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2
청소부에게로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
“저기요·”
나를 먼저 붙잡는 이가 있었다· 새하얀 똑단발에 머리 위로는 선글라스까지 얹은 인물·
마셀린 상회의 상단주 마셀린· 정확히는 마셀린으로 위장해있는 혈귀 마이에브였다·
“마침 부르려던 참인데 잘 왔다·”
“···칭찬인가요? 아무튼 여기있습니다·”
마이에브가 묵직한 서류 가방을 내밀었다·
내용물이 무엇인지는 굳이 안 봐도 뻔했다· 박제해두었던 소녀 혈귀의 흑마법 술식 연구 그리고 투자자들 관리 현황이 담겨있을 터·
“끝마쳤나·”
“그럼 제가 끝나지도 않은 걸 들고왔을까요·”
허공에서 우리의 시선이 맞닿는다·
마이에브는 헛숨을 삼키더니 헛기침을 무려 세 번이나 했다·
“아무 아무튼 분부대로 일 마쳤습니다·”
그렇게 마이에브로부터 가방을 건네받는 찰나 이번에는 청소부가 말을 붙였다·
“혹시···· 그때 그 학생인가?”
마이에브의 얼굴을 넋놓고 구경하던 그의 시선이 현재는 오직 나에게로만 향해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의심은 이내 확신으로 변모했는지 청소부는 아예 검지손가락까지 펼쳐서 나를 가리킨다·
“맞네· 그때 성적이 낮아서 화장실 청소를 했던 청년이구만? 진짜로 그 청년이야!”
“용케도 알아보는군·”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옆에서 듣던 마이에브는 황당하다는 듯 눈을 끔뻑거린다·
“아이고 몰라뵐 뻔 했습니다· 신문을 읽으면서도 설마설마 했었는데···· 그새 인물이 말도 안 되게 좋아지셨네·”
그가 나를 향해 내뱉는 말들이 어느샌가 존댓말이 되어있었다· 이렇게 사소한 것들도 또한 증명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터·
“그때는 제가 워낙 경황이 없었고 원체 눈치도 없고 그날따라 기분도 좋지 못해서─·”
그는 그 뒤로도 나를 향한 칭찬을 한참이나 늘어놓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때 머리에 손을 댄 것은 너무나도 죄송합니다· 제가 워낙 배운 것이 없어서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
옆에있던 마이에브의 눈이 금방이라도 얼굴 밖으로 튀어나갈 듯 했다·
“괘념치마라·”
나는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애당초 청소부와 있었던 일에 관심이 있어서 다거선 것이 아니었다· 그의 양 손에 가득 들려있는 청소 도구에 관심이 있었을 뿐·
“한데 그것좀 빌려도 되겠나·”
“어떤 거· 아 이거 말씀이십니까?”
청소부가 손에 들린 양동이와 대걸레를 슬쩍 들어올려보인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귀하신 분께서 이 더러운 걸····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새 걸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 없다·”
나는 그것들을 염동으로 받아들었다· 비능력자의 눈으로는「염동」자체가 신기한 것인지 청소부는 감탄을 토하더니 인사를 몇 번이나 하고서 자리를 떠났다·
이제 남은 것은 나와 마이에브 뿐이다·
먼저 침묵을 깬 것도 마이에브였다·
“아니 저거 정말인가요· 머리를 맞았다고?”
“그랬었지·”
“충격에 말이 안 나오네·”
마이에브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손바닥으로 자신의 볼을 몇 번이나 두드린다·
“성적이 낮아서 화장실 청소하고 다니셨네요· 청소부한테는 머리도 막 얻어맞으시고· 우와·”
나는 그녀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네줄 뿐이었다·
“당분간 프리츠의 저택에서 머물 것이다· 여기 적혀있는 내용들은 반드시 끝내두도록·”
“맡겨주세요· 주인이 화장실 청소하듯이 아주 깔끔하게 해놓을게요·”
풉 푸합 자꾸만 웃음을 터뜨리는 마이에브는 어쩐지 기쁜듯한 얼굴이었다· 심지어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나는 그 표정을 여유로이 관찰하다가·
염동으로 들고있었던 양동이 대걸레 세정제 등을 마이에브의 품에 안겨주었다·
“네가 해둬라·”
“····”
마이에브가 눈을 세 번 깜빡였다·
그리고 다음순간 고개가 천천히 기울어진다·
“···?”
