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5
“흐음·”
한편 클라우드 가문의 응접실·
다섯 명의 정보원들을 앞에 세워둔 채로 콘라드는 다른 가주 둘과 함께 나란히 앉아있었다·
“전부 사실인가·”
눈 밑에 나 있는 십자가 모양의 흉터 올백으로 번듯하게 넘긴 백발· 클라우드 가문의 가주 콘라드가 엄숙한 표정으로 정보원들을 향해 묻는다·
“네 네· 틀림없습니다·”
그 앞에 고개를 조아린 정보원의 대답이었다· 콘라드는 무표정으로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정보원은 몸 전체를 후들후들 떨고 있었다·
“사실이 아니라면?”
“네···?”
콘라드가 입에 시가를 물고 불을 붙였다·
숨을 내뱉었지만 연기가 퍼지진 않고 콘라드의 주변을 맴돌 뿐이다· 연기 그것이 그의 고유 능력인 동시에 검이었으므로·
“정보가 사실이 아니라면 어떻게 책임질 겐가·”
“사 사실입니다· 추려내고 또 추린겁니다·”
콘라드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요즈음 그는 정보를 미친 듯이 입수하고 있었다· 토벌제에 관련된 정보라면 가리지 않았고 들어가는 금화의 개수를 따지지 않았다·
“그래·”
콘라드는 보상으로 약속했던 금화 주머니를 바닥에 차례차례 내던졌다· 총 다섯 개였다·
“허억·”
“눈앞에서 사라지도록·”
“그 그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금화 주머니를 챙긴 뒤 정보원들은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다 한 번 바닥에 넘어지고 자기들끼리 한 번 부딪혔다가 허겁지겁 뛰어간다·
“한심한 것들·”
콘라드는 그들을 노려보면서 연기를 내뿜었다·
“천한 것들이 뭘 알겠습니까· 이해하시지요·”
나란히 앉아있던 작센 가문의 가주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가 정보원들이 건넨 종이들을 살피며 말을 잇는다·
“여전히 마법 학부의 행보에 떠들썩하군요·”
“마법을 향한 관심이 전체적으로 많아졌습니다· 대표 마법사들을 추종하는 이들도 생겼더군요·”
옆에서 투덜거리는 것은 튜터 가문의 가주였다· 둘 다 콘라드와 뜻을 함께하는 기사들이었다·
작센 가문의 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단체 취재가 괜히 많은 이들이 원하는 흥밋거리가 되었겠습니까· 심지어 마법 학부의 대표들을 향해 애정을 가진 이들도 생겨난 거죠·”
토벌제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토벌제를 향한 세간의 관심은 오히려 더 커졌다·
위험 지역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곳은 어떠한지 후일담 하나하나가 화제가 된다·
그러나 오히려 그 때문에 콘라드는 분노했다·
누군가는 토벌제로 이득을 쓸어 담는데 그는 오히려 자식을 잃었다· 심지어 앞으로도 아들 키안이 마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애써야만 했다·
마침내 콘라드도 입을 열었다·
“최근 둘째 황녀님께서도 마법사들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모양이더군· 이번 단체 취재도 그렇고·”
“비단 황녀뿐만이 아닙니다· 황실 내부에서도 기사들의 의견이 갈리기 시작했으니까요·”
“갈리기 시작했다라·”
“이제는 그냥 인정하자니 지켜보자니 싹을 밟아놓자니···· 뭐 생각나는 것만 이 정도입니다·”
작센 가문 튜터 가문 오늘 모인 이들은 굳이 따지자면 꺾어놓자는 강경파에 속했다·
작센 가문의 가주가 콘라드를 보며 웃었다·
“그래도· 콘라드님께서 뜻을 함께하시니 든든합니다· 경거망동하는 이들과 뜻을 함께하면 일을 그르치기 마련이니까요·”
“할 일을 할 뿐이지·”
콘라드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물론 콘라드는 사실 이쪽에 합류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마법 학부의 대표들이 살아있다면 제 아들 키안이 마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언제 새어나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근데 플란 그놈이 참 대단하긴 합니다· 나이가 어리기는 해도 실력 하나는 확실해요·”
“그러니까 더더욱 신중하게 움직여야겠지·”
플란은 조금 다르다· 아니 확실히 다르다·
제 아들 키안이 마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실로 충격적이었지만 플란이 그것을 마주하고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더더욱 충격적이었다·
“최선을 다하면 결국 실패도 없다·”
클라우드 가문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상계에 능통한 딸이 자본을 굴리고 방해되는 자들은 콘라드가 모조리 치워냈기 때문이다·
그의 아들이 마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앞으로도 아는 이가 없을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
“플란····”
그러나·
왜일까· 그 이름을 중얼거린 순간 기묘한 꺼림칙함이 몸을 한 차례 에워쌌다·
사람들이 흔히들 불길함이라고 칭하는 것· 뭐가 되었든 감이 예민한 그가 무시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왜 그러십니까?”
