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6
“혹시 대표들 중에서 누가 제일 좋아요?”
모두의 시선이 베키에게로 향했다·
“····”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수선하게 허벅지를 비비거나 머리카락을 꼬던 베키는 현재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로 아이린을 마주 보고 있다·
“어라 말문이 막힌 모습?”
아이린이 여유롭게 웃으면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오늘 대표들의 사적인 일상과 관련하여서만 취재를 진행할 생각이다· 이유는 당연히 자극적인 ‘재미’를 뽑아내기 위함이다·
“나머지 대표들에게 먼저 물어봐야겠다· 베키양이 누구를 지목할 것 같아요?”
그러자 루이스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대답한다·
“플란이죠· 둘이 항상 붙어 다니거든요· 아니지 베키가 졸졸 쫓아다닌다고 해야 하나?”
“쫓아다닌다고요? 으흠 이유가 궁금한데?”
아이린이 흥미롭다는 듯 덧붙였다· 베키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버벅거릴 뿐이었다·
“어 어 아니 음····”
베키가 어쩔 줄을 몰라 할수록 관료들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표정이 어렸다· 안절부절못하는 귀여운 소녀는 반드시 반응이 좋을 테니까·
베키가 플란을 흘끔 곁눈질했다·
아이린과 그의 모습을 몇 번 정도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더니 마침내 어렵사리 입을 연다·
“플란이 제일 좋긴 하죠····”
아이린이 능글맞게 웃었다·
“플란씨가 제일 좋다고요?”
“네·”
“정말요?”
“····”
아이린이 모르는 척 능청스럽게 되물을 때마다 베키의 목소리는 작아져만 갔다· 결국 마지막에는 툭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고개만 겨우겨우 끄덕인다·
“그래요· 뭐 대표로서 좋다· 그럴 수 있죠·”
“네?”
“아! 이성으로서 좋다는 의미였나?”
“아니 아니에요! 아니···· 아니라고 하면 이상한가? 아니 아무튼 아니에요· 아닙니다····”
말을 횡설수설 늘어놓는 베키를 바라보며 주변 관료들이 흐뭇한 얼굴로 웃음을 터뜨렸다· 덕분에 현장의 분위기가 조금은 풀렸다·
“자 그럼 본격적인 취재 시작할게요·”
아이린이 짝 소리가 나게 손바닥을 마주쳤다·
“위험지역에 떨어졌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크게 걱정은 안 했어요· 플란이 한 거라·”
이렇게 대답하는 목소리는 루이스의 것이었다·
“위험 지역에 떨어졌는데 걱정이 없었다고요? 에이 이제 와서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고?”
아이린의 시선이 트릭시에게로 향했다·
“트릭시 양이 듣기엔 어때요· 루이스군이 지금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나요?”
“사실이에요·”
트릭시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또 시작됐구나· 그냥 그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플란이랑 함께 다니면 이런 일은 일상이라서·”
“위기를 헤쳐 나가면서 묘한 감정이 싹트는 걸 느꼈다든가· 저는 그런 걸 기대했는데 말이죠·”
“전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요·”
트릭시의 짧은 대답·
아이린을 비롯한 관료들의 얼굴에 흥미가 잔뜩 담겼다· 생선을 찾은 고양이의 표정이었다·
“마법 학부의 대표 동시에 프리츠 가문의 장녀가 좋아하는 사람이라···· 살짝만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주 살짝만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트릭시의 얼굴이 플란에게로 회전했다· 푸른 소녀가 덤덤하게 말을 잇는다·
“플란만이 알아요·”
“플란만이 안다고요···?”
순간 아이린은 이번 취재가 대박이 날 것이라 직감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다른 관료가 푸른 마나로 허공에 글씨를 띄워놓았다·
‘이 소재 절대 놓치지 마’라고 적혀있다· 아이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베키 양은 플란 학생이 가장 좋다고 했고 트릭시 양은 좋아하는 사람을 플란 학생만 알고 있다고 하고···· 이거 흥미로운데요?”
