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3
“스칼렛 아가씨···· 깨어나시긴 했겠죠?”
결전으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지금 유디트 가문의 분위기는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주 거대한 폭풍이 가문을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으니·
“무려 잔불의 기사셔 당연히 회복하셨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용히 있어· 조용히·”
“근데 만약 깨어계신 거면 일주일째 식사를 거르고 계신 거예요? 그럼 안 되는데····”
“아가씨께서 결정하실 일이야·”
결투 이후로 하녀들은 숨소리를 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으나 이제 일주일이 지났기에 속삭이는 말소리 정도는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도련님께서 이기신 거죠···?”
나이가 가장 어린 하녀의 질문에 하녀장 카타리나는 눈에 힘을 강하게 주었다·
“조용히 있으라고 방금 말했잖아· 좀 들어·”
“너무 헷갈려서 그래요· 도련님이랑 아가씨 명령 중에 지금부터는 무엇을 우선으로 해야 할 지····”
하녀가 카타리나의 눈치를 살피며 말꼬리를 흐렸다· 이때쯤엔 다른 하녀들의 시선도 온통 카타리나에게 꽂혀있었다·
차마 묻지는 못했지만 그들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었던 질문을 어린 하녀가 내뱉었기 때문이다·
“····”
카타리나는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는 것을 느꼈다· 솔직히 말하자면 본인조차도 궁금했다· 다시 말해 어떻게 해야 할지 그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결국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우선 지켜보도록 하자· 할 일을 궁금해할 필요는 없어· 가만히 있는 게 우리 일이니까·”
그러던 순간이었다·
뚜벅─ 뚜벅─
묵직하게 울리는 발소리에 하녀들은 옷매무새를 황급히 점검하며 도열했다·
“플란은 이미 도착했나·”
이렇듯 묻는 목소리의 주인은 가주 테오도르였다·
“예· 식당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주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근엄한 모습이다· 하녀들 역시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스칼렛은·”
“아가씨께서는····”
카타리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테오도르를 올려다보면서 조용히 고개를 양옆으로 저을 뿐·
“알았다· 다들 수고하도록·”
테오도르는 짧은 말을 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플란이 있는 식당이었다·
하녀들은 발소리가 전부 사라진 후에야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제 남아있는 것은 침묵뿐이다·
결전 후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잔불의 기사 스칼렛 유디트·
···그녀는 방에서 전혀 나오질 않는다·
◈
“승리했구나· 플란·”
더할 나위 없이 고풍스러운 유디트의 식당 플란의 건너편에 앉은 테오도르가 마침내 운을 뗐다·
마주 보고 앉은 지 이십분만에 나온 이야기였다·
“좋은 화염이었다· 만족스러웠어·”
“저는 아직입니다·”
“더 나아가려고? 그래· 나쁘지 않지·”
이미 증명이 된 분야에서 더 나아가 증명하겠다는 의지는 얼마든지 환영이라고 가주는 생각했다·
“결투 직전에는 스칼렛과 식사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그랬더니 단둘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을 꺼내더구나·”
테오도르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생각해보니 너와 둘이서 식사를 하는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내가 자식들에게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어·”
“예·”
플란은 짧게만 대답했다·
애초에 그의 관심사는 식탁 위에 놓여있는 음식들에 향해있었다· 정확히는 처음 보는 식재료들의 조리법에 대해서·
‘구운 생선이라····’
이 생선의 육질은 특히나 예민한 듯했다· 자연 발생한 화염으로 요리해냈다는 것이 오로지 식감만으로도 확연하게 느껴졌으니 말이다·
마법적인 화염에 닿게 된다면 어떨까· 원재료로 사용된 이 생선의 이름이 내심 궁금해졌다·
···대략 그러한 생각을 하던 와중·
“플란 네가 쌓은 마법 실력이 대단하더구나·”
테오도르가 또 한 번 입을 열었다·
“놀랐다· 오직 마법만을 사용해서 스칼렛을 꺾어놓다니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놀랐을 게야·”
“흠·”
플란은 별로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결투에서 나름의 재미를 느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딱 그 정도일 뿐· 딱히 대단한 일이라고는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한 번은 듣고 싶다· 과연 무엇이 너를 그토록 마법에 집중하도록 만든 것인지·”
가주 테오도르는 플란의 열정을 반겼지만 그 열정의 이유까지도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무엇이 제 아들을 그토록 노력하게 만드는가· 가문의 가주이기 이전에 한 명의 아비로써 그것이 듣고 싶었다·
“훌륭한 검술을 지던 네가 마법의 생소함을 이겨내기까지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나는 쉽게 헤아려지지 않는구나·”
가주의 눈빛이 사뭇 진지했다·
“괜찮다면 내게도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한다·”
“증명·”
“증명?”
