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3
클라우드 가문의 저택·
기사들 사이에서 명문으로 통하는 클라우드의 가주실· 그곳에는 현재 냉랭한 분위기만이 가득했다·
“그러니까·”
클라우드 가문의 가주· 콘라드가 침묵을 깼다·
빛을 받으면 은색으로 반짝이는 머리칼과 눈 밑에 위치한 십자가 모양의 흉터· 검을 인간의 형태로 벼려낸 듯한 위엄은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걸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패배했고 검증에 실패하여 프리츠를 차지하지 못한 채로 복귀했다는 말인가·”
“····”
“심지어 요즘 시끄러운 플란을 상대한 것도 아니고 그저 푸른 화염에게 패배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죄송합니다·”
재뉴어리가 고개를 숙였다·
현재 콘라드 앞에 서있는 그의 모습은 추했다· 머리카락은 군데군데 타버려서 말려올라갔고 겉으로 드러난 피부에는 화상 자국이 가득했으니·
“프리츠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며 장담하지 않았나·”
“예·”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아는지 모르겠군·”
“죄송합니다·”
재뉴어리가 내뱉을 수 있는 말은 고작 그것뿐이었다·
한동안 가주실에서는 어떠한 소리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따금씩 콘라드가 몇 번 시가 연기를 삼켰다 뿜어내는 것이 전부일 뿐·
침묵을 깬것은 곁에 서있떤 콘라드의 딸· 엘피스였다·
“입으로는 죄송하다면서 보란듯이 살아있네·”
고드름처럼 차고 날카로운 목소리·
검날처럼 은빛으로 반짝이는 머리카락과 볼에 십자가 형태로 새긴 문신· 아버지를 똑 닮은 외모였으나 그녀의 ‘닮음’은 비단 외모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왜 말이 없을까· 너무 조용하면 내가 어디라도 한 군데 도려내고 싶어지잖아·”
엘피스는 콘라드의 냉랭한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둥글둥글하고 사교성있던 청운의 단장 생도 키안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것이다·
“재뉴어리 손가락이 잘려도 계속 조용할 수 있겠어? 무슨 말이라도 해보지 그래·”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재뉴어리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발끝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엘피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다음 말을 이었다·
“클라우드 가문의 협력을 먼저 요청한 건 너희들이야· 프리츠가 너희들의 손아귀에 있다는 걸 몇 번이나 강조하면서 말이지·”
“···예·”
클라우드 가문이 지금의 높은 위상을 만들어낸 방식이란 단순했다· 엘피스의 혜안으로 자본을 굴리고 정적이 생긴다면 콘라드가 제거했다·
하여 이 협력을 나서서 승낙한 것 역시 엘피스였다· 늘 무언가를 잡아먹으며 성장했던 클라우드에겐 프리츠 역시 참으로 좋은 먹잇감이었던 것이다·
“이름 있는 마법사 가문이 나서서 기사들에게 충성하는 모습 마탑 건설 저지 다른 기사들의 응원···· 이 모든 걸 한 번에 이룰 수 있는 장사였는데·”
엘피스가 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완벽하게 실패했네· 재뉴어리 네가 가장 잘못한게 뭘까· 그걸 알고있나?”
그 검을 조용히 뽑아 재뉴어리의 목에 겨누었다·
재뉴어리가 마른침을 꿀꺽 삼킨 뒤 입을 열었다·
“완패···· 당한 것···?”