아이린은 모르는 척 능청스럽게 말을 잇는다·
“마법 학부의 변화를 만들어낸 시작점· 그 당사자인 플란에게 한 번 직접 물어봐야겠어요·”
화제는 자연스레 플란을 향해 전환되었다·
“어때요· 플란씨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마탑을 지을 생각이다·”
“····”
정원에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플란의 대답에 아이린의 눈썹이 한 차례 꿈틀거렸다· 곁의 관료들 역시 살짝 얼어붙은 채다·
아이린이 천천히 상황을 수습했다·
“아 네· 마 마탑···· 우선 다른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플란 학생은 혹시 마음에 드는····”
그녀의 이마에는 어느샌가 땀방울이 맺혔다· 대화 주제를 돌리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두지·”
그러나 플란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애초에 취재는 마탑에 관한 사실을 흘리기 위한 무대였기에 주역을 내어줄 생각이 없었다·
“현재 내게 마탑을 짓겠다는 생각 외엔 없다·”
“····”
아이린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이 정도면 초대형 사고다· 눈을 마주치는 관료들마다 그녀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손톱을 깨물거나 머리카락을 꽉 쥐거나 목덜미를 잡거나···· 소리 없는 소란 속에서 아이린은 가까스로 직업 정신을 발휘했다·
이 상황도 어떻게든 자연스레 풀어나가면 되리라·
“마탑· 새로 마탑을 짓는다고요···· 어떤 이유에서 짓겠다고 결심하게 된 건가요?”
“이 세계의 마법사들이 형편없기 때문이지·”
툭·
아이린이 들고 있던 대본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는 급하게 뒤를 돌아 양손을 가위표 모양으로 교차시켰다· 이건 절대로 내보내서는 안 되는 내용이다···!
그렇게 느낀 것은 관료들도 매한가지였는지 모두 허겁지겁 움직이며 수정구의 전원을 차단하려 했다·
그러나·
“수정구의 전원이 차단되질 않아!”
“완전히 먹통이에요!”
수정구가 말을 듣질 않았다·
그리고 이내 관료들은 그 원인을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다· 푸른 마력이 수정구 근처에서 스파크처럼 튀며 간섭하고 있었다·
“간섭···?”
“누구야!”
그 마력을 거슬러 쫓아가 보니 플란이 있었다·
수정구의 전원이 차단될 수 없도록 만들고서 플란은 다시 한번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마탑은 반드시 지어지게 될 거다· 그리고 그때는 이 바닥 같은 수준도 조금 높아지겠지·”
“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아이린이 소리까지 질러가며 플란의 말을 어떻게든 묻히게 하려고 했다· 그녀가 싹싹 빌듯이 손을 모으고서 다급하게 속삭인다·
“미쳤어? 이거 황녀님께서도 보고 계신다고!”
“황녀조차도 마음에 들어 할 마탑이 될 것이다· 그것만큼은 이 자리에서 약속하지·”
“아아아아아악!”
아이린이 또 한 번 소리를 질렀다· 이번에는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헙!”
하지만 플란이 염동으로 그녀의 입술을 꾹 쥐었다· 동시에 관료 중 하나가 소리쳤다·
“마탑을 도대체 어떻게 짓겠다는 거야! 마법 학부에는 그럴만한 자금이 없을 텐데?”
