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4
몸의 상태가 더할나위 없이 괜찮아졌다·
침실을 나선 뒤 트릭시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복도의 벽면에 몸을 기댄채로 졸고있는 하녀장이었다·
플란이 절대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 조언했지만 트릭시가 너무 걱정되어서 하녀장은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을 서서 인내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가지 더·
벽에 기대서 졸고있던 것은 하녀장 뿐만이 아니었다· 루이스와 베키 역시 나란히 졸며 그 곁을 지켜주었다·
트릭시는 신기할 뿐이었다· 자신의 몸이 씻은 듯 괜찮아졌다는 것도 누군가가 걱정되어서 일주일간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그 마음가짐도·
그리고 현재 네 명은 대저택의 복도를 천천히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전 가주님께서는 아가씨를 정말 좋아하셨어요·”
“····”
아이작이 ‘전’ 가주라고 불리는 것이 영 어색하다· 자신이 현 가주라는 것은 더더욱 실감나지 않는 사실이었다·
“단순히 상냥하게 대해주는 것보다도 아가씨께서 화염의 극의에 다다를 수 있기를 바라셨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그게 잘 되는 거라 생각하셨으니····”
“난 전혀 몰랐어·”
“아무래도····”
하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가 있는 하녀들에게는 철저하게 입단속을 시키셨으니까요· 또 아가씨께서 언젠가는 자기를 미워하지 않게 될 거라는 말씀도 하셨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트릭시는 헛웃음을 흘렸다·
안 미워지기는 무슨 지금도 아빠가 밉다· 멋대로 힘을 전승시키고 떠나버린 그가 너무나도 미웠다·
“으음····”
베키가 슬쩍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트릭시 네가 느끼기엔 어땠어? 전 가주님 말이야·”
그러자 트릭시의 시선이 복도 옆면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아이작의 초상화가 위치해 있었다·
꽤나 비슷하게 그려졌지만 고작 물감으로는 푸르게 일렁이는 그의 눈동자가 잘 표현되지 않았다·
“늘 엄격했어· 엄마는 저택에 잘 돌아오지도 않아서 매일같이 엄마가 돌아오는 날만 기다렸었어·”
거짓이 아니다·
트릭시는 아이작이 굉장히 화가 많은 사람이며 진심으로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같이 무언가에 매진해있느라 예민했고 트릭시가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회초리를 꺼내들었으니까· 그리고 매일같이 유명한 마법사들을 저택으로 불러들여 밤늦게까지 회의를 했다·
그렇게 흘러가던 어느 유년 시절의 하루·
아이작이 트릭시를 조용히 방으로 부른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그가 만취한 모습을 보게되었다·
심지어 화염 가문인 프리츠에서는 별로 반기지 않는 날·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번개가 하도 쳐서 말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아이작은 트릭시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나는 결국 네 어머니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 목소리에 어떤 감정이 뒤섞여있었는지 트릭시는 모른다· 애초에 잘 들리지도 않았으니까·
─내가 얼마나 노력했건 얼만큼을 이루어냈건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결국 네 어머니의 화염만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나 또한 평생 불꽃만을 바라보고 살았는데 말이다·”
아마도 그는 흐느꼈던 것 같다·
─딸아·
그가 트릭시에게 말했다·
─너까지 어미의 그늘에 가려져서는 안 될 것이다· 너만큼은 반드시 뛰어넘어야한다· 이 그늘에 갇히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지···· 네가 평생 몰랐으면 한다·
어린 트릭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이야기·
이후 아이작이 감정을 보이는 일은 없었다·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고 말투에서는 억양이 사라졌다· 이따금씩 트릭시에게 무언가를 지시한다면 이유를 말해주는 법이 없었다·
어느날은 엄마가 저택에 방문했다·
미아 폰 프리츠· 아빠가 노력했던 흔적들을 보고서 엄마가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뭘 이렇게까지 했어? 힘들게·
그녀는 분명 그리 말했다·
생각을 마친 뒤 트릭시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아빠는 멍청한 사람이야·”
“····”
“엄마의 화염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걸 스스로가 제일 잘 알았어 그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았어·”
트릭시의 시선은 여전히 아이작의 초상화에 향해있다· 소녀는 손을 뻗어 그것을 어루만졌다·
머릿속은 여전히 의문으로 가득하다·
왜 고민들을 혼자 안고서 끙끙 앓았을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도 왜 포기하지 않았을까·
“누구보다도 바보였으면서 나는 천재이길 바랐나봐·”
