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3
강의실 한가운데에서 온갖 시선들이 뒤엉킨다· 그 지점에 서있는단 한 명의 사내 플란은 조용히 마나를 끌어올렸다·
“술식 설명은 생략하지·”
강의실 내부가 고요해졌다· 눈앞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수인들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듯 느긋했고 인간들의 눈은 이채를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엘프들은 아주 작은 흠이라도 짚겠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바람·
엘프가 태생적으로 좋아하는 속성·
그들은 바람을 무려 41가지 단어로 표현하며 구분한다· 엘프들의 삶에 있어 바람은 늘 존재하고 관심 또한 크기 때문이다·
스르륵─
플란의 마나가 정갈한 바람을 흩날렸다· 옷깃을 여미게 할 정도가 아닌 긴장을 풀어주는 온순한 것· 우선「산들바람」이었다·
“부드럽네· 잘 다룬다·”
“확실히·”
바람 원소가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는 듯한 현상이 계속되자 서서히 전염되어가던 의심은 눈 녹듯 녹아내렸다·
이것이 으레 ‘바람 원소’하면 모두가 떠올리는 것·
교재를 펼치면 즉시 마주할 수 있고 삶에서도 제법 익숙하게 마주하는 것이엇으나 굉장히 정순하고 청아하다는 것을 모두들 체감했다·
요컨대 마법으로 발현된 바람같지가 않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바람을 마주한 듯 위화감이 없는 것이다·
“마나 되게 푸르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바람같아·”
많은 수의 좌중들이 바람의 손길을 만끽하기 시작했다· 바람 원소 자체는 굉장히 흔한 것이나 자신을 이토록 부드러이 쓰다듬어준다면 당연히 환영이었다·
‘단순하다·’
하지만 발현의 당사자 플란의 감상은 달랐다· 느끼는 감정을 굳이 표현하자면 지루하다·
플란은 이 발현에 주관을 넣지 않기 위해서 힘써야했다· 우선 가장 기본에 가까운 바람 원소를 선보여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페리엔의 논문에 저술된 변용((變用)을 비교하며 설명하기 위해서는 기본값부터 느껴야하지 않겠는가·
이내 「산들바람」이 자취를 감추자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좌중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역시는 역시네·”
“플란이잖아·”
“연습일까 재능일까···?”
여기저기서 떠도는 칭찬과 의문 이채가 서린 눈빛과 아직은 탐탁치 않은 눈빛· 온갖 것들이 플란을 둘러싼채 뒤섞인다·
아주 나이가 어린 몇몇 예비 합격자들을 제외하면 호들갑이라고 여겨질만큼 유난을 떠는 이는 없었다·
고작 오분의 일 정도를 설득한 발현이었다·
‘그래야지·’
플란 역시 이 정도가 만족스러웠다· 페리엔이 질문했던 ‘마법을 잘 다루느냐’에 관한 대답은 아직 내놓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엘프 진영은 여전히 불편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중이다· 페리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곰방대를 피우진 않았지만 대신 계속해서 만지작거렸다·
플란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발현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저 좌중의 이목을 또 한 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였을 뿐·
“훌륭함·”
문득 내뱉어진 세 글자·
다들 동작을 멈추었다· 플란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서 귀를 기울이고 정신을 집중한다·
“훌륭함은 세뇌되는 감상이 아니다· 진정 훌륭한 것이라면 굳이 배우지 않아도 훌륭하다고 느끼지·”
훌륭함에는 이해가 필요없다· 체감이 먼저 되니까·
마법은 그 자체가 기적이기에 의미를 갖는다· 말을 덧붙여가며 뜻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플란이 마법사가 되었던 날부터 지켜왔던 신념이었다·
따라서 마법사는 마법으로만 대화할 줄 알아야한다· 마법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할 터다·
“한데 아쉽다는 감상 역시 마찬가지겠지·”
모두들 조용히 눈만 깜빡였다·
플란의 의중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사내는 손가락을 튕겼다· 다시 한 번 「산들바람」이 강의실 내부를 부드럽게 감싸안는다·
“이번에도 술식 설명은 생략한다·”
머릿속에 다섯 개의 술식을 그린 다음 플란이 기류를 다루었다· 바람 원소의 첫인상은 그저 평범햇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강의실 내부를 한바퀴 반 정도 회전한 기류가 일시에 위로 솟구쳤다· 세기는 별로 강하지 않았으나 모두를 일으켜 세울 듯한 간지럽힘이었다·
이 바람의 이름은 「격려」·
“이건···?”
