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
“첫 번째는 헤일리 루미안·”
본인이 첫 순서가 아니라는 생각에 다른 학생들의 입으로부터는 안도의 한숨이 터져나왔다·
한편 첫 번째로 호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헤일리에게는 이렇다 할 당황한 기색이 없다·
그녀는 루이스를 향해서 매력있는 눈웃음을 한 번 지어주고는 사뿐사뿐걸어 다른 학생들을 지나쳤다·
별안간 베키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붙여온다·
“야 플란·”
나는 대답 대신 그녀쪽을 흘끗 바라보았다·
“쟤 아까 상점에서 마주쳤던 애잖아· 실력은 어때?”
“모른다·”
“모른다고···? 아는 사이인거 아니었어?”
고개를 절레절레저었다· 나는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 애초에 관심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베키가 흥 소리를 내면서 팔짱을 꼈다·
“나는 쟤 별로 마음에 안 들어· 얼마나 잘하나 보자·”
그렇게 헤일리를 향해서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던 베키는 별안간 다른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고개를 기울인다·
그녀의 시선이 다시 내쪽을 향했다·
“저기 플란· 갑자기 생각난건데· 물어봐도 돼?”
“듣고 판단하지·”
“너 왜 트리비아 나랑 똑같은 걸로···”
그 순간 바이올렛이 테스트를 개시했다·
“시작할게요· 오드리 교수·”
신호를 받은 오드리 교수가 마력을 예열했다·
이내 보석의 형태를 띈 마나 결정 한 개를 생성해 바이올렛의 완드 앞으로 보내준다· 크기는 어린 아이의 주먹정도·
“이 마나 결정의 출력을 보조해보죠·”
바이올렛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녀의 완드 끝부분에는 술식하나가 맺혔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발현이 이어진다·
팡 하는 폭발음과 함께 마나결정이 튕겨져 나간다· 척 보기에도 대단한 출력이라 학생들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끝없이 날아갈 것 같던 마나결정은 특정 지점에서 활동을 정지한다· 그 위치에 바이올렛이 표지판을 생성하여 꽂았다·
“마나 결정의 몸체가 터지지 않고 버티면서 나아갈 수 있는 최대 거리는 이정도죠·”
바이올렛이 헤일리 앞에 마나 결정 하나를 생성시켜주었다·
“절반도 도달하지 못하면 실격 그 이후부터는 나아간 거리에 따라 높은 등급·”
“표지판을 넘어가면요?”
“결정이 터져버리면 당연히 실격이죠· 이건 어디까지나 보조라는걸 명심해야돼·”
“네· 교수님·”
바이올렛이 턱으로 마나 결정을 가리켰다·
“준비되면 바로 시작하세요·”
헤일리는 차분하게 심호흡을 하고서 마나 결정 위에 검지 손가락을 얹었다·
이내 팟 하는 소리와 함께 마나 결정이 앞으로 쏘아져 나간다·
직선으로 쏘아진 궤적은 표지판을 향해서 훌륭하게 날아간다· 지켜보던 몇몇 학생들의 입에서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A등급·”
바이올렛의 판정이 내려졌다· 저 멀리 앉아있는 두 교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와아~ 감사합니다 교수님!”
