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8
재학생만을 대상으로 했던 공개 모집의 범위가 넓어진 후에도 플란을 향한 인기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플란은 1차 합격자들을 추려냈고 그 수는 굉장히 소수였다· 마법 학부에서는 유시아 트릭시 베키가 전부라는 점만 보아도 그랬다·
그리고 현재 마법 학부의 대기실에서는 1차 합격자들이 모여 한창 야광 퍼즐에 매진하고 있었다·
“여기에 끼워야 맞으려나···?”
베키가 조심스레 퍼즐을 옮기자 탁 하는 소리와 함께 퍼즐의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유시아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 베키 양· 잘하십니다· 이제 제 차례입니다·”
유시아가 가져온 것은 총 1024장으로 구성된 직소 퍼즐· 기다리던 이들 입장에서는 마땅히 할 것도 없었기에 현재 대기실에서 꽤 좋은 놀잇거리가 되었다·
“이제 트릭시양 차례인데····”
모두의 시선이 트릭시에게로 향했다· 흔치 않게 트릭시도 이러한 놀이에 어울리고 있었다·
푸른 소녀는 무심한 표정으로 염동을 발현했다· 탁 하고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소리는 역시 일품이었다·
“···트릭시 양?”
하지만 유시아가 조심스레 트릭시를 불렀다·
“왜·”
“마법을 사용하면 안 된다니까요·”
유시아가 단호한 얼굴로 볼을 부풀렸다· 다른 건 몰라도 퍼즐에 관해서 그녀가 자비를 베푸는 일은 없었다·
트릭시는 무미건조하게 반응할 뿐이었다·
“그랬었지·”
“한 차례 강제로 휴식입니다· 아시겠죠?”
“그래·”
트릭시가 넌더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곁에 있는 베키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트릭시가 생각보다 퍼즐에 약하네·”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계속 틀린 자리에 끼우고 유시아가 규칙을 몇 번이나 말해줘도 잊어버리고·”
“····”
트릭시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현재 퍼즐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지만 그 이유를 말해줄 수는 없는 법이었다·
베키가 다음 퍼즐을 맞추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역시 그렇지? 평소였으면 막 뭐라도 쏘아붙였을 텐데 이번에는 그런 반응도 없잖아·”
“알았어· 너희끼리 해·”
결국 트릭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유시아가 고개를 슬쩍 기울이며 덧붙인다·
“트릭시 양· 혹시 삐지신 겁니까···?”
“아니야·”
“정말요?”
“정말·”
“정말의 정말로?”
트릭시는 한숨을 푹 내쉬고야 말았다· 이러한 대화의 특성상 어차피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렇게만 보일 뿐이니까·
답답할 뿐이었다· 정말로 삐져있는 게 아닌데· 그녀는 단지 다른 고민에 깊게 빠져있을 뿐이었다·
“아 저기 맞다· 트릭시·”
그때 베키가 자리에서 벗어나려는 트릭시를 한 번 붙잡았다·
“왜·”
“····”
하지만 정작 눈을 마주치자 말을 잇지 못한다· 트릭시가 눈을 가늘게 좁히자 베키는 그제야 볼을 긁으면서 다음 말을 이었다·
“플란이랑 한 거···· 계약 혼인? 그거 확실히 계약으로만 한 거지? 그렇지?”
우선 계약상으로만 이루어진 관계가 맞았다·
이전 가주 아이작이 가문을 보호하기 위해 잠시 약혼 관계를 가장시켰고 검증을 통해 승계 문제가 해결된 지금은 계약 혼인을 유지할 필요가 딱히 없었다·
그렇지만·
‘뭐야·’
유시아와 베키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들을 보고 있노라니 괜히 대답하기가 망설여졌다·
“그건 왜·”
“아니 그냥 물어보는 거야· 궁금해서·”
“알아서 생각해·”
플란·
트릭시 역시 그에 관한 생각으로 인해 고민이 많은 참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휙 돌아서는데 유시아와 베키가 허겁지겁 달려와서는 트릭시를 붙잡았다·
“트 트릭시· 그러지 말고 퍼즐 같이 맞추자·”
“예· 트릭시 양· 인원은 맞춰야죠· 그렇지 않습니까?”