“틀렸어· 그것도 아주 정확하게”
엘피스가 코웃음을 쳤다·
“바로 클라우드 가문을 언급했다는 점이야· 졌으면 그냥 조용히 죽여버렸어야지· 네 덕분에 클라우드는 한낱 패배자랑 엮인 가문이 되어버렸다고·”
“벌이라면 받겠습니다·”
“그래·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은 처형이지·”
엘피스가 손목에 힘을 밀어넣으려던 그때·
콘라드가 입을 열었다·
“그만·”
고작 두 글자에 가주실 내부에서의 모든 움직임이 멎었다· 콘라드의 시선은 재뉴어리에게도 엘피스에게도 향해있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뒤편에 가만히 서있는 에이프릴에게 향해있었다·
“에이프릴·”
“네·”
“너 역시 패배했다지·”
“네· 콘라드님·”
에이프릴과 대화하는 콘라드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가주는 시가를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인 뒤 물었다·
“에이프릴 네 얼굴에는 복수심이 없구나·”
콘라드의 가장 큰 의문이란 우선 그러했다·
이들이 처음으로 클라우드 저택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을 되짚어보자면 에이프릴도 재뉴어리도 얼굴에 야욕이 넘치는 이들이었다·
마법사로서의 긍지를 내려놓더라도 어떻게든 자신의 잇속을 채우려는 욕망· 그게 마음에 들었건만····
지금의 에이프릴에게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내 생각이 맞나·”
“네· 콘라드님·”
“이유를 들어봐야겠는데·”
그제서야 엘피스도 신경이 쓰인다는 듯한 눈으로 에이프릴을 흘겼다· 당사자가 침묵을 깬 것은 한참이 더 지난 뒤였다·
“깨달았어요·”
“깨달았다· 그렇게 말한 건가·”
“그건···· 프리츠에 어울릴 만한 화염이었습니다·”
만신창이였지만 에이프릴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제 주제를 알게되었어요· 욕심도 사라졌고요· 대수림으로 돌아가서 조용히 화염을 연마하려 합니다·”
옆에서 듣던 엘피스가 혀를 찼다·
“가주님 아무래도 정신이 나간 모양입니다· 제가 프리츠에 직접 방문한 뒤 일을 매듭짓고 오겠습니다·”
그러나 대답하는 것은 에이프릴이었다·
“매듭지어질지는 알 수 없는 거에요·”
“···건방진 잡것이·”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엘피스의 손을 콘라드의 연기가 덥석 붙잡았다· 부녀의 눈이 마주쳤고 가주의 눈을 마주하자마자 엘피스가 검을 거두어들인다·
한 마디도 없이 엘피스를 제지시킨 후 콘라드가 조금 흥미롭다는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에이프릴 너는 지금 클라우드의 힘을 의심하는 듯한 말을 내뱉었는데·”
“네·”
“그것 또한 깨달음인가·”
“아뇨·”
에이프릴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정말 모르겠어서 말한거에요· 플란이 말하길····”
그녀가 정말 모르겠다는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클라우드 가문이 끼어들더라도 결과가 달라지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고 했어요·”
“···!”
엘피스의 얼굴에 황당함이 번졌다· 콘라드 역시 입가로 가져가던 시가를 멈칫했다·
“방금 뭐라고 지껄였나·”
콘라드가 책상 위에 시가를 내려두었다·
여태껏 남의 이야기를 듣던 것처럼 태연하던 모습과는 다르다· 콘라드의 주변으로 살기가 연기처럼 퍼졌다·
에이프릴이 재뉴어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렇지 재뉴어리· 네가 그렇게 들었다며·”
“어? 어 어어···· 그렇긴 한데····”
콘라드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단순히 마법적인 자신감인가· 아니면····’
콘라드의 아들 키안· 그는 청운을 이끌던 유망한 기사생도였으나 베르켈의 위험지역에서 사망했다· 심지어 마인이 되기를 택하는 최악의 수까지 내리고서·
그 내막을 알고있는 것은 오로지 플란의 일행 뿐·
콘라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마인에 관한 언급은 없었나·”
“···마인?”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콘라드의 눈이 한층 더 냉정해졌다·
“재뉴어리 에이프릴· 저택에서 있었던 대화를 기억나는대로 고해라· 하나라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예·”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뒤에야 콘라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새로운 시가에 불을 붙인다·
‘마인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다행히 아직 최악의 경우가 벌어진 것은 아니지만 더 귀찮아지기 전에 매듭을 지어야 할 필요성은 있었다·
클라우드 가문은 콘라드에게 있어 일평생 심혈을 기울여 만든 걸작이자 절대로 무너져서는 안 될 공든 탑이니까·
이내 결심을 굳힌 듯 콘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엘피스· 너는 나비 수집을 준비해라· 레헬른 언덕으로 출발하기까지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가주님·”
엘피스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우드 가문에서 태어나 콘라드의 뜻을 거역한다는 건 적어도 그녀에게만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재뉴어리 에이프릴·”
콘라드가 조용히 손을 뻗었다· 재뉴어리는 순간 이유모를 기운에 몸을 움츠렸다·
그러자 콘라드가 피식 웃었다·
“뭘 움찔하고 그러나· 너희는 다시 대수림으로 복귀하겠다고 했지·”
“예?”