“예· 오직 그것이 제 삶의 이정표이므로·”
증명이라 그 반가운 단어를 들은 직후 테오도르의 입꼬리가 아주 살짝 위로 올라갔다·
자기 아들은 역시 먼저 떠나버린 어머니의 모습을 지독하리만치 닮아있었다·
이번에는 플란이 물었다·
“약속하셨던 대로 이제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순간 제 가문과 신분을 공개하겠습니다·”
플란의 말에 테오도르는 속으로 흐뭇하게 웃었다·
“그 정도로 만족할 수는 있고?”
도리어 궁금해진다·
자신은 상상조차 못 했던 것을 당당하게 증명해내는 아들이 과연 이 가문의 이름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지·
돌아오는 대답은 빨랐다·
“없는 것보단 낫다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그래· 애초에 약속했던 것이니 지켜야겠지· 유디트는 기사 가문이기 이전에 증명하는 가문이다· 그 뜻만 이어진다면 상관없어·”
그렇게 다시 한동안 소리 없는 식사가 이어진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테오도르였다·
“플란 스칼렛은 꽤 크게 상심한 모양이야·”
그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패배나 좌절이 익숙하지 않은 녀석이다· 더군다나 어미의 화염을 보았으니 충격이 더할 나위 없이 크겠지· 아비로서 조금은 걱정이 되는구나·”
플란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여전히 스테이크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낭비가 전혀 없는 동작으로 고기를 부드럽게 썰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내뱉은 말·
“차례대로 나오는 고급 요리는 참 편리합니다·”
“차례대로 나오는 고급 요리?”
갑자기 돌려진 주제에 테오도르가 다소 의아해했지만 플란은 태연하게 식기를 움직일 뿐이었다·
“이런 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해야 할까 그따위 고민 없이 그저 먹기만 하면 끝·”
─잠시 실례합니다·
하녀들이 굉장히 조심스럽게 빈 접시를 치웠다· 조금 줄어든 와인잔에도 다시 용량을 채운다·
“스칼렛은 그동안 그리 살았습니다·”
플란이 잔을 쥐고서 아주 살짝 돌린다· 안에 들어있는 액체는 우아하게 춤을 추었다·
“지금부터는 스스로 찾아야 할 겁니다·”
테오도르는 그제야 플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었다· 미동조차 하지 않으며 아들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인다·
플란은 와인을 한 모금했다·
입안에서 맴도는 고급스러운 향취가 마음에 든다·
“진정한 기사는 제 발로 일어서는 법이니까·”
플란은 손수건으로 입을 닦고서 일어섰다·
“그럼 저는 이만·”
◈
나는 마법 학부로 복귀했다·
내 발길이 닿아야 할 곳은 많았으나 그중 가장 먼저 방문할 곳은 당연히 총장실이었다·
물론 방문하는 과정이 고요하지만은 않았다·
“플란···· 플란이지?”
“가서 인사해볼까?”
“네가 해봐· 너 그런 거 잘하잖아·”
“아 뭐래!”
나를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슬그머니 뒤를 쫓는 이들 속삭임· 많은 요소가 뒤섞여 내 주변은 다소 부산스러웠다·
“···안녕하세요!”
심지어 여학생 한 명은 내 앞을 가로막고 인사를 했다·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것이 내 대답이라면 대답이었다·
마침내 그렇게 도착한 총장실·
“오셨습니까· 플란·”
마법 학부의 총장 코네트가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나를 반겼다· 그녀가 자신의 집무 책상 위로 고급스러운 종이 한 장을 올려놓는다·
“마탑 안건 저는 허가했습니다·”
내 계획을 적어 제출한 서류에는 보란 듯이 총장의 도장이 찍혀있었다· 그것도 아주 커다랗게·
“하지만 남아있는 관문들이 있지요·”
검지와 엄지손가락을 붙이며 코네트가 동그란 원 하나를 만들어 보였다·
“그중 하나는 자금입니다· 마법 학부에서 최선을 다해 지원해도 아직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비용·
납득할만한 이유였고 진즉에 예상했다·
마탑은 마법사들의 최고기관· 모든 마법사의 이정표가 되고 그들이 세상의 진리를 오직 마법으로 파헤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공간·
‘최고기관’이라는 말을 위시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에 걸맞은 근거를 갖추어야 할 터·
동력원을 활용하기 위한 연구비 그것을 감당할 시설 인력···· 머리에 떠오르는 요소 전부에 각기의 비용이 달라붙는다·
즉 필요한 액수는 말 그대로 천문학적일 것이다·
그러나·
“부족하다면 채우면 될 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zakuti님 내일부터는 5시 5분에 뵙겠습니다!
추가로 내일 회차에 삽화가 있을 예정입니다·
zakuti님 늘 감사합니다· 꼭 행복한 하루를 보내셨으면 합니다· (__)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