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5
삼일 후·
메르헨 아카데미의 동아리실·
유시아는 이곳에 근거지를 마련했다· 겉보기에는 ‘야광 퍼즐을 사랑하는 모임’이나 그 실체는 무려 비밀조직 ‘광야’의 집무실이다·
물론 고작 1학년이 받아낸 공간이라 시설이 썩 훌륭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뭐 어떤가 그녀는 근거지를 마련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아 그건 제가 직접 정리하겠습니다·”
“어떤 거 말씀하십니까?”
“거기 있는 야광 물품들 전부입니다·”
“예·”
정보들이 담긴 서류 등은 조직원들의 힘을 빌려 정리했지만 야광 퍼즐과 야광 물품 등은 기어코 본인이 직접 정리하는 유시아였다·
“장식장···· 장식장은 어디에 있습니까?”
“조금 늦어진 모양입니다만 확인해보니 곧 도착한다고 합니다·”
부드러운 솜뭉치를 사람으로 빚어낸 듯한 소녀 유시아· 그녀의 얼굴이 웬일로 굳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니 최우선으로 하라고 제가 몇 번이나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죄송합니다·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유시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웬만한 실수는 포용해줄 수 있었지만 야광 인형을 위한 장식장이 늦는 것은 예외였다· 이 근거지에는 그게 꼭 필요했으니까·
유시아는 괜히 발끝으로 바닥을 두드렸다· 새하얀 신발 끝에 먼지가 묻는 것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유시아님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진열장이 도착했다·
피라미드 형태의 진열장 꼭대기에는 플란을 본뜬 ‘야광 인형’이 위치하게 되었고 유시아는 그제야 방긋 웃었다·
“후흐흐····”
한 손으로 자신의 턱을 붙잡은 후 소녀는 마음에 쏙 드는 광경을 한동안 감상했다·
비밀 조직을 운영해나가는 것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이걸 보면 심신이 조금은 안정되리라·
좁은 근거지 내부에서는 유시아 특유의 깔끔한 코튼 향이 가득 채워진다·
바로 그때였다·
“유시아님!”
“···!”
조직원 한 명이 문을 벌컥 열고서 들어왔다·
유시아는 재빠르게 자리에 앉아 야광 퍼즐을 맞추는 척을 했다· 그리고 누가 보아도 어색한 얼굴로 조직원과 눈을 딱 마주쳤다·
“····”
일 초·
이 초·
삼 초·
“흠흠·”
침묵을 깬 것은 유시아의 헛기침이었다· 소녀는 될 수 있는 대로 근엄한 목소리를 냈다·
“무엇입니까·”
“예 예· 한 번 확인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조직원도 어쩐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에 괜히 얼굴이 화끈거리고 붉어졌지만 유시아는 최대한 평정심을 지키려 애썼다·
“새로 입수한 정보입니까?”
“황실로부터 내려온 공문입니다·”
“공문?”
“예· 둘째 황녀님께서 직접 내리신 겁니다·”
유시아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인 후 조직원을 동아리실 밖으로 몰렸다·
“흐음····”
여전히 얼굴이 뜨겁다· 다음부터는 주의해야지· 유시아는 그러한 생각으로 자신의 볼을 두어번 두드렸다·
다음에는 냉정한 눈으로 정보를 살폈다· 둘째 황녀 오로라가 내린 공문이니 그 내용을 꼼꼼히 살피어야만 할 것이다·
[여명 나비 수집]
▶그대들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얼마 뒤 여명 나비가 출현하는 것을 맞이하여 이에 황실에서는····
(후략)
유시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공문이다 보니 사족이 매우 붙어있었지만 주요한 내용만을 추려보자면 대충 다음과 같았다·
우선 방식 자체는 단순하다·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레헬른 언덕에서 ‘여명 나비’를 채집하기 위해 경쟁한다는 것이 끝이니까·
“공개 모집?”
그러나 눈에 띄는 것은 ‘공개모집’이었다·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인물이라면 누구나 조를 짜서 지원할 수 있고 플란의 조를 상대로 승리하기만 한다면 황실 차원에서 어마어마한 지원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덧붙여져 있었다·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우선 기뻐할 구석은 분명히 있었다·
공개모집을 통해 적수를 구해야만 할 정도로 플란의 입지가 상승했다는 소리일 터·
하지만·
“재학생이라면 누구나라니····”
고학년도 자유로이 참여할 수 있다는 소리가 되는데 만일 플란을 꺾는 조가 있다면 마탑의 투자 안건에도 크나큰 지장이 생겨날 터·
“집중해서 알아봐야겠습니다·”
참여자들을 꼼꼼히 파악해둔다면 플란 경에게도 꽤 도움이 되겠지· 그러한 생각을 하던 와중·
“유시아님!”
벌컥 하는 소리와 함께 또 한 번 문이 열렸다·
“···!”