결국 두 소녀의 억센 힘에 이끌려서 트릭시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퍼즐에는 흥미가 전혀 없었지만 트릭시는 괜히 퍼즐 조각을 만지작거렸다·
‘내가 왜 이럴까·’
트릭시는 스스로가 이곳에 있는 것부터가 의문이었다· 수접제는 아카데미가 주관하는 행사가 아니기에 자신이 관심을 꺼도 무방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니 신청을 넣은 뒤였고 눈을 감았다 뜨니 대기실 내부였다· 왜일까· 이 고민을 떨쳐내기 위해 퍼즐에 집중해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확인을 해보자·’
그게 결론이었다·
이 고민을 자꾸 안고 있다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길 테니 우선 플란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자는 판단이 내려졌다·
아니 애초에 알아가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애초에 첫 입맞춤을 가져간 상대가 그였으니까·
와중에도 베키는 트릭시를 재촉했다·
“트릭시· 그래서 플란이랑은 정확히 어떻게 된 건데 말 좀 해봐·”
“계약이야 계약· 알면서 뭘 자꾸 귀찮게····”
트릭시는 대충 대답하며 퍼즐을 만지작거렸다·
퍼즐을 하다 보면 싱숭생숭한 마음도 가라앉겠지·
그런데·
“그러고 보니 트릭시 쉬고 싶다며·”
“예· 생각해보니 인원도 둘이면 충분합니다·”
“우리끼리 하자·”
베키와 유시아가 트릭시로부터 등을 휙 돌렸다· 양팔을 다급하게 붙잡던 때와는 상반된 태도였다·
“···?”
트릭시가 눈을 두어번 깜빡였다· 유시아와 베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둘이서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다·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이라도 치려던 그때·
벌컥 하면서 문이 열리더니 3학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깨에 채워진 완장에는 회장이라고 적혀 있어서 베키와 유시아는 허겁지겁 야광 퍼즐을 정리했다·
“후배님들 플란의 조원이 되길 희망해서 모여있는 거 맞지? 안내가 나왔으니까 한 번 살펴봐·”
3학년 회장· 에밀리가 허공에 기록지를 펼쳤다·
[ 여명 나비의 채집은 험지로 유명한 레헬른 언덕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그곳에 도달하는 것을 첫 과제로····(후략)]
에밀리가 픽 웃음을 터뜨렸다·
“엄청나네 교수님들도 이 정도 과제는 안 내주는데·”
손가락으로 펜을 능숙하게 회전시키며 에밀리의 시선이 대기실의 세 소녀에게로 향한다·
“아무튼 안내는 이걸로 끝· 그리고 이건 순수한 질문인데 후배님들은 왜 신청했어? 궁금해서·”
“플란 경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유시아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베키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얼굴을 붉힐 뿐이었다·
남은 것은 트릭시 뿐이라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녀에게로 향했다·
트릭시는 조용히 중얼거릴 뿐이었다·
“···모르겠네요·”
그녀는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을 모른다·
지금부터 그것을 알아가는 것이 과제였다·
◈
레헬른 언덕은 본래 험지(險地)로 유명하다·
지형이 기괴하고 종종 혈귀들이 나타나며 이러한 점을 제외한다 치더라도 인간이 삶을 영위할만한 장소는 되지 못했다·
그리고 현재 레헬른 언덕의 악명은 한층 더 높아지게 되었다· 실권을 쥔 둘째 황녀 오로라가 결계를 약화한 덕분이다·
“후우·”
아이반 로즈·
그녀는 마침내 기록지에 표기된 장소에 도착했다· 위화감이 느껴지는 집 하나가 눈앞에 놓여있었다·
우선 문을 노크했다·
“들어가겠습니다·”
반응이 없었다· 자신이 제일 먼저 도착했을 가능성도 있어서 아이반은 별 생각 없이 안으로 진입했다·
내부는 시원하고 또 향긋했다· 후텁지근한 레헬른의 기후를 잠시 잊어버릴 만한 감각이었다·
또한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익숙한 얼굴· 자네트가 세검의 검날을 조심조심 닦아내고 있었으니·
“오랜만이네 아이반·”
자네트가 먼저 거리낌 없이 인사했다· 험지의 한가운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미를 인간으로 피워낸 듯한 미모는 여전했다·
과연 2학년 기사 생도 사이에서 이름 높은 천축의 단장· 그녀다웠다·
“기사의 신청은 내가 유일할 것이라 생각했소만·”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막상 플란에게 져보니 생각이 달라지던걸· 신청하고 싶더라고·”
자네트가 검날을 닦으며 말을 잇는다·
“조원은 겨우 두 명만 뽑는다며? 마법사는 몇 명이나 올지 모르겠네· 혹시 아는 거 있니?”
