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4
마법 학부의 기숙사로 복귀했다·
“엇?”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베키가 저 복도 끝에서 나를 발견하더니 코앞까지 달려왔다·
어디를 다녀왔냐 몸은 좀 괜찮냐 뭘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거냐···· 나는 끝도 없이 늘어지는 질문의 대부분을 무시했다·
“관심을 좀 꺼라·”
“내가 너한테 관심을 어떻게 꺼?”
베키가 발끈하며 대답했다·
잠시 허공에서 우리의 눈이 맞닿았다·
잠시 후 그녀의 얼굴이 제 머리카락처럼 붉게 달아오르더니 슬그머니 고개를 모로 돌린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궁금해서·”
베키가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요즘 과제가 좀 적었던 모양이지·”
“이 이야기가 왜 그렇게 돼?”
그때쯤 루이스와 트릭시도 이쪽에 합류했다· 세 마법사의 멀쩡한 모습을 확인한 후 나는 안부 인사보다도 본론을 먼저 건넸다·
“단체 취재는 황실에서 주관한다·”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차던 베키도 혼자서 팔짱을 낀 채 우리를 지켜보던 트릭시도 평소와 같이 미소를 머금고 있던 루이스도· 전부 우뚝 멈춘 채로 나를 쳐다본다·
“몰려있는 관심이 크다 보니 취재 규모도 자연스레 커졌다· 우선 그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도록·”
베키가 입술을 금붕어처럼 뻐끔거렸다·
“자 자 잠깐만·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리 모습이 여기저기에 전부 나가는 건가?”
“그래·”
“···!”
그러자 베키는 자신의 볼에 양손을 붙인 채로 입을 떡 벌렸다· 표정이 그녀의 생각을 여실히 대변하고 있었다·
토벌제 우승 이후 많은 시일이 지나지는 않았으나 그 안에서도 변화는 확실하게 일어났다·
이제 트리비아를 펼치면 우리의 이름을 너무나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니 도리어 없는 게 이상하다·
당연한 수순이다· 무려 토벌제를 우승했으니·
마법 학부에서 이전에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이 고작 논문 몇 장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근래 우리에게 자주 붙는 ‘역대급’이라는 수식어도 전혀 과분한 말이 아니었다·
“굳이 긴장할 것 없다· 어렵지 않으니까·”
현재 마탑 건설을 위해 필요한 것은 자금이다·
마법은 세간의 시선 따위와 무관하다· 실력으로 증명해낸다면 그저 그뿐일 터이나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선 다소 지지가 필요한 법·
‘단체 취재는 그 발판이 될 것이다·’
학생 귀족 더 나아가 황실· 눈을 뜨면 종일 투자할 곳을 찾아다니는 상계의 인물들·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지금 단체 취재는 기회이자 마탑 건설을 향한 발판이 될 터·
성실하게 단체 취재를 준비한 지 48시간· 마침내 단체 취재의 날이 밝았다·
◈
황궁 내부의 취재 대기실·
취재까지 3시간을 앞두고 수십 명의 관료가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현재 세간의 관심이 크게 몰려있는 채고 심지어 둘째 황녀부터가 이것을 기대하고 있으니 오늘만큼은 아주 작은 실수조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취재 장소를 교체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정원에서 하는 게 황궁의 아름다움이 잘 담길 것 같은데요·”
“그럼 정원을 사용해도 되는지 당장 확인해봐야 할 거 아니야· 그리고 마법사들은 도착 안 했어?”
“아직이요· 근데 곧 도착할 거에요!”
“1초라도 늦으면 대형 사고야· 지금 관심 가진 사람이 몇 명이고 굴러가는 금화가 몇 갠데· 절대로 늦지 말라 그래!”
“지금 한 번 더 확인할게요!”
장소와 일정을 점검하는 관료들이 다급하게 움직이는 사이 다른 곳에서는 진행을 맡은 관료들이 몇백장 분량의 취재구성안을 살피는 중이었다·
“진행 진행은···· 아이린이 맡기로 했지?”
“네·”
한 관료의 말에 아이린이 연둣빛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대답했다· 그녀는 수십장의 취재 구성안을 동시에 살피는 중이었다·
“마법 학부 학생들을 황궁으로 데려다 놓고 하는 건 또 처음이네· 그래도 1학년이면 나이가 어리니까 아이린 네가 다루기 어렵진 않겠다·”
“다루기 쉽고 어렵고는 별로 상관 없어요· 사람들이 원하는 내용이 나올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하긴 원금을 회수하려면 일단 재미가 있어야····”
관료가 혀를 찼다·
으레 할 법한 고민이었다· 상황을 실시간으로 내보내기 위해 필요한 수정구는 제작에도 유지에도 발동에도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원금 회수는 너무나도 쉽게 할 것 같은데요?”
아이린의 말에 관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이린 너 재무관님이랑 똑같은 말을 한다?”