“하·”
하지만 그 불길함을 조소와 함께 날려버렸다·
상대방의 능력을 인정하고 만전을 기한다면 결코 실패할 일은 없으리라·
콘라드는 다시 한번 연기를 빨아들였다·
◈
“세상에 무슨 피부가 갓 태어난 아이보다도 좋아· 오히려 뭘 바르는게 애매할 정도인데요?”
“네·”
트릭시가 화장대 앞에 앉은 채로 중얼거렸다·
단체 취재 직전 화장을 도와주는 황실 시녀가 연달아 감탄사를 내뱉는다· 그녀는 붓에 물감처럼 크림을 찍어 트릭시의 얼굴에 조심스레 펴 발랐다·
“네·”
“네네·”
“아하·”
“화장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이후로도 트릭시를 향한 극찬이 이어졌으나 정작 당사자는 무미건조한 반응만 내놓을 뿐이다·
“아아 네· 그럼 가볍게만 할게요· 하하····”
시녀가 어색하게 웃으며 땀을 삐질 흘렸다·
애초에 트릭시는 온통 트리비아의 연락에 집중하느라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여유가 없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녀가 보낸 활자들의 목적지는 나였다·
[*트릭시]
[▶ 저 피부가 애기같대용]
[▶ 직접 보러오셔두 되는뎅 ㅎㅅㅎ ]
[▶ 나중에 제 볼 잡아서 늘려보실래용?]
[▶ 헉 근데 만나려면 더 열심히 가꿔야겠네]
[▶ 가르침 씨도 오늘 단체 취재 보세용?]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변을 보냈다·
[▷ 그래·]
“헉·”
트릭시가 트리비아를 탁 소리가 나게 덮으면서 눈을 휘둥그레 치떴다·
화장을 보조하던 시녀가 덩달아 놀라 한다·
“어머 왜요? 혹시 이 정도도 진해?”
“아니· 아뇨·”
트릭시의 얼굴에 진지함이 깃들었다·
“···저 엄청 우아하게 만들어주세요·”
아까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태도로 트릭시는 화장대 속의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나는 그제야 트리비아를 덮었다·
그렇게 이십 분이 추가로 흘렀다·
“흐음·”
마침내 외모 다듬기도 끝이 났다· 트릭시는 자기 모습을 이리저리 살피며 옆 머리를 귀 뒤로 쓸어 넘겨 보였다·
“너·”
그리고 대뜸 내게 말을 붙였다·
나는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다· 할 말이 있으면 마저 이어서 하라는 뜻이었다·
“나한테 할 말 없어?”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그녀의 모습을 살폈다·
평소보다 조금 더 우아하긴 하다· 아카데미의 제복이 아닌 드레스 차림이라 당연할 터·
짐작 가는 것은 많지 않았다·
“혹시 내게 칭찬을 바라나·”
“그게 아니야·”
트릭시가 내게 손 하나를 내민다·
“줘·”
의미를 알 수 없어 무시로 일관했으나 트릭시가 손바닥을 여러 번 쥐었다 폈다 해 보인다·
“더 주라고·”
“과제를 원했던 모양이군·”
“가르침 씨 말이야· 나한테 전해달라는 물건이 슬슬 하나 정도는 있을 거 아니야·”
“없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트릭시가 두어번 정도 눈을 끔뻑인다·
“···그럴 리가 없어·”
“없다·”
“무조건 있어· 줘·”
그때쯤 루이스가 작게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루이스는 노트 위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는 채였다·
나와 트릭시를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고 있었으니 루이스가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유추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트릭시가 미간을 좁혔다·
“뭐 하는 거야·”
“우리 일상을 그림으로 남겨두면 좋잖아· 게다가 그거 알아? 둘이 제법 잘 어울려·”
“하나도 안 어울려· 그리고 그리지마·”
“나는 그림이 완성되면 건네줄 뿐이야 보관하든 버리든 그건 당사자가 알아서 하는 걸로·”
그러면서 슬쩍 웃는다· 선한 미소였다·
트릭시가 푸른 불꽃을 발현했다· 루이스의 트리비아를 불태우려 했지만 빛의 장막에 보기 좋게 가로막힌다·
“오늘 단체 취재 반응이 좋겠는데요?”
