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0
트릭시는 계속해서 달음박질쳤다·
프리츠 가문의 차기 가주 푸른 화염의 소유자 마법 학부의 1학년 사이에서 천재로 통했던 소녀·
이러한 자신은 현재 체면따위를 전부 내려놓고서 그저 있는 힘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
숨이 차올라야 하는데 호흡이 여유롭다· 팔과 다리가 후들거려야 할 텐데 오히려 몸은 너무나도 가볍다·
전력을 다해 뛰고있는데도 힘이 소모되지 않는다· 트릭시의 심정따위는 상관도 없다는 듯 푸른 영혼을 흡수한 자신의 몸 상태는 호전되기만 했다·
‘순진했어· 너무·’
영생(永生)· 노화를 겪지 않는 궁극의 경지·
생각해보면 그러한 경지가 실제로 존재할 리 없다·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전제조건이 이렇게나 쉬울 리 없었다· 또 정보가 만연하게 퍼져있을 리 없었다·
그런게 가능했더라면 푸른 화염의 창시자인 어머니는 왜 굳이 생을 마감했단 말인가· 이름 높은 선조들은 왜 한낱 활자와 별자리로 남게 되었는가·
···이유는 단순하다· 영생은 없으니까·
‘아빠·’
어렸을때부터 늘 엄격하고 혹독했다·
그러나 아이작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당연히 그럴 줄로만 알았다·
아버지가 진정으로 자신의 영생을 추구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진실만을 내뱉은 줄 알았다· 자신 또한 부모를 위한 일이라 여겼기에 의심을 별로 하지 않았다·
자신은 성장하고 아버지는 건강해지고 에이프릴을 비롯한 친인척들은 다시 머리를 숙일테고···· 그 모든 것들을 바랐다· 그래서 한 번에 움켜쥐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만하기 짝이 없는 욕심이었을까·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쉽게 얻으려 한 욕심이었을까·
혹은 순진무구한 자신을 탓해야할까· 무엇을 패착이라 여겨야하고 무엇을 탓해야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뛰다보니 어느덧 저택이었다·
평소라면 활기가 가득 넘쳤을 저택이 오늘따라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아 아가씨·”
눈을 마주친 하녀 한 명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었다· 퉁퉁 부어있는 얼굴을 보자마자 마음 속에서 불안감이 치솟았다·
“아빠·”
“네···?”
“아빠는 어디에 있어·”
질문을 했지만 그게 돌아오기까지 굳이 기다리지도 않았다· 침실에 있을 것이 뻔하기에 트릭시는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
넓은 보폭의 발걸음이 자신의 몸을 아이작의 침실로 이끈다· 이번에는 자신을 막아서는 이도 없었고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 이도 없었다·
“결국····”
자신 때문이었단 말인가·
푸른 영혼의 정체는 여전히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자신의 몸 속에서 매우 유리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 쯤은 매초마다 실감할 수 있었다·
그의 목표는 자신의 영생이 아닌 트릭시의 성장·
설마 그러했단 말인가·
“무언가를 지피려면 자신부터 태워라····”
나지막이 프리츠의 가훈을 읊조렸다· 평소에는 별 생각도 없이 사명감으로 읊조렸던 것이나 내용의 한 글자 한 글자가 지금은 두려운 의미로 다가온다·
남들이 보기에는 좋은 마무리일지도 모른다·
프리츠 가문을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아이작이었으니 그에게 있어 딸의 성장을 남겨두고 가는 것은 흐뭇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 돼·”
그것을 딸인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묻고 싶은 게 많고 들을 것도 남아있었다· 아직 이별을 준비하기 위한 어떠한 시간도 공유하지 못했다·
그렇게 마침내 도착한 침실 앞·
소녀는 문고리 위로 조심스레 손을 얹었다·
고작 문고리에 불과하지만 그게 종교적인 무언가라도 되는 듯 소녀는 눈을 감고서 낮은 숨을 한 차례 토해냈다·
이내 무언의 기도를 마친 다음 눈을 가늘게 떴다·
“···?”
아니 가늘고 천천히 뜨려했지만 부릅떠졌다· 당연히 잠겨있을 줄 알았던 문고리가 맥없이 돌아간 것이다·
“뭐야····”
트릭시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불길함은 현실이 되어 드러났다·
“흑흑흑···!”