헤일리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루이스의 옆자리로 돌아간다·
“뭐야··· 잘하잖아·”
베키가 분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감탄이라···’
이곳의 젊음이 확 체감되었다· 경험이 적은 이들에게는 저런 것 하나하나가 전부 감탄할 일이겠지·
“다음 키세피 루미르·”
바이올렛의 개구리는 계속해서 학생들의 이름이 적힌 명함을 뱉어내고 시험은 순차적으로 이어졌다·
소환 파괴 보조··· 바이올렛이 학생들 앞에서 시연해보이는 마법은 다양하다·
“A등급·”
“B등급과 C등급 사이가 있었더라면 그걸 줬을 텐데 C등급·”
“E등급·”
“D등급·”
·······
바이올렛의 심사는 매우 빨랐는데 그렇다고해서 다른 교수들과 의견이 불일치하지도 않았다·
사실 등급의 구분 자체가 내게는 조금 유치하다·
너무나도 멀리 지나쳐온 나로서는 A부터 E까지 전부 어린 새싹처럼 보일 뿐인 것이다·
물론 개중에 싹수가 좋은 녀석들이 있겠지· 그런 녀석들을 눈여겨볼 생각이다·
바이올렛의 호명이 이어진다·
“다음 베키·”
“으앗?! 나잖아·”
베키가 화들짝 놀라더니 주춤주춤 앞으로 나간다·
다른 학생들이 그녀를 살피는 눈빛은 이전과 유난히 달랐는데 아마 이름에 성이 없어서 그럴 것이다· 평민의 이름이니까·
“계열은···”
바이올렛의 개구리가 명함 한 장을 뱉어냈다·
‘조작’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베키를 비롯한 다른 학생들에게 확인시켜준다·
“후우···”
베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가 어째서 안도하는지 이유를 아는 것은 아마 내가 유일할 것이다·
바이올렛이 지면의 흙을 단단하게 뭉쳐 허공에 직육면체를 만들어냈다·
“자유롭게 조작하세요· 미적 기준은 평가 요소로 고려되지 않고 조작 숙련도만 확인할거에요·”
베키는 심호흡을 추가로 몇 번 하더니 마음을 비운 표정으로 양 손을 펼쳤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면밀히 관측했다·
베키의 손에 휘감긴 마나의 회전률은 1초에 14번정도· 실험실에서 내가 알려주었던 것과 동일한 회전률이다·
‘눈치가 아예 없지는 않나·’
회전률만으로도 그녀가 내 조언을 이해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이내 베키가 직육면체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14번의 회전률은 결코 급하지 않다· 안정적이다·
암석처럼 단단하게 뭉쳐있는 흙을 진흙처럼 절삭하는 모습을 보고있노라면 마음이 한 결 편해진다·
베키의 표정은 그 어느때보다도 진지하다·
이미 소녀의 마나에 붙잡힌 흙덩어리는 직육면체의 형상이 아니다·
꽃잎 위에 꽃잎이 놓이고 줄기는 올곧은 콜럼바인 꽃을 똑 닮은··· 아니·
콜럼바인 꽃 그 자체였다·
“A등급·”
“네·”
베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꽃을 마저 깎아나간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확 짓쳐들더니·
“어 네?”
“A등급· 뭐 해요 안 들어가고·”
“아 아 네!”
다시 얼떨떨한 표정으로 돌아온 베키가 허겁지겁 내 옆에 와서 착석한다·
그녀는 아직 자신이 A등급을 받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은지 자꾸만 주먹을 쥐었다폈다했다·
베키가 미묘한 표정을 짓고서 내 쪽을 바라본다·
“야 야··· 나 A등급 받았어·”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멀쩡한 귀가 있다면 그녀가 A등급을 받았다는 사실은 영유아조차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베키가 내 팔을 덥석 붙잡았다·
“플란! 나 A받았다니까! 네가 알려준대로 하니까 정말 됐어!”
