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9
레헬른 언덕에 전원이 모인 것은 해가 어둑해진 시각의 일이었기에 조원 선발은 다음날 아침부터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거처 5개 정도를 만들어 주었으니 숙박의 문제는 없을 터·
그리고 막 12시가 되어 자정을 알리는 지금· 나는 마이에브가 갈무리한 인적 사항을 확인하는 중이다·
트릭시 베키 자네트 아이반 유시아· 1차 합격자의 수는 다섯 명 뿐이니 많지는 않다· 그러나 자료의 심도가 깊다· 바꾸어 말해 한 명당 자료가 최소 50장 분량은 되는 것이다·
“···영 쓸모없지는 않군·”
참고로 이 조사는 마이에브가 담당했다· 몇 번이나 액자에 가두며 확인했으니 중간에 거짓된 정보가 섞여있지는 않을 터·
다섯 명에 관한 자료를 살피는 것은 시간이 많이 소요될 일이 아니었으나 변수가 한 가지 생겼다·
잔불의 기사 스칼렛 유디트·
나는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뭐 상관 없나·”
조원을 선발함에 있어서 공정함을 기할 생각이다· 또한 나에게는 그럴 자신이 있었다·
콰앙─!
문득 밖에서 마법의 폭발음이 들렸다· 나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곳으로 향한다·
베키를 비롯한 마법사들이 수면을 취하지 않고 이런저런 마법을 시도해보고 있었다· 확실히 처음 조우했을 때에 비하면 많이 다듬어진 위력이다·
한편 반대편에서는 아이반과 자네트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각각 기사 학부 1학년의 초신성 그리고 2학년 천축의 단장이었기에 나름대로 검을 견식하는 맛이 있었다· 그들도 나름대로 발전을 거듭한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도 있었으니·
스칼렛 유디트·
그녀는 현재 검을 휘두르지 않는다· 다른 대기 인원들의 행동을 관찰하지도 않는다· 그저 가만히 선 채 내 거처의 창문을 바라볼 뿐이다·
일방향 투과 유리라 저 쪽에서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붉은 색 눈동자를 일렁이며 시선을 이쪽으로 향한다·
나는 심사 기준을 갈무리했다·
첫 번째는 발전 가능성이 있는가 두 번째는 내 계획에 부합하는가· 우선은 이 정도다·
나는 조용히 스칼렛을 바라보았다·
우리의 시선은 닿아있지만 닿아있지 않다·
만일 네가 이 조건에 부합한다면····
“선별하지 못할 것도 없지·”
◈
다음날 동이 틀 무렵 스칼렛은 눈을 떴다·
“····”
잠이 아닌 명상에서 깨어난 것에 불과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일찍 기상한 인원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잔불의 기사님 푹 쉬셨을까요?”
2학년 기사생도 천축의 단장· 자네트가 다가와서 살갑게 말을 붙였다· 스칼렛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놀랐어요· 이런 곳에서 뵙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역시 유디트의 명예를 생각하셔서 참여하신····”
“아니다·”
스칼렛은 단호한 목소리로 자네트의 말을 잘라냈다· 축객령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말이 길었어요·”
그 뜻을 이해한 자네트는 칭찬 여러개를 추가로 늘어놓은 뒤 자리를 떴다· 혼자 남은 스칼렛은 자신이 새벽내내 했던 고민들을 다시 되짚기 시작했다·
‘수상하다·’
클라우드 가문의 딸 엘피스의 조가 수상했다·
지금은 모집 기준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도록 완화되긴 했다만 엘피스의 조는 ‘재학생’만을 대상으로 할 때부터 신청을 마친 채였다·
그리고 그 ‘재학생’들은 스칼렛이 보기에 절대로 아카데미에 있는 인물들이 아니었다·
‘원한이겠지·’
클라우드 가문의 아들이 토벌제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나니 인과관계를 맞추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플란에게 앙갚음을 하려는 것일 터·
스칼렛은 감히 플란을 보호하고 싶었다·
차라리 플란이 이유를 물어주면 좋으련만·
그는 스칼렛에게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공정하게 다른 참가자를 대하듯 대할 뿐이다·
그때· 플란이 모습을 드러냈다·
“첫 번째 과제는 단순하다·”
그는 태연하게 말하며 기록지를 펼쳤다· 담겨있던 술식이 발하더니 허공에 레헬른의 지형을 펼쳐낸다·
“개개인에게 맞는 목적지를 내가 점지해두었다·”
입체 지형 위로 붉은 점이 6개 찍힌다· 각 개인에게 맞는 목적지일 것이다·
“목적지마다 큐브가 하나씩 놓여있을 텐데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의 흔적을 남기고 복귀하도록·”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이 있다면 지금 해라·”
하지만 의문을 품는 이는 없었고 이내 모두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스칼렛 역시 목적지로 향했다·