“아흑! 흐윽····”
트릭시는 멍하니 앞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하녀들이 하나같이 엎드려서 오열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상황이 이해가 되어서 시선을 도저히 침대쪽으로 옮길 수가 없었다·
“아가씨····”
트릭시와 시선을 마주한 하녀장의 얼굴도 이미 퉁퉁 부어있었다· 그녀가 눈물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가씨 가주님께서····”
트릭시는 고개를 저었다·
하고싶은 말이 없는 것인지 너무 많아서 나오지 않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지금의 트릭시에게는 그 다음 말을 들을 용기가 없었다·
소녀의 시선이 마침내 침상으로 향했다·
“····”
아이작 폰 프리츠·
그가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그는 호흡하지도 않았고 눈꺼풀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머릿속에 있던 모든 것들이 일순간 새하얗게 덮어져버렸다· 트릭시는 무언가에 홀린듯이 침상으로 다가갔다· 무릎을 꿇고서 가주의 상태를 살핀다·
“아빠·”
대답이 없다· 이미 살아있는 자의 모습은 아니었다·
트릭시의 얼굴에서 늘 보석처럼 반짝였던 눈동자가 혼탁해졌다· 트릭시는 조용히 누워있는 아빠의 손을 잡아보았다·
“···!”
그리고 피부가 닿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거두었다· 너무나도 딱딱하고 차가워 이질적이었다·
시야가 아득해졌다·
세상이 분리되어 오로지 자신만이 외딴 곳으로 떨어져나가는 듯 했다· 하녀들이 흐느끼는 소리도 점점 들리지 않게 되었다·
“아빠·”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아빠의 손을 잡았다·
슬픔보다는 충격이 더 큰 것인지 눈물은 나지 않았다· 소녀는 다만 손아귀에 힘을 줄 뿐이었다·
누군가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죽음을 불사한다는 것은 어떤 심정이어야만 가능할까· 어떠한 감각일까·
소녀는 여전히 그것을 모른다·
“나를 나를 위해서····”
그의 가슴 위로 조용히 얼굴을 파묻었다· 메마른 나무토막처럼 변해버린 가주의 육신 위로 물기가 어렸다·
하고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정작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무게를 담은 두 글자·
“아빠····”
여전히 그의 심장이 뛰지 않는 채였다·
◈
프리츠 영지의 대련장·
마침내 검증의 순간이 다가왔다·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을 억누르고 정리되지 않는 생각을 강제로라도 정리해야 할 순간이 온 것이다·
“····”
트릭시는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부러·’
단 둘이서도 밟을 수 있는 절차가 검증이다· 그러나 에이프릴은 굳이 온갖 친인척들을 끌어모아서 왔다·
그 결과 현재 자신을 향해서는 수도 없이 많은 시선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빛에 담겨있는 것은 온정이나 연민이 결코 아니었다·
그저 차갑고 계산적인 눈동자· 아버지의 죽음을 단순히 기회로 받아들이는 쓰레기· 그 격랑과도 같은 어지러움 속에 자신은 홀로 내던져져 있었다·
아버지도 없이· 어머니도 없이· 스스로 짊어진 채·
“트릭시·”
그때 플란이 자신을 불렀다·
“할 수 있겠나·”
“후우·”
잠깐의 정적이 있었지만 이내 트릭시는 길게 호흡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혼자는 아닐지도 모른다· 마법 학부의 대표들이 자신을 응원해주고 있었다·
“가주이기 이전에 나도 마법사야·”
마법사·
이 순간 스스로의 각오를 가장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였다· 그 뜻이 닿은 것인지 플란을 비롯한 대표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트릭시는 대련장의 중심부를 향해 걷기 시작했고 그러한 모습을 바라본 에이프릴이 미간을 좁혔다·
“뭐야 트릭시· 처음부터 네가 직접 하게?”
“입 닥쳐·”
“뭐···?”
트릭시는 에이프릴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입 닥치라고 했어·”
에이프릴이 노골적으로 표정을 구겼다·
“이 년이 갑자기 정신이 나갔····”
욕설을 퍼부으려던 에이프릴이 멈칫했다·
‘뭐야 왜 이래·’
조금은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트릭시의 눈동자에서 흘러나오는 기운· 여태까지 단 한번도 볼 수 없었던 만만한 모습과는 거리가 먼 귀기에 가까운 무언가를 목도하자 자신도 모르게 입술이 얼어붙은 것이다·
‘뭐 이렇게 나온다 해도 상관없지·’
에이프릴은 트릭시에게 혜택을 제공했었다· 그 중 핵심은 ‘여러명을 상대하려면 지치니까 마법 학부의 대표를 대신 내보내도 좋다·’는 점이었다·
선심을 쓰듯 말했지만 진정한 속내는 물론 달랐다·
마법 학부의 명성이 드높으니 겸사겸사 겨뤄보자는 것이 에이프릴의 진정한 속내였다·
