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0
‘플란의 기록지’가 배포된 지 일주일·
토벌제 대표들을 향한 인기가 한창 커지고 단체 취재에서 한 발언이 더더욱 조명받는 지금·
세상은 또 하나의 화제로 뜨겁게 달아오른다·
아케데미 내부와 마탑의 마법사들을 비롯한 외부 학계의 마법사들 그들의 반응을 기다리는 언론 관계자 그것을 지켜보는 기사들····
다양한 관심들이 한 곳으로 모이게 된 이유란 당연히 플란이 기록지에 담아둔 입체 마법 때문이었다·
자신의 마법으로 세상을 들썩이게 하는 것·
사실 어떤 마법사가 그것을 꿈꾸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이러한 시도는 전에도 이루어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그저 ‘시도’로만 남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마법 학회의 검증과 더불어 저명한 마법사들의 증언들이 속속들이 이어져야 하며 마지막으로 황실에서는 마법이 세상을 어지럽힐 여부가 없는지 위험성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시험은 둘째 황녀 오로라부터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게 되니 사실상 그것부터가 승인은 받은 것과도 다름이 없었다·
“네! 저는 현재 메르헨 아카데미에 도착해있습니다· 현장의 분위기는 아주 후끈한데요!”
덕분에 마법 학부는 또 한 번 발 디딜 틈 없는 성황을 맞이했다·
의문에 홀린 사람은 지금도 늘어가고 있었고 덕분에 총장 코네트는 실로 오랜만에 몸소 인터뷰에 응했다·
“마법 학부 총장님께 한 번 직접 묻겠습니다· 우선 해독에 성공하셨다는 건 진실인가요?”
기자의 물음에 코네트는 웃어버리고야 말았다·
해독·
대마법사의 경지를 앞둔 자신에게 있어서 해독을 해냈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전제다· 이런 질문을 들어본 적이 과연 있었던가·
플란이 그만큼 세상을 뒤바꾸어 놓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코네트는 그것이 못내 흐뭇했다·
“그럼요· 해독을 마쳤지요·”
“좀 어떤가요?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최대한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들인 노력을 절대 배신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재 난이도에 관한 말이 많습니다만····”
코네트의 역안이 한 차례 번뜩인다·
“난이도는 평이합니다· 다만 생소한 개념을 활용했기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그의 다각도적인 접근이 빛을 냈다고 총평하겠습니다·”
“그렇군요· 현재 기록지가 10장뿐이라서 애태우는 사람들이 굉장히 아주 매우 많아요· 더 제작해서 배포할 계획은 없는 건가요?”
“그건 이 모든 걸 구성한 플란이 마음먹기 나름이겠지요·”
◈
그러한 취재를 다크서클 가득한 얼굴로 지나치는 마법사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프리츠 가문의 장녀 트릭시 폰 프리츠였다·
그녀 역시 해독에 목숨을 건 인물 중 하나였다·
마탑의 자습 공간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도시락부터 꺼냈다· 식사를 걸러서 뇌가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는다면 곤란할 테니까·
[아가씨 파이팅! 식사는 꼭 챙겨 드세요!]
[프리츠 가문의 차기 가주~ 여신~ 공주님~]
뚜껑에는 하녀들의 응원 편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평소에는 귀찮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이런 걸 보면 또 감상이 묘하다·
그리고 답답했다·
보란 듯이 해독에 실패할까 봐·
빠르게 해독하는 만큼 프리츠 가문이 위상이 높아지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성공했을 때의 이야기다·
“으음····”
채소를 토끼처럼 오물거리다가 트릭시는 다시 도시락의 뚜껑을 덮었다· 애초에 식욕이 돋워지지도 않은 상태였다·
문득 주변을 빙 둘러보았다·
대표들을 위해 마탑에서 제공해준 숙소 형식의 자습 공간·
플란은 열 개의 두루마리 중 한 개를 대표들에게 과제라며 건넸고 덕분에 대표들은 이곳에 거의 일주일째 틀어박힌 신세가 되었다·
베키는 바닥에 드러누워서 쿨쿨 자고 있고 루이스 역시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지만 트릭시는 그래도 다시 한번 해독에 뛰어들었다·
1시간·
5시간·
10시간····
시간이 흐름도 잊을 만큼 정신을 집중했다·
해독이 채 끝나지 않았음에도 대단함을 느낀다·
변형이 일어날 때마다 새로운 지평선이 열릴 것이 암시되어있고 난이도는 어렵지 않지만 굉장히 독특하다 느껴지는 요소들이 숨어있다·
그 창의력에 저도 모르게 감탄하게 된다·
그러나·
트릭시가 이토록 집중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르침 씨?”
