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6
두개의 검이 교차하며 지면에 박힌 형태의 건물· 이곳에는 기사들의 원탁이 있으며 크기는 위엄을 대변하듯 압도적이다·
또한 원탁은 세간에서 검성(劍星)의 대명사로 알려져있다·
기사들 역시 이곳에 방문하는 것을 1순위로 꿈꾼다· 그들이 검을 단련하는 장소와 방식은 다양하지만 결국 최종 목적은 이곳에서 검성으로 거듭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소 수도 기사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닿을 수 있는 이곳에 스칼렛이 발을 디뎠다· 눈에 붕대를 두른 맹인이 그녀를 맞이한다·
이름 없이 그저 ‘안내자’라 불리는 소녀였다·
소녀는 스칼렛의 기운을 인식했다·
“스칼렛 유디트님께서 오셨군요·”
안내자는 고개숙이며 문을 열어주었다·
내부에 화려한 구조가 있지는 않았다· 새하얀 조명 아래 거대한 원탁이 하나 놓여있었을 뿐·
수도 기사를 위한 14개의 공석·
스칼렛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 착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13자리의 자리가 채워졌다·
수도 기사들은 자신의 검을 원탁 위로 올려두었다· 평범한 대검 기다란 초침 채찍처럼 늘어지는 특수검···· 종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하다·
“오랜만이야· 자기·”
고유 능력「매혹」의 주인 수도 기사 셀펜이 분홍색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인사했다· 플란과의 결투 이후 첫 조우였다·
스칼렛은 눈으로만 가볍게 인사했다·
곁의 누군가가 침묵을 깼다·
“한 명 빼고는 전부 모였네· 본론만 짧게 이야기하자· 시간이 아까워· 시간이····”
그리 중얼거리는 여기사의 동공에서는 분침과 시침이 소리없이 감기고 있었다· 기다란 초침을 휘두르는 이 시간을 베는 자 클로트였다·
클로트가 그리 중얼거린 순간·
현악기의 청아한 선율인 내부를 휘감았다· 동시에 원탁의 마지막 공석이 한 여인에 의해 채워졌다·
“좋아· 짧게만 전달하지·”
마지막으로 등장한 이는 원탁 위로 바이올린의 활을 올려둔다· 그것이 그녀의 검· 소리를 베는자 비올라였다·
비올라는 악보를 사람으로 빚어낸 듯한 인물이었다· 머리카락은 종잇장처럼 새하얗고 그 위에는 오선지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새까만 선이 존재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의무적으로 수접제에 참여한다· 모르는 녀석은 없겠지·”
“귀찮아 죽겠어· 수접제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봐 우릴 호위로 세우는 거잖아·”
“그래서 수접제에서 상위 등수를 기록한 자는 영웅전에서 특전을 수여한다는 모양이다·”
“특전?”
“결투의 시간 일시 장소를 정할 수 있는 거지·”
“우리 의욕을 그런 식으로 돋구겠다는 건가····”
수도 기사간의 우위는 일률적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 때와 장소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것이기에 이는 두말할 것 없이 훌륭한 특전이었다·
“바꾸어 말해 하위조의 수도 기사에게는 불이익이 있다는 거다· 그리고 한가지 더·”
비올라가 바이올린 활을 가볍게 들었다· 높은 옥타브의 음과 함께 원탁이 반으로 갈라진다·
“수도 기사의 정원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
모두 원탁의 상태보다는 발언에 집중했다· 누군가가 재빠르게 되물었다·
“정원을 무려 절반으로 줄인다고? 영웅전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기에?”
영웅전(英雄戰)에서 우승하는 이에게는 칭호가 주어진다· 검성의 경우 기사가 받는 칭호다·
마법사의 칭호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마법사 출신 우승자는 없었고 출전자도 없었기에·
“갑자기 그건 왜 줄이는데?”
“둘째 황녀께서 수도 기사의 자질에 의문을 품었으니까· 14명 모두가 황궁의 혜택을 받을 자격은 없다· 그런 생각이겠지·”
“우리 자질을 의심한다고? 아 설마·”
대화가 이어지던 도중 셀펜이 은근슬쩍 스칼렛을 바라보았다·
“이거 스칼렛 때문인가?”
노골적인 지목에 원탁이 조용해졌다· 셀펜은 개의치않고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맞지 않아? 스칼렛이 플란한테 졌다는 거 황녀도 알 거 아니야· 그거 때문이네·”
기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스칼렛에게 향했다·
그들의 시선은 각기 다양했다· 진실이 궁금하다는 듯한 눈빛 순수한 호기심···· 모두의 얼굴에서 따분함 하나만큼은 확실히 사라졌다·
“아···· 진짜· 그러게 왜 그런 결투를 해서·”
“별로 상관없을 것 같소·”
하지만 누군가가 셀펜의 말을 툭 끊어놓는다·
목소리의 주인은 기억을 베는 자· 리브라였다·
“어차피 검성의 칭호를 받게되는 것은 단 한 명· 또한 수가 줄어들면 수도 기사의 희소성도 비례하여 높아지는 것 아니겠소이까·”
“지금 그런 문제가 아니라 멀쩡하게 잘 받던 혜택을 절반은 못받게 된다는 건데···!”
“그렇다면 나는 되물어야겠소· 셀펜 당신의 목표는 무엇이오·”
“뭐?”
