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2
“····”
스칼렛의 얼굴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플란의 얼굴에는 악의가 깃들어있다고 여길만한 요소가 없다· 두려움 없이 그저 순수하게 스칼렛의 화염을 보고 싶다는 듯한 눈을 할 뿐이다·
그것이 어이없어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
스칼렛이 호흡을 한 차례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그래 그토록 궁금하다면 어디····”
그녀의 몸 위로 붉은 기운이 일렁였다·
동시에 지면은 가뭄이라도 난 듯 균열을 내며 갈라지고 스칼렛의 눈동자 위로는 붉은색이 한 층 더 짙어진다·
“그 눈으로 똑똑히 보도록 해라·”
콰득!
스칼렛이 지면에 검을 꽂아 넣었다·
쿠구구구─
이내 지면이 통째로 뒤흔들린다· 노면의 균열에서는 화염이 잔뜩 분출해서 솟아오른다·
“잔불이라····”
플란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스칼렛의 화염에 옷 끝자락이 타들어 간다·
비단 의복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불꽃에 몸 한 번 스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피부가 따가울 정도였으니·
마나를 둘렀는데도 이 정도의 위력이다· 불꽃이 그만큼 정순하다는 의미 정도가 될 터·
그러나·
불꽃이라는 것은·
근원으로 한 발자국 더 접근하면 원소일 뿐이다·
결국 불꽃에 불과하다면 마법으로 접근하여 뛰어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이라····”
플란의 얼굴에 흥미가 어렸다· 주변이 붉은 아가리에 삼켜지는 와중에도 그는 즐거운 듯했다·
“과연 그 불꽃은 누구를 주인이라 여길지·”
스르륵─
허공에 마법진이 그려진다· 네 개의 원과 각각 그 안을 채우는 수많은 기하학적인 도형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기적을 마법이라 칭한다면 화염 속에서 화염을 피워내는 것 또한 마법일 터·
화륵─!
마법진이 발화했다·
스칼렛의 잔불이 주황빛에 가깝다면 플란이 피워낸 불꽃은 선홍색을 품고 있었다·
이 신체를 낳은 것은 작열의 기사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작열의 기사가 유산으로서 남긴 회로는 누구의 불꽃을 진짜로 인정하게 될 것인가·
···플란은 그 증명이 궁금하다·
‘···?’
동시에 스칼렛의 표정에 당황이 어렸다·
‘불꽃·’
불꽃이 무엇인지를 모르지는 않는다· 그녀가 평생 다루고 살아왔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으니·
그러나 플란의 불꽃은 익숙하기에 충격이다·
베르켈에서 느꼈던 그 감각· 저건 어머니의····
‘작열(灼熱)?’
화염이 서로의 것을 집어삼키며 주변 일대를 깡그리 잡아먹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느낀 충격에 스칼렛이 흠칫한 순간·
콰아아앙!
플란이 선홍빛의 화염을 위로 쏘아 올렸다· 그것이 이내 뭉치면서 구름 같은 형상을 이루었다·
“저건···!”
멀리서 지켜보던 리브라의 눈이 반짝였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화염인가·
물감처럼 퍼지는 색감이 겉을 이루고 치명적인 위력을 내재한 극상의 화염· 작열·
입이 슬그머니 벌어진다·
고유 능력 회로가 완전히 망가진 플란이 마법을 활용해 작열을 구현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화아아아─!
잠시 후 작열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뒤로 물러나!”
“조금 물러나세!”
리브라 역시 상황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예술처럼 부딪히는 양 화염의 대립에 시선을 빼앗기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화악─!
지면으로부터 검을 뽑아낸 스칼렛이 플란에게 빛살처럼 달려들었다·
크게 보폭을 밟은 스칼렛은 마침내 검을 두 손으로 쥐었다· 플란의 머리 위로 그것을 있는 힘껏 내리친다·
후우우웅!
상대방을 사선으로 갈라버리겠다는 듯한 일격· 더는 상대를 얕보지 않는 스칼렛의 힘을 온전하게 실은 일격이었다·
그러나·
푸욱!
흑색의 검날이 플란의 몸에 닿으려는 그 순간 플란이 그것을 염동으로 붙잡았다·
카가가가가각!
검을 밀어 넣으려는 이와 붙잡으려는 이의 치열한 힘겨루기에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찢어질 것 같은 손바닥의 살 손목의 욱신거림 그러한 것들을 느끼며 스칼렛이 눈을 부릅떴다·
···이러한 감각을 얼마 만에 느껴본단 말인가·
‘아예 붙잡았다고?’
작열을 보고 흥분하여 저조차도 모를 정도로 과한 힘을 실어버린 일격이었다· 다른 누군가였다면 몸이 사선으로 갈라졌으리라·
하지만 보기 좋게 막혔다는 것이 결과였다·
플란은 손으로 스칼렛의 검을 붙잡았다·
“···그래도 닿았다면 이미 끝이다· 플란·”
스칼렛이 혼란 가득한 눈으로 말을 이었다·
“내 화염은 절대로 꺼지지 않아· 잔불은 네 손을 타고 서서히 번져나가서 아주 고통스러운 패배를 안겨주게 될 것이다·”
스칼렛은 화염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콰아아아아아─!