이번에도 야광 퍼즐에 습관적으로 손이 갔지만 유시아는 가까스로 참아냈다·
자연스러웠다· 아마 그럴 거다·
소녀는 자신의 성장에 내심 뿌듯해하며 눈앞에 선 조직원의 얼굴을 바라본다·
“무슨 일입니까·”
“이번에는 플란님에 관한 정보입니다·”
“아아·”
유시아는 미소를 머금고서 조막만 한 손을 양옆으로 저었다·
“괜찮습니다· 더 이상 플란 경의 뒷조사는 하지 않기로 약속했으니까요· 여러분들께서도 이제 플란 경에 관한 조사는 하지 말아주십시오·”
“음 조금 다릅니다·”
조직원이 오묘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프리츠 가문을 조사하던 중 우연히 플란님도 엮인 정보를 발견하게 되어 그렇습니다·”
“흠·”
이러면 확실히 플란을 뒷조사한 것은 아니다·
“그럼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유시아는 받아서 든 종이를 조심스레 살폈다· 조직원의 말대로 프리츠 가문에 관한 이모저모가 적혀있어질 뿐이었다·
가주 아이작의 얼마 남지 않은 수명 그 시점을 노리고 지분을 차지하려는 친인척들 해독이 되지 않은 묘비····
그렇게 프리츠에 관한 정보만을 읽어내던 중·
“음?”
유시아의 시선이 어느 한 줄에서 턱 막혔다·
“···?”
혼인·
트릭시가 혼인한다는 사실 자체로도 놀라운 것이나 문제는 옆에 나란히 적혀있는 배우자의 이름이었다·
“어 어···?”
처음에는 손이 떨렸다· 소녀는 거대한 당혹감을 느끼며 종이를 반복해서 살폈다·
플란 유디트·
분명히 그리 적혀있었고 유시아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하고 또 익숙한 이름이었다·
“이럴···· 이럴 리가····”
심장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또한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기에 유시아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이름을 다시 살폈다·
“····”
나중에는 무언가를 중얼거릴 수도 없었다·
이유가 궁금했다·
원래 트릭시를 향해서 그런 감정을 품고 계셨나? 아니면 프리츠 가문의 무언가가 필요하셨던 걸까? 돈이라면 자신에게도 있었다·
아니 과정이 어떠했든 간에 상관없다· 결과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고 유시아는 어느샌가 손톱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종이 위에 적힌 플란의 이름을 문질렀다·
“플란 경····”
종이가 닳고 잉크가 번지고 이내 ‘플란 유디트’라는 글자의 형체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소녀는 계속해서 사내의 이름을 문질렀다·
“····”
싸늘한 정적만이 남은 동아리실·
엄지 손톱이 완전히 다 상했을 때쯤 유시아는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
같은 시각 프리츠의 정원·
“아아아악····”
정리를 시작한 지 일주일하고도 3일이나 더 지난 지금· 베키는 지면이 흙바닥임에도 불구하고 발라당 드러누워 버렸다·
“힘들어 나 너무 힘들다· 이러다 죽겠어·”
힘들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지 베키는 흙바닥을 푹신한 침대처럼 만끽하고 있었다·
나는 엉망진창이 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지난 일주일간의 기억을 복기했다·
처음에는 쉬웠다·
트릭시를 제외하고서 나 베키 루이스가 프리츠 정원의 정리에 착수했다·
조그만 책봉오리들의 난이도는 내가 그간 과제로 내주었던 것들과 별로 다를 바 없었기에 베키는 제초 작업을 하듯 빠르게 정리에 임했다·
계속 그럴 줄만 알았겠지·
“한 문장이 5개 언어로 쓰여 있는 건···· 바꾸어 말해 5개 언어를 다 알아야만 한다는 거잖아·”
베키가 죽어가는 소리를 냈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베키와 키가 비슷한 식물들의 끝에 맺힌 책봉오리는 현재 베키의 실력으로는 손댈 수조차 없는 난이도다·
“급하게 할 것 없다· 최선만 다하도록·”
그러나 나는 정리를 훈련 삼아 루이스와 베키가 이러한 난이도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성장시킬 계획이다·
‘여명 나비·’
둘째 황녀 오로라와의 내기 일정이 지금 이 순간에도 가까워지고 있기에 원석들을 조금이라도 더 다듬어두어야 할 필요성도 당연히 있는 것이다·
“플란 진짜로 조금만 도와주면 안 돼?”
“안 된다· 참고서를 골라주지 않았나·”
“참고서부터가 이해가 안 되는데····”
하다 보면 될 것이기에 베키의 중얼거림에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그렇게 한동안 흙바닥에 누워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해석을 이어 나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
나도 모르게 순간 미간을 좁혔다·
“이건 설마····”
“응? 플란? 뭐라고 했어?”
나는 서둘러 살피던 책봉오리를 덮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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