그녀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시 다문다·
자신의 왼손에 들린 대걸레 오른손에 들린 양동이 그리고 내 얼굴을 번갈아가면서 한 번씩 바라볼 뿐이다·
“제가 좀 버릇이 없었죠·”
“그래·”
“반성할게요· 앞으로는 안 그럴게요·”
“그럼 반성하는 의미에서 하도록·”
결국 마이에브가 쾅 소리가 나게 양동이 안으로 대걸레를 처박았다·
“제가 할게요· 제가 해· 제가 한다고요····”
그녀는 어깨와 고개를 축 늘어뜨린채로 돌아섰다· 처량함을 연기하는 것이 수준급이다·
나는 그녀를 한 번 불러세웠다·
“마이에브·”
“···예?”
마이에브가 곧바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 얼굴에는 기대감이 만연해있었다·
“청소할 때 마법은 허용하지 않는다·”
“하아·”
◈
다음날 아침·
마법 학부의 대표들은 트릭시가 나고 자란 곳· 프리츠 영지의 저택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프리츠 가문의 영지는 좋은 땅이었다·
우선 토지가 비옥했고 길 또한 잘 조성되어 있어 가는 길이 전혀 험하지 않았다·
“내가 너희를 직접 데려오게 될 줄이야····”
트릭시가 꿍얼거렸다·
방문을 위한 타협은 꽤 쉽게 보았다· 고작 ‘가르침씨의 벨트’를 주는 대가로 저택의 방문을 허락받았으니 말이다·
“몇 가지만 다시 강조할게· 잘 들어·”
트릭시는 플란을 향해 또 한 번 입을 연다·
“우선 첫 째 방문을 허락한 이유는 아빠가 이 안건을 절대로 허용할 리가 없기 때문이야·”
“그럼 벨트는 없어도 되겠나·”
“절대 안 돼·”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두 번째 아빠가 안 된다고 말하면 너도 깔끔하게 포기해· 번복은 절대로 안 돼·”
“그렇게 하지·”
먼 길을 오면서 트릭시는 이 이야기만 자그마치 열 번 이상을 강조하는 중이었다· 바꾸어말해 플란은 무려 열 번 이상을 대답해주었다·
바로 그때였다·
“어? 저거 아니야? 저거!”
베키가 검지 끝으로 저택 하나를 가리켰다·
일행의 시야에 커다란 저택 하나가 들어온다·
모두들 그 건물을 살폈다· 시원시원한 크기와 때묻지 않은 백색 흠잡을 곳 없는 외면은 그 자체로 프리츠 가문의 위상을 알려주고 있었다·
“와···· 저렇게 넓은 곳에서 어떻게 살지?”
트릭시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한편 베키의 눈동자는 계속해서 반짝인다· 이미 숙소가 아니라 예술품을 감상하는 눈빛이었다·
“안쪽은 더 궁금하다· 이대로 들어가면 돼?”
베키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걸어가자 트릭시는 한숨을 푹 내쉬며 베키를 불러세웠다·
“대체 어딜 가는 거야·”
“아 저택 주인보다 앞서서 걷는 건 좀 그래?”
“그게 아니라 방향이 틀렸잖아·”
“방향?”
트릭시가 턱으로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일행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것을 뒤쫓는다·
“뭐가 아무것도 없는데?”
베키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트릭시의 검지 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거대한 벽이 있을 뿐이다· 벽 벽 벽 뿐인데···· 정말 한참을 보고난 뒤에야 그게 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프리츠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 재스민이 아주 커다랗게 새겨진 문이었다·
“····”
베키가 손으로 제 눈가를 비볐다·
시야에 전체를 담을 수도 없을 만큼 높게 솟아오른 담과 그 위로 더더욱 높게 솟아오른 건축물· 저택이라기보단 성에 가까운 무언가·
그 장엄한 광경과 트릭시를 몇 번이고 번갈아보던 베키가 겨우겨우 입술을 떼었다·
“여기야?”