플란과 스칼렛을 집어삼킨 채 반구형의 화염이 미친 듯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순간·
“···?”
스칼렛의 얼굴 위로 의아함이 번졌다·
“뭐야····”
플란 역시 스칼렛과 똑같은 승리를 확신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리어 계획에 성공했다는 듯한 그 얼굴은 어깨에 검날이 꽂힌 이가 지을 표정은 아니었다·
이유 모를 불안감에 스칼렛이 불꽃의 화력을 더더욱 키운 그 순간·
화륵!
“윽!”
그녀는 너무나도 생소한 감각을 느꼈다·
순간 바늘에 찔리는 듯한 날카로운 감각·
‘화상?’
믿을 수 없지만 사실이었다· 스칼렛은 화상을 입었고 자신이 뿜어낸 화염이 도리어 그녀의 몸을 불태우기 시작한 것이다·
“화염···· 내 화염이···?”
주변을 뒤덮었던 화염이 차례차례 선홍색 빛으로 물들어간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이 색은···!”
스칼렛의 잔불은 주황· 그것들이 플란의 선홍색 화염에 동화되어 간다· 화염은 이미 자신의 통제를 따르지 않았다·
새 주인 플란을 섬기기 시작한 것이다·
“말도 안 돼─!”
스칼렛은 경악하며 자신의 화염을 배로 끌어 올렸다· 그러나 화염이 커질수록 자신의 육체만 고통스러워질 뿐이었다·
고통·
고통·
또 몸이 타오르는 고통뿐이다·
“으···!”
다급해진 스칼렛은 결국 검을 거두어들이려 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스칼렛의 검을 염동으로 꽉 붙잡은 채로 손이 잘려나갈까 하는 걱정은 하지도 않으며 플란은 오히려 한 걸음 다가왔다·
“아 그 극···!”
작열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스칼렛은 몸이 타오르는 고통을 견뎌내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자꾸만 꺾이는 고개를 겨우겨우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마주했다·
어느샌가 온 세상이 작열로 물들어있는 것을·
화르르륵!
불꽃의 칼날들이 스칼렛의 전신을 휩쓸었다·
카드드득─!
육체 이곳저곳에 수많은 자상이 생겨났고 고온으로 달구어지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으 윽····”
스칼렛의 초점이 흐려졌다·
화염을 향한 내성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잔불에 다져진 몸이 작열에 버틸 수는 없었다·
쓰러지기 직전 고개를 들어 플란을 보았을 때·
“····”
스칼렛의 몸이 경련했다·
그녀의 앞에 우뚝 서 있는 것은 분명 작열이었으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졌다·’
영원히 타오르는 잔불은 영원히 타오르는 작열을 이길 수 없는 법이니까·
온 신경이 타오르는 듯한 고통을 끝으로 스칼렛은 이성의 끈을 놓았다·
쿵!
그녀의 무릎이 지면과 맞닿았다· 지면에 검을 꽂아 넣어가며 버틸 기력조차도 없었다·
플란은 쓰러진 스칼렛을 응시하며 고작 한 마디를 내뱉었다·
“시간 낭비는 아니었다·”
저 멀리로부터 경기를 지켜보던 이들이 급하게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
같은 시각 마법 학부의 총장실·
“총장님 정말 이대로 진행하실 겁니까?”
손에 도장을 쥐고 있는 코네트의 집무 책상 앞에 서서 비서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예· 진행하지 못할 것도 없지요·”
총장 코네트는 쉽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예· 한다면 하는 것이긴 하지만····”
코네트의 기묘한 역안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애초에 목소리에서부터 담긴 의지가 확고했다·
비서는 조용히 총장의 책상 위로 서류를 올려놓았다· 이 종이에 도장이 찍히고 나면 마법 학부는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총장님 그럼 마법 학부는 어떻게 바뀌는 거죠?”
비서가 조심스레 물었다·
“걱정 기대· 그대는 어느 쪽이 더 큽니까·”
“저는 동률입니다· 변화는 기쁘지만····”
“기쁘지만?”
“바이올렛 교수의 보고를 확인해본바 혈귀들도 동력원을 노린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말입니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비서가 코네트의 집무 책상 위로 또 한 장을 올렸다· 다른 문서들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황금빛의 종이였다·
“이런 황실로부터 온 겁니까·”
“예· 황실에서 플란 학생을 호출했습니다·”
“뭐···· 그건 플란 학생이 결정할 일이지요·”
코네트는 손가락을 염동으로 튕겨 종이들을 한 번에 정리하고 책상 위에 단 한 장만을 남겼다·
“그러니 저는 우선 도장부터 찍겠습니다·”
코네트가 미묘하게 웃으며 서류에 직인을 남겼다·
[ 마탑의 건설을 허가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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