그가 시가 두 개를 내밀었다·
“떠나기 전에 한 대 하지· 마지막 정이다·”
“예?”
“받아라·”
“예 예····”
재뉴어리와 에이프릴은 잠자코 그것을 받아들었다·
본래 시가를 태우는 취미는 없으나 고작 이것으로 관계를 마무리지을 수 있다면 썩 나쁜 것도 아니라는 판단이 선 것이다·
“불은 스스로 붙일 수 있겠지· 하얀 화염인지 뭔지·”
“예···· 콜록! 콜록!”
재뉴어리와 에이프릴은 목을 직격하는 매캐함에 기침을 했고 콘라드는 우습다는 듯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에 연기가 그들의 폐부로 파고든다·
결국 콘라드가 시가를 전부 다 태울때까지도 에이프릴과 재뉴어리는 끝 부분만 피운게 고작이었다·
“이만 물러가도록·”
“콜록 콜록!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에이프릴과 재뉴어리가 뒤돌아선 그때·
푸욱─!
폐부에 파고들었던 연기가 날카롭게 솟아나며 그들의 몸을 꿰뚫었다· 연기를 검처럼 다뤄 상대를 도륙내는 파격적인 무력· 이것이 콘라드의 고유 능력이다·
“컥···?”
“케흑···!”
남매는 어떠한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내장을 난자당해 쓰러졌다· 한인간이었다는 걸 믿기 힘들 정도로 형체가 우그러진 채였다·
클라우드 플란 레헬른 언덕 여명 나비···· 콘라드는 머릿속의 조각들을 정리하며 고작 한 마디를 내뱉었다·
“치워라·”
◈
꿈이면 좋았으련만 이건 회상이었다·
새벽녘·
아버지는 이미 탈진한 상태에서도 계속 화염을 피워올린다· 트릭시에겐 아직도 그 모습이 생생했다·
그 노력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는 몸에 화상을 입어가면서도 늘 스스로를 불처럼 지폈다·
어린 트릭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이미 푸른 화염의 정점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머니만큼의 화염을 피워낼 수 없다면 그런 여자를 아내로 둔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닌가·
굳이 왜 그렇게까지 집착하는가· 마음을 닳아가면서까지 노력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다·
과거의 아이작은 그리 말했다·
─나는 불씨가 될 것이다·
장작에 큰 불이 옮겨붙기까지는 작은 불씨가 필요하다고· 자신은 그런 불씨가 될 것이라고·
“····”
트릭시가 눈을 뜬 것은 그때쯤이었다·
익숙한 천장이 보인다·
더할나위 없이 몸 상태가 괜찮다· 호흡을 몇 번 한 뒤 트릭시는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침대 아래로 무언가가 툭 떨어진다· 몰랐는데 자신의 배 위에 무언가가 올려져있었던 모양이다·
“···트리비아·”
하나의 트리비아· 자신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정 신경쓰이는 것은 함께 떨어져있는 한 장의 메모였다·
[ 묘비 앞으로 올 것· ]
메모에는 그렇게만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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