“···그렇게 기뻐할 일인가·”
대충 대답을 돌려주었다· 타인이 신체에 손을 대는 감각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하다·
“다음 플란·”
그때쯤 바이올렛이 내 이름을 호명했다· 나는 차분한 발걸음으로 다른 학생들을 지나쳤다·
“쟤도 평민인가보네·”
“플란이면··· 헤일리한테 고백했던 애잖아·”
“나도 그 이야기 들은 것 같은데· 완전 울고불고 매달렸다며·”
가십거리가 넘쳤지만 굳이 관심을 쏟을 이유가 없었다· 마법사는 마법으로 말해야 옳으니·
“플란 학생·”
어떤 계열 마법이 선정될지 가만히 기다리는데 바이올렛이 갑자기 나를 불렀다·
“이번에는 얌전히 있으세요·”
오리엔테이션 때의 일을 아직도 의심하고 있는 모양이다·
유도신문에 당할 정도로 멍청한 인간은 못 되어서 나는 여느때와 같은 무표정으로 대응했다·
바이올렛이 손가락을 튕기자 개구리가 명함 한 장을 뱉었다· 적혀있는 것은 ‘보조’·
적혀있는 계열을 확인한 다른 학생들이 술렁거렸다·
“보조 계열이네? 헤일리도 아까 보조였잖아·”
“공개적으로 비교당하게 생겼네·”
“쟤 잘해?”
“못하니까 차이지· 잘하면 차였겠냐·”
바이올렛은 내 앞으로 마나 결정 하나를 생성해주었다·
지금 가까이서보니 그저 테스트를 위한 결정이라 그런지 마나가 썩 정순하지는 못하다·
턱으로 표지판을 가리키며 바이올렛이 중얼거린다·
“준비됐으면 바로 시작하세요·”
나는 잠시 고민한다·
무언가를 보조하는 행위는 굉장히 많은 갈래를 가진다· 발현 정화 출력 방향····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하더라도 이 정도이니·
마음 같아서는 전부 보조하고싶다만 고민하는 이유는 당연히 비루한 신체 때문이다·
눈을 감고서 조용히 마나의 잔량을 확인한다· 신체는 마나의 한계치를 담고 있지만 결코 많은 양은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필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
‘정화가 낫겠군·’
마법은 되도록이면 고고한 편이 좋다· 추레한 모습으로 전진한다면 그건 단어 그대로 추레한 것이다·
그것은 또한 내 마법의 격조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따라서 우선 마나 결정의 기운을 보다 정순하게 정화했다·
물감이 퍼지듯 마나 결정의 색이 짙어진다· 호수같던 마나 결정이 현재는 바다의 깊음을 담는다·
남은 마나의 잔량은 많지 못하다· 바이올렛의 마나가 농밀한 탓에 정화에 제법 많은 마나를 들였다·
“···쟤 도대체 언제쯤 시작하는거야?”
누군가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미 시작한지 오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역시 만고의 진리로 통하는 것이다·
손가락 끝에 마나가 실린다· 공기를 찢으며 마나 결정이 본인의 쇄도를 알린다·
“······!”
학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해한다·
정순한 마나를 품은 결정은 그 자체가 하나의 물감이다· 지나간 궤적을 자신의 색으로 칠하며 지나가는 광경이야말로 정화 보조의 매력이다·
그러나·
“······?”
이번에는 학생들의 눈에 황당함이 번진다·
마나 결정이 나아간 거리가 처참했기 때문이다·
표지판과 나 사이 거리의 절반 정도를 살짝 웃도는 거리였으니 거리로만 본다면 겨우 실격만 면한 수준이다·
“허세부리더니 저게 끝인가·”
“처음에만 그럴 듯 했네·”
“헤일리가 진짜 잘하는거였구나· 한 C등급정도 받으려나·”
학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거나말거나 조용히 바이올렛의 평가를 기다렸다· 결국 등급을 정하는 것은 바이올렛이므로·
설령 낮은 등급을 받더라도 후회는 없다· 마법사는 본인의 주관과 직관을 잃는 순간 거기서 끝이다·
한 편 바이올렛의 표정은 읽기가 힘들었다·
도무지 의중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려 다른 두 교수와 눈을 마주쳤다·
세 교수는 서로를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한 데 모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논의했다·
논의하는 와중 세 교수는 흘끔흘끔 나를 쳐다보았다· 학생들의 수군거림이 비례하여 커진다·
“무슨 일이야?”
“부정행위한건가? 스크롤같은거·”
잠시 후 돌아온 바이올렛이 미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플란 학생은··· 일단 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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