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
“플란 학생은··· 일단 보류·”
과연 교수들은 내게 어떤 등급을 배정할 것인가· 당장은 알 수 없는 문제니 태연하게 자리로 돌아갔다·
“···보류? 왜 보류야?”
“교수님들끼리 의견이 갈린거지·”
“그럴 수가 있나? 지금까지 다 만장일치였는데·”
“뭘 고민하는거지? 거리만 보면 하위 등급 아닌가·”
학생들 틈새로 돌아오자 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빠짐없이 들린다· 노골적으로 쏟아지는 시선도 적지 않게 느껴졌다·
“스크롤 썼나보지·”
“스크롤? 부정행위는 바로 징계 아니야?”
“몰라· 우리 일은 아니니까 됐지 뭐·”
그 시선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결코 긍정적이지는 않다는 점이 특히 그러했다·
하지만 나는 결코 주눅들지는 않았다· 오해하는 이들의 시선을 받는 것도 나름 여흥이다·
“저기 플란· 무슨일이야? 뭔데?”
앉자마자 베키가 속삭였다· 그녀는 목을 길게 빼고서 내가 앉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글쎄·”
“스크롤··· 안 쓰지 않았어?”
“안 썼지·”
“응· 그럴 것 같았어·”
베키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왜인지 너라면··· 그런거 없이도 좋은 등급 받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나는 문득 베키의 안목은 어느정도인지 궁금해졌다· 굉장히 오랜만에 이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응? 뭘?”
“방금 선보인 보조 마법말이다·”
“어··· 되게 예쁘게 날아간다?”
그럼 그렇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나 어떻게보면 이 정도 감상도 훌륭하다· 지켜보던 대부분의 학생들이 내가 정화를 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 듯 했으니·
정확한 원리는 모르더라도 우선 관측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싹수다·
“진짜 너무 예뻤는데 멀리는 안 날아가서 너무 아쉬웠어· 헤일리 걔보다는 멀리갔어야 했는데···”
중얼거리던 베키가 갑자기 휙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저기 궤적 남기면서 날리는거 어떻게 하는거야? 나한테도 알려주면 안 돼?”
베키의 학구열은 높이 산다·
마법을 꼭 스스로 연구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조언을 구하고 가르침을 받는 일련의 과정 역시 정도(正道)에 가깝다·
다만 이 정화라는 개념을 어디부터 어디까지 설명해야할지 가 문제다· 테스트 도중이니 각을 잡고 설명하기에도 애매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가르쳐주지·”
“나중에? 언제?”
이후로는 귀찮아서 상대하지 않았다· 다행히 그때쯤 바이올렛이 테스트를 재개했다·
“다음 트릭시 폰 프리츠·”
다음 순서는 트릭시· 학생들에게는 아고라 보드의 출제자로 내게는 주정뱅이로 인식된 여학생이었다·
베키가 왜 호들갑을 떠는지 어느 정도 의문이 있었다만 백문이 불여일견· 드디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바이올렛의 개구리가 뱉은 단어는 ‘연성’·
“준비되면 시···”
바이올렛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트릭시는 마법을 사용했다·
트릭시가 팔짱을 낀채로 고개를 까딱하자 대지가 그녀의 마나와 감응한다·
그녀가 뇌리 속에 순식간에 새긴 술식과 정교한 마나의 배합과 대지의 흙이 어우러져 완벽하게 구동하는 연성·
콰드득 하는 소리와함께 흙이 뭉쳐져 어여쁜 조각상 하나를 연성해냈다·
자신을 외양을 그대로 본뜬 그 조각상은 본인의 존재를 스스로부터가 하나의 공예품으로 인정한다고 주장하는 듯 했다·
“와··· 진짜 말도 안 돼· 야 플란· 저런애한테 찍혔다고 생각해봐· 끔찍하지? 진짜 큰일날 뻔 했네·”
베키가 천만다행이라는 듯 내게 속삭였다·
‘주사만 잘 부리는건 아닌가·’
확실히 트릭시는 천부적이다·
마나는 날카로운 예기를 띠며 무엇보다도 회로에 마나를 배합하는 계산속도에 주목할만했다·
‘다만 방향을 잘 잡아야겠어·’
마나의 흐름은 무릇 제 주인을 따른다· 날카로운 예기는 그녀의 어마어마한 에고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겠지·
제어하지 못하는 순간 본인에게는 독이다· 유의해야 할 것이다·
“A등급·”
뒤늦게 바이올렛이 등급을 배정했다· 예상했다는 듯 트릭시는 이미 제자리로 돌아간 후였다·
“A등급·”
“C등급·”
“C등급·”
테스트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다음 루이스·”
그 이름이 불리자 상당수 여학생들의 눈동자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루이스 나는 헤일리와 함께 있던 남학생으로 기억하고있다·
나는 옆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베키가 손에 마나를 휘감은채로 이것저것 연구하고 있었다·
“···너는 뭘하나·”
“뭐라고? 나 뭐하고 있냐고? 못들었어·”
베키가 내 시선을 좇아 루이스를 한 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아 루이스~ 애들이 다 잘생겼다고 하는데 난 잘 모르겠더라· 뭐 마법까지 잘쓰니까 인기가 많은거겠지만·”
이어지는 루이스의 마법은 꽤 탁월했다·
“A등급·”
군더더기 없이 기본에 매우 충실해서 교재를 인간으로 형상화한다면 딱 루이스가 될 것 같았다·
바꿔말하자면 내게는 조금 밋밋했다· 그만의 고유한 색채가 없었으니· 어쨌든 타고난 원석임에는 틀림없다·
“루이스 헤일리 트릭시···”
베키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면서 A등급을 받은 학생들을 되짚기 시작했다· 이내 그녀의 얼굴이 새파래진다·
“상상만 해도 숨막히잖아· 나 가서 잘 할 수 있을까···”
내 쪽을 휙 돌아보고서 베키가 말을 잇는다·
“야 플란 너도 A등급 나오겠지?”