“결국 이 모든 판을 만든 게 플란이잖아요·”
“뭐 그렇지· 걔가 시발점이니까·”
“그간 아카데미 내부에서 있었던 취재에서 늘 마법에 관한 이야기만 했더라고요· 근데 저는 오늘 마법 이야기 하나도 안 할 거예요·”
아이린이 차륵 소리가 나게 취재구성안 뭉치를 한 차례 넘긴 후 말을 이었다·
“사생활을 주제로 이야기 하는 게 옳아요· 사람들이 그걸 원하고 있으니까·”
“재미는 있어? 확인 된 거야?”
“그럼요· 원래 일상적인 이야기가 더 재밌는 법이죠·”
아이린이 흡족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대표중 여자애 한 명이 플란을 특히나 좋아하는 것 같아서요·”
◈
황궁·
‘관망의 장’이라 하여 오로지 황궁을 굽어다 보기 위해 공중에 만들어진 장소· 현재 둘째 황녀 오로라는 그곳에 있었다·
칠흑 같은 머리칼 사이에 파묻힌 초승달 모양의 동공은 분주히 움직이는 관료들에게로 향해있었다·
옆의 환관이 머리를 조아렸다·
“황녀님· 준비가 잘 되어가고 있사옵니다·”
단체 취재가 기대된다고 한 것은 다름 아닌 오로라였기에 환관은 틈틈이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재빠르게 보고를 올려야만 했다·
“황궁이 오랜만에 요란스럽구나·”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오로라는 제법 기분이 좋다는 듯한 어투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아래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둘째 황녀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입술을 떼었다·
“그러고 보니···· 그래 셋째 녀석도 마법 학부에 다니고 있거늘 요새 어떻게 지내느냐?”
오로라가 무심하게 던진 말에 환관이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오로라와 유시아 사이에서 좋은 일이 생겼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유 유시아 황녀님 말씀이십니까?”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마법 학부에 재학 중이라면 플란 그놈과도 제법 접촉이 있을 것 아니냐·”
“예· 없지는 않을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황녀가 느릿느릿 눈을 깜빡이며 말을 이었다·
“플란 그놈의 미래는 읽히지 않는다· 녀석과 관련되어있는 것도 전부·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
“예·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하고 있사옵니다·”
“최근 유시아의 미래에도 읽히지 않는 부분이 꽤 생겼다· 과연 이게 무엇을 의미하겠느냐·”
“그것은····”
환관이 무언가 적당한 말을 찾아서 내뱉으려 했지만 오로라의 말이 더욱 빨랐다·
“별로 어려운 질문이 아닐 텐데· 플란 그놈이 유시아의 미래에 점점 크게 엮이고 있다는 것이지·”
“그건 그러니까···· 일시적인 것 아니겠습니까? 셋째 황녀님께서는 그냥 학업에만 전념하고 계신 것 같고 또 아카데미라는 게 수업을 듣다 보면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니 접촉했을 수도····”
“됐다· 됐어· 그냥 해본 소리다·”
혀를 쯧 차더니 오로라가 입 끝을 올리며 웃었다·
대화가 그렇게 종결되었음에도 환관은 불안한 눈으로 오로라를 곁눈질했다·
다행스럽게도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그녀의 표정은 오히려 아까보다 조금 더 밝아진 듯 보였다·
그렇게 환관이 막 안심한 순간·
“···!”
어느샌가 환관의 바로 곁에서 오로라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흐 흐아악!”
엉덩방아를 찧은 환관을 향해 그녀가 명했다·
“플란 그놈을 내가 뺏어야겠다· 방법을 찾도록·”
둘째 황녀 오로라의 경쟁심과 소유욕·
대상이 ‘사람’이더라도 예외는 없었다·
◈
태양이 저물 무렵 여인은 눈을 뜨고서 가만히 기억을 되짚었다· 결투는 공평했다· 승리자와 패배자를 한 명씩 남겨두었으니·
“····”
잔불의 기사 스칼렛·
그녀는 패배자였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노을의 조각이 거두어지고 세상에는 어둠이 서서히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결투가 끝맺어지고도 시간이 제법 흘렀다·
그녀는 상대방에게 어떠한 위해도 입지 못했다· 그냥 패배라기에도 어폐가 있는 완패였다·
믿을 수 없었지만 사실이었다· 인정할 수 없지만 인정해야만 했다· 그냥 너무나도 현실감이 없어서 이 상황이 꿈만 같았다·
스칼렛은 거울을 향해서 비척비척 걸어갔다·
아직도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최근 들어서 식사를 한 적조차 없었다·
다리가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몇 번이고 넘어질 뻔했지만 기어코 거울을 마주 보며 섰다·
그곳에는 냉혹한 현실이 있었다·
부스스해져서 얼굴을 온통 가린 머리카락 패배자의 육체 작열의 기사가 되지 못한 실패작이 보란 듯이 자신의 앞에 놓여있었다·
그 참상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어떤 생각을 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비틀거렸다·
그러다 우연히 가주로부터 받았던 열쇠가 시선에 띄었다·
“아····”
그것을 조용히 집어들었다·
스칼렛은 고통에 몸을 떨면서도 동시에 생각했다·
···이제는 별채에 방문할 때가 되었노라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지각했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군요·
후에 연참하겠습니다· 삽화는 완성되었으나 내용상 다음 회차에 실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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