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5
“왔나·”
그 인사가 끝이었다·
사그락 사그락·
고요한 이곳에서는 플란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뿐이다· 그의 시선 역시 트릭시가 아닌 마력서에 향해있었다·
이내 그것이 마지막 장까지 다다랐을 때 플란은 새 마력서를 한 권 집어들었다· 그리고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를 빠르게 훑었다·
그렇게 한참동안을 마력서만 살피다가 그가 어느순간 중얼거렸다·
“이해할 수 없다·”
플란은 아이작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법사라는 건 무릇 증명하는 존재· 플란은 늘 그리 생각하고 살아왔기에 딸의 증명을 위해 자신을 불사르는 아이작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만일 루이스 트릭시 베키· 그가 원석으로 인정한 이들이 이런 짓을 하겠다고 나섰더라면 사지를 결박해서라도 하지 못하게 막았으리라·
“그러나·”
탁 소리가 나게 플란이 책을 덮었다·
“응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담담한 한마디·
그가 꽃 한 송이를 묘비 앞에 조용히 놓아둔다· 프리츠의 상징화인 재스민이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의 얼굴이 평소보다 온화한 듯 했다·
“····”
트릭시는 멍하니 플란을 바라만 보았다·
어떠한 생각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고 어떠한 말과 행동을 해야할지는 더더욱 알 수가 없어서 현재 트릭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었다·
“고생했다·”
플란이 그리 중얼거렸다·
그러나 트릭시에게 한 말이 아닌 묘비를 향해 내뱉은 말이었다· 그의 아득한 시선은 마치 묘비 너머의 무언가를 바라보는 듯 했다·
“이전에도 이런 바보를 본 적 있다·”
이전 세계·
마녀의 태생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플란을 사랑해주었던 여자· 그저 플란의 행복만을 바라고 일평생 플란이 잘되기 위한 것들만을 연구했던 여자·
종국에는 마녀들의 서약까지도 어겨버렸던 여자·
“한데 바보가 왜 이렇게 많은 것인지····”
자신의 행복만을 빌어도 모자랄 판에 남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이라 여기는 바보들은 늘상 존재한다·
“너희는 운이 좋아·”
플란이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묘비의 잔해 위로 손을 얹었다·
“어찌저찌 술식을 남기는 데에 성공했고 그것을 해독해줄 사람도 마침 이곳에 있으니·”
이전 세계의 그녀는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마녀의 서약을 어겼던 그 순간 바로 가루가 되어 흩어졌고 이름과 형상을 남기지 못하는 벌을 받았기에 플란은 그녀의 이름도 얼굴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존재만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을 뿐·
그러나 이들은 그리 되지 않을 것이다·
“쉬어라· 트릭시는 훌륭한 마법사가 될 테니·”
플란이 마나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어둑하던 공간에 마나 특유의 푸르스름한 빛이 번지고 이내 육각형 모양의 마법진이 허공에 차례대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스스스스스─
최선을 다해 집중했다·
단순히 고대 룬어를 향한 호기심으로 출발했으나 이전 세계의 그녀를 향한 연민이 뒤섞인 지금은 오로지 이 술식을 온전히 깨워내려 마음먹은 채다·
“트릭시·”
부서졌던 묘비들이 원래의 자리를 되찾으며 달라붙는다· 그러나 이전의 직사각형 모양으로 달라붙는 것은 아니었다·
일개 돌조각들이 공명하며 위치를 달리하더니 자석에 이끌리듯 붙어 재스민 꽃의 형상을 이루었다·
“한 순간도 놓치지 말고 보아라·”
이번에는 술식과 원리를 보라는 뜻이 아니었다·
전달하려는 것은 그저 술식의 형상· 동시에 자신을 뛰어넘은 그녀에게 기특해서 주는 작은 상·
재스민 모양의 묘비가 푸르게 타오르더니 이내 공간을 뒤바꾼다· 트릭시에게 있어 너무나도 익숙한 형태의 사람 둘을 빚어낸다·
“···!”