“없소· 다른 조의 구성원들이 굉장히 쟁쟁한 인물들이라는 것 외엔····”
아이반이 짧게 대답한 그 순간이었다·
똑똑─
선명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이반은 아까 자신이 노크했을 때 대답이 돌아오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노크 소리를 들으니 플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이 뻣뻣해진다·
곧이어 문이 열렸다·
“겨우겨우 도착했네· 진짜로·”
“예· 더워서 힘들었습니다·”
조그만 공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세 마법사· 그리고 다음 순간 기사와 마법사의 눈이 자연스레 마주쳤다·
“····”
정적이 내려앉았다·
베키가 유시아에게 조심스레 속삭이기 시작했다· 물론 남들에게도 다 들릴만한 소리였다·
“저거 기사 아니야?”
“예· 베키 양· 그런 것 같습니다·”
“여기에 왜 있는 거야···?”
유시아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선별 조건 아닐까요?”
“조건?”
“예· 결투를 해서 이기면 합격이라든가·”
“그거 가능성 있네·”
베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른 조가 대부분 기사로 구성되어 있으니까· 정말 그런 이유로 불렀을 수도 있겠다·”
억측이 일파만파 퍼져나가던 그때였다·
똑똑─
지금까지의 노크와는 다른 유난히 일정한 박자·
전원의 눈동자가 자연스레 문으로 향했다· 다음 순간 문이 적당한 속도로 열리기 시작했다·
레헬른 언덕의 열기가 내부로 훅 끼쳐 들어왔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언제 보아도 기다란 장신· 탄탄한 체격을 갖춘 그는 역시 일정한 박자의 발걸음으로 입장했다·
“다들 모였나·”
얼마 뒤 플란이 공간의 한가운데에 섰다·
“마법사 플란이다·”
그의 태도나 분위기가 평소보다도 진지했기에 모두가 가만히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 순간·
이번에는 노크조차 없이 벌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다시 한번 문으로 옮겨졌다·
“···!”
그리고 모두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 충격은 마법사와 기사를 가리지 않았다·
모두가 받은 충격의 크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모습을 드러낸 이는 태연하게 서서 플란을 응시했다·
장대한 키와 군더더기 없이 근육이 잡힌 몸은 누가 보아도 기사의 것· 레헬른의 열기 따위는 우스울 여자· 잔불의 기사 스칼렛 유디트였다·
침묵을 먼저 깬 것은 플란이었다·
“무슨 일이지· 스칼렛·”
이윽고 스칼렛이 그 질문에 답했다·
“나도·”
여기사는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조원 선발에 참여하고 싶다·”
소리라는 개념이 사라졌다·
누구도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았다·
플란을 제외한 모두가 얼굴에 당혹감을 드러낸 채 스칼렛과 플란을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내일 회차에 삽화가 함께 업로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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