후텁지근한 기후에는 타고난 면역이 있어 괜찮았으나 지형이 기괴하다는 것은 조금 문제였다·
“흠·”
화염으로 일직선의 길을 내버린다면 쉬울 터이나 굳이 그런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다·
“기척을 평가하겠다는 것인가·”
여명 나비는 조금의 기척만 느껴도 도망가버리는 녀석이니 꽤나 일리가 있었다· 모든 기척을 숨기는 데에만 집중한 채 스칼렛은 무능력자처럼 움직였다·
“흐으····”
힘든 일이었다· 고유 능력을 일절 배제한 채 활동하니 금세 온 몸이 땀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목적지·
날카로운 벼랑 끝에 자신의 명찰과 큐브가 걸려있었다· 스칼렛은 고민 끝에 큐브에 아주 희미하게 지장만을 남기고서 복귀를 시작했다·
벌컥─·
거처의 문을 열었다·
플란의 거처는 그새 더 고급스러워져 있었다· 화로 앞의 고풍스러운 의자에 앉아 그는 독서중이었다·
스칼렛이 입술을 떼었다·
“완수했다·”
플란은 큐브와 연결되어있는 기록지를 통해 스칼렛의 지장을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과제는 단순하다·”
플란의 입체 그림이 이번에도 특정 지역을 가리켰다·
“혈귀 한 마리를 처치해라· 스칼렛·”
“그거면 되나·”
“그래· 종류는 가리지 않는다·”
스칼렛은 순순히 거처 밖으로 나섰다· 하급 혈귀들은 자신의 기척을 숨기기는 커녕 과시하고 다니니 찾아내는 것이 너무나도 쉬웠다·
신경쓰는 부분은 이번에도 기척·
스칼렛은 혈귀의 뒤편으로 소리 없이 다가가 숙련된 동작으로 혈귀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후·”
이만하면 됐을 터· 또다시 복귀했다·
플란은 여전히 독서에 매진하고 있었다· 어떠한 실수도 저지르지 않은 것 같아 나름 자신이 있었으나·
“세 번째 과제다·”
아직도 끝이 아닌 모양이었다·
스칼렛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세 번째도 있었나·”
미간을 좁힐만한 이유가 있었다· 복귀하는 과정에서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들 휴식하는 상태였다· 바꾸어말해 플란은 자신에게만 더 많은 과제를 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플란은 여전히 책에 시선을 둔 채로 그저 물을 뿐이었다·
“포기할 건가· 스칼렛·”
“···아니다·”
스칼렛은 조용히 밖으로 나섰다·
세 번째 과제가 시작되었다· 내용은 여명 나비를 발견할 것· 눈으로 관측하기만 하면 끝이다·
기척을 더더욱 숨겨야만 했다· 고유 능력은 커녕 근력을 사용할 때에도 주의해야했고 스칼렛은 그 모든 것들을 오로지 정신력으로 이겨냈다·
“후····”
기척을 완전히 숨겼다고 해도 여명 나비를 목격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녀석이 말도 안 되게 예민한 탓이다·
그리고 마침내 겨우 발견해낸 한 마리·
여명(黎明)을 날개에 담아낸 고귀하고도 희귀한 존재· 그것은 이내 어떠한 전조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성취감보다도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이 컸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으니 더 이상의 과제도 없을 터였다·
“····”
스칼렛이 거처로 복귀했다·
지칠대로 지친 몸이었기에 땀에 젖은 앞머리는 이미 얼굴에 온통 달라붙어 있었다·
또한 다른 대기 인원들은 자신들의 거처로 복귀한 것인지 이 공간에는 자신과 플란 둘 뿐이었다·
“완수했다·”
사그락 사그락·
스칼렛의 말을 듣고도 플란은 책장을 넘길 뿐이다· 침묵이 길어질 때마다 스칼렛의 목이 타들어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플란이 말했다·
“스칼렛 여명 나비를 목격한건가·”
“그래·”
“알았다· 고생했다·”
플란의 대답은 고작 그게 끝이었다·
“····”
스칼렛이 여명 나비를 목격했던 것을 굳이 검증하지도 않고 추가로 무언가를 추궁하며 묻지도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고생했다며 인정해줄 뿐·
합격인가 불합격인가· 의중을 알 수가 없었다·
“플···· 아니 이봐·”
플란·
그 이름이 쉽게 내뱉어지질 않아서 말을 바꾸었다·
“나는 결과를 알고싶다·”
“결과라···· 막 결정을 내린 참이다·”
플란이 마침내 책을 덮었다· 허공에서 서로의 붉은 눈동자가 맞닿는다·
“탈락이다· 스칼렛·”
“····”
처음에는 본인이 무엇을 들었는지 못했다·
“···?”
그리고 세 박자 늦게 의문이 들이닥쳤다·
스칼렛의 눈이 멍해졌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 있어 패착은 하나도 없었다·
스칼렛은 입술의 개폐만을 반복하다가 겨우겨우 소리를 쥐어짜냈다·
“실패 실패는 하나도 없었을 텐데····”
“그래·”
이어지는 말을 단호하게 토막내는 음색·
플란의 무표정한 눈빛이 자신에게로 향한다·
“그래서 네가 내 계획에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비수와도 같은 말이 가슴에 박혀들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