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9
마법 학부의 총장실·
마법 학부 총장 코네트 그녀의 비서 수석 교수 바이올렛···· 총장실은 이미 사람으로 가득하다·
사실 총장이 나만을 호출한 것은 아니었다·
베키 루이스 트릭시에게도 똑같은 호출이 전해졌으나 그들은 기자들과의 취재 일정이 잡혀 총장실에 방문하지 못하게 되었다·
변화의 기류가 슬슬 대표들에게도 뻗는 것이다·
“심지어 이런 것까지도 챙겨오셨단 말이지요·”
나로부터 모든 설명을 전해들은 마법 학부의 총장 코네트는 기묘한 역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투명한 보석을 바라보았다·
고대 룬어 보물 동력원·
진품인지 아닌지는 어렵게 판단할 것도 없었다·
고작 보석 하나가 주변에 자신만의 기류를 형성하는 중이었다· 또한 애초에 이게 가품이었다면 마녀가 애지중지 취급하지도 않았을 터·
코네트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나저나 상급 마인도 처치하셨다지요·”
“예·”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자를 다루던 마녀라면 내가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두었으니·
“잘하셨군요·”
코네트가 흡족한 얼굴로 조소를 흘리던 그때·
“총장님 이건 정말로 대단한 일입니다·”
곁의 비서가 안경을 밀어올리면서 입을 열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날카로운 인상에 비하면 현재 그녀의 인상은 꽤 많이 밝아져있었다·
“위험지역에서는 숙련된 이들도 목숨을 보장받기가 힘듭니다· 한데 상급 마인을 처치하고 전리품까지 얻어오다니 사실 대단하다는 말로도 부족하죠·”
“뭐···· 저도 그저 강하다고 감탄한 것은 아닙니다· 그건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니까요· 다만·”
코네트가 손 끝으로 보석을 톡톡 두드렸다·
“이번에는 플란 학생의 계획에 감탄했습니다· 이런 보물이 있다는 것을 미리부터 인지하고 위험 지역에 망설임 없이 들어서는 그 계획·”
그때 바이올렛이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저기 그런데····”
바이올렛의 눈동자는 오로지 보석에 꽂혀있었다· 그녀는 원래부터 고대 룬어에 관심이 많았으니 그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이게 고대 룬어 보물· 그러니까 룬어의 힘을 담은 동력원이라는 거잖아요· 그렇죠?”
“예·”
“도시 다섯 개를 통째로 굴린다는 그 동력원?”
“다섯 개라····”
나는 잠시 턱을 문지르며 고민했다·
담고있는 힘을 한정지어 말하기에는 모호한 구석이 컸다· 이 동력원은 활용하는 방식에 따라 무궁무진한 가치를 발휘하게 될 테니·
“그 이상도 될 것 같은데·”
그러자 바이올렛이 눈이 멍해졌다·
“어떻게 매번 이런 것들을 해내는 거지? 도대체 정체가 뭘까· 정체가···?”
그러고보면 바이올렛의 얼굴도 처음 만났을 때와는 제법 다르다· 턱밑까지 늘어져있던 다크서클이 지금은 상당히 옅어져있었으니·
그녀가 흥분하여 말을 잇는다·
“해줄 수 있는 보상은 뭐든지 해주는 걸로 하죠· 해줄 수 없다면 제가 사비를 털어서라도 뭐든 꼭!”
비서가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진정하십시오· 바이올렛 교수·”
“아뇨· 마법사로서 진정할 수가 없어요· 고대 룬어의 힘을 담은 동력원이라니 연구가 조금씩만 진척되어도 어마어마할 거라고요· 이럴 때가 아니지· 동력원에 이름은 뭐라고 붙이는게····”
툭툭툭 코네트가 손톱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잠시 조용·”
총장실 내부가 순식간에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코네트는 내게 조용히 물었다·
“플란 이 보물을 손에 넣었다는 사실을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알고있는지요·”
“아직 누구도 모릅니다·”
“다른 세 대표들조차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코네트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단 말이지요· 잘하셨습니다·”
당연한 대처였다·
이 동력원에 관한 정보 내가 이것을 입수했다는 것· 무엇 하나 널리 알려져서 좋을 건 없었다·
귀한 물건은 온갖 사람을 불러모으기 마련이고 그것은 사건 사고로 이어지며 결국 피가 낭자해질 것이 너무나도 뻔했기 때문이다·
“좋습니다· 지금부터는 다른 이야기를 하지요·”
고개를 끄덕이며 코네트가 동력원을 책상에 조심스레 내려두었다·
“완드 옷 플란 학생이 이끄는 반· 저는 이미 많은 것들을 약속했었지요· 하지만 이 귀한 것을 제게 굳이 보여주었다는 건····”
코네트의 역안이 번뜩였다·
“그대는 따로 원하는 게 있군요· 무엇입니까·”
“마탑·”
나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이런 소박하군요· 마탑의 어떤 자리를 만들어두면 되겠습니까?”