가르침 씨의 흔적이 너무나도 짙었기 때문이다·
물론 플란은 가르침 씨의 제자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 비슷한 색채가 있는 것은 당연하겠으나·
“이건 아예 똑같은데·”
아고라 보드의 문제는 가르침 씨가 냈었지· 그것을 아예 응용해낸 요소가 바로 앞에 있었다·
“플란이 가르침 씨를 뛰어넘었을 리는 없잖아·”
아귀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이상하다·
그 뒤로 또 5시간
10시간····
“이걸로 하나·”
마침내 첫 번째 변형에 도달했다·
트릭시의 푸른 마나 위로 색이 덧입혀지고 그 순수한 기류는 구체적인 형상을 이루며 허공 위로 떠 오른다·
아카데미의 기원· 허름하긴 해도 나름의 미학이 있는 근본이라 칭할 법한 과거의 형상·
트릭시는 그 모습에 잠시 넋을 잃었다· 고작 첫 번째 변형인데 벌써 이런 모습이라니·
고생했으니 잠시 휴식이 필요하다·
“후우우우····”
그녀는 손수건을 제 얼굴 위에 얹어놓고서 잠시 깊게 호흡했다· 얇은 천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그녀에게는 이게 산소호흡 장치였다·
차분함을 찾게 해주는 그녀만의 트리거·
그러다 문득 더 강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
“····”
얼굴을 덮은 손수건을 걷어냈다· 생각해보면 플란의 향수도 이런 향을 풍기지 않았나·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난 후 손수건을 베키의 코끝에 슬그머니 가져다 대보았다·
“으응····”
잠들어있던 베키의 표정이 한결 풀어진다·
“으움 플라안····”
“····”
베키의 잠꼬대를 들은 후·
트릭시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
무려 이틀이 더 지났다·
“흐음·”
둘째 황녀 오로라는 권좌에 앉은 채로 기록지를 뚫어져라 살피고 있다· 머릿속으로는 수없이 많은 필기를 휘갈기는 중이었다·
황녀님께서 직접 나서실 필요가 없다며 온갖 마법사들이 만류했지만 오로라는 기꺼이 자신의 힘으로 몰두했다·
오로라를 상대로 주눅 들지 않는 그 기개·
하늘 높은 줄 모르는 하루살이의 소행인가·
혹은 고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천체의 농담인가·
···오로지 그것을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오로라의 천부적인 재능은 끊임없이 타오르며 그녀를 정답으로 이끌었고·
마침내·
“세 번째 변형·”
성공이다·
그녀는 비로소 이 건방진 작자의 세 번째 변형을 육안으로 살필 수 있게 되었다·
“한 번 보겠느니라·”
오로라의 눈동자가 그믐달처럼 가늘어지고·
기록지 위로 마나를 있는 힘껏 불어넣는다·
쿠구구구구구─·
그 찰나에 황궁의 모습이 사라졌다·
“····”
익숙한 메르헨 아카데미의 정경이 그녀의 주변을 뒤덮었다· ‘입체 그림’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 ‘입체 공간’이라 칭해야 맞을 정도·
“이놈이 나를 상대로 장난을 쳤단 말이냐·”
그러나 심히 실망스러웠다·
메르헨 아카데미의 모습· 그게 끝·
두 번째 변형과 전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오로라가 그렇게 생각한 찰나의 순간·
“···!”
입체 공간이 순식간에 ‘발전’했다·
건물들이 보완되거나 새로 지어지며 전혀 다른 모습의 아카데미를 만들어내고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는 마탑은 도무지 멈출 줄을 모른다·
그리고 어둠이 찾아오자 형광으로 빛나는 총체·
이는 플란이 앞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아카데미의 정경· 마법에 열정을 불태우는 이들을 위해 만들어질 요람·
“뭐라····”
오로라의 눈동자가 보름달로 차오른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과 같았다· 유치하다 여겨왔었던 야광이 이 입체 공간에서는 시리도록 떨리는 예술로 변모하여 있었다·
“····”
오로라는 길게 눈을 감았다 떴다·
황궁보다도 아름답다는 감상을 감히 품었다·
눈을 감아도 떠도 그 풍경은 지워지지 않았다· 과연 출석을 대신할 만한 입체 마법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유시아·”
오로라는 셋째 황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최근 들어 접촉이 잦다는 유시아와 플란·
입체 마법에 응용된 묘리는 야광·
유시아가 어린 시절부터 집착했던 것도 야광·
플란을 향한 흥미가 커지면 커질수록 유시아를 거슬려 하는 마음이 비례하여 커졌다·
마음속에서 불타오르는 무언가·
그동안 권태로움으로 인해 잊고 있었던 진정한 경쟁심· 그리고 소유욕·
“반·”
그녀는 호위 기사의 이름을 불렀다·
“예· 황녀님·”
“마법 학부에 축제를 열어야겠다·”
“축제···· 말씀이십니까?”