“모르지·”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단 말이야···! 너도 꼭 A등급 받아!”
그 순간 바이올렛이 손가락을 튕겼고 모든 새내기들의 눈앞에 원래의 강의실 풍경이 펼쳐졌다·
강단에 서있는 교수는 셋· 바이올렛이 입을 열었다·
“오늘 테스트는 이걸로 끝· 결과는 종이에 적어서 따로 안내할거에요·”
그 말에 낮은 등급을 받은 학생들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리고 플란 학생·”
“예·”
차분하게 대답했다· 교수들의 표정은 여전히 미묘했다·
“플란 학생만 남고 나머지는 다 돌아가세요·”
학생들이 수군대며 강의실을 빠져나간다· 모두들 나를 한 번씩은 흘끔거렸다·
베키는 마지막까지 걱정된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결국 교수의 시선을 이겨내지 못해서 강의실을 벗어났다·
마침내 강의실에 넷만 남는 순간이 오자 다시 바이올렛이 입을 열었다·
“플란 학생은 재시험이에요·”
군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렇게 결정되었다고하니 받아들일 뿐이다·
설령 마나의 잔량이 바닥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무슨 계열에 가장 자신있어요?”
“모두 동일한 수준으로 다룹니다·”
“모두 동일?”
바이올렛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었다· 그녀가 가소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시험때 뭐라고 이야기 했어요?”
“준비되면 바로 시작해라·”
“아뇨 얌전히 있으라고 했죠? 내가 분명히 얌전히 있으라고 했잖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 정도면 얌전하지 않았나· 그저 이 신체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최선을 선보였을 뿐이다·
바이올렛이 마나 결정 하나를 생성해서 내 앞으로 보내준다·
“아까처럼 해보세요·”
“아까처럼이라···”
바닥에 가까운 마나를 끌어올렸다·
안타깝게도 현재 이것을 정화할만한 마나가 신체에 남아있지 않다· 즉 애초에 아까처럼 하는 것은 불가하다·
손가락에 마나를 두르고서 가볍게 딱밤을 쳐서 저 멀리 밀어낸다· 아니 치워낸다· 이 결정이 내 근처에 있는 것이 역했다·
정순하게 정화되지 않는 마나결정은 그 존재 자체가 내게 있어 먼지나 티끌과 다름없는 불순물이기 때문이다·
시원시원하게 강의실 저편으로 뻗어나간 결정은 바이올렛이 아까 표지판을 꽂았던 거리와 얼추 비슷한 거리를 나아간 후에야 정지했다·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고서 의뭉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바이올렛· 그녀가 흐으음 소리를 내면서 입을 열었다·
“왜 아까처럼 안 해요?”
마나가 없으니까· 대신 나는 역으로 질문했다·
“A등급이겠죠?”
“뭐······?”
내 말을 들은 바이올렛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
“바이올렛 교수~ 플란 학생이 A등급 받은거· 아직도 기분 나빠요?”