만약 꺾어둔다면 그 인기를 자신이 흡수할 수 있을테고 인상만 심어주어도 합류할 수 있으니 어느 쪽으로도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그러니 대화는 필요하지 않다·
허례허식도 필요하지 않다·
말도 안 되는 망신을 주며 트릭시를 잘근잘근 밟아놓으면 남편인 플란도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일 터·
아 물론 한 가지만큼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태도가 괘씸해서 가중 처벌이야· 트릭시·’
원래 잘근잘근 밟기만 할 생각이었다면 지금은 마음이 뒤바뀌어서 아예 만신창이를 만들어둘 생각이다·
에이프릴이 자신의 곁에 선 사내에게 턱짓했다·
“재뉴어리· 네가 먼저 나가봐·”
재뉴어리는 곧바로 대련장의 중심부를 향해 떠났다·
곧 중심부에서 두 명이 대치하게 되었고 트릭시는 손에 새하얀 면장갑을 착용했다·
가문의 상징이 새겨진 면장갑을 착용한다는 것은 바꾸어말해 승부에 최선을 다해 임하겠다는 의미였다·
트릭시는 왼 손을 두어번 쥐었다폈다 한 뒤 가만히 재뉴어리를 응시했다·
‘친인척·’
되짚어보면 친인척은 트릭시에게 있어 늘 두려운 존재였다· 부모님은 그들을 조심하라며 트릭시를 혹독하게 다루었고 실제로 마주한 그들 역시 트릭시를 더 괴롭히지 못해서 안달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다르다·
‘아이작 폰 프리츠·’
아버지의 이름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신의 성장을 위해 죽음까지도 불사한 아버지의 마음을 짐작하면 할수록 자신을 위협하려는 친인척의 겁박은 하등한 것일 뿐이었다·
몰랐다·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을 위한 것임을 몰랐다·
그가 자신을 그저 인형으로 여기는 줄 알고 의심했다· 가문을 위해 혼인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팔아넘기는 줄 알았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빠를 미워하고 다투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 대화였다·
“후우·”
트릭시가 물기젖은 한숨을 내뱉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이제 그에게는 닿지 않는다· 트릭시는 오로지 행보를 통해 사과해야하고 어떤 행보를 보여야하는지는 이제 스스로가 잘 알았다·
누군가가 무엇을 알았냐고 묻는다면·
‘말할 수도 없어·’
깨닫게 된 것이 너무나도 많으니까·
‘될 게·’
반드시 프리츠 가문의 가주가 될게·
그때 건너편의 재뉴어리가 고개를 꺾었다· 그가 몸을 풀 때마다 우드득 하는 소리가 났다·
“재뉴어리·”
트릭시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뭐야 자기소개 안 하냐?”
재뉴어리는 트릭시를 기억하고 있다· 차가운 겨울을 모방하지만 누구보다도 추위를 잘 타는 아이· 강한척 하지만 툭 건드리면 부서져버리는 연약한 아이·
그런데 그랬던 트릭시가 또 한 번 재뉴어리 앞에서 강한 척을 하고있다· 마치 미아 폰 프리츠처럼 말이다·
“또 강한척 하는 거냐? 엄마처럼?”
“보면 알아·”
“····”
트릭시의 일갈에 재뉴어리는 미간을 좁혔다· 난잡하지 않고 잘 다듬어져있긴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것은 분명 살기였기 때문이다·
“그래· 그럼 어디보자····”
스스로 팔짱을 끼고 무언가를 고민하는 척 하다가 재뉴어리는 일순간에 화염을 채찍처럼 쏘아냈다·
화악─!
에이프릴이 지시했던 대로 할 뿐이다· 이걸로 트릭시의 사지를 결박한 후 모두가 보는 앞에서 크나큰 망신을 줄 셈이었다·
“···?”
그러나 그 순간·
콰앙!
트릭시의 밑에서 그림자처럼 일렁이던 무언가· 그것이 푸른 채찍이 되어 여덟 갈래로 뻗는다· 아니 아예 독사의 형상을 이루며 재뉴어리의 화염 채찍을 악물었다·
“···뭐야!”
상상 이상의 광경에 재뉴어리가 외쳤다·
그러나 아직 무언가를 외치기엔 일렀다·
진정 놀라운 광경은 그 이후에 펼쳐졌으니·
딱─!
트릭시가 손가락을 튕겼다· 여러 개의 얇은 독사들이 몸을 합쳐 거대한 이무기의 형상을 이루었다·
그것이 승천을 연상시키듯 하늘로 치솟는다·
“어···?”
재뉴어리가 멍하니 중얼거린 그때·
딱─!
트릭시가 손가락을 튕겼다·
상대의 기술을 보고 순수히 감탄해버린 순간 이미 승리는 버린것과도 다름없는 법·
콰앙─!
허공에 날아오른 이무기가 어마어마한 속도를 내며 그의 이마에 직격했다· 순식간이었다·
“커어억····”
대련장의 지면에는 큼지막한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온 몸에 화상을 입었으나 오히려 얼어붙을 것 같다는 감각을 느끼며 재뉴어리는 구덩이의 한 가운데에 박혀있었다·
트릭시는 또 한 번 손가락을 튕길 뿐이었다·
그러나 마법의 발현은 아니었다·
그저 검지손가락을 편 뒤 에이프릴을 가리킨다·
“나와·”
에이프릴을 쓰러트린 다음·
“···에이프릴·”
자신은 가주의 자리에 올라설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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