“그래· 마탑 투자자의 모집을 돕는 것· 표면상으로는 그런 이유를 붙여두겠느니라·”
반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되묻는다·
“진정한 이유는 따로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오로라는 어느덧 권좌에서 일어나있었다·
그녀가 즐거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내가 한 번 그곳에 직접 방문해야겠느니라·”
◈
스칼렛은 여전히 별채에 있었다·
별채는 그녀를 가두지 않았으나 스스로의 의지로 떠나지 않았다·
아니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슬픔 단장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에·
이제 아무런 기억도 보이지 않는다·
검게 물든 환상을 보는 듯하지만 스칼렛은 이게 현실임을 알고 있었다· 그게 참담해서 아직도 주저앉아있는 채다·
마치 실어증이라도 앓는 것처럼·
“····”
문득 후회가 불꽃처럼 치밀었다·
자신의 삶에 선택지는 많았다·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었고 멈추어 설 수도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아닌 스스로가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도록 걸어왔다·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아무리 많다고 한들 이제 와서 바꿀 수 있는 선택지는 단 하나도 없었다·
업보·
이것이 업보라는 것인가·
저주받은 몸을 가진 주제에 추하게 꾸역꾸역 살아남은 업보 플란의 고유 능력을 넘겨받은 업보 은혜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업보····
“아···· 아아아아····”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악력 탓에 손톱이 볼 속을 파고드는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부들부들 떨고 있을 뿐·
스칼렛은 느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 처절하게 부서졌음을·
막을 수 없는 파괴력이었고 또한 수습할 수도 없었다· 그 거대한 흐름에 휩쓸리는 자신의 몸을 그저 놔둘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는 무엇을 해야····”
이마를 서늘한 바닥에 붙였다· 이젠 주저앉아있는 것조차도 힘든 일이었다·
봐버린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자신을 안심시키려던 플란의 미소 고유 능력을 흔쾌히 전승해주는 결단 이후로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걸어 나가는 마법의 길····
너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위했지만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를 원망했다·
이토록 하찮은 내가 감히 너의 약혼자였다·
새까만 세상이 자신을 집어삼키는 듯했다· 그저 엎드린 채 스칼렛은 온몸으로 울었다·
그렇게 괴로워하며 몸을 떨던 그때·
“스칼렛·”
리브라의 편린이 그녀를 나지막이 불렀다·
스칼렛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시체처럼 엎드렸다· 애초에 리브라의 말을 듣지도 못한 듯 보였다·
결국 리브라가 스칼렛의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상체를 일으켰다· 그녀가 벽에 기대앉도록 만든 뒤 시선을 마주했다·
“이제는 결정을 내릴 때가 되었소이다·”
텅 비어버린 스칼렛의 눈동자가 리브라의 편린을 마주 보았다· 그건 죽은 이의 눈동자였다·
“우선 그대가 다시 잔불의 기사로 살아가는 방법이 있소이다·”
리브라가 턱짓하자 별채의 문이 열린다·
“이대로 별채를 벗어나면 지금까지 열람했던 모든 기억을 잊게 될 거요· 그대는 다시 잔불의 기사로서 태연하게 살아갈 수 있소이다·”
편린은 그렇게 말하며 검 한 자루를 뽑았다· 아주 길고 날카로운 검이었다·
“그러나·”
콰득─!
그것이 지면에 수직으로 꽂힌다·
“이것의 검날이 심장을 관통하면 지금까지 관찰한 기억을 지닌 채로 별채를 벗어날 수 있소· 이 검의 이름은 「납득」이외다·”
하지만 편린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나 더·”
탱그랑─!
바닥에 검 하나가 내던져진다·
지면에 꽂을 수 없어서였다· 그 정도로 검날이 무뎌진 검이라고 칭하기에도 애매한 쇳덩어리였다·
“더 많은 진실을 원하면 이런 선택지도 있소·”
“더 많은 진실···?”
“「이해」라는 검이오· 원하는 인과를 얻게 될 테지만 발동 조건이 아주 까다롭소·”
그렇게 이야기한 후 편린은 웃었다·
“···아니 고통스럽다고 말해야 옳겠구료·”
스칼렛은 텅 비어버린 눈으로 편린을 가만히 응시했다· 말을 듣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건 이미 하나의 시체였다·
“이 검으로 배를 갈라야 한다고 하더이다· 실제로 죽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죽는 게 나을 정도로 고통스러울 것이오· 본체조차도 이 검을 휘두른 적은 아직 없소·”
리브라의 편린이 제 스스로 팔짱을 꼈다·
“그대는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소이다· 이 점을 명심하여 부디 최선의 판단을 내리기를·”
그 말을 끝으로 편린은 먼지처럼 흩어졌다·
남은 것은 검 두 자루· 그리고 스칼렛·
한 시간·
두 시간·
“····”
스칼렛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호흡하고 있는지도 불명이다·
그리고 마침내·
세 시간·
“····”
스칼렛은 조용히 검을 쥐었다·
쥐어진 검의 이름은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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