“응·”
“여기라고?”
“그래·”
베키는 말을 잃고서 처음 발견했던 저택을 손 끝으로 겨우겨우 가리킨다· 처음 봤을 땐 분명 거대했던 것 같은데 지금 보니 그냥 아담하다·
“그럼 저건···?”
“하녀들이 지내는 곳·”
“····”
늘 차분하던 루이스조차도 이번에는 당황한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멍해진 동공들이 트릭시에게로 향한다· 그 시선을 한 몸에 받는 트릭시는 코웃음을 쳤다·
베키는 입이 벌어져서 턱이 빠질 듯 했다·
“하녀가 되면 저기서 살 수 있는 거야···?”
“넌 하녀로도 안 받아·”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본 거거든? 나도 네 밑으로 들어가서 일 할 생각은 없어·”
이러한 소란속에서도 오로지 한 명·
플란만이 소리 없이 과묵함을 지켰다· 그는 트릭시를 바라보며 그저 한 가지를 묻는다·
“이 저택이 확실한가·”
“그렇다니까·”
“그럼 됐다·”
플란은 물끄러미 정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마침 한 명 나오는군·”
플란이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거대한 문이 열리더니 인상이 매서운 여자가 한 명 걸어나왔다·
“이곳은 프리츠의 저택입니다· 앞에서 감히 무슨 소란입니까·”
입고있는 하녀복과 가슴팍의 황금핀은 유디트의 것과도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플란은 그녀가 하녀장이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프리츠 저택의 하녀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마법 학부의 일행들을 쏘아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트릭시를 발견한 순간·
“어···· 어? 곰돌이 공주님!”
하녀장이 굉장히 깍듯하게 허리를 접는다·
“공주님! 세상에 잠깐 안 본 사이에 또 아름다워지셨네요· 정말이지 매번 놀란다니까요!”
그 광경을 지켜보던 베키가 플란에게 속삭였다·
“공주···· 지금 ‘곰돌이 공주’라고 부른 거야?”
“그런 것 같군·”
하녀장이 조심스레 트릭시의 손등을 살폈다·
“또 너무 무리하신 건 아니죠? 고운 피부가 화염때문에 상했을까봐 늘 노심초사해요·”
베키가 다시 속삭였다·
“플란 너는 어떻게 생각해· 트릭시 무리했어?”
“전혀·”
“···다 들린다고· 너희·”
트릭시가 몸을 떨면서 나머지 일행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하녀장은 주변의 반응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내 다른 하녀들도 우수수 뛰어나와서는 트릭시를 동그랗게 둘러싼다·
“곰돌이 공주님이다! 여전히 귀여우셔!”
“세상에 공주님!”
박수까지 치면서 환호하는 게 정말 공주라도 대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곰돌이 공주님! 무슨 일로 돌아오셨어요!”
“진정· 하녀장 제발 진정 좀 해····”
트릭시는 얼굴이 완전히 붉어진채로 주변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하녀들의 ‘곰돌이 공주’ 사랑은 그 뒤로도 한참이나 계속되었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하녀장이 나머지 일행에게 관심을 두었다·
“공주님 근데 이 분들은···?”
“마법 학부 대표들· 볼 일이 있다고 해서·”
“아!”
하녀장이 그제서야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정말 귀하신 분들께서 방문하셨군요!”
하녀장이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는다·
“차가운 공주님에게 친구가 안 생기실까봐 걱정이 아주 컸었는데···· 너무 감격스럽네요·”
“···쓸데없는 말 하지 말라니까·”
“알겠어요 공주님· 그래서 저택에 볼 일이라는 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모두의 시선이 플란에게로 향했다·
그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
“이 저택을 없애버릴까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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