“자리가 아니라·”
고개를 저었다·
“마탑을 하나 새로 세우려고 하는데·”
◈
일주일 후 스칼렛과 플란의 결투 당일·
유디트 가문의 저택·
스칼렛은 가주와 함께 단둘이 있다· 둘은 고작 식사를 하고있을 뿐이지만 팽팽하게 조여진 긴장은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 날카로웠다·
“결국 결투를 하기로 마음먹었구나·”
가주 테오도르가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예· 해야 할 일입니다·”
스칼렛은 태연하게 대답하며 식기를 들었다·
그러나 들어올려진 포크와 나이프는 음식으로 향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처음입니다·”
“무엇이·”
“가주님과 단 둘이서 하는 식사가 처음입니다·”
테오도르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스칼렛은 잠시 생각했다· 테오도르는 왜 갑작스레 이토록 호화스러운 자리를 마련하였는가·
하지만 줄지어 들어오기 시작한 요리들이 스칼렛의 생각을 옅어지게 만들었다·
원료를 어디서 구했는지조차 알 수 없고 모든 요소가 고급스러운 그 요리들은 적어도 그녀가 아는 언어로는 표현이 불가한 맛을 품고 있었다·
가주 테오도르는 스칼렛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입을 열었다·
“플란을 너무 미워하지 말거라·”
“···?”
스칼렛의 손이 조용히 멈추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테오도르의 얼굴은 사못 진지했다·
“유디트를 생각하는 너의 마음은 기특하다· 가문의 장녀라면 그래야하는 법이지· 네가 지닌 호승심 또한 나는 좋게 평가하고 있단다·”
테오도르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스칼렛 그러니 한 가지만 추가로 묻겠다· 너는 진정으로 결투를 할 준비가 되어있느냐·”
“예·”
스칼렛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단순히 검과 화염을 휘두를 수 있냐는 말이 아니야· 결투 이후의 모든 것을 네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냐는 묻는 거다·”
스칼렛은 가주의 질문 자체가 어색했고 동시에 반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귀에는 테오도르의 말이 꼭 안 좋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작열의 기사 네 어미의 기사도는 ‘증명’이었다· 너희가 증명하며 살아가기만 한다면 굳이 기사의 길을 걷지 않더라도 흐뭇해 할 여자였어·”
그는 작열의 기사가 가졌던 신념에 대해 이야기했다·
“플란은 그 신념을 충분히 이어가고 있다·”
“····”
스칼렛이 주먹을 꽉 쥐었다·
늘 이랬다·
가주는 늘 플란에게 유독 너그러웠다·
그러나 그건 가주의 너그러움일 뿐이다· 스칼렛의 생각은 그와 너무나도 달랐다·
“어머니의 길을 부정하는 식의 증명은 그따위 것은 조금도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잠시 정적이 흐르고·
마침내 테오도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현재 짐작하기 힘든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다면 너에게는 이걸 주마·”
테오도르가 조심스레 식탁 위로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그건 열쇠였고 손잡이에는 유디트를 상징하는 문양이 장식되어 있었다·
“유디트의 별채를 열어줄 열쇠다·”
“별채 말입니까·”
스칼렛이 조금 놀라하며 되물었다·
살면서 별채에 방문하고 싶었던 순간이 많았지만 가주가 그것을 허용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 이제는 네가 확인할 때가 된 것 같구나·”
작열의 기사는 고유 능력을 제외하고도 자식들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그 중 하나는 건물이었고 유디트의 저택보다도 거대한 별채였다·
“기억을 베는 자· 리브라가 관여한 건물이다·”
“리브라····”
스칼렛은 그 이름을 낮게 읊조렸다·
작열의 기사는 고독하게 살지 않았고 생전 그녀의 곁에는 검성에 필적할만한 기사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자리했다·
그 중 한 명이 기억을 베는 자· 리브라·
복사 보관 제거·
남의 기억을 자유롭게 다루는 기사였다·
작열 기사의 오랜 친구였던 그녀는 유디트의 별채 건설에 굉장히 많은 힘을 써주었다·
“기억이 납니다·”
스칼렛이 과거를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주 어릴적 리브라는 「기억 보관」을 위해 검으로 스칼렛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녀는 그때의 감각이 지금도 잊을 수 없이 선연하다·
온 몸의 피가 차게 얼어버리는 듯한 고통·
비명조차 나지 않았고 눈물만이 줄줄 흘러내렸지만 스칼렛은 가문의 장녀라는 이유로 그것을 군말없이 감내했다·
테오도르가 말을 이었다·
“잊을 수가 없는 고통이겠지· 덕분에 네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했는지 심지어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까지도 그 별채 안에는 담겨 있다·”
“예·”
스칼렛은 어리석지 않다·
사실 유디트의 별채는 감시와 평가를 목적으로 설계된 건물일 터였다·
물려받은 고유 능력이 무려 작열이다· 만일 자식이 탈선이라도 하게 된다면 크나큰 재앙으로 이어질 테고 가주는 그런 점을 우려했을 것이다·
“모든 기억이 빠짐없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거짓이 보관되어 있지는 않아· 별채 안에 있는 것은 오로지 진실 뿐이다·”
허공에서 가주와 스칼렛의 눈이 마주쳤다·
“네가 결투 전에 한 번 확인했으면 좋겠구나·”
스칼렛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열쇠를 바라보았다· 늘 가고싶었어도 가지 못했던 유디트의 별채를 향한 길이 이제는 열려있었다·
“감사합니다·”
별채의 내부 구조가 어떠한지 어떤 기억들이 도사리고 있을지는 스칼렛조차도 아직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열쇠를 조용히 주머니에 넣었다·
“하나 결투가 끝나면 확인하겠습니다·”
잔불의 기사 스칼렛·
그녀는 우선 플란과의 끝을 보고싶었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테오도르의 표정은·
“···알았다·”
너무나도 의미심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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