트릭시의 부모님이었다·
몇 번 얼굴도 본 적 없는 엄마· 늘 엄격했고 자신을 미워하는 것 같았던 아빠·
둘은 갓 태어난 아이 하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트릭시는 결코 몰랐던 장면이고 본 적도 없고 전해들은적도 없었던 기억이다·
하지만 트릭시는 저 갓난 아이가 누구인지 안다·
자기 자신·
고작 저택의 방 안일 뿐이면서도 온 세상을 차지했다는 것처럼 남녀는 흐드러지게 웃었다· 아니 그들에게는 품에 안겨있는 작은 생명체가 하나의 세상이었던 모양이다·
“아····”
트릭시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하지만 묘비의 술식이 뿜어내는 장면은 되레 선명해진다·
“아빠·”
환상처럼 펼쳐지지만 결코 환상이 아닌 어느 과거의 날 실제로 존재했던 풍경·
“엄마·”
그들의 미소에 거짓은 없었다· 둘은 트릭시를 얻은 날 순수하게 기뻐했다·
처음에는 눈꺼풀이 떨리더니 그 진동이 이내 전신으로 번져나간다·
볼을 타고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린다· 턱 끝에 그것이 맺힐때쯤 플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를 지피려면 스스로부터 불태워라·”
여느때처럼 태연자약한 목소리·
“이게 프리츠의 가훈이라 했던가·”
트릭시는 겨우겨우 눈을 떴다· 푸르게 빛나는 세상 속에서 플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려워할 것도 망설일 것도 없다·”
붉은 눈동자에 담겨있는 것은 오로지 진심·
“너는 평생을 타오르게 된다· 반드시·”
비틀거리다가 트릭시는 저도 모르게 플란의 품에 홀린듯 안겼다·
“···잠깐만 빌릴게·”
좀 지나면 그칠 줄 알았던 눈물이 그칠 줄을 모른다·
소녀의 눈물이 사내의 가슴팍을 적셨지만 사내는 그것을 굳이 탓하지 않았다· 늘 그래왔듯 굳건하게 선 자리를 지킬 뿐·
“아주 잠깐 정말 잠깐이면 되니까·”
그녀는 앞으로 장렬하게 타오를 터였다·
어머니의 그늘을 한참이나 벗어나게 되고 아이작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그날까지· 감정이 무뎌졌던 아버지가 다시 흐드러지게 웃을 수 있도록·
활활 타오를 것이다·
평생·
일평생을·
◈
그로부터 일주일 후·
둘째 황녀 오로라의 내실·
레헬른 언덕에서 여명 나비의 수집이 시작되기까지 고작 이틀이 남은 시점 오로라가 평소처럼 턱이나 괴고있었던 그 순간·
“화 황녀님!”
환관 한 명이 다급한 얼굴로 오로라의 앞을 찾았다·
책임을 중하게 물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으나 얼굴이 워낙 다급해보였기에 오로라는 우선 물었다·
“꼴이 왜 그러느냐· 도망치는 쥐새끼처럼·”
“도 돌아오셨습니다!”
“흠?”
오로라의 고개가 모로 기울어졌다· 그러나 잠시의 고민을 마친 뒤 둘째 황녀의 얼굴이 차게 식는다·
“유시아가 돌아온 게 그리 호들갑을 떨 일이더냐·”
“아뇨· 아닙니다· 셋 째 황녀님이 아니라···!”
셋 째 황녀가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떨만한 이가 누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의문을 품은 오로라에게 답을 주겠다는 것처럼 누군가가 일정한 발소리를 내며 내실 안으로 들어섰다·
“···?”
그 얼굴을 확인한 뒤 오로라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차분해보이는 여자· 아니 차분하다는 말보다는 깊게 가라앉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 하다·
연보랏빛으로 떨어지는 장발의 머리카락과 검게 가라앉아있는 눈동자는 내실에 등장한 주인공의 성격을 쉬이 짐작하게끔 만들었다·
차갑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그리 평할 것이다·
하지만 오로라에게는 그리 보이지 않았다· 이 여자의 정체를 아는 이라면 누구라도 이렇게 평할 것이다·
‘텅 비어있다·’
나이오비·
황실의 첫째 황녀·
감정을 베는 자 현존하는 기사 중에서 가장 검성에 가깝다고 평가되어지는 괴물·
나이오비는 텅 비어있는 눈동자로 한동안 오로라를 응시했다· 이곳이 평범한 장소라는 것처럼 행동하는 그 모습이 오로라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감정은 없어도 예의는 있을 법 한데···· 멋대로 찾아오는 건 그만두라고 전에도 언급했을 터·”
“황궁을 오래 비웠다고는 하나 제가 곧 예의입니다·”
언뜻보면 문제가 없어보이는 말투이지만 저것은 ‘학습’된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마주하고 들어보면 기괴하기 짝이 없다· 억양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 말 그대로 ‘소리’라는 개념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텅 비어있는 말·
인간이 소름끼쳐하는 공허함이 나이오비의 목소리에는 녹아있었다·
“예의····”
“쯧·”
나이오비가 그 단어를 중얼거리면서 골몰하기 시작하자 오로라는 그냥 혀를 찼다· 아무리 화를 내도 소용 없다· 애초에 상대방은 감정이 없으니까·
“그래서 황궁에는 무슨 일이지·”
그제서야 나이오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헬른 언덕·”
“그 언덕은 왜·”
“삼일 후부터 여명 나비를 수집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게 왜·”
“참관하겠습니다·”
나이오비가 품 속을 뒤적거리더니 두루마리 하나를 꺼냈다· 오로라에게 이것좀 보라는 듯 그것을 내보인다· 여전히 무표정을 하고서·
그건 오로라의 눈에도 익숙한 물건이었다·
“그건 플란 그 놈의 입체그림···· 아하·”
이내 이해했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설마했는데 너도 흥미가 생긴것인가·”
“흥미·”
나이오비는 그 단어를 중얼거렸다·
“흥미·”
“흥미·”
“흥미·”
그 뒤로도 세 번이나 중얼거리더니·
“모르겠군요·”
그렇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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