신경질적인 표정을 짓고있는 바이올렛의 얼굴 앞에 누군가가 조심조심 찻잔을 내려둔다·
다름아닌 오드리 교수였다· 고급진 차향이 멋대로 코 끝을 간지럽힌다·
“어쩔 수 없잖아요· 이미 정해졌는데· 이거 마시고 기분 풀어요·”
바이올렛 레스카 오드리 세 교수는 새내기들의 등급 테스트를 마친 후 기분전환겸 메르헨 아카데미 내부의 교수 전용 카페를 방문했다·
사실 바이올렛의 기분을 전환시켜 주려고 했는데 당사자는 아직도 못마땅한 상태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바이올렛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 학생이 받은 등급이 문제가 아니라고요· 나랑 자꾸 신경전을 하려고 하잖아·”
“에이 그래봐야 학생인데 어떻게 교수 상대로 신경전을 할 생각을 하겠어요? 아무래도 바이올렛 교수가 조금 예민···”
“내가 예민하기는 뭘 예민해! 오드리 교수가 무른거죠! 가만히 좀 있어요!”
“아 네···”
오드리 교수가 어깨를 움츠리고는 차를 홀짝거렸다· 바이올렛의 날카로운 시선이 이번에는 레스카 교수를 향했다·
“쿠엘린 교수! 당신도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애초에 당신이 스크롤 얘기를 꺼내서 재시험 본거잖아!”
쿠엘린이라고 불린 남자 교수는 땀을 삐질 흘리며 바이올렛의 시선을 피했다·
“아니 그게··· 새내기가 그 정도의 정화를 하는게 말이 됩니까? 당연히 마법 스크롤을 사용해서 부정행위를 했다고 생각했죠·”
바이올렛의 톱날같은 시선은 여전히 쿠엘린에게 꽂혀있다· 쿠엘린이 흠흠 헛기침을 하면서 오드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저만 그렇게 생각한게 아닙니다? 오드리 교수도 스크롤 이야기에 동조했지 않습니까?”
그러자 오드리가 입에 갖다대려던 찻잔을 허겁지겁 바닥에 내려둔다·
“아 아니 당연하죠! F등급으로 입학한 학생이 정화 보조에 출력 보조까지 할 거라고 도대체 누가 생각해요?”
“예 제 말이 바로 그겁니다· 정화는 고학년은 되어야 배우는 개념이에요· 새내기가 사용하는데 어떻게 의심을 안 합니까?”
바이올렛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짚었다·
“됐으니까 둘 다 그만하세요· 지금 스크롤 따위가 문제는 아니에요· 애초에 스크롤을 썼다면 가까이서 본 내가 몰랐을 리가 없어·”
“저기 그럼 바이올렛 교수는 정확히 뭐 때문에 화난거예요···?”
그것도 모르냐는듯 바이올렛이 오드리 교수를 휙 째려보자 오드리 교수가 슬그머니 그 시선을 피했다·
“첫 테스트때 분명 출력값만 보조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시키지도 않은 정화 보조까지 했잖아· 그걸 다시 해보라니까 정화는 쏙 빼놓네? 이게 지금 뭐하자는거에요· 나랑 뭐 해보자는거 아니야!”
오드리가 난감한 표정으로 바이올렛을 쳐다본다·
“그치만···· 플란한테 A등급을 주신건 바이올렛 교수님이잖아요?”
“그럼 A등급 실력인데 A 안 줘요? 날 뭘로 보는거야·”
“아 네····”
나머지 두 교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찻잔을 홀짝이고 바이올렛 역시 목이 탄다는 듯 찻잔을 집어들었다·
‘도대체 뭐하는 놈이지?’
바이올렛은 의문에 빠져 골몰한다·
플란의 실력이 명실상부하게 A등급에 상응하기도 했지만 비단 그 이유만으로 A등급을 준 것은 아니었다·
세 교수의 이야기를 조합해보면 플란의 행적은 괴랄하기 짝이 없다·
F등급으로 메르헨 아카데미에 입학했으나 불과 며칠만에 출력 보조를 완벽히 수행할 요건을 갖췄다는 점·
그 점만으로도 다른 이들을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했으나 플란은 그 정도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심화 개념인 정화까지 선보였다· 그로 인해 두 교수로부터는 마법 스크롤 사용 의심까지 받았고·
바이올렛은 마음 속 한 구석에 접어두었던 의심이 다시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역시 내 투영마법에 간섭했던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바이올렛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터졌다·
만약 플란이 벌인 짓이 맞다면 그는 심지어 간섭 계열마저도 고루 다룰 수 있다는 뜻 아닌가·
‘······너는 내가 두고두고 지켜볼거야·’
어차피 A등급 신입생을 담당하는 교수는 바이올렛이다·
무엇을 숨겨두었는지 무엇을 목표로 하여 움직이는지는 몰라도 일거수일투족 꼼꼼히 감시하리라·
흥 바이올렛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찻잔을 들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