황궁의 시녀가 방긋 웃었다· 트릭시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시녀를 쳐다보았다·
“갑자기요?”
“네· 대표들끼리 사이가 돈독해야 사람들도 좋아하거든요· 여긴 다들 그래 보여서요·”
“····”
트릭시는 괜히 제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헛기침하면서 책상 위로 수북하게 쌓인 종이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루이스가 내게 슬그머니 다가와서 속삭인다·
“트릭시는 예상 질문지를 만들어서 대비했다나 봐· 저거 하느라 아예 밤을 새운 모양이더라고·”
하지만 속삭임치고는 꽤 컸기 때문에 트릭시가 눈을 가늘게 뜨고서 이쪽을 흘린다·
“사람들이 우리의 가문에도 관심을 가지게 될 텐데 나는 프리츠 가문의 장녀야· 차기 가주로서 최선을 다하는 건 당연하잖아·”
“아하하 그런가? 나는 별생각이 없는데· 애초에 취재 주제가 일상이잖아· 뭘 물어보겠다는 건지 도통 감이 안 잡혀서·”
루이스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열심히 준비하는 트릭시의 태도는 기특하지만 사실 단체 취재의 주제가 문제였다·
일상·
고작 그 두글자가 취재의 구성안인데 너무나도 포괄적이라 구체적인 파악은 불가능하다·
마법사의 일상에 스며든 마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겠지만 완전히 사적인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와도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준비는 잘 되어가요? 아 잘 되어가네·”
뒤늦게 대기실로 들어온 바이올렛이 우리를 한 번씩 훑어보며 말했다· 특히 트릭시를 볼 때는 한 차례 더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이올렛이 슬그머니 내게 붙는다·
“셋 모두 상태가 좀 괜찮아요? 장소가 무려 황궁이라 다들 긴장이 좀 될 것 같은데·”
“평소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럼 별로 걱정 안 해도 되겠네· 이번에도 플란 학생만 믿고 있을게요· 아 그리고·”
바이올렛이 눈을 깜빡인다·
“마탑의 자금 말이에요· 총장님한테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던데 혹시 그 방법이라는 게 단체 취재를 말하는 거예요?”
“단체 취재는 방법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렇구나· 정말 알 수가 없다니까·”
바이올렛이 두어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동력원 말인데 지금처럼 평범하게 보관해도 괜찮은 거예요? 혈귀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
“제가 책임집니다·”
“알았어요· 그럼 믿어야지 별수 있나·”
바이올렛이 빙그레 웃었다·
◈
마침내 단체 취재가 시작되었다·
‘공존’이라 붙여진 황실의 정원· 사계절이 동시에 공존하는 신비한 장소에서 취재는 시작을 맞이하게 되었다·
옆에 서 있는 대표들 곳곳에서 수정구를 들고 있는 관료들· 눈에 보이는 이들의 얼굴이 제법 진지해졌다·
“반갑습니다· 오늘 진행을 맡은 아이린이에요·”
아이린이 연둣빛 머리카락을 목뒤로 쓸어 넘기며 인사를 했다· 다른 관료들과 다르게 그녀는 별로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
“····”
그녀의 시선이 한동안 내게 머문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여기서 플란 혼자만 긴장을 안 한 것 같길래·”
아이린이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고서 손바닥을 짝 소리가 나게 부딪혔다· 단체 취재가 시작되는 신호였다·
“처음에는 조금 가벼운 질문부터 시작할까요? 전혀 어렵지 않은 걸로· 좋아요· 오늘의 취재 주제는 일상이니까····”
연둣빛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아이린이 대표들을 한 차례 빙 둘러본다·
“자 우선 베키·”
결국 가장 먼저 이름이 불린 것은 베키였다·
“혹시 대표들 중에서 누가 제일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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