셀펜이 기가 찬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궁금할 뿐이오· 나는 그대가····”
리브라가 삿갓을 슬쩍 들어올렸다· 가려져 있었던 오묘한 눈빛이 셀펜을 응시한다·
“혜택이 목표인 기사처럼 보이더이다·”
“뭐라는 거야· 이게 다 스칼렛이····”
“기사는 결투를 반기는 이· 오직 검으로 대화하는 존재· 스칼렛에게 불만이 크다면 생사결이라도 치루면 되는 일 아니겠소·”
“하····”
셀펜이 시선을 피하는 것으로 둘의 대화는 맺어졌다· 이후 원탁이 소란스러워졌다·
“리브라 말이 맞긴 하지·”
“오히려 재밌는데· 검좀 쓴다는 놈들 밟아놓는 건 이제 질렸어· 강한 마법사는 영원히 안 나오나 싶었는데···· 이제 하나 나온 모양이네·”
“걔 이름이 뭐라고? 플란?”
“넌 신문좀 읽어라· 검만 휘두르지 말고·”
여기저기서 대화가 미친듯이 뒤섞인다· 결국 비올라가 다시 한 번 바이올렌의 활을 쥐었다·
“─·”
“─·”
“─·”
모든 소리가 절멸되어 사라진다·
고요해진 원탁· 모두가 입을 뻐끔거리지만 결국 어떠한 소리도 내려앉는 법이 없다·
“잡음은 내지 말자 좀· 시끄럽잖아·”
비올라가 중얼거렸다·
물론 반발은 있었다·
“누군 검을 못 쥐는 줄 알아·”
“시간 아깝네···· 나도 벨까····”
“그만·”
이번에도 상황을 진정시킨 건 리브라였다·
“남은 이야기는 수접제에서 하시오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리브라는 비올라를 응시했다·
“검 자주 쓰지 마시오· 격 떨어지니까·”
◈
6일 뒤· 밤 11시 50분의 훈련장·
수접제의 개막까지 10분이 남은 지금·
“····”
태연하게 서있는 플란의 앞에 유시아와 트릭시는 너나할 것 없이 초라한 행색으로 쓰러져 있었다·
그녀들은 겨우 눈동자만을 굴려 플란을 바라보았다·
‘괴물·’
‘따라갈 수가 없어····’
트릭시와 유시아의 감상이란 그러했다· 일주일 내내 고작 세 시간을 수면하며 지옥과도 같은 훈련을 감내한 결과였다·
그러던 중 플란이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라·”
“예?”
“너희를 훌륭한 마법사로 길러내겠다· 수접제를 거쳐 마탑은 공고한 입지를 가지게 될 것이다·”
평소처럼 담담한 목소리·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진실되게 들렸다· 유시아와 트릭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훈련을 조금만 더 반복하면 죽을지도 모르겠지만···· 살아만 남는다면 성과를 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플란은 늘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너·”
문득 트릭시가 입을 열었다·
“트리비아나 좀 봐·”
“갑자기 웬 트리비아·”
“···그냥·”
트릭시가 시선을 피했다· 플란은 요즘 들어 이상해진 듯한 트릭시의 태도를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그럼 지금부터는····”
“음?”
플란이 천천히 마나를 갈무리했다·
“최종 점검에 들어간다·”
“···최종 점검?”
“놀라운 일은 아니지 않나·”
트릭시와 유시아는 그냥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항변할 힘도 없었고 항변한다 하더라도 어차피 해야할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극한까지 쥐어짠다 생각해라· 버텨내기만 한다면 분명····”
플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등위가 하나 정도는 오를 테니까·”
등위·
그 두 글자를 듣는 순간 유시아와 트릭시의 몸이 움찔 떨렸다· 마법사에게 있어 등위를 한 단계 올린다는 것은 더없는 성취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최종 점검은 기사와 대련하는 것으로 한다·”
“기사와 대련이면····”
유시아가 눈동자를 굴렸다·
“아이반 양 자네트 양· 그중 한 명이겠군요·”
“이제 상대해볼만 할 것 같은데·”
“예 트릭시 양· 저도 겁은 안 납니다·”
트릭시와 유시아의 대화를 지켜보며 플란은 나름 흡족했다· 예전이라면 걱정부터 줄줄 늘어놓았을 녀석들이 이제는 시도해볼 생각부터 하고 있었으니까·
“플란 경· 저희는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
두 소녀가 비틀거리며 일어나자 플란은 조용히 훈련장 입구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불투명한 유리문 앞에는 알 수 없는 이의 실루엣이 있었다·
그런데 그 실루엣이 너무 길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트릭시와 유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이렇게 키가 커·”
“그러게 말입니다· 아이반 양이나 자네트 양은 키가 크지 않을 텐데····”
문이 열리고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게 물든 밤하늘을 도려내 엮은 듯한 머리칼 얼굴에서 일렁이는 붉은 색 눈동자·
“····”
잔불의 기사 스칼렛 유디트였다·
“···!”
유시아와 트릭시의 눈이 한 박자 늦게 휘둥그레졌다· 두 소녀는 서로를 한 번 마주보더니 이내 플란에게로 동시에 고개를 돌다·
“너···!”
“플란 경?”
시계의 초침이 자정을 가리켰다·
수접제 당일이 된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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