“와·”
사방에서 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철저한 설계 회로가 매듭지어진 형태 마나의 배합···· 그 모든 것을 바람이라는 질감으로 체감하게끔 만든다· 그것을 느낀 이들이 하나둘 입을 벌렸다·
플란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했다·
‘고작 이 정도인가·’
두번째 발현은 페리엔이 논문에 저술했던 양식을 따랐다· 일전에 입을 열어 직접 말했듯 페리엔이 바람 원소를 오래 접했다는 것 정도는 실감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것이 더 많다·
‘격려’라는 감정을 바람으로 표현하려는 의도는 좋았지만 방식이 아쉽다· 적어도 플란에겐 그랬다·
“중간에 어떻게 바뀐거야?”
“처음 시작은 같았잖아·”
“술식을 중간에 교체한거야? 환승발현···?”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의문을 싸그리 무시한채 플란은 천천히 중얼거렸다·
“페리엔의 저술이 이런 식의 연구였지·”
플란이 여유롭게 고개를 돌려 페리엔을 바라보았다· 사내의 붉은 눈동자와 페리엔의 탁한 눈동자가 허공에서 보란듯이 교차했다·
“····”
줄곧 눈을 반쯤만 뜨고있었던 페리엔이 전부를 떴다·
논문에 적혀있는 술식은 결국 그림이나 활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재 그것을 꼼꼼히 살피는 것도 아니고 뇌리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완벽히 발현하다니·
페리엔도 나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때· 가만히 앉아있던 베키가 중얼거렸다·
“논문에 담겨있던 것보다도 잘한 것 같은데····”
베키에게로 엘프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꽂혔다· 베키는 조용히 고깔모자의 챙을 내리는 것으로 그것들을 방어했다·
그러나 현재 강의실에 페리엔의 저술을 읽은 이가 베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확실히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해·”
“해석이 틀려서 달라졌을 가능성은?”
“이렇게나 훌륭했는데···· 그렇겠냐?”
우선 플란의 위치 정도는 충분히 설명된 듯 했다· 그러나 자격을 증명한 플란은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저 또 한 번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할 뿐·
아직 마지막 발현이 남았다·
으레 모두가 떠올리는 바람 원소가 아닌 페리엔이 재해석한 바람 원소가 아닌 오롯이 자신의 것·
“아까 아쉬움에 대해 논했었지·”
그의 담담한 목소리가 일대를 훑었다· 어느덧 대다수의 표정에는 기대감이 묻어있었다·
“편히 보아라· 이번에도 설명은 없으니·”
모두가 말의 의미를 깨닫기도 전에 플란이 눈꺼풀을 밀어올렸다· 붉은 보석같은 눈동자가 차츰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도 아주 부드러운 발현과 함께·
세 마법의 동시 발현이었다·
「산들바람」 「격려」두 가지 위로 플란이 변용시킨 기류가 합치를 이루어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세 개···?”
“말도 안 돼·”
모두가 체감했다·
플란의 마지막 발현이 위로 서서히 올라서고 있다· 음악으로 치면 이전의 두 발현은 반주에 불과했다·
플란은 약속했던 것처럼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훌륭함도 아쉬움도 설명이 필요없는 감상이므로· 또한 비교해서 놓고 본다면 더욱 여실히 드러나므로·
‘한결 낫군·’
논문의 내용을 머릿속에 불러오는 작업은 쉬웠다· 다만 나름의 재해석을 거치는 과정이 있었을 뿐이다·
격려(激勵)는 용기나 의욕을 복돋워주는 것이다· 이토록 추상적인 감정을 바람의 질감으로 다루려면 단순히 상승 기류로만 표현해서는 안 된다·
스르륵─·
어느덧 강연장은 단 한 명을 위한 독무대가 되어있었다· 플란의 재해석이 성공적인 마무리를 거두었다는 것은 굳이 두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 되었다·
“····”
발현이 끝난 뒤 강의실은 고요했다· 입을 벌린 이들은 많았지만 소리가 나오는 일은 없었다·
“도대체 뭐야 이게·”
적막을 깬 것은 한 엘프의 넋 나간 목소리였다· 줄곧 껌을 질겅질겅 씹어대던 태도의 엘프였다·
그것이 신호탄이 되어 여기저기서 입을 열었다·
“대단한데 내가 뭘 봤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그게·”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반응에는 공감도 섞여있었다· 대단하다는 점에 있어서만큼은 모두들 이견이 없었다·
플란은 조용히 엘프 진영을 바라보았다·
“이만하면 됐나·”
“····”
엘프은 본인들끼리 시선을 교환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토록 유려하다면 반박이 불가능하다· 아니 오히려 꼬리를 문다면 자신들의 위상만 낮아지게 될 터·
하지만 플란은 만족하지 않았다·
“나는 네게 말하고 있다·”
그의 시선은 페리엔에게 향해있었다·
“아쉽다는 말· 이제는 이해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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