정작 아이작은 자신의 딸을 정반대로 키워냈다·
불가능한 일에 매진하는 인물이 트릭시는 천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한 것이다·
“···트릭시·”
베키가 조용히 고깔모자를 벗었다· 그것이 인형이라도 되는 것처럼 끌어안는다·
비단 베키만이 할 말을 고민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녀장도 루이스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듯 숙연한 표정을 짓고있을 뿐·
침묵을 먼저 깨트린 것은 베키였다·
“그런데····”
베키가 아주 조심스레 말을 이어간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을까· 내가 뭐라도 되는 건 절대 아니지만 그냥 너무 안타까워서 그래·”
“마법과 고유능력의 차이야·”
루이스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극에 달한 고유 능력은 그냥 전승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던데 마법은 목숨을 매개로 해야만 가능해· 이외의 방법은 없어·”
늘 그렇듯 현실은 너무나도 잔혹했다·
아이작이 화기애애하게 트릭시를 가르쳐서 천재로 빚어낸다는 이야기따위 목숨을 유지한 채로 편하게 힘만을 넘겨준다는 이야기따위는····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싫어·”
트릭시가 입술을 짓씹었다·
“아빠는 나를 믿지 못한 거야· 내가 이런걸 전승받지 않고서는 결코 엄마를 뛰어넘을 수 없다고 생각한 거야· 누구 맘대로····”
그러나 다음 말을 차마 이어갈 수가 없었다·
오죽 간절했으면 그랬을까·
패배감과 열등감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감정이 닳고 닳아 무뎌졌을까· 트릭시가 비슷한 일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을까·
또다시 내려앉은 침묵 베키가 고깔모자를 만지작거리며 뭐라도 말했다·
“그래도 좋은 분이셔· 나는 부모님이 누군지도 몰라서 잘은 모르지만···· 으으 내가 어떤 말을 해야 실례고 어떤 말을 해야 위로인지 모르겠어····”
“좋은 사람 아니야·”
트릭시가 딱 잘라 말했다· 소녀의 눈동자에는 굉장히 많은 생각이 담겨있었다·
“말했잖아· 아빠는 바보고 그래서 싫다고· 무책임한 사람이야· 무능력한 사람이야·”
“···트릭시·”
“남들이 보기엔 좋을 지 몰라도· 나는 아니야· 누가 이딴 걸 바란 줄 알아· 내가 바랐던 건····”
트릭시는 더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아이작이 그려져있는 초상화로부터 휙 몸을 돌릴 뿐이었다· 당사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조차 없었기에 주변에 있는 이들은 잠자코 자리를 지켰다·
그러던 어느 순간 베키가 입을 열었다·
“아 트릭시· 그러고보니 플란이····”
“그 이야기는 안 하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그러나 하녀장이 베키를 황급히 가로막았다· 하지만 이미 트릭시는 플란이라는 이름을 들어버렸고 그가 신경쓰였다·
생각해보면 침실에 있었던 트리비아는 플란의 것이었다· 아직 펼쳐보지 않았지만 메모는 확인했다· 묘비로 오라는 그 메모 말이다·
“무슨 이야기인데·”
트릭시가 물었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무슨 이야기냐니까·”
“그게····”
트릭시가 재촉하니 하녀장도 계속해서 말리지는 못했다· 결국 베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플란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네가 깨어나면 묘비로 오라는 말을 전달하라고 했어서····”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때문에 모두가 트릭시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트릭시는 다시 한 번 물을 뿐이었다·
“다른 말은 안 했어?”
베키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걸 말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괜찮아· 말해도 돼·”
“으응·”
베키가 얕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련을 가지지 말라고· 마법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길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그리고 감정은 늘 길을 잃게 만든다고····”
베키가 황급하게 손을 저으면서 말을 덧붙였다·
“아 아니! 근데 플란이 나쁜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플란 성격 알지?”
“플란은 지금 어디에 있어·”
트릭시는 그렇게만 물었다·
“그게···· 묘비 근처에 있을 걸· 일주일 째야·”
“묘비 근처?”
“응·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
“····”
트릭시의 눈이 가늘어졌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묘비 근처에서 일주일을 지새운건지 왜 그곳으로 오라고 메모를 남겨둔건지· 그것을 확인해야만 할 것 같았다·
“알았어·”
나머지를 남겨두고서 트릭시는 발걸음을 떼었다·
◈
새벽녘·
꿈에서 보았던 바로 그 시간대·
트릭시는 묘비 앞에 도착했다· 무척이나 고요한 공간의 중심에서는 한 사내가 조용히 서있었다·
“왔나·”
그는 그렇게만 중얼거릴 뿐이었다·
···마침내 트릭시는 플란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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