이 심상치 않아·”
청운의 이름값은 결코 낮지 않다·
지금은 아예 마인과 계약까지 한 상태기에 세 마법사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가는 것을 나는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자 그럼 슬슬 시작해볼까요·”
키안이 마침내 발걸음을 떼었다·
한 걸음을 디딜때마다 마인 계약자 특유의 검은 기운이 복도의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긴장감이 팽팽하게 어린 그 순간·
“너는 포커를 좋아하는 모양이지· 키안·”
나조차도 모를 서늘한 음색이 복도를 울렸다·
스스로의 감정을 찰나의 순간 읽을 수 없었다· 나는 세 대표를 제치고 가장 앞으로 걸어나갔다·
“흐음·”
키안이 고개를 기울였다·
“좋아해요· 판이 클수록 더 좋아하고·”
“그럼 판을 키우지· 판돈은 목숨으로 대신한다·”
나는 묵묵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콜을 할지 다이를 할지·”
아마 ‘잡패’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인 것 같다· 정확히 그 때부터 내 심기가 불편했다·
마침내 스스로가 분노했음을 인지한 순간·
“너는 그것만 정해라·”
고유 결계를 펼쳤고 이내 공간이 뒤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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