“그렇다고 해서 구걸할 생각도 없다· 기본적으로 투자는 자유로워야 하는 법이니·”
플란은 관료의 말을 차게 일갈했다·
“앞으로는 마법의 개념이 완전히 뒤바뀔 것이다·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린은 톡 건드리면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
둘째 황녀 오로라의 내실·
취재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의 분위기는 살얼음판이나 다름없었다· 지루해하는 황녀의 얼굴을 살피며 환관은 실시간으로 늙어갔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대표들 간의 치정 따위 일반인들이나 관심을 가지지 황녀에게는 전혀 흥미가 되질 못하니까·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환관 두 명이 싱글벙글한 얼굴로 아주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황녀님께서 만족하시지 못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옵니다·”
“플란을 저렇게까지 마음에 들어 하실 줄은 몰랐네· 관료들은 아직도 사고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말이야·”
단체 취재는 둘째 황녀가 주선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황실 내부에서는 오로라의 흥미를 충족시켰느냐가 관건인 셈인데 그것을 아주 제대로 해낸 셈이다·
환관이 턱을 문지르며 말했다·
“능력도 없이 허세를 부리는 것들이 많은데 정말로 화제와 기대를 동시에 얻을 수 있을 만한 걸 딱 하잖아· 그러니까 자꾸 생각도 나고·”
“그러게 말이옵니다· 기대했던 일상 이야기쪽은 완전히 망했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크게 해내 줬어요·”
“플란이 합류해서 다행이야· 초안대로 세 명만 데리고 취재했으면 정말 어쩔 뻔했어?”
“···목이 여럿 날아갔을 것이옵니다·”
두 환관의 시선이 머지않아 오로라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양손으로 기록지를 직접 펼쳐 든 채 오로지 플란의 얼굴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어이·”
“예· 황녀님·”
호위 기사들과 환관들이 자세를 바로 하고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오로라는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간다·
“흥미롭구나· 아주 흥미로워·”
물론 그녀의 초승달 모양 동공은 여전히 기록지에서 전혀 떼어지지 않은 채였다·
“이놈에게는 마탑을 건설할 만한 자금이 없다· 이놈에게만 없겠느냐? 그 정도는 마법 학부에도 없을 테지·”
오로라가 천천히 아랫입술을 핥았다·
“그런데도 마탑이 지어질 것을 확신했단 말이지· 심지어 이놈은 그것이 내 마음에 쏙 들 것이라는 말까지도 덧붙였느니라·”
환관들도 기사들도 반응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오로라가 무언가를 향해 이토록 흥미를 보이는 것이 생판 처음 보는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 그건 지금 같은 상황을 위한 표현일 터였다·
“좋다·”
오로라가 눈을 세 번 깜빡였다·
반달 초승달 그믐달·
깜빡일 때마다 동공의 모습이 무수히 변화한다·
“당장 재무관을 불러오도록·”
◈
잔불의 기사 스칼렛은 비척비척 걸었다·
몇 번이고 넘어질 뻔한 위기가 있었고 실제로 두 번 정도 주저앉았지만 그녀는 기어코 목적지에 당도했다·
유디트 가문의 별채· ‘회상(回想)’·
알 수 없는 진실들이 담겨있는 그 건물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스칼렛은 문득 제 가슴팍을 꽈악 쥐었다·
“우욱····”
갑작스레 구토감이 치밀었다·
그녀는 패배자였다· 너무나도 완벽하게 패배해서 변명을 내뱉을 수 조차 없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당면하게 될 진실이 그녀는 무서웠다·
몸 전체를 쥐어짜내는 것 같은 격통이 스칼렛의 몸을 수없이 강타했다· ‘잔불’이 육체의 회복을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고통스럽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우우욱─·”
자기 토사물이 더러워서 또 한 번 속을 게워냈다· 그녀는 땀범벅이 된 채로 고통에 몸을 떨면서 생각했다·
들어가야 한다·
그래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스칼렛은 떨리는 손으로 품 안에서 열쇠를 꺼냈다· 가주로부터 받은 이 별채의 입구를 열어줄 물건이었다·
별채 내부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어떤 식으로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가· 그것은 스칼렛 스스로조차도 모른다·
그러나 이 방법밖에 없었다·
자신이 겪은 일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입하는 수밖에 없다· 설령 이상 현상에 휘말려 표류하게 되더라도 말이다·
“으으····”
가쁜 숨을 내쉬며 스칼렛은 별채의 입구에 열쇠를 꽂아 넣었다· 그러자 건물 전체가 액체처럼 물결치며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쏴아아─!
그 파도가 스칼렛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휴재만큼은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연참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빠른 시일 내로 하겠습니다· 또한 앞으로는 추후 사정을 공지로 확실히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